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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한국강해설교연구원 원문보기 글쓴이: 조춘숙
말 씀 역대하 32장 24-26절, 열왕기하 20장 1-11절
제 목 히스기야의 악한 열매 므낫세[3]
사람은 현재를 올바로 살아내는 것이 너무 중요합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성도나 세상사람들까지도 현재를 올바로 살아야만 미래가 있기 때문입니다.
오랜 세월 동안 하나님을 잘 섬기던 성도가 한 순간에 신앙을 버리는 것도 현재를 소홀히 생각하며 살았기 때문에 믿음을 버린 것이며, 부모에게 받은 엄청난 유산을 지켜내지 못하는 것도 모두 현재에 소홀했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입니다.
지금 어떤 판단을 하느냐에 따라서 결과가 달라지고, 무엇을 심느냐에 따라서 열매가 달라지며, 심령이 깨끗하거나 더러운 것에 따라서 인생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인간에게 현재만큼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아무리 분이 나는 일이라 할지라도 지금 참아야만 문제를 크게 만들지 않을 수 있고, 아무리 귀찮은 일이라도 지금 해야만 성과가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과거를 너무 쉽게 버리고, 현재를 너무 쉽게 판단하며, 미래에만 집착하고 있습니다.
미래에 집착하게 되면 판단력을 상실하게 되므로 지금 당면한 문제를 올바로 해결하는 능력을 키워야 할 것입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현재 자기가 축복을 받은 것은 그 누군가 자신을 위해서 기도로 도와주었고, 물질로 도와주었으며, 흔들리지 않는 환경을 만들어주었기 때문에 지금 내가 축복을 받았다는 것을 인정하고 감사합니다.
감사하는 사람만이 베푼 사람들과 동일한 행동을 할 수 있으며 또 누군가에게 본이 되는 삶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마음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성도의 자세이며, 이런 성도들이 더 많은 일을 감당할 수 있도록 축복을 부어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신앙을 가지고 현재를 살고 계십니까?
주위에 있는 사람들의 영혼을 믿음으로 세워주는 것은 결코 쉽지 않지만 그들에게 일관성 있게 본이 되는 삶을 보여줘야만 여러분이 전하는 말씀에 능력이 실려서 구원의 역사를 일으킬 수 있는 것입니다.
아비야는 히스기야를 믿음으로 키우기 위해서 본이 되는 삶을 살았습니다.
아들이 보는 앞에서는 절대로 세상적인 모습을 보이지 않았고,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좋지 않은 말이나 행동을 하지 않았습니다.
아들이 보고 있기 때문에 그녀는 흔들릴 수 없었던 것입니다.
이 시간 가장들에게 부탁하고 싶은 말은 자녀들에게 절대로 술 취한 모습이나 세상의 일 때문에 흐트러진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술을 마실 수밖에 없는 여러 가지 핑계가 있겠지만 자녀들이 믿음으로 성장하기를 원하거든 절대로 술 취한 모습을 보이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부모의 신앙의 삶을 보고 자기에게 믿음을 가르쳐준 부모를 공경하는 자녀들에게 장수와 물질의 복을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부모의 자리가 자녀의 인생을 결정할 만큼 그렇게 중요한 자리입니다.
술에 취한 모습을 자녀들에게 보여준다는 것은 자녀들이 그런 모습을 봐도 상관이 없고, 아이들이 어떻게 자라든 어떤 믿음을 갖든 상관없다는 생각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보실 때 그 자체로 죄가 되는 것입니다.
어머니들은 자녀들에게 일관성 있는 행동을 보여줘야 합니다.
한 입으로 쓴 물과 단물을 쉽게 내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권면하다가도 혈기가 나면 함부로 말을 던져서 상처를 주는 행동을 하게 되면 자녀들은 부모를 보면서 하나님을 일관성 없는 하나님으로 보게 될 것입니다.
부모가 부모답게 사는 것처럼 어려운 것은 없습니다.
