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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을 보는 눈
넓은 대문 앞에 한복을 갖추어 입은 점잖으신 분이 서있는가 싶더니 주인을 찾는다.
그러자 쇠물가마 앞에서 아궁이에 불을 살으려던 오서 방이 알아듣고는 냉큼 대문 앞으로 나간다.
“ 뉘를 찾아 오셨습니까요.”
“ 음 주인 윤 경성 영감 좀 만나러 왔다고 전하게 .”
그러자 오서 방은 빠른 걸음으로 안으로 들어가서는 마님을 부른다,
“ 마님 밖에 웬 점잖으신 분이 찾아오셨는데요.”
“ 그래 영감님을 찾아오신 분이겠지 어서 가서 모셔 오너라.”
오 서방은 마님이 한 말씀을 하시자 얼른 대문간으로 나가더니 어서 안으로 들어오시란다는 전갈을 전한다.
지팡이를 잡은 손에는 무슨 책을 한권 들었고 모자는 중절모자를 썼는데 금방 얼굴을 알아보기는 좀은 어려운 상이었다.
안에서 막 윤 경성이 나오다 말고 반색을 하면서 마당으로 뛰어 나오는 것으로 보아 두 분의 사이는 꽤나 가까운 사이인 것 같았다.
“ 사람 연락도 없이 남의 집엘 무턱대고 찾아오는 사람이 어디 있나, 내가 오늘 없기라도 하였다면 오늘의 만남은 도저히 이루어 질수가 없을 것이 아닌가.”
“ 내가 천기를 잘 볼 줄은 모르지만 오늘 여기를 와서 자네를 만날 것 같아서 찾아왔네.”
“ 하기야 옛날부터 하늘을 보는 눈이 남다르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자네는 명망이 있었지 않나.”
“내가 하늘을 볼 줄 안다는 말은 거짓말이고 다만 날씨에 대해서만은 옛날의 월력을 따져 보고 일진을 보게 되면 대충은 맞는 날도 있다 보니 그렇게 소문이 나긴 하였다네.”
술상이 들어오자 윤 경성은 진 대출에게 아랫목으로 앉으라고 권하면서도 아까부터 진 대출이 왜 이날 갑자기 찾아온 용건이 무엇인지 속으로 궁금하였지만 진 대출은 술이 몇 순배 돌아도 입을 꽉 다문 채 용건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윤 경성은 점점 진 대출의 술잔에만 눈독을 들인다. 주전자의 술이 두 번이나 나가고 세 번째의 주전자가 들어오게 되니 두 사람은 낮술에 취하게 되었다.
“ 윤 경성. 내가 오늘 왜 찾아 왔는지 짐작을 하겠나.”
“ 그야 자네 속에 들어갔다가 나오지 않은 이상 어떻게 알겠는가.”
“ 내가 자네의 요즘의 생각을 훤히 꿰고 있는 판인데 짐작도 못한단 말이야. 사실은 내 오늘 자네에게 좋은 소식이 있어서 일러 주려고 왔네.”
“ 예끼. 이 사람. 난 자네 말 듣고 싶지 않으니 이제 그만 돌아가 술이 너무 취했어.”
윤 경성은 그리고는 혼자 자기 방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사실 윤 경성은 요즘 하루 종일 집에서 한문서적을 읽거나 정원의 화초를 가꾸는 것으로 소일하고 있긴 하지만 마음은 늘 불편한 편이다.
윤 경성이 일찍 결혼을 한 것은 순전히 아버지의 성화 때문이었는데 아버지가 외아들로 자라다 보니 다른 집에 놀러가서 보면 식구들이 많은 것이 늘 부럽기도 하였지만 혹여 아들을 장가를 늦게 들여서 손자를 늦게 볼까 그것이 염려가 되어 경성이 열아홉 살 되던 해에 좋은 배필을 골라서 장가를 들였다.
며느리의 선택은 아버지가 과거에 서울에서 유림으로 활동을 하실 때에 친구의 딸이 잘 자라는 것을 보고 미리부터 친구를 구워삶아서 며느리를 삼았다.
경성이 장가를 들은지 1년 만에 아버지가 바라는 대로 아들을 낳고 이어서 딸 하나를 낳게 되자 온 동리에서 윤 씨네 가문에 경사가 났다면서 좋아하였다.
경성의 아내는 원래 마음이 착하기도 하지만 부모에게 효도를 다하는 며느리로 소문이 나서 동네에서도 사랑을 받았다.
