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희 세한도(歲寒圖)(6)
고 오주석(吳柱錫)미술사가)
13세 소년을 통해 되살아나는 추사선생
<세한도>의 작가 김정희에 대해서는 이미 방대한 연구가 있고, 또 1857년에 이한철(李漢喆)이 옮겨 그린 <추사김공상(秋史金公像)>이라는 훌륭한 초상화도 있다. 그러나 그분의 일상생활을 생생한 세부 묘사와 함께 살필 수 있는 글은 극히 드물었다. 그런 점에서 이제 소개하려는 상유현(尙有鉉, 1844~1923)의 <추사방견기(秋史訪見記)>는 매우 놀라운 자료다. 추사는 1856년 10월 10일 임종하였는데, 그 약 6개월 전의 모습을 13세 어린 소년이 관찰한 내용이기 때문이다.
상유현이 어린 시절을 회상하며 이 글을 기록한 것은 그로부터 약 60여년이나 지난 뒤였는데, 소년의 눈에 비쳤던 추사선생의 인상이 얼마나 강렬했던지 이제 막 다녀와 곧바로 적은 것처럼 실감이 난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그는 한의사 집안의 중인으로 학문을 즐겨 자손에게 3천여 권의 책을 남겼으며 대부분이 6.25전쟁 중에 타버렸으니 그 와중에 천우신조로 간신히 살아남은 글이 바로 <추사방견기>라고 한다. 이 자료는 원래 서지학자 김(金)약(約)슬(瑟, 1913~1971) 선생이 1966년 <도서(圖書)> 잡지 10호에 소개했던 것이다. 세월이 흐르면서 잊혔던지 것을 새로 번역하여 일부 소개한다.
우리나라 근세 명필은 추사 김정희를 첫째로 꼽으니, 사람들이 그 필체를 많이 본따고 그 서첩을 보배로 여긴다. 청나라 사람들이 그의 글씨를 많이 사간 이래로 일본 사람들 역시 모아 들이므로, 요즘은 더욱 귀하게 여겨 서첩 한 권 값이 백여 원 ―당시 고급 서화 값이 5원에서 10원 정도였음―에 이르기도 한다. 나는 본래 안목이 없어 그 글씨에 어떠한 보배로운 점이 있어서 그러한지 알지 못한다. 내 보기에는 글자의 온화함과 묵직함, 바르고 곧음이나 곱고 아리따운 짜임새가 백하(白下) 윤순(尹淳, 1680~1741)과 원교(員嶠) 이광사(李匡師, 1705~1777)만 못한데도 작품 값은 백하(白下)와 원교(員嶠)가 오히려 낮으니 참으로 알기 어려운 것이다.
내 어릴 적 병진년(1856년) 봄여름 사이에 간안 이인석(1821~1858), 어당 이상수(1820~1882), 그리고 단번 윤치조 세 어른께서 과천의 반곡(盤谷)에 있는 식암 선생 댁에 와서 묵었을 때 봉은사에 가서 추사 선생을 뵌 적이 있었다. 그 때 김공께서는 절 안에 머물러 계셨는데 식암공께서 동행하시므로 내가 모시고 따라갔던 것이다. 여러 어른께서 절문에 이르러 김참판(金參判, 김정희는 참판 벼슬을 지냈다)이 어디에 계시냐고 물으니 늙은 중이 절하고 맞으며 답하기를 “동편 큰방에 머물러 계십니다.”하였다. 어른들께서는 곧 서편 큰방으로 들어가 자리를 정하고 다시 중에게 “김참판께선 지금 무얼 하고 계시는가?”하고 물었다. 답하기를 “글쓰기를 마치시고 한가롭게 앉아 계십니다.”하였다. 여러 어른들이 옷을 가다듬고 나아가므로 나도 따라가 뵈었다.
큰 방 남쪽 벽 아래에 나무로 지은 가옥 한 칸이 있었는데 사방에 병풍은 없고, 앞에 휘장을 드리워 반쯤 걷어 올렸다. 휘장 안에는 화문석 자리를 펴고 또 자리 위에 꽃담요를 폈으며 담요 앞에는 큰 서안(書案) 하나를 놓았다. 서안 위에는 뚜껑 덮인 벼루 하나, 그 옆에는 푸른 유리 필세(筆洗)가 있었으며, 발이 높은 작은 향로에 향을 피워 연기가 올랐다. 또 필통 둘이 있는데 하나는 자줏빛으로 크고, 하나는 희고 작은 것이었다. 큰 필통엔 큰 붓 서너 자루, 작은 필통엔 작은 붓 팔구 자루가 꽂혀 있었다. 그 사이에 백옥 인주합하나와 청옥 서진(書鎭) 하나가 있고, 또 서안에 큰 벼루가 하나가 더 있는데 먹을 갈아 연지에 그득했다. 왼편에 있는 나무쟁반에는 인장(印章) 수십덩이를 담았는데 크고 작아 들쭉날쭉했다. 오른편에는 자줏빛 대쪽으로 만든 조그만 탁자 하나가 있고 그 위 지통(紙筒)에 비단과 생명주 그리고 종이 두루마리가 가득 꽂혀 있었다.
첫댓글 <추사방견기>에 나타난 어린시절 상유현의 놀라운 관찰력에 담긴 추사의 면모 잠시 엿보고 갑니다. 감사합니다.선생님.. 건안한 새학기 보내세요.
상유현의 기록으로 추사의 진면목을 다소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자료가 되겠지요....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