하지만 자녀들이 부모를 공경해야만 그들이 건강하게 장수하는 복과 빼앗기지 않는 재물의 복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부모들은 날마다 죽는 심정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을 절대로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가족과 친척, 세상사람을 전도하고 싶다고 하나님께 늘 기도는 드리면서 정작 삶은 본이 되지 않는다면 하나님께서도 역사하지 않을 것입니다.
아비야가 아들에게 하나님을 알려주기 위해서 26년이란 세월을 믿음으로 산 것처럼 어떤 영혼을 구원하고 싶거든 아비야처럼 사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비야의 기도와 믿음의 삶을 보시고, 히스기야를 영원히 빼앗기지 않는 믿음의 열매로 주셨습니다.
성도가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은 믿음을 믿음으로 살아내는 것입니다.
교회를 다니는 것은 아주 중요하지만 중요하지 않습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인정하는 삶을 살아내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어떤 행동이나 말을 할 때 하나님께서 인정하실 수 있는 행동인지 한번만 생각하고 움직인다면 크게 실수 하지 않을 것입니다.
영혼을 실족시키는 것은 연자 맷돌을 매고 깊은 바다에 던져지는 죄이기 때문에 내 주위에 있는 사람들의 영혼이 나로 인해 실족하지 않도록 노력하셔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가룟유다에게 이제 네가 할 일을 하라고 말씀하시기 까지 얼마나 가룟유다를 사랑했으며, 그를 세우기 위해서 노력하셨는지 성경은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판 것은 가룟유다의 욕심이 그를 사로잡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삼년에 걸쳐 인간의 욕심과 정욕이 얼마나 하나님의 일에 방해가 되는지 또 인간의 의가 하나님의 의를 얼마나 막고 있는지 말씀해 주셨지만 마음으로 듣지 않았기 때문에 긴 세월을 한 순간에 버린 것입니다.
가룟유다가 지옥에 떨어진 것은 예수님의 잘못이 아닙니다.
가룟유다는 주님 곁에 있었지만 세상의 욕심과 정욕을 향해 죽는 심정으로 서지 않았기 때문에 사단에 의해 넘어지고 만 것입니다.
최승리가 저에게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목사님 사단이 사람들을 유혹해서 하나님을 떠나게 하고 지옥으로 끌고 가니까 악의 근본인 사단이 착하게 해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면 어떨까요?
참 어린아이다운 생각이기 때문에 크게 웃었습니다.
어둠을 물러가게 해 달라고 기도했다고 해서 환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어둠은 그 자체로 어둡기 때문에 기도했다고 해서 물러가는 것이 아니라 환한 빛을 넣어주기만 하면 어둠은 사라지는 것이라고 설명해줬습니다.
아무리 어두운 곳이라도 등불을 켜면 어둠은 사라집니다.
마음이 어두울 때는 하나님의 말씀의 등불을 켜야만 회복될 수 있습니다.
사람에게 도움을 청한다고 해도 사람은 등을 켜는 방법을 알려줄 뿐 빛을 내 줄 수는 없기 때문에 스스로 등불을 켜지 않으면 회복되지 않습니다.
히스기야는 그것을 하지 않은 것입니다.
어머니 아비야는 히스기야에게 등과 기름을 쓰고 남을 정도로 준비해 주었기 때문에 그는 등불을 켜기만 하면 항상 밝은 곳에서 신앙을 지키며 생활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어두운 세상이 자기를 높여주고 마음껏 사용할 수 있는 권력과 재물이 쌓이자 등불을 켜면 도리어 더러운 자신이 보이게 될까 봐 스스로 등불을 켜지 않고 어둠에 묻혀버린 것입니다.
사람들은 너무 가난하거나 부하면 낙심하거나 교만해져서 하나님에게 기도하거나 헌신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언제나 등불을 켤 수 있도록 모든 것을 준비해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빛을 밝히지 않는 죄를 짓고 있는 것입니다.