좋은 말을 들으면 복이 굴러온다는 소리를 들은 시어머니는 그래서 떡을 하고 술을 받아서 동리의 어르신들을 마음껏 대접을 하였는데 아버지 또한 며느리가 아들을 낳은 것이 그렇게 도 좋은지 날마다 친구들을 불러서는 술대접을 하였다.
손자가 무럭무럭 자라자 아버지는 매일 같이 한문선생 하나를 불러서 공부를 시키는가 하면 어떤 때는 아버지가 낚시를 가시면 데리고 나가시기를 좋아하셨다.
이렇게 할아버지의 손자에 대한 사랑이 깊어지는 동안에 손자가 어느 듯 일곱 살이 되던 해였다.
마침내 날씨가 더운 여름인데 그날도 할아버지는 손자를 데리고 낚시를 가신다고 하자 할머니는 더운 날에 더위나 먹으면 어떻거느냐면서 손자를 데리고 가지 말라고 하였지만 날이 더 더우면 못 갈 텐데 뭔 걱정을 그리 하느냐면서 극구 손자를 데리고 가셨다.
이날은 마침 할아버지와 늘 다니던 분들이 함께 가신다면서 반찬거리를 준비하라고 해서 그렇게 싸드렸다.
이 날의 날씨가 무덥자 모두는 그늘에서 낚시를 하였는데 한나절이 되자 어르신들은 싸 가지고온 점심을 내놓고는 막걸리 한 잔 씩을 마시면서 날씨에 대한 이야기며 농사짓는 이야기를 하던 중인데 한참 있다 보니 할아버지 옆에 있어야 할 손자가 보이지를 않았다.
그래서 할아버지가 손자를 부르니 대답이 없어서 일어나서 뒤를 돌려다보다가 깜짝 놀란 것은 손자의 옷이 강물에 둥둥 떠서 있었기 때문이다.
할아버지가 곧바로 일어나서 물로 풍덩 몸을 던져 손자를 건지려 하였으나 손자는 이미 숨져 있었고 그것을 본 할아버지는 숨이 덜컥 막히고 평소에 헤엄을 잘 치던 할아버지는 손을 한번 내졌다가는 그냥 물속으로 가라앉고 말았다.
낚시꾼들이 소리를 지르면서 나무때기를 던졌으나 끝내 두 사람은 살리지도 못하고 말았으니 이 무슨 운명이란 말인가 .
할아버지와 손자가 한꺼번에 죽은 경성네 집안은 온통 슬픔에 싸였고 손자를 잃은 할머니는 그날 아이를 데리고 가지 말라고 하였을 때에 말을 들었으면 이런 변은 일어나지도 않았을 텐데 하면서 통곡을 하셨다.
시어머니가 그렇게 슬퍼하시자 정작 애 어미는 혼자서 눈물만 흘릴 뿐 메어지는 가슴을 주체를 할 수가 없으면서도 시어머니가 그러시다가 돌아가시기라도 하면 큰일이다 싶어서 울지도 못하고 시어머니를 달래드리느라 정신이 없었다.
철없을 때 장가를 들여서 아버지가 원하시는 대로 아들을 낳아서 그렇게 좋았는데 일이 이렇게 되자 경성이야말로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지만 날마다 슬퍼할 수도 없어 아내를 달래고 어머니를 보듬어 드릴 수밖에 없었다.
가정에 우환이 있으면 집식구들이 병이 난다더니 평소 그렇게도 건강하던 경성의 아내가 어느 날 부터 갑자기 입맛이 없다면서 밥을 통 먹지 못하겠다고 하였다.
나중에서야 그 내막을 알고 보니 아내가 임신을 하였기 때문에 그런 증상이 나타난 것을 모르고 엉뚱한 약을 지어다 먹여서 그랬는지 그 약을 먹은 다음에 하혈과 동시에 유산을 하고 말았으니 허약한 몸 때문에 그런 것을 감안하지 못한 탓이었다.
아내는 그 후에도 도무지 기력을 펴지를 못하다가 한 달이 지나서야 겨우 밥을 먹기 시작하였으나 평상시에 비하면 반절도 먹지를 못하고 빼빼 말라가는 것이어서 윤 경성은 이름이 나있는 약방을 찾아다니면서 좋다는 약을 지어서 계속 먹인 결과 그것이 효험이 있었던지 차츰 입맛이 돌아서 전보다는 훨씬 밥을 많이 먹고 기분도 좋아진다고 하였다.
경성이도 죽은 사람은 죽은 사람으로 더 이상 생각을 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는 생각을 가지면서 살기로 하였다.
아내는 원래 깔끔한 성격인데다가 남편의 뒷바라지를 열심히 하던 사람이었는데 아이를 잃은 다음에는 완전히 생에 대한 의욕을 잃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집안일을 제대로 하지를 못하게 되어 모든 것이 엉망이 되어 있었다.
