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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05. 27
최근 한화를 ‘마리한화’라고 부르는 야구팬이 많아졌다. 마약류인 ‘마리화나(대마초)’를 응용한 것인데, 마치 마약처럼 중독성 있는 야구를 한다는 의미에서다. 각종 변칙 운영이 속출하고, 혹사 논란이 벌어질 만큼 투수들의 역투가 연일 이어지는 데다, 역전승과 역전패가 밥 먹듯이 나오는 게 한화 야구다. 코칭스태프와 선수들은 경기 내내 긴장감 속에 피가 마르지만, 팬들은 마지막 순간 힘겹게 승리가 확정되는 짜릿함에 두 배의 환희를 느끼곤 한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화나 이글스’로 통하던 팀이었기에 격세지감이다.
요즘 야구계에는 이렇게 기발한 신조어들이 셀 수 없이 많다. 인터넷을 통해 팬들의 커뮤니티가 확장되고 야구의 세세한 부분까지 관심이 폭발적으로 높아지면서 벌어진 현상이다. 이미 야구 관계자들 사이에서도 하나의 ‘일상어’로 취급될 만큼 보편화된 표현들도 많다. 물론 재미로 시작된 신조어들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거나 남용할 필요는 없다. 어디까지나 야구를 보는 즐거움을 더 높이는 차원에서 받아들이면 될 일이다. 진정한 야구팬이라면 모를 수 없는 대표적인 야구계의 ‘은어’들을 정리해봤다.
# DTD와 UTU
‘DTD’는 아마도 가장 유명하고, 광범위하게 쓰이는 표현이 아닐까. DTD는 “내려갈 팀은 내려간다”는 뜻을 담고 있는 ‘Down team is down’의 앞 자를 딴 말이다. 한눈에 봐도 영어 문법에는 전혀 맞지 않는 전형적인 한국식 영어다. 그러나 오히려 그런 이유로 더 친숙하고 장난스러운 느낌을 준다.
이 말은 2005년 현대 감독이던 김재박 현 KBO 경기감독관의 한마디에서 비롯됐다. 아마 당사자인 김 감독도 무심코 던진 한마디가 이렇게 오랫동안 회자될 줄은 몰랐을 것이다. 김 감독은 그 해 최약체로 분류됐던 롯데가 5월까지 상위권을 지키자 “앞으로 내려갈 팀은 분명히 나올 것”이라고 평가했다. 콕 집어 롯데라고 말하지는 않았지만, 타깃이 어느 팀인지는 분명해 보였다. 실제로 그 해 롯데는 4강에 들지 못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말은 훗날 김 전 감독에게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그가 LG 지휘봉을 잡았던 2007년부터 2009년까지, LG는 늘 5~6월까지 상위권을 달리다가 시즌 중반을 넘어가면서 미끄러져 4강 진출에 실패하곤 했다. 한동안 LG가 DTD의 대표적 사례가 된 것이다. 그러나 이후 LG는 마침내 가을잔치의 한을 풀었고, 이제는 모든 팀에게 광범위하게 적용된다. 반대말도 생겼다. ‘UTU(Up team is up)’, 즉 “올라갈 팀은 올라간다”는 의미다. 삼성처럼 시즌 초반에 고전하다가 중반 이후 치고 올라가는 팀에 주로 쓰인다. 최근에는 ‘내팀내’, ‘올팀올’처럼 한국식 표현을 쓰기도 한다.
# FA로이드와 먹튀
‘FA로이드’는 선수들이 FA(프리에이전트)를 앞둔 시즌에 평소보다 더 좋은 성적을 낸다는 뜻. 선수들의 경기력을 불법적으로 향상시키는 금지약물 ‘스테로이드’에 FA를 합성했다. FA라는 기회가 마치 스테로이드처럼 선수들에게 불가사의한 힘을 불어 넣는다는 의미에서 만들어진 조어다. 요즘처럼 FA 선수들의 몸값이 높아진 시기에는 더 유효한 단어이기도 하다.
안 그래도 많은 선수들이 FA를 앞둔 시즌에 가장 몸 관리를 열심히 한다. 그 1년의 성적에 수십억 원이 좌우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한 시즌에 반짝 활약을 하면서 그동안의 성적에 비해 좋은 대우를 받는 선수가 있는가 하면, 8년간 꾸준히 좋은 성적을 올리고도 FA 직전 시즌에 부진해 울며 겨자 먹기로 헐값에 계약하는 선수도 있다. 그야말로 ‘복불복’인 셈이다.