어머니의 기도와 하나님의 은혜로 위대한 왕이 되었고, 열국의 눈에 존귀한 자로 보이게 되었다면 그 때부터가 하나님의 일을 할 때입니다.
왕의 자리에 있기 때문에 그만큼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보여줄 기회가 많이 주어졌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고난 가운데 있을 때는 전도하기 힘들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안정을 찾고 사람들에게 간증할 수 있는 일들이 생기기 시작하면 얼마든지 그것을 이용해서 전도할 수 있습니다.
세상적으로 편안할 때가 하나님의 상급을 받을 수 있는 좋은 기회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편안하면 더 큰 편안함을 위해서 세상을 바라봅니다.
더 많이 가진 사람들이 눈에 들어오기 때문에 창고에 쌓을 재물을 찾아 어둠 속을 헤매보지만 성도는 한 걸음도 걸을 수 없는 곳이 세상입니다.
어둠속에서 세상사람이 아무리 빨리 달린다 해도 등불을 가지고 달리는 성도보다 정확하게 길을 찾아 빨리 달릴 수는 없습니다.
이것이 믿어져야만 하나님께서 주신 등불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람들의 칭찬과 섬김이 히스기야의 눈과 귀를 멀게 했습니다.
언제나 기도하고 응답을 받아 나라를 다스렸지만 이제 세상의 소유가 많아지자 얼마든지 혼자 할 수 있다는 생각에 사로잡혔습니다.
인간의 생각은 곧 사단의 생각이므로 아주 위험한 것입니다.
사단이 원하는 것은 결국 하나님의 자녀들을 지옥으로 끌고 가는 것이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는 즉시 사단의 영역에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영적인 세계를 알고 살아가면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판단 할 수 있게 되고, 절대로 유혹에 넘어가 모든 것을 한 순간에 잃어버리는 슬픔을 겪지 않을 것입니다.
이사야 38장 1절 그 즈음에 히스기야가 병들어 죽게 되니 아모스의 아들 선지자 이사야가 나와서 그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너는 네 집에 유언하라 네가 죽고 살지 못하리라 하셨나이다
이사야선지자는 교만해진 히스기야에게 왕은 곧 죽게 될 것이라고 전했습니다.
하나님과 어머니가 그에게 준 등불을 켜지 않고 세상이 주는 즐거움에 빠져 어둠 속에만 있자 죽을 병에 걸리고 만 것입니다.
역대하 32장 25절에 히스기야가 마음이 교만하여 그 받은 은혜를 보답지 아니하므로 진노가 저와 유다와 예루살렘에 임하게 되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히스기야는 하나님을 왕으로 모셨을 때 받았던 세상의 소유에 마음을 빼앗겨 교만한 마음이 생겼고, 이제 하나님을 왕의 자리에서 쫓아내고 자기가 왕의 자리에 앉았습니다.
사람의 마음은 언제나 한 쪽을 향하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빛이고, 세상이 어둠이라면 성도들이 빛을 들고 있어줘야 어둠에 있는 사람들이 빛을 보고 나올 것입니다.
등불을 들고 있는 성도들이 일관되게 빛에 있지 못하고 빛과 어둠을 넘나들기를 반복한다면 결국 기름을 공급받지 못하게 되므로 하나님께 축복을 받을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의지하기 위해서 인내하지 못하는 사람에게 더 이상 성령의 기름을 부어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제가 드리는 말씀을 영적으로 예민하게 받아들이기 바랍니다.
이런 말씀은 여러분의 영혼을 살리는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히스기야는 이사야 선지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을 때 놀랬을 것입니다.
자기가 가지고 있는 재물과 권력과 생명을 한 순간에 모두 빼앗길 수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지금 누리고 있는 모든 것은 히스기야의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뜻대로 우상을 척결하고, 나라와 백성을 하나님의 뜻대로 다스렸을 때 하나님께서 부어주신 상급이기 때문에 그는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하지만 히스기야와 백성들은 교만해졌고, 더 이상 하나님의 뜻을 존중하는 성도가 아니기 때문에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타락의 길로 인도하는 히스기야의 목숨을 거두려고 하신 것입니다.