원래 아내는 깔끔하면서도 집을 너절하게 늘어놓는 것을 싫어하였지만 몸이 불편하니 그런 것에 신경이 쓰이지 않았다.
더구나 집 안에만 있으니 고민만 되는 것이어서 밀린 빨래라도 하기 위해서 어느 날 집에서 좀 떨어진 우물가에 가서 빨래 시작을 하였는데 그날 따라 먹은 것이 별로 없는데다가 힘든 일을 해서 그런지 현기증이 나기에 잠시 일어서다가 정신이 팽 돌면서 쓰러지고 말았던 것이다.
쓰러지면서 하필 빨래판 돌 머리에 머리를 부딪쳐서 금방 핏줄기가 하늘로 솟아올랐지만 아무도 주위에 없다 보니 쓰러진 채로 피를 흘릴 수밖에 없었다.
그 때 마침 인척 조카가 빨래를 왔다가 아줌마를 발견하고는 웬일이냐면서 얼른 일으켜 보니 머리에서 나던 피가 멈추긴 하였지만 아줌마는 그대로 혼수상태였다.
“ 아줌마 어쩐 일이래요.”
조카는 급한 마음에 우선 그의 입에 찬물을 흘려 넣고는 들쳐 업고 집으로 가니 마침 윤 경성 아저씨가 마당에서 서성거리고 있다가 깜짝 놀라면서 어떻게 된 연유를 물었지만 조카는 그를 안방에다가 뉘이고 자초지종을 이야기해 드렸다.
“ 그 연약한 몸으로 빨래를 가다니 원.”
윤 경성이 겁에 질려서 아내를 들여다보자 그제야 아내는 정신이 드는 듯 하다가는 다시 눈을 감았다.
조카의 말을 들은 윤 경성은 하마터면 사람이 죽을 번 하였다면서 조카에게 고맙다는 말을 몇 번이나 하였다.
아내는 그런 후에 계속해서 자리에 눕게 되고 좀처럼 일어나지를 않게 되니 남편의 마음은 항상 걱정이 되어 잠이 오지를 않았다.
지금까지 아내를 극진히 사랑하던 윤 경성은 아무래도 아내의 병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느끼고는 다시 잘 본다는 의원을 불러서 약을 지어서 달여 먹여 보았지만 효험이 없고 하나같이 의원들의 말은 넘어졌을 때에 뇌를 다쳐서 그 후유증으로 오래 살지를 못할 것 같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하였다.
윤 경성은 그 말을 들은 다음부터는 아내를 잃을까 봐 겁이 나서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그런데 밤 말은 쥐가 듣고 낮말은 새가 듣는다더니 아내가 어떻게 자신이 오래 살지 못한다는 말을 들었는지 그 후에는 남편에 대해서 걱정을 하기 시작을 하였으니 그가 이 집안을 위해서 할 일을 제대로 하지를 못한 죄책감이 마음에 걸렸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외아들인 남편이 대를 이을 자식을 잃어버린 후에 자기 몸으로서는 도저히 아기를 다시 생산할 수가 없게 되자 이 집안의 대를 이어줄 생각 밖에 나지를 않았다.
아내인 변 숙희가 건강할 때는 새벽 일찍 일어나는 때가 많았는데 그때마다 날이 새기가 무섭게 참새들이 창가를 맴돌며 짹짹거리면 창문을 열고 속으로 너희들은 참 좋은 팔자로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자기도 어떤 때는 날개 가진 짐승처럼 훨훨 날아다니면서 자기의 뜻을 펴보고 싶었지만 그럴 처지가 되지 못해 공연히 눈물이 나는 때가 많았다.
해가 뜨고 사방으로 햇빛이 번지기 시작하면 어느새 닭의 우리에서는 꼬꼬댁 하는 소리가 들렸으니 지난해에 서리병아리들이 그새 자라서 암탉이 되어 알을 낳았다고 소리를 질렀다.
그 소리를 알아들었다는 듯이 수탉들이 꼬꼬댁하면서 홰를 치면 마루 밑에 누웠던 개들은 덩달아 마당으로 뛰어나오면서 컹컹 짖었다.
시집을 온 이후에 날마다 이렇게 즐거웠던 하루의 시작들이 이제는 몸이 아픈 것도 괴로운 일이지만 남편에 대한 미안한 마음이 날마다 두엄더미에 두엄이 쌓이듯이 커지는 것이었으니 이제는 무슨 용단이라도 내려야 할 것 같은 생각에 잠은 점점 더 오지를 않았다.