관련 은어로는 다른 분야에서도 많이 쓰이는 ‘먹튀’가 있다. 돈을 ‘먹고 튄다’는 의미로, 말 그대로 거액의 계약을 성사시킨 뒤 부상으로 뛰지 못하거나 극심하게 부진한 선수들을 일컫는 단어다. FA 제도 초기에는 실제로 ‘먹튀’들이 적지 않았다. 그러나 요즘은 ‘모범 FA’들이 훨씬 많아졌다. 선수들이 ‘먹튀’라는 오명을 스스로 용납하지 못할 뿐더러, 첫 FA에서 성공하면 두 번째 FA에서도 다시 대박을 터트릴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 2013년 6월 7일 삼성 라이온즈와 두산 베어스의 경기에서 8회초 2사 만루 상황에서 등판한 삼성 안지만이 두산 윤석민을 삼진으로 잡고 환호하고 있다. / 사진제공=삼성 라이온즈
# 만루변태와 작가
공격하는 입장에서는 ‘잔루 만루’만큼 아쉬운 상황이 없다. 그러나 수비하는 입장에서는 ‘잔루 만루’가 가장 큰 짜릿함을 이끌어 낸다. ‘만루변태’는 ‘주자가 없을 때보다 오히려 주자가 꽉 찼을 때 느껴지는 긴장감과 스릴을 즐기는 투수’를 뜻하는 조어다.
삼성 불펜투수 안지만이 ‘원조’다. 안지만은 2010년 4월 9일 대구 KIA전에서 5-5로 맞선 연장 12회초 마운드에 올랐지만, 연속 3안타를 맞고 무사 만루 위기를 자초했다. 패색이 짙어 보였다. 그런데 그때부터 진가가 발휘됐다. 다음 타자 김상현~안치홍~이종범을 모두 삼진으로 잡고 무실점으로 이닝을 마쳤다. 이후 일부 팬들이 “안지만이 만루를 만들어준 덕분(?)에 오히려 더 짜릿한 장면이 연출됐다”고 감탄하면서 새로운 단어가 탄생한 것이다. 안지만은 이후 스스로 만든 만루는 물론 다른 투수가 만든 만루 상황도 완벽하게 막아내며 별명의 명성(?)을 드높였다.
현재 호주에서 뛰고 있는 한화의 레전드 투수 구대성도 만루변태와 관련한 일화로 유명했다. 대전고 시절 구대성은 그야말로 적수가 없는 초고교급 기량을 뽐냈다. 그러나 전국대회 도중 잘 던지던 그가 갑자기 9회에 연속 세 타자를 볼넷으로 내보냈다. 쉽게 볼 수 없는 장면에 깜짝 놀란 감독이 마운드에 올라가자 고교생 구대성이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경기가 너무 느슨해진 것 같아서 긴장감을 좀 주려고 일부러 그랬습니다.”
감독은 고개를 갸웃하며 마운드를 내려왔고, 구대성은 거짓말처럼 무사 만루에서 세 타자를 모두 삼진으로 돌려 세웠다. 한화 투수들 사이에 전설로 남아 있는 무용담. 진정한 ‘만루변태’의 출발점인 셈이다.
유사한 표현으로는 불안한 마무리투수를 통칭하는 ‘작가’가 있다. ‘만루변태’와 달리, 명예로운 별명은 아니다. 주로 투수의 성을 앞에 붙여 ‘○작가’로 부르곤 한다. 처음 이 단어가 쓰이기 시작한 것은 2008년. 롯데에 부임한 외국인 감독 제리 로이스터는 사이드암 임경완을 마무리투수로 중용했지만, 임경완은 블론세이브를 허용하거나 베이스를 주자로 채우는 모습을 종종 보이면서 경기를 새로운 국면으로 이끌곤 했다. 보다 못한 롯데 팬들이 마운드에서 드라마 같은 상황을 자주 만든다는 의미로 ‘임작가’라 부르기 시작했다. 이후 다른 팀에서도 마무리 수난시대가 종종 펼쳐졌고, 그때마다 새로운 작가들이 ‘등단’하곤 했다.
# 야잘잘과 야알못
‘야잘잘’은 최근 인터넷 댓글에서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단어 가운데 하나. ‘야구는 결국 잘했던 선수가 계속 잘하게 돼 있다’는 의미다. 김인식 전 감독이나 김재박 전 감독을 비롯한 수많은 사령탑들의 지론이자, 많은 야구팬이 인정하는 명언이기도 하다. 아무리 노력을 해도 타고난 재능이 없다면 성공하기 힘든, 냉정한 야구선수들의 현실을 객관적으로 인정하는 표현이기도 하다.
