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경태: 졸혼한 어느 여인
찬바람이 나뭇가지를 흔드는 날, 움츠린 채 미용실을 찾았다. 구이읍내 시골 미용실이라 그런지 손님들은 대개 60대 이상의 여인들. 순서를 기다리며 앉아 있는데, 날씬한 몸매에 나이보다 젊어 보이는 한 여인이 들어왔다. 갓 60대 초반쯤 되어 보이는 그녀는 능숙한 말투로 요양사 일을 하다 직업을 바꿔볼까 고민 중이라 했다.
염색이 시작되자 대화도 자연스레 깊어졌다. 그녀는 탁자 위의 커피잔을 매만지며 조용히 입을 열었다.
“제가 작년 9월에 졸혼을 선언하고 임대 아파트로 이사 나왔어요. 남편과는 7살 차이인데, 하루하루가 사사건건 트집이더라고요. 이제는 따로 사니 너무 편해요.”
그녀의 말은 담담했지만, 그 속엔 오래 참아온 세월의 무게가 배어 있었다. 자식들에게는 이혼 사실을 숨기고, 명절이면 남편 집으로 가 음식을 장만한다고 했다. “애들이 모르게 하려면 어쩔 수 없어요. 남편이 음식 장만하는 돈을 주죠. 워낙 스크루지 영감 같아서 돈 모으는 일과 자식, 손주밖에 모르는 사람이거든요. 나한테는 ‘네가 돈 벌어서 쓰냐?’ 하면서요.”
그녀는 소리 없이 웃었다. 그러나 그 웃음에는 씁쓸함이 배어 있었다.
“집 나와서 요양사 일을 하니 밥 안 해도 되고, 하루하루가 얼마나 편한지 몰라요. 그런데 남편은 내가 다시 돌아올 줄 아나 봐요. 전화해서 ‘아프면 어떡하냐’고 묻기도 하고요. 하지만 전 이 생활이 편해졌는데, 왜 돌아가겠어요? 조카 장사도 도와주면서 내 재미를 찾아 살아야죠.”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며 문득, 요즘 졸혼을 선택하는 사람들을 자주 보게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디서부터 어긋난 것일까?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부부의 인연이라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걸 새삼 깨닫는다. 나이가 들수록 서로 조금만 배려하며 살면 좋을 텐데, 그조차 힘든 현실을 보면 사랑이란 종이 한 장보다도 더 얇은 것인가 싶다.
한평생을 함께 산다는 것은, 어쩌면 십자가를 지고 언덕을 오르는 일인지도 모른다. 더 쉬운 길을 택할 수도 있지만, 묵묵히 걸어가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것이다.
나이가 들수록 서로를 가엾이 여기고, 따뜻한 말 한마디를 건넬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부부는 인생의 작품을 함께 만들어 가는 예술가가 아닌가.
2025. 2.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