그러다가 마침내 변 숙희는 어느 날 용단을 내리기로 하였으니 남편을 불러 조용히 말을 하였다.
“ 그게 무슨 소리야. 당신이 지금은 병이 있어서 임신을 하지 못한다고 하지만 얼마 있으면 약으로 고칠 수가 있으니 아무 소리 하지 말고 병이나 어서 나을 생각을 해요.”
윤 경성은 부인의 몸이 나쁜 상태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를 안심시키려고 희망적인 말을 하였다.
사실 부부는 결혼한 지 벌써 여러 해가 되었지만 결혼초기만 해도 신랑각시의 정은 그렇게 좋을 수가 없을 만큼 궁합이 너무도 잘 맞았던 부부였다.
우선 성격상으로 남편은 조용하면서도 무슨 일이든지 우유부단한 것을 싫어하는 성격으로 매사를 꼼꼼하게 처리하는 것을 좋아하였다. 그런가 하면 부인의 성격은 남편과 비교를 하면 한술 더 뜰 정도로 말이 전혀 없는데다가 남편이 싫어하는 것은 먼저 알아서 처리를 하기 때문에 남편으로서는 아내에게 어떤 요구도 할 수가 없었다.
더구나 두 사람은 결혼 초부터 울타리를 세울 때에 울섶이 옴짝달싹할 수 없을 정도로 칡으로 묶어 놓은 것처럼 부부의 살가움은 이루 말 할 수 없을 정도였고 그들에게는 태양빛이 온 누리를 비추듯이 정원의 아름다운 꽃밭이상으로 행복이 넘치고 그 행복의 출발은 한낮보다도 밤이 더 그들을 묶어 놓는 것이었으니 그들에게는 다른 어떤 사람도 갖지 못한 나름대로의 특출한 연출을 빚어내는 밤의 방사술(房事術)이 있었던 까닭이다.
방사술이란 외부에서 나오는 물체가 아니라 두 사람의 육체에서만 비쳐지는 오로라의 휘황찬란한 빛과 같은 맑은 수정체로서 그것은 눈으로 확인할 수도 없는 빛의 마술과 같았다.
그러던 어느 날 윤 경성은 저녁을 먹은 다음에 부인의 귀에다 대고 하는 말이 오늘 신기한 것을 한 가지 보여주고 싶다고 하였다.
“ 무슨 뚱딴지같이 무엇을 보여준다는 말씀이에요.”
“ 하하하. 당신이 내 마음을 알아주는 것 같아서 좋네.”
“ 무슨 뜻이에요. 궁금해요.”
“ 그렇게 궁금해요. 놀라지는 말아요.”
“ 엊그제 친구인 서 윤종에게서 그림 한 장을 얻어왔는데 나도 아직은 열어보지를 않아서 내막을 모르지만 굉장한 그림이라는군요.”
윤 경성은 그리고는 다락문을 열더니 다락 안에 깊숙이 말아놓은 두루마리를 하나 꺼내었다.
천천히 두루마리 종이를 펴던 그는 중간쯤에 가서는 아내에게 펼쳐보라고 하였다.
" 당신이 끝까지 펴시지 왜 날더러 하라는 거예요. 어서 마주 펴보셔요, “
아내가 거듭 말을 하자 윤 경성은 마지못해서 다시 펴기 시작을 하는데 윤 경성의 눈이 차츰 휘둥그레지더니 함박웃음을 웃으면서 아내의 손을 잡아끌었다.
“ 무어예요.”
그와 동시에 방금 전까지 호기심을 가졌던 아내는 그림을 보다가 뒷걸음질을 치면서 남편의 등가죽을 후리치고는 방밖으로 나가려고 하자 남편은 아내의 손을 잡았다.
“ 여보. 이것 좀 자세히 보시오. 지금 무엇을 하는 그림인지 아시겠소. 이게 다 이름 있는 화가들이 정성을 다해서 그린 그림이라오.”
“ 세상에 어떤 사람들이 그렇게 망측스런 그림을 그렸대요.”
“그게 무슨 말이요. 그것은 당대의 화가들을 모욕하는 말이요. 사실은 이런 그림을 춘화라고 하는 것인데 이 그림들은 중국에서 뿐 아니라 동양에서도 유명한 화가들이 자신의 실력을 다해서 그린 작품으로 그 값이 굉장히 많이 나간다는 것이오."
“ 어서 접으셔요. 나는 보기가 민망스럽기만 하네요.”
