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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전 세계 각국에 자기 입맛에 맞지 않는 정권이 출범하면 분열 공작을 벌여 해당국 정권을 갈아치우려는 수작을 숱하게 반복해 왔다.
예나 지금이나 각국을 상대로 한 미국의 분열 공작은 끊이질 않고 있다.
특히 최근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2기 정부는 이재명 정부를 상대로 정치, 군사, 경제 등 여러 측면에서 전방위적으로 공격하며 흔들고 있다. 미국인 극우 부정선거론자 모스 탄이 지방선거를 앞두고 한국에 들어와 국내 극우내란세력에게 재선거, “이재명 탄핵”을 선동하는 점을 대표 사례로 꼽을 수 있다.
미국이 각국 정권을 무너뜨릴 때 동원하는 대표적 수법이 이른바 색깔혁명이다. 말은 혁명이지만, 그 진짜 꿍꿍이는 해당국에 미국의 말을 고분고분 따르고 수행하는 정권과 체제를 이식하려는 데 있다.
이번 글에선 미국의 분열 공작 중에서도 색깔혁명, 선거 개입 횡포 사례를 들여다보려 한다.
우크라이나 색깔혁명의 실체
색깔혁명의 대표 사례로는 우크라이나의 오렌지 혁명(2004년), 유로마이단 폭동(2013~2014년) 등이 있다. 미국의 개입 속 친미세력이 폭동을 일으켜 우크라이나 정권을 무너뜨린 점이 같기에 오렌지 혁명을 1차 유로마이단으로 분류한다.
위 사례는 미국이 우크라이나 국민의 권리를 무시하고 선거에 개입해 친미 정권을 세웠다는 공통점이 있다. 여기에는 우크라이나에 말 잘 듣는 정권을 통해 대러 적대 정책을 강제하려는 미국의 구상이 작용했다.
본래 우크라이나지역은 소련 해체 이전까지 소련 내에서 러시아지역과 함께 큰 비중과 입지를 가진 지역이었다. 우크라이나지역은 러시아지역과 민족, 언어가 유사하고 소련의 최고지도자를 배출하기도 했기 때문이다.
소련이 해체되고 냉전이 종식되는 혼란 속에서 우크라이나는 1991년 12월 1일 국민투표를 통해 독립을 결정했다. 이후 미국은 러시아와 맞닿아 있으며 지리적으로는 서유럽과 동유럽의 길목인 우크라이나를 이른바 루소포비아(러시아에 대한 공포와 혐오를 부추기는 행위)의 첨병으로 삼아 꼭두각시처럼 부리려 시도했다.
우크라이나의 초대 대통령인 크라우츠크, 2대 대통령인 쿠치마는 나름대로 미국과 러시아 사이에서 균형을 잡으려 했다.
그러다가 2004년 대선에서는 우크라이나 국민이 친러 성향인 빅토르 야누코비치 후보의 손을 들어줬다. 바로 이런 상황에서 친미세력의 폭동과 소요 사태 속 재선거가 치러지는 혼란한 상황이 벌어졌고, 결국 대선 결과가 뒤집어졌다. 미국의 입맛에 맞는 반러 인사 빅토르 유셴코가 대통령에 당선된 것이다.
그 배경에는 우크라이나에서 러시아를 적대하며 말 잘 듣는 친미세력의 장기 집권을 목표로 한 미국의 교란책이 있었다.
미국과 유럽 각국은 친미세력이 집권하면 우크라이나가 잘 살 수 있도록, 낙후한 동남부지역의 평균 임금을 올리고 주민 생활도 개선하는 등 각종 지원을 퍼주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막상 친미 정권이 들어서자 미국과 유럽 각국은 우크라이나에 별다른 지원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 대대적으로 투자를 늘리는 역설적인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다.
KBS는 2010년 2월 20일 「우크라이나, 막내린 오렌지 혁명」 보도에서 우크라이나 현지 주민의 반응을 공개했다.