이사야선지자의 말은 곧 하나님 말씀이기 때문에 그는 두려웠습니다.
하나님 심판의 말씀을 듣는 즉시 히스기야는 얼굴을 벽으로 향하고 통곡하며 기도하였습니다.
그는 심판의 말씀을 듣고 마음이 급해지자 과거에 자기가 얼마나 하나님께 잘했는지 기억해 달라고 매달렸습니다.
주님의 뜻대로 행했던 그 시간을 선하게 봐서 지금의 죄를 용서해 달라고 기도하면서 살려달라고 한 것입니다.
여러분께서는 울고 있는 히스기야를 보시면서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불쌍하다는 생각보다는 그의 기도와 눈물을 보면서 화가 나지 않습니까?
하나님이 사랑과 은혜를 부어주실 때 왜 지혜롭게 행동하지 못하고 이렇게 목숨을 빼앗길 지경까지 떨어져야 회개하는지 안타까울 뿐입니다.
정말 인간의 악함은 끝이 없는 것 같습니다.
용서하기를 몇 번이고, 회개하고 돌아서기를 몇 번인데도 죄를 향해 달려가는 인간을 끝까지 품어주시는 하나님은 정말 대단하신 분 같습니다.
하나님은 온유하신 분이기 때문에 그에게 또 한번의 기회를 주셨습니다.
열왕기하 20장 5절 이사야가 심판을 전하고 성읍에 이르기 전에 하나님께서는 이사야에게 다시 돌아가서 히스기야에게 내가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기 때문에 내가 너를 낫게 하리니 네가 삼일만에 여호와의 전에 올라가게 될 것이라고 전하라고 하셨습니다.
여러분 이런 하나님을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어떤 죄를 지었을지라도 하나님을 붙들기만 하면 또 다시 기회를 주시는 너무 좋으신 하나님입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자녀로써 자비와 온유함을 보여야 할 것입니다.
용서를 구하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처럼 용서해주고, 도움을 청하는 사람에게는 기꺼이 도움을 주는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서 베푸시는 사랑을 배워야 할 것입니다.
히스기야는 하나님께 15년의 생명 연장을 받았습니다.
15년을 더 살도록 허락하시면서 예루살렘 성 역시 앗수르왕의 손에서 구원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구하지 않은 것까지 축복으로 주시는 하나님입니다.
예루살렘성을 구해주는 것은 히스기야가 기도했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약속하신 것을 지키기 위해서 역사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위해서 응답하신 것처럼 성도들의 기도에 응답하시는 것은 성도들이 선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언제든지 하나님을 배신할 수 있는 악한 인간인 줄 알지만 그들을 위해 목숨을 버리신 그리스도를 보시고 용서하시는 것입니다.
눈물로 회개했기 때문에 세상의 문제를 해결해 주시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우편에서 기도하고 계시기 때문에 응답해 주셨다는 것을 절대로 잊지 않기를 바랍니다.
열왕기하 20장 8절 히스기야가 이사야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나를 낫게 하시고 삼일만에 여호와의 전에 올라가게 하실 무슨 징조가 있나이까
이사야선지자가 그의 상처에 무화과를 반죽해서 발라주자 신기하게도 완치가 되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히스기야를 죽을 병에서 건져주신 것은 하나님께서 그에게 무엇을 원하고 계시는지 이 사건을 통해서 너무나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히스기야가 믿음으로 살아주기를 원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가 우상을 척결하고 성전을 회복하는 행동을 보였기 때문에 축복하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려고 노력한 그 마음을 보시고, 축복하신 것이기 때문에 그가 하나님께 매달리며 눈물로 기도하자 또 다시 그 마음에 응답하신 것입니다.
그런 하나님께 히스기야가 처음 한 말이 감사가 아니라 바로 내가 살 수 있는 증거를 보여 달라는 것입니다.