“ 이 그림을 처음 보는 사람들은 당신과 마찬가지로 민망스럽다고 하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볼수록 오묘하고 신기한 인간의 내면이 들어난다고 볼 수 있지 않아요. 벌거벗은 남여가 버드나무 가지를 붙들고 긴 의자에 비스듬히 누운 자세로 연못에서 헤엄치고 있는 물고기를 바라보는 모습이 얼마나 낭만적이요.”
윤 경성의 설명을 한참동안이나 듣던 마나님은 살며시 그의 손길에서 빠져나가려 하자 윤 경성은 얼른 마나님을 이불속으로 밀어 넣었다.
“ 오늘 저녁을 잡수신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요,”
“ 왜. 우리가 초저녁에 방에 들어간다고 누가 무어라고 합디까.”
“ 그런 것은 아니구요, 사실은 남이 보기에 남우세스러울 것 같아서 그러지요.”
“ 원. 세상 천지에 저녁 먹고 일찍 자는 사람을 두고 누가 뭐라고 한단 말이요.”
아니 할 말로 윤 경성은 하루도 아내를 그냥 두지 않을 정도로 밤의 정사에는 대단한 실력을 가지고 있었고 아내 또한 밤이면 부끄럼을 타면서도 남편 못지않은 실력으로 맏 대응을 하여 두 사람의 밤은 환락의 밤이었고 바이오린 소리와 같은 아름다운 가락이 은은하게 밤새도록 이어지는 그런 밤이 계속되었던 것이다.
어찌 보면 변강쇠와 옹녀가 다시 이 집안에 살아서 돌아왔다고 할만치 두 사람의 밤은 길수록 그들에게 끝없는 기쁨이었고 환희였다.
이렇게 좋은 밤과 낮을 보내게 되던 두 사람에게 예상하지도 않은 큰 시련이 닥쳤으니 윤 경성으로서는 너무도 충격이 클 수밖에 없었지만 아내에게도 도저히 와서는 안 되는 병이 몸을 덮쳤으니 그로서도 도저히 그것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던 것이다.
윤 경성이 그 춘화를 얻게 된 것은 어느 여름날 해가 거의 질 무렵에 허름한 옷을 입은 사람이 봇짐 하나를 지고 윤 경성네 대문 앞을 빠른 걸음으로 지나가는 것을 보게 되었다.
윤 경성은 날이 저물어 가는데 하는 생각으로 그에게 말을 걸었다.
“ 하루해가 다 가고 있는데 댁은 어디를 그렇게 급하게 가는 거요.”
그러자 행인은 힐끗 돌려다 보더니 허리를 굽실하면서 하는 말이 강 건너 마을에 사는 친구 이 서영을 만나려 간다고 하였다.
이 서영은 윤 경성도 아는 사람으로 집은 별반 잘 살지는 못하지만 아버지가 대장간을 하는 집안으로 그의 할아버지는 서울에서 장사를 하며 살았는데 어느 해 일본 순사가 할아버지를 주재소로도 데려가더니 하룻밤사이에 할아버지는 반죽음이 돼서 나오셨던 것이니 재산일부를 내놓으라고 하자 이를 거절한 것을 앙심을 품고는 고문을 가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건강하시던 할아버지는 고문 후유증으로 진지를 잡스시지 못하더니 어느 날 밤에 홀연히 돌아가시니 이후 집안은 풍비박산이 되어 아들은 그곳에서 멀리 떨어져서 이사를 간다는 것이 강 건너 마을이었다.
그런데 이 서영의 아버지는 이사를 온 다음해에 논에 걸음을 주기 위해서 갈을 꺾으러 산엘 가셨다가 난데없이 산벌에 쏘여 돌아가셨다.
그렇게 집안이 무너졌지만 이 서영이 근근이 집안을 유지하면서 사는 것을 알기에 윤 경성은 그럴 것 없이 우리 집에서 하룻밤을 자고 가라고 하였다.
그러자 이 서영의 친구는 모처럼 권하는 것을 뿌리치기가 무엇하여 하루 밤을 유숙하기로 하였다. 이날 윤 경성은 막걸리 상을 차리고 서로가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누기로 하였는데 이 서영의 친구는 보기와는 딴판으로 재담가이기도 하지만 그림을 잘 그린다고 하였다.
윤 경성이 생각을 하니 그림을 잘 그린다면 한 점 그려놓고 가라고 하자 그 사람은 껄껄 웃으면서 하는 말이 자기는 동양화보다는 춘화를 그려서 파는 사람이라고 하였다.
그날 그 사람이 두고 간 것을 이제껏 다락에 보관을 하였다가 오늘서야 그것을 처음으로 펼쳐 보게 되었다.