보도에 따르면 키이우 시민 유말쉬킨 씨는 "우리를 원하지 않는 유럽에 구걸하지 말고 러시아 등 독립국가연합(CIS) 국가들과 협력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또 우크라이나 정치평론가 장기로프 씨는 "오렌지혁명은 우크라이나의 취약성을 드러냈다. 사회는 분열되고 5년간 정치, 경제적으로 퇴보했다”라고 평가했다.
1차 유로마이단을 기점으로 미국을 등에 업은 야권 중심의 친미 시위대는 키이우 한복판 독립광장에 천막을 치고 근처를 지나는 시민과 차량을 검문했다. 무법천지 행태를 보이며 우크라이나의 친러 성향 국민을 표적 삼으려 든 것이다.
KBS의 2014년 1월 11일 자 「친러 VS 친유럽, 끊임없이 갈등하는 우크라이나」 보도에 따르면 친미 시위대에 동참하지 않은 우크라이나 국민은 다음과 같은 심정을 밝혔다.
스베타 씨는 "야권 시위는 옳지 않다고 본다. 그런 식으로 나라를 혼란시켜선 안 된다"라고 바라봤으며, 미하일 씨는 "우크라이나와 러시아는 다시 통합돼야 한다. 하나의 경제공동체로 부활해야 한다고 본다”라고 견해를 밝혔다.
이런 가운데 서부지역과 동부지역간 우크라이나 국민은 통합되지 못했고 그 간극은 점점 커져 갔다.
게다가 미국은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을 거론하는 등 러시아를 시종일관 자극하며 우크라이나 동부지역을 위험에 빠트렸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2013~2014년에 우크라이나에서 2차 유로마이단이 벌어졌다.
2차 유로마이단의 양상은 1차 때와 흡사했다. 당시 우크라이나엔 친러 정책을 펴는 빅토르 야누코비치 대통령이 집권 중이었다. 그랬는데 친미세력이 친러 정책을 반대하며 대대적인 시위와 폭동을 벌였다. 이 파장으로 야누코비치가 축출되고 새롭게 대선이 치러졌다. 그 결과 친미·친서방 성향의 페트로 포로셴코 정권이 들어섰다.
당시 미국 국무부 유럽 및 유라시아 담당 차관보였던 빅토리아 눌런드가 깊숙이 개입했다.
눌런드는 당시 친러 정권 전복 구호를 든 친미 시위대를 직접 만나 빵을 나눠줬다. 이 사진을 제프리 파이엇 우크라이나 주재 미국 대사가 공개했다. 미국이 시위대를 지원하고 있으며 우크라이나의 정권교체를 바란다는 뜻을 거의 대놓고 밝힌 것이다.
이후 눌런드가 우크라이나 총리 후보로 친미 인사의 이름을 언급한 내용의 녹취가 폭로됐다. 미국이 우크라이나의 정부 개편까지 쥐고 흔들려 든 것이다. 물증이 워낙 뚜렷해서인지 백악관은 폭로 내용을 부인하지 못했다.
우크라이나 친미 시위대는 유로마이단에 관해 자신들이 자발적으로 벌인 것이라고 주장해 왔다. 하지만 그 배후에는 미국의 깊숙한 개입과 영향이 짙게 자리하고 있었음이 분명해 보인다.
더 심각한 건 우크라이나의 친미 정권이 동부지역의 러시아계 주민들을 2등 국민으로 낙인찍으면서 잔혹한 탄압을 일삼았단 점이다.
루한스크, 도네츠크 등 러시아계 비중이 높은 우크라이나 동남부지역 주민들은 날이 갈수록 경제 사정이 나빠지자 분리 독립운동을 벌였다. 그러자 미국의 지원을 받은 페트로 포로셴코,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정권이 신나치세력을 통해 동남부지역 주민들을 집단학살했다고 러시아 측은 주장해 왔다.
이처럼 친미세력 때문에 우크라이나의 분열과 갈등이 극심해졌으며 2022년 우크라이나 전쟁까지 발발했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정리하면 미국이 개입하면서 우크라이나 국민은 친미, 친러 진영으로 갈라졌고 나라가 그야말로 반쪽이 됐다.
우크라이나의 분열과 갈등은 지금도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 전쟁 한복판에서 현재진행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