이사야는 어이 없었지만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하라고 말을 합니다.
해 그림자가 십도를 나아가게 할 것인지 아니면 십도를 뒤로 물러가게 할 것인지 택하라고 하자 그는 그림자가 앞으로 나아가는 것은 당연한 것이기 때문에 쉬우니까 자기를 위해서 십도를 뒤로 물러가게 해 달라고 했습니다.
철저하게 악한 인간의 본성을 드러내고 만 것입니다.
죽을 병이 치료되고 15년이라는 시간을 허락 받았다면 그것으로 만족하고 하나님의 약속을 믿으면 되는 것입니다.
히스기야가 만약 건강을 주신 것을 감사하고, 생명을 연장해 준 것을 감사하고, 회개를 받아주신 것을 감사했다면 거듭난 히스기야에게 15년이 아니라 더 긴 세월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도록 모든 것을 회복시켜 주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히스기야는 눈으로 봐야만 믿겠다는 신앙으로 바뀌었습니다.
그가 지금까지 가진 신앙은 하나님을 왕으로 섬긴 신앙이었기 때문에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는 것처럼 믿으면서 신앙을 지켰습니다.
하나님은 그 믿음위에 영육간의 놀라운 축복을 부어주신 것입니다.
하지만 이제는 눈으로 봐야만 하나님의 말씀을 믿겠다는 것입니다.
이런 히스기야를 보시면서도 그에게 15년이라는 시간을 주셨습니다.
지금까지는 하나님께서 히스기야의 인생을 책임져 주셨지만 이제부터 모든 책임을 히스기야가 져야 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울타리를 벗어났다고 좋아할 것이 아니라 두려워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안 계신 15년이라는 시간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하나님을 시험하면서 살아가는 그의 인생은 이미 어둠뿐입니다.
하나님은 히스기야 한 사람을 위해서 해 그림자를 십도 뒤로 물리시는 기적을 보여주셨습니다.
이것처럼 예수님께서는 여러분 한 사람을 위해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흙으로 만드신 피조물을 위해서 하나님께서 자신의 생명을 대속한다는 것은 해 그림자가 십도 뒤로 가는 것보다 더 큰 기적입니다.
그런 기적을 눈으로 보고도 성도들이 거듭나지 않는다면 하나님을 배신한 히스기야보다 더 큰 죄를 짓고 있는 것입니다.
히스기야가 시간이 거꾸로 가는 기적을 보고도 선의 자리로 옮겨 앉지 않은 것처럼 성도들 역시 하나님의 은혜를 날마다 받고 있으면서도 죄를 짓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있습니다.
사도바울이나 믿음의 선지자들은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께 자기가 믿을 수 있도록 증거를 보여달라고 요구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만약 증거를 요구했다면 그것은 백성들의 영혼구원을 위해서 그들을 위한 증거였을 뿐입니다.
이제 히스기야에게 남은 것은 심판뿐입니다.
그는 바벨론왕이 보낸 사신에게 하나님께서 자기를 어떻게 치료하셨는지 전한 것이 아니라 자기가 소유한 금과 은과 향품과 보배로운 기름과 군기고와 내탕고의 모든 것을 보여주며 자랑했습니다.
정말 지혜로웠던 히스기야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빛을 스스로 가리자 어둠에 싸인 미련한 자가 되고 말았습니다.
이사야는 너무 걱정스러워서 히스기야에게 그들에게 무엇을 보여주었느냐고 묻자 히스기야는 내가 내 궁에 있는 것을 하나도 보여주지 않은 것이 없다고 대답했습니다.
열왕기하 20장 16-18절 이사야가 히스기야에게 이르되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소서 여호와의 말씀이 날이 이르리니 무릇 왕궁의 모든 것과 왕의 열조가 오늘까지 쌓아두었던 것을 바벨론으로 옮긴바 되고 하나도 남지 아니할 것이요 또 왕의 몸에서 날 아들 중에서 사로잡혀 바벨론 왕궁의 환관이 되리라 하셨나이다
어머니의 기도로 지혜로움을 가졌던 히스기야가 빛을 멀리하므로 이제 나라를 빼앗기고 백성은 포로로 끌려가게 하는 악한 왕이 되었습니다.