이날 부인은 생전 처음으로 유명한 화가가 그렸다는 그림을 속으로는 호기심을 가지고 보고 싶으면서도 남편에게는 그러지 않은 척을 하자 남편은 묵묵히 그를 바라보다가 새매가 참새를 낚아채듯이 그를 이불 속으로 끌어넣은 것이다.
“ 오늘 사람 죽이려구 그래요.”
부인의 말을 코로도 듣지 않은 남편은 무엇이 그리도 급해졌는지 말고삐를 매지도 않은 채 말을 치고 달리기 시작을 하였으니 엉겁결에 그의 완력에 붙잡힌 새 한 마리는 처음에는 반항을 하는 듯 하더니 어느 결에 방안은 온통 가을밤에 귀뚜라미 소리로 울려 퍼지고 있었다. 이렇게 둘의 의는 좋았으며 아들딸을 낳았으나 사내아이가 뜻밖에도 비명횡사를 하고 말았으니 그것이 아내의 병을 더 키운 꼴이 되었다.
아내가 남편을 불러서 한 말은 지금까지 아들을 낳지 못한 것이 죄를 지은 것 같다면서 더 이상 그 괴로움을 참을 수가 없으니 이 집안의 대를 잇기 위해서라도 당장 여자를 구하라는 내용이었다.
그렇지만 윤 경성은 그게 무슨 말이냐면서 펄쩍 뛰었지만 변 숙희는 진심으로 드리는 말이니 허투루 듣지 말라고 하였다.
남편이 생각을 하니 부인의 말이 진실이긴 하지만 그리 되면 지금까지의 부인과의 정이 멀어질 것이며 그것이 걷잡을 수 없는 지경이 되리라 생각하고 대답을 하지 않았다.
‘ 안될 말이야. 내가 첩실을 얻는다면 그날부터 아내는 괴로워 할 것이고 새로 들어오는 여자 또한 마음이 편치 않을 것이니 그 새중간에서 어찌 살란 말인가.’
남편은 삶은 호박에 이도 들어가지 않을 말은 다시도 하지 말라는 바람에 아내는 잠자코 물러섰지만 며칠이 지난 뒤에는 자기가 나서야겠다는 생각으로 인척이 되는 순덕 어멈을 부른 것이다.
순덕 어멈은 누구보다도 아줌마가 처한 상황을 잘 알고 있으며 한편으로는 대가 끊어지게 해서는 안 되는데 하는 걱정을 나름대로 혼자 하고 있었던 참이었다.
“ 그러니 자네가 어디 마땅한 색시가 있으면 다리를 놓아 보게.”
“ 새 여자가 들어오게 되면 당분간이야 형님의 권위가 설지 모르지만 사내아이라도 하나 낳게 되면 들어올 때와는 딴판으로 여자가 변하고 형님의 말을 듣지 않을 수도 있을 텐데 그런 각오도 하시고 말씀을 하시는 것이에요.”
“ 내가 지금 염려하는 것은 만일에 들어온 여자가 사내아이 하나만이라도 낳는다면 그것으로 족할 뿐 그 다음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기로 하였으니 아무 걱정하지 말고 궁둥이가 넓은 암소가 새끼를 잘 낳는다는 말도 있듯이 그런 여자 하나 어서 찾아보기나 하게. “
아줌마의 단호한 말씀을 들은 순덕 어멈은 집으로 돌아가면서 생각을 해보니 혼인을 성사시키는데 잘 하면 술이 서 말이지만 잘못 서게 되면 뺨이 세대라는 말이 떠올라 가슴이 두근거리었다.
그러면서도 아주머니가 그렇게 사정을 하시는 것을 못들은 체 할 수가 없어서 어느 날 절친한 친구를 찾아갔다.
친구는 그렇다면 재 너머에 살고 있는 유 씨네 딸이 잘 자라고 있으니 그 집을 알아보라고 하여 사람을 넣어 보니 그 집에서도 좋아한다고 하였다.
며칠 후에 순덕 어멈을 통해서 한 여자 아이를 소개 받았으니 집안이 어려워 일찍 시집이라도 보내면 수저 하나라도 덜 생각으로 그렇게 한 것이라고 하였다.
신부의 나이는 열여덟 살이고 사는 곳은 양지마을 제일 끝부분에 있는 느티나무 아랫집에 산다고 하였다.
변 숙희는 그를 부르기 전에 우선 마음에 들 양이면 논이라도 몇 마지기 주기로 하겠다는 생각을 굳히고 손이 없는 날 오후에 색시를 집으로 불렀다.
처녀네는 워낙 잘 살지는 못하지만 예의는 바르고 첫 인상도 마음에 들었다.