이 단어가 등장한 계기는 SK 박재상이 당시 팀 선배였던 ‘국민 우익수’ 이진영(LG)에게 던진 질문에서 비롯됐다. 막 1군에서 자리를 잡아가던 박재상이 “형, 어떻게 하면 야구를 잘할 수 있냐”고 묻자 이진영이 “재상아, 야구는 원래 잘하던 사람이 잘해”라고 대답한 것이다. 실제로 학창시절에는 그다지 빛나지 않았다가 프로에 와서 최정상급으로 성장하는 선수의 비율은 그리 높지 않다.
신고선수로 입단하는 아픔을 겪었다 해도, 두산 김현수나 넥센 서건창처럼 이미 확실한 능력 하나는 인정받은 케이스여야 프로 지도자들의 눈에 띌 수 있다. 많은 팀에서 시즌 도중에 반짝 활약하는 선수가 나타나곤 하지만, 시즌이 끝난 뒤에는 3할타자와 10승투수들의 명단이 매년 크게 달라지지 않는 이유다. 비슷한 발음의 ‘야알못’도 댓글에 자주 보이는데 ‘야구 알지도 못하는 X들’이라는, 상대방을 비하하는 뜻을 담고 있다.
▲ 지난 19일 LG와 넥센과의 경기. 매번 예측불허 승부를 펼치는 두 팀의 라이벌전을 가리켜, 레알 마드리드와 FC 바르셀로나의 더비경기인 ‘엘 클라시코’를 빗대 ‘엘넥라시코’라고 불린다. 사진제공=LG 트윈스
이 외에도 재미있는 단어들은 많다. ‘엘넥라시코’는 스페인 프리메라리가의 ‘엘 클라시코(고전의 승부·레알 마드리드와 FC 바르셀로나의 라이벌전)’에서 따온 단어. LG와 넥센이 만나면 유독 엎치락뒤치락 치열한 승부를 펼친다는 의미로 야구팬들이 붙인 이름이다. 특히 넥센에는 염경엽 감독부터 4번타자 박병호와 리드오프 서건창, 주장 이택근까지 LG와 관련 있는 인물들이 유독 많다. 그래서 두 팀 간의 승부가 더 흥미진진하다.
배영은 / 스포츠동아 기자 yeb@donga.com
일요신문 [제1202호]
◎ 선수들의 별명
‘한화 김경언’ 야신 만난 후…오 마이 ‘갓경언’
한화 김경언은 데뷔 15년째인 올해 아주 감격적인 별명을 얻었다. 바로 ‘갓경언’이다. 지난해 FA 자격을 얻었지만 헐값에 팀에 남아야 했던 그가 올해 득점 기회마다 결정적인 활약으로 팀 승리를 이끌고 있어서다. 한화에 온 ‘야신’의 영향 속에 새로운 타격의 ‘신’으로 거듭났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1군보다 2군에 머물던 시간이 많았고, 그나마도 주전이 아닌 백업 역할을 해왔던 김경언이다. 지난해부터 조금씩 빛을 보기 시작하더니, 올 시즌에는 아예 꽃을 피웠다. 요즘은 김경언의 처가 식구들까지 사위 덕분에 어깨를 으쓱한다는 후문이다.
▲ 한화 김경언 팬이 ‘GOD경언’이라고 적힌 카드를 들고 응원하고 있다.
▲ 김경언. 사진제공=한화 이글스
두산 용병 더스틴 니퍼트는 아예 ‘니느님’으로 불린다. 니퍼트와 ‘하느님’을 결합한 단어다. 니퍼트는 2011년 한국에 온 뒤 최근 5년간의 통산 승수와 방어율 모두 1위를 기록하고 있다. 역대 단일팀 용병 최다승은 이미 넘어섰다. 실력도 실력이지만 최고의 인성까지 갖췄다는 평가를 받는다. 두산팬들이 “용병 첫 영구결번을 주자”고 할 정도로 엄청난 사랑을 받고 있다. 니퍼트 역시 두산과 한국에 대한 사랑이 대단하다. 니퍼트에 관련된 기사에는 ‘니퍼트의 인터뷰 내용에 은혜를 받았다’는 의미로 ‘니멘’이라는 표현이 등장할 정도다.
