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포의 새벽 편지-478
천자문095
동봉
0321풍류 악樂/楽/乐
0322다를 수殊
0323귀할 귀貴/贵/䝿
0324천할 천賤/贱
풍류에는 귀와 천을 달리하듯이
(예절에도 높낮음이 다른법이니)
0321풍류 악樂/楽/乐
이 '악'은 본디 새김은 '풍류 악'이지만
음악의 '악'으로
'즐거울 락'으로 새기며
'좋아할 요'로 새기기도 합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번체자 악樂은
약자 楽과 간체자 乐을 쓰고 있습니다
1). 풍류 악樂/楽/乐
1. 춤, 노래, 음악
2. 악기
3. 아뢰다
4. 연주하다
2). 즐거울 락樂/楽/乐
1. 즐기다
2. 즐거워하다
3. 편안하다
4. 즐거움
5. 풍년
3). 좋아할 요乐/楽/樂
1. 바라다
2. 좋아하다
내가 아는 원불교 교무님 중에
'풍류로 세상을 건지리라!'라는 표어를 내걸고
평생을 몸바쳐 온 분이 있습니다
서울 남산 기슭에 '남산예술원'을 세우고
우리의 옛 춤과 노래를 비롯하여
전통문화가 바람의 흐름 따라 흐르듯
교류의 장을 제공하였습니다
누군가 내게 묻더군요
"바람 풍風 흐를 류流, 풍류가 무엇입니까?"
내가 웃으며 답했습니다
"바람 풍風 흐를 류流를 말씀하셨다면
바로 그 바람과 흐름이 풍류입니다."
풍류風流는 바람의 흐름이며
흐르는 바람이고
또한 바람이면서 흐름입니다
세상에 정지된 바람은 없습니다
정지된 것은 '바람' 이전의 것이기에
산소酸素며 질소窒素일 뿐 바람은 아닙니다
"바람이 흔들리느냐?
깃발이 흔들리느냐?
흔들리는 것은 바람도 깃발도 아닌
흔들린다고 바라보는 마음 그 자체다."
라고 한《法寶壇經》말씀은 유명하지요
일명《六祖壇經》으로도 일컬어지는
육조 후에이넝慧能의 어록 중 위의 말씀은
마음을 한 마디로 잘 그려내고 있습니다
흔들리는 깃발을 바라보며
눈에 보이는 흔들리는 세계가 참일까
흔들리는 사물을 흔들리게 하는
그 이면의 어떤 보이지 않는 세계가 참일까
아니면 그도 저도 아닌 또 다른 세계
느낌의 세계가 참일까 하는 것은
철학의 깊이를 더욱 깊게 하고 있습니다
바람風은 흐르流는 것입니다
이 바람의 흐름을 표현한 예술세계에는
정지된 공간 예술뿐만 아니라
흐르는 시간 예술이 있습니다
미리 말씀드립니다만
억지로 말을 붙여 정지된 공간 예술이지
물리의 세계에서 '정지'란 있을 수 없습니다
흐르는 시간 예술에서
대표적인 것은 노래歌와 춤舞이지요
이 노래와 춤을 하나로 묶은 게 음악音樂이고
음악 중에서도 특히 악樂은
율동으로서의 춤사위를 표현한 말입니다
그러니까 풍류라는 말 속에는
춤사위를 비롯한 몸짓이 우선이고
이 춤사위 몸짓이 예술로 승화되려면
거기에는 반드시 음악이 있어야 합니다
노래와 춤은 무巫에서 시작되었지요
하늘一과 땅一을 잇는丨사람이
다름 아닌 무당巫입니다
무당은 하늘과 땅의 대리자로서
뭇사람从으로 하여금
하늘의 도를 따르게从 하고
땅의 이치를 따르게 하는 자입니다
악수귀천樂殊貴賤의 '악樂'을 보면
나무木로 제단을 만들고
제단 위에 흰 시루떡白을 올렸으며
흰 시루떡 양쪽으로 번幺을 늘어뜨렸는데
이는 당골의 제단을 표현한 것입니다
제단이 마련되면 무당은 경을 읽고
무춤巫舞을 추고 애달픈 넋을 위로합니다
본디 무巫와 무舞는 소릿값이 같은
장인匠人과 소재所材의 관계입니다
즉 무巫라는 장인이 무舞를 소재로 하여
악樂을 통해 넋을 위로하는 의식이지요
음악의 악은 망자亡者를 위함이고
망자보다 앞서 물신物神을 위함이고
물신보다 앞서 땅의 신을 위함이고
아울러 하늘에 제사함에서 온 것입니다
콩즈孔子선생의《論語》에 따르면
천자天子는 팔일무八佾舞를 열 수 있고
제후는 육일무六佾舞를
대부는 사일무四佾舞를
선비는 이일무二佾舞를 열 수 있다고 합니다
팔일무에서 이일무에 이르기까지
그들 춤에 따른 노래와 곡이 다 다릅니다
아흐레 전인 4월13일에 올린
"음악에는 귀와천을 달리하듯이
예절에도 높고낮음 다른법이니~"
라는 글을 보고 어느 분이 물어왔습니다
"음악에도 귀천이 다르다고요?
세상에 그런 법도 다 있었습니까?"
그래서 내가 답을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귀천이 있었습니다.
이는 지금도 귀천과 높낮이가 있습니다."