변 숙희는 그에게 부탁하기를 아들 하나만 쑥 낳게 되면 바랄 것이 없다면서 이 집으로 살러 오기 전에 논 댓 마지기를 주겠다고 약조를 하면서 연락이 가게 되면 짐을 싸가지고 오라고 일렀다.
이 정도로 성사가 되자 부인은 남편을 불러서 아무 날 아무 시부터는 첩실을 집에 들어 와서 살라고 하였으니 그날 이후에는 자기 방을 찾지 않아도 된다고 말을 하였다.
남편은 부인의 간곡한 부탁을 거절할 수 가 없어서 아무 말도 못하고 부인의 말을 듣기로 하였다.
윤 경성은 첩실을 들인 후에도 며칠 만에 한 번씩 본마누라를 찾았지만 변 숙희는 남편에게 당초의 약속을 지키라면서 방에 들이지를 않았는데 첩실은 한 결 같이 형님께 미안하다면 서 한 달에 한번만 들리라고 하였다.
윤 경성이 생각을 하니 아내의 마음씨도 착하지만 첩실도 아내 못지않게 착한 것을 알고는 더욱 그를 사랑하게 되었다.
첩실의 나이 어려서 그런지 집안일에 대해서는 잘 몰라서 만날 큰 마나님이 챙겨주게 되자 그런 것이 아내에게는 부담이 되는 것이어서 어느 날 첩실을 불러들였다.
“ 여보게 이 집안에 일이 많은 것은 자네도 잘 알 것이네만 내가 생각하건 대는 이제는 자네가 모든 집안일을 알아서 처리를 해주어야 하겠네. 알다 싶이 나는 몸이 아파서 아무 일 도 할 수가 없는 몸이야. 모르는 것은 영감님에게 묻거나 머슴들에게 물으면 잘 알려 줄 것이야. 그리고 사람이 처음으로 남의 집에 가게 되면 그 살림을 잘 알기란 쉬운 일이 아닐세. 그러니 눈치껏 알도록 노력을 해야 할 것이야.”
그렇게 해서 하루 이틀이 지나고 한 달 두 달 그리고 몇 달이 지난 어느 날 변 숙희가 뜰을 거닐고자 나가다가 보니 첩실이 댓돌 밑에서 한없이 떠가는 구름을 바라보고 있는 것을 보게 되었다.
그래서 이상해서 그 옆으로 다가가서 뭘 생각하느냐고 하자 얼른 일어나더니 무슨 말을 할 듯 하다가는 훌쩍 훌쩍 눈물을 짜는 것이다.
“ 울기는 아이들처럼 왜 울어. 왜 무슨 일이 있었나.”
그러자 그는 머뭇거리더니 긴 한숨을 내쉬더니 말을 하였다.
“형님에게 한 가지 부탁이 있는 데유.”
“ 그게 무어야 무엇이건 간에 의문 나는 것이라든지 모르는 것은 아무 때고 물어도 좋지만 그 나이가 되면 어림짐작으로 라도 매사를 부딪치며 해나가야 하네.”
“ 형님 그것이 아니 구유.”
“ 그것이 아니라면 무어란 말이야.”
“ ………….”
“ 왜 대답을 못해 어서 말을 해 보래두.”
“ 말씀드리기가 거북해서 그래 유.”
“ 무슨 말인데 그래 나에게 거북할 게 무어가 있어. 어서 말을 해봐.”
“ 실은 유 . 저기 그것 있지 안유.”
“ 그거라니 .자네가 살아가는데 지장이라도 있단 말인가 .”
“ 그게 아니래두 유.”
“ 사람 참 답답하네. 무슨 말인데 하지를 못해.”
“ 남자 여자가 밤에 자는 얘긴데 유.”
그제야 변 숙희는 밤의 정사에 대한 생각이 언뜻 나는 것이었다.
밤의 일이라면 그 자신 무척 좋아하였고 그것이 인생의 낙처럼 느끼기도 하였는데 갑자기 병이 나는 바람에 그 일에 대해서는 까맣게 잊어버리고 약을 먹을 생각만 하고 있는 판인데 첩실이 새삼스럽게 낯부끄러운 얘기를 꺼내니 거기에 대해서 말을 회피할 수는 없었다,
“ 이제 자네가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지 알겠네. 나도 그렇지만 여자들은 남정네에 대해서 연구를 많이 해야 하는데 그것도 밤일에 대해서는 여자가 전적으로 그를 받쳐 주어야 한다네.”
“ 형님. 그런데유 저는 아무래도 이 집에서 못살 것 같애 유.”
“ 그건 또 무슨 소리야.”