이 예언은 B.C 586년에 예루살렘이 멸망하므로 그대로 성취되었습니다.
히스기야는 나라가 멸망한다는 이사야선지자의 말을 들었고, 자기의 후손들이 포로가 되어 바벨론 왕궁의 환관이 된다는 말을 듣고도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부모의 불신앙은 결국 자녀들의 고난으로 이어집니다.
아비야의 믿음은 히스기야에게 축복으로 이어졌지만, 히스기야의 불신앙은 그의 아들 므낫세에게 악한 영향을 끼쳤습니다.
이렇게 무서운 예언을 듣고도 히스기야는 당신의 전한바 여호와의 말씀이 선하니이다 하고 또 가로되 만일 나의 사는 날에 태평과 진실이 있을찐데 어찌 선하지 아니하리요 라고 말했습니다.
주석에는 히스기야가 살아있는 동안에 태평과 진실이 있는 것은 그가 신앙을 돌이킨 증거라고 설명하고 있지만 제 생각은 조금 다릅니다.
그가 사는 동안 나라가 태평한 것은 하나님께서 15년의 시간을 허락하셨기 때문이며, 이스라엘의 멸망의 때가 아직 되지 않았기 때문에 평화로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라를 빼앗기고 후손들이 포로가 되어도 자기가 사는 동안 평안하면 된다는 히스기야의 생각은 이미 사단에게 붙들린 쓸모 없는 사람입니다.
오직 자신만 아는 이기적인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므낫세의 이름의 뜻은 망각하게 하는 자인데 그는 12세에 왕위에 올라 55년을 치리 하였습니다.
그는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했고, 이방사람들의 가증한 일을 본 받아 히스기야가 헐어버린 산당을 다시 세우며, 바알과 아세라 목상을 만들어서 숭배하는 죄를 지었습니다.
므낫세가 12세에 왕에 오른 것을 보면 히스기야가 하나님께 15년의 생명을 연장 받은 그 기간 동안 태어난 아들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차라리 히스기야가 병이 들어 회개하는 중에 하나님의 부름을 받아 품에 안겼다면 므낫세처럼 악한 열매를 세상에 남기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가 생명을 연장 받았을 때 아비야처럼 하나님의 뜻대로 삶을 사는 모습을 아들 므낫세에게 보여주었더라면 므낫세가 바알과 아세라를 섬기는 죄를 짓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현재를 잘못 산 히스기야의 미래는 죄로 얼룩졌습니다.
여러분께서는 지금 어떤 열매를 남기기 위해서 달려가고 계십니까?
지금 여러분이 살아가고 있는 현재가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마지막 한번의 기회를 주신 것이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세상에 마음을 빼앗겨 하나님을 떠난 히스기야처럼 므낫세를 세상에 남겨서는 절대로 안 될 것입니다.
사후에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 정해진 것이라면 현재 믿음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을 잊지 않기 바랍니다.
아비야처럼 믿음의 열매를 남기기 위해서 올바른 인생을 살아야만 하나님의 놀라운 축복을 받는 인생이 될 것이며, 그 열매를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낼 수 있을 것입니다.
축복으로 시작한 히스기야는 므낫세를 남기고 쓸쓸히 사라졌습니다.
하나님안에서 믿음으로 살기만 하면 축복을 받을 수 있는데 사람들은 무엇 때문에 어리석은 길을 선택해서 걸어가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말씀으로 본이 되는 인생을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보고 있다는 것을 잊지 않고 말씀대로 살아간다면 그들의 영혼을 구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언제나 하나님의 자녀로써 아비야처럼 귀한 열매를 남기시는 성도가 되시기를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2011,9,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