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02. 03.
소설가 최인호(1945~2013)가 우리 곁을 떠난 지도 햇수로 10년이다. 최인호를 생각할 때마다 그가 암 투병 중에 쓴 마지막 말이 잊히지 않는다.
"저는 제가 작가가 아니라 환자라는 것이 제일 슬펐습니다. 저는 작가로 죽고 싶지 환자로 죽고 싶지는 않습니다.…5년에 걸친 암 투병 동안 가장 고통스러웠던 것은 글을 쓸 수 없는 허기였습니다."
이 세상 모든 작가와 예술가의 꿈은 하나로 수렴된다. 눈을 감는 순간까지 작업을 계속하고 싶다. 글을 쓰거나 작곡을 하다가 그대로 죽고 싶다.
최인호의 간절한 소망처럼 생애를 마무리한 대표적인 인물이 요한 볼프강 폰 괴테(1749~1832)다.
▲ 괴테가 사랑한 뷔츠부르크 와인. 불룩한 복스보이텔 병에 담겨 있는 게 특징이다 / 사진출처 = 위키피디아
1832년 3월22일, 괴테는 서재에서 글을 쓰다가 피곤을 느꼈다. 잠시 침실로 가서 침대 옆 안락의자에 앉아 등을 기댔다.(괴테는 아무리 피곤해도 잠잘 때를 제외하곤 절대 침대에 눕지 않았다) 그리곤 얼마 뒤에 영면에 들었다.
19세기 여든세 살이면 지금 기준으로 거의 100세에 육박하는 나이다. 그의 지칠 줄 모르는 에너지는 도대체 어디서 왔을까. 작품을 지속해서 생산해 내려면 창조적 에너지가 계속 공급되어야 한다.
이런 점에서 괴테는 연구대상이다. 괴테의 에너지 원천은 미식과 사랑과 지적 호기심이었다. 특히 식도락과 지적 탐구심은 생물학적 나이에 제약받지 않는다. 맛있는 음식을 기대하고 먹는 즐거움만큼 영원한 게 세상에 또 있을까.
'세계인문여행' 80회가 '괴테의 아스파라거스 사랑'이었다. 이 칼럼을 읽은 지인이 카톡으로 기회 되면 대식가 괴테 이야기를 한번 써달라고 청했다. 그랬다. 괴테는 미식가이면서 대식가였다.
▲ 괴테가 앉은 채로 눈을 감은 침대 옆의 안락의자. / 조성관 작가 제공
21세기 의사들은 한결같이 소식을 강조한다. TV 프로그램에서는 일본 장수마을의 하라하치분(腹八分)을 이야기한다. 그래야 건강하게 오래 산다고. 하지만 괴테는 정반대였다. 알아주는 대식가였다. 삼시 세끼 엄청나게 먹었다. 그것도, 아주 맛있게.
1831년 12월의 31일, 그가 바이마르 저택에서 먹은 점심 메뉴를 보자. 운명하기 80일 전이다. 사과 수프, 거위 간 요리, 순무와 함께 요리한 갈비, 노루 등심 요리, 사과 무스. 이 정도면 한창인 20대의 점심 식사로도 양이 과할 정도다. 그런데 82세 노인은 이 점심을 거뜬히 먹어 치웠다.
"뷔르츠부르크 와인을 보내 달라."
지금부터는 괴테의 식탁에 오른 메뉴들을 만나보자. 독일은 맥주와 와인의 나라다. 그런데 괴테는 맥주를 거의 마시지 않았다. 맥주가 체질에 맞지 않은 거 같다. 오로지 와인, 와인이었다. 괴테의 식탁에는 아침 식사를 제외하고는 와인이 거의 빠지지 않았다. 술은 음식과 대화를 맛있게 하는 윤활유다. 먹고 싶은 와인이 떨어지면 아내와 지인들에게 그 와인을 구해달라는 편지를 썼다.
문호의 와인 탐닉! 그 세계로 들어가기 전에 시(詩) ‘살아가며, 행동했지’의 한 연(聯)을 음미해보자.
'나는 이제야 와인을 즐기게 되었다! / 와인은 우리를 성장시켜 주고, / 노예가 된 혀를 자유롭게 해준다. / 생기를 돋우는 와인이라고 너무 마시지 마라. / 오래 숙성한 와인은 통에서 사라지지만 / 새 와인이 다시 익을 테니까.'
괴테는 당시로는 매우 드물게 독일의 여러 지방을 여행한 사람이다. 그러면서 여러 지방의 특색 있는 와인을 경험했다. 괴테가 애정한 와인은 뷔르츠부르크(Würzburg) 와인. 아내와 지인들에게 쓴 편지 속에는 뷔르츠부르크 와인을 구해달라는 이야기가 수시로 등장한다. 도른부르크 성(城)에 머물 때 지인에게 보낸 편지에 이런 구절이 보인다.
'…내가 이곳에 머물 동안 자네가 와인을 좀 조달해 주게나. 우선 한꺼번에 와인 6병을 보내주고, 일정한 간격으로 와인을 보내주게. 도수가 약한 진짜 뷔르츠부르크 와인으로 부탁하네…'(1828년 7월10일)
뷔르츠부르크는 독일 남부 바이에른주의 도시다. 고향 프랑크푸르트에서 120㎞ 떨어진 곳이다. 뷔르츠부르크 와인은 프랑켄 와인으로도 불린다. 리즐링 와인으로 유명한 프랑켄 와인은 불룩한 병(복스보이텔)이 특징이다. 흥미로운 점은 괴테가 손자들과 함께 와인을 마시는 것을 좋아했다는 사실이다. 괴테는 공부하던 손자들이 자신과 함께 와인을 마시고 기분이 좋아져 숙제하는 것을 잊어버리는 모습을 지켜보는 걸 즐겼다. 참 짓궂은 할아버지다. 괴테가 1819년에 쓴 '서동시집'는 '권주가'가 보인다.
'우리 모두 취해야만 한다! / 젊은이는 술을 마시지 않아도 취하고, / 노인은 술을 마셔 다시 젊어지니, / 이거야말로 기적과도 같은 윤리가 아닌가 / 사랑이 있는 인생은 근심을 만들고, / 술은 근심을 몰아낸다. ···취해있지 않은 동안에는 / 사악한 것에만 마음이 끌리고, / 취해 있으면, 정의를 알게 된다. / 유감스러운 일은 / 과음하는 것뿐…'
▲ 우설 판세타 요리 / 사진출처 = 위키피디아
우설(牛舌) 요리를 좋아한 문호
괴테 식도락의 특징은 잡식성(omnivorous)이다. 가리는 음식이 없이 다양하게 즐겼다.
괴테는 육류는 다 좋아했다. 소고기, 송아지고기, 돼지고기, 