지금도 귀천을 따라 음악을 달리한다면
당장 '시대착오'라고 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분명 지금도 귀천에 따라 음악이 다릅니다
같은 대통령이라 하더라도
미국의 대통령이나
중국 국가주석을 영접하는 예우와
작은 나라 대통령을 영접하는 예우가 다르듯
열병식도 만찬도 국격에 따라 다릅니다
당연히 춤과 노래가 곁들여진 음악과
공연도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음악도 때로는 정치 문화에 이용되지요
천자나 제국의 왕이라고 한다면
팔일무 연회를 열 수 있지만
공작 후작 백작 자작 남작처럼
제후의 위치에 있는 사람이
제왕이나 천자가 여는 열병식을 베풀고
팔일무 연회를 열 수는 없는 것입니다
사실 팔일무라고 해 보았자
한 줄에 여덟 명씩 여덟 줄이니
겨우 예순 네 명이 추는 군무群舞입니다
인도 영화를 보다 보면
역시 춤과 노래 음악이 곁들여진 군무가
인도 영화의 특색이라고 할 수 있는데
64명이 아니라 몇 백명 씩 춤을 추기도 합니다
정말이지 인도 영화의 맛은
보컬들의 노래와 무희들의 춤일 것입니다
영화를 영화답게 이끌어가는 것은
음악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데
특히 인도 영화가 길고 지루하면서도
때로 부드럽게 넘어갈 수 있음은
바로 노래와 춤 때문입니다
내가 좋아하는 음악가 중의 한 사람인
구스타프 말러Gustav Mahler(1860~1911)는
그의《교향곡 8번 내림 E장조》초연 당시
천 명이 넘는 연주자가 동원되어
<천인교향곡>이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내가 알기로 여태껏 우리나라에서는
천인교향곡을 천 명의 연주자가
한 홀에서 연주한 적은 없었습니다
음악의 '악樂'이 무당에서
또는 제천祭天 의식의 춤에서 왔다면
음악의 '음音'은 춤과 어우러진
노래에서 왔습니다
노래歌가 무엇입니까
우리나라 발음 '가'의 모음이 'ㅏ'지요
하훔欠하듯 입을 크게 벌리고
'ㄱ ~ㅏ哥'하고 길게 뽑노라면
소리曰는 어느새 입체적立이 될 것입니다
따라서 가수나 성악가가 노래함이 '음音'이고
여러 가지 악기의 연주와 함께
노래와 춤이 곁들여짐이 '악樂'입니다
나는 이를 풍류風流라고 표현한
옛사람들의 생각을 존중하는 편입니다
영어의 Elegance, Taste, Refinement도 있지만
흐르는 춤사위에서 바람을 느끼고
함께 곁들인 음악에서 흐름을 느꼈던
옛사람들의 정취를 존중하고 싶습니다
음악에는 귀와 천을 달리하지만
감상하는 데 있어서는 귀천이 없습니다
0322다를 수殊
죽을 사歹 변에 붉을 주朱자를 썼는데
죽을 사歹가 의미값이고
붉을 주朱zhu가 소릿값입니다
물론 수殊의 소릿값은 수shu지만
모음이 같기 때문에 소리값으로 보고 있습니다
죽는다死는 것은 따지고 보면
어느날一 저녁夕의 변화匕입니다
그래서 '밤새 안녕'이란 말이 나온 것이지요
소릿값 주朱에도 의미는 들어 있습니다
붉음朱은 아직未 잎이 피기丿 전입니다
붉음朱은 꽃의 상징이고
초록의 잎이 아직未은 피기丿전이지만
붉은 꽃이 초록 잎새로 달라지는 것은
시간 문제란 뜻에서 다를 수殊가 생겼습니다
0323귀할 귀貴
귀할 귀貴자는 귀할 귀䝿자와 같습니다
귀할 귀䝿자를 파자하면
재물貝에 이끌려가려는 사람人을
두 손臼으로 누르고 있는 모습이고
귀할 귀貴자를 파자하면
재물貝 위一에 있어서는 중용中인 사람
그가 곧 소중한 사람이란 뜻입니다
이 귀할 귀貴자는 초월자가 아닙니다
재물에 대해 결코 무관심한 자가 아니라
애써 재물을 멀리하려고 하지도 않고
또한 가까이하지도 않는 중용의 인물입니다
처음에는 귀할 귀䝿자에서처럼
애써 짓누르는 강제성이 필요하지만
나중에 마음을 조복하고 나면
저절로 중용의 귀貴한 사람이 될 것입니다
0324천할 천賤
귀할 귀貴의 상대적 개념으로
천하다 천박하다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재물 패貝가 의미값이고 작을 잔戔이 소릿값입니다
잔은 두 자루의 창戈이 겹친 모양으로
재물貝을 놓고 서로 다툼戔입니다
잔戔을 '잔' 또는 '전' '천'으로 발음하는데
모두 창 끝이 서로 부딪치는 데서 온
의성어依聲語일 뿐입니다
귀貴가 값비싼 것인데 비해
천賤은 값싼 싸구려 제품이거나
또는 가치가 떨어질 때 쓰는 말이지요
중국어에서 '꿰이gui貴'는 '비싸다'로 쓰이며
너무 비쌀 때 '타이꿰이taigui太貴'라고 합니다
물론 반대로 값이 싸다고 할 때는
꿰이貴의 반댓말 '지앤jian賤'보다는
'삐앤이bianyi便宜'라는 말을 즐겨 씁니다
이 글을 접하는 분들에게 구스타프 말러의
대표작《교향곡 8번 내림 E장조》
<천인교향곡>을 한 번 감상해 보시길 권합니다
여러분이야말로
천자天子요 천손天孫이며
고귀한 성품을 지닌 까닭입니다
04/22/2016
곤지암 우리절 선창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