안 그래도 요즘 웬만한 스타급 선수들은 팬들이 붙여준 기발한 별명을 하나둘씩 갖고 있다. 대부분 선수의 경기 내용, 혹은 재미있는 사건과 관련된 내용이 많다. 그 안에는 선수들에게 상처가 될 수 있는 별명들도 더러 포함돼 있다. 그러나 사실 좋은 별명과 나쁜 별명 모두 팬들의 애정에서 나온다. 배짱 좋기로 유명한 한 투수는 늘 “무플(댓글이 없는 것)보다는 악플(악성댓글)이 낫다”고 주장해왔다. 팬들에게 ‘무관심 선수’가 될 바에야 가끔 비난을 당하더라도 관심을 받는 게 낫다는 의미다.
LG 박용택은 흔하지 않은 이름 끝 글자 덕분에 각종 ‘택 시리즈’를 보유하고 있다. 타선이 활화산처럼 터질 때는 ‘용암택’, 사직구장에서 유독 강한 면모를 보일 때는 ‘사직택’으로 통하지만, 득점 기회를 살리지 못했을 때는 ‘찬물택’이라는 냉정한 별명도 따라 붙는다. SK 최정은 남다른 힘과 소년 같은 얼굴의 부조화 때문에 ‘소년장사’라는 별명으로 유명해졌지만, 많지 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통산 150사구를 돌파한 뒤에는 ‘마그넷 정’이라는 새 별명을 얻었다. 몸이 자석처럼 공을 끌어당겨서 사구가 많다는 뜻이다.
▲ ‘박발레’ 박석민의 헛스윙 장면(왼쪽)과 ‘잠실 아이돌’ 정수빈(사진제공=두산 베어스).
삼성 박석민은 타석에서 헛스윙을 크게 할 때 저절로 몸이 빙글빙글 도는 습관이 있는데, 이 때문에 ‘더블 악셀(피겨스케이팅 점프 기술)’이나 ‘박발레’ 같은 별명이 있다. 삼성 채태인은 경기 도중 2루를 밟지 않고 바로 3루로 뛰어가는 주루플레이로 아웃됐다가 ‘신항로’를 개척했다는 의미로 ‘채럼버스’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반면 공수에서 창의적이면서도 탄탄한 플레이를 펼칠 때가 많아 ‘채천재’라는 별명도 동시에 갖고 있다. LG 오지환은 타점만큼 삼진도 많고, 호수비만큼 실책도 많은 양극단의 스타일. 좋은 쪽이든, 나쁜 쪽이든 결국 경기를 지배한다는 뜻에서 ‘오지배’라는 별명으로 유명해졌다.
보통 별명이 그렇듯 외모 때문에 생겨난 것들도 많다. NC 이재학은 별명이 ‘딸기’다. 동명의 인기 캐릭터와 외모가 닮았다는 평가를 받았기 때문이다. 마산구장 1층에 있는 다이노스 카페에서는 실제로 딸기 주스에 ‘이재학 주스’라는 이름을 붙여서 팔고 있다. NC 팬들이 “이재학 두 잔 주세요”고 주문하는 모습도 종종 목격된다. 두산 정수빈은 해맑은 고교생을 연상케 하는 외모로 여성팬들을 몰고 다닌 덕에 ‘잠실 아이돌’로 불렸다.
군복무 중인 한화 안승민은 1991년생이라는 실제 나이보다 훨씬 더 많아 보인다는 의미로 ‘안부장’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같은 팀 선배투수이자 동안으로 유명한 1976년생 박정진과의 비교 사진이 한동안 인터넷을 강타했다. SK 박진만은 현대와 삼성 시절에는 서글서글한 외모와 ‘진만’이라는 이름 덕분에 ‘찐만두’로 불리다가 고향(인천)팀 SK로 돌아온 뒤 ‘고향만두’로 별명이 바뀌었다. kt 용병 옥스프링은 LG와 롯데에서 뛸 때부터 ‘옥춘이’로 통했다. ‘옥’ 뒤에 붙은 ‘스프링(Spring)’이 봄이라는 뜻을 담고 있어서 봄 춘(春)자를 사용한 한국식 이름을 선물 받았다.
물론 별명의 진정한 제왕은 역시 한화 김태균이다. ‘김거북’, ‘김만세’, ‘김멀뚱’, ‘김꽈당’, ‘김질주’를 비롯해 지금까지 나온 별명이 수백 개가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아예 별명 자체가 ‘김별명’으로 굳어졌다. 김태균과 이름이 한 획만 다른 NC 김태군은 어부지리로 ‘김별멍’이라는 유사 별명을 얻기도 했다. [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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