“ 처음에 이 댁으로 들어 올 때만 해도 사내 아이 몇은 나을 수 있을 것 같은 자신을 가졌는데 살다 보니까 그게 아니더라구유. 애가 생길 것 같지 않아서 그래유.”
“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지.”
“ 말씀 못들 여유. 그런 줄만 아시고 저는 아무래도 1년만 채우고는 집으로 돌아가야 하겠어유.”
변 숙희가 생각을 하니 첩실의 얘기 내막을 알 것도 같았다. 자기는 윤 경성과의 정사에 대해서 조금도 탓을 하지 않고 남자들은 의례히 다 그러려니 하였는데 언젠가 친정에 갔다가 시집간 친구들의 얘길 들어보고 나서는 정사라는 것은 저녁마다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어렴풋이 알게 되었던 것이다.
친구들의 남편들에 대한 얘기를 종합해 보면 거의 다가 시집가서 한 1년간은 저녁마다 남편들이 마누라를 호말 타듯이 올라타더니 몇 년이 지나고 나서는 찾는 횟수가 점점 줄어들고 근래에 와서는 한 달에 고작 한두 번을 하게 되면 많이 한다는 소리를 듣고는 자기 자신이 특수한 체질을 가진 것은 아닌가 하는 느낌을 처음으로 가진 것이다.
사실 남편은 하루저녁에 정사를 시작하게 되면 한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두 번 세 번 어떤 때는 다섯 번까지도 마치 낟가리 쌓을 때에 볏단 집어던지듯이 하고는 다음 날 거뜬하게 일어나는 것이었으니 그것이 누구에게나 보통 있는 일로 생각했던 마나님이었다.
그런데 오늘 첩실이 울면서 하소연 하는 것을 보니 아무래도 남편과 첩실의 속궁합이 잘 맞지 않는 것으로 생각이 되어 그것이 또 한 가지의 걱정거리였다.
모처럼 첩실의 몸도 튼튼하고 마음씨까지 착하여 변 숙희는 속으로 만족을 하면서 아들 두엇쯤은 금방 낳을 것으로 생각을 하였으나 첩실의 말로는 그것이 잘 안될 것 같다는 말을 돌려서 하다 보니 제대로 표현을 못하고 있는 것 같았다.
“ 아! 이 노릇을 어찌하면 좋단 말인가. 세상에 여자가 지니고 있는 거시기가 다 다르단 말인가. 하기야 강줄기를 보아도 깊은 내가 있는가 하면 얕은 내도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사람에 따라서 다 다르기야 하겠지만 하필 왜 이번에 들어온 첩실이 남편과 맞지를 않는단 말인가. 그는 자기가 살아있는 동안에 남편의 씨를 받아야겠다는 마음을 굳히고 어렵사리 첩실을 구했던 것인데 겉보기와는 다르게 속은 차지를 않은 것이 분명하니 기왕에 내디딘 발길을 다시 다른 여자에게 돌려야 한단 말인가.
변숙희는 자리에서 일어서면서 첩실의 손을 맞잡고는 말을 하였다.
“여보게 디딜방아도 곡식을 자꾸만 찧다가 보면 방아궹이가 닳아서 못쓰듯이 사람의 몸도 지금은 모든 것이 잘 맞지를 않다가도 1년 가고 2년이 가게 되면 다 맞게 되어 있으니 그때까지 참아야지 어찌 하겠는가 .”
그런데 그때 무슨 볼 일이 있어선지 순덕 어멈이 휭하게 집으로 오고 있었다.
“ 아주머니가 바로 계시네요. 그러지 않아도 드릴 말씀이 있었는데 며칠 동안 친정에 갔다가 오느라 이제 들렸구만요.”
“그래 그럼 안으로 들어가.”
순덕어멈이 방으로 들어서더니 아주머니에게 방금 무슨 말씀을 하셨느냐고 묻는다.
“ 특별한 말은 아니고 그냥 집안 살림에 대한 말을 하였을 뿐이야.”
“그러세요. 이상하네, 일전에 날 보고는 이상한 말을 하더니 오늘은 딴 말씀을 드린 모양이지요.”
순덕어멈이 하고 싶은 이야기는 방금 첩실이 한 이야기 일 것이라는 생각을 한 마님은 순덕어멈에게 그 말을 듣고 싶지를 않아서 딴 말을 꺼내었다.
“자네네 암탉이 요즘에는 알을 잘 낳는가.”:
“ 예애. ‘이상도 해라’ 웬 뚱딴지같이 암탉 말씀을 하시지요.”
“음. 우리 집 암탉이 알을 품은 지 여러 날이 되었는데 아직 병아리를 까지를 않아서 그래.”
“ …………….”
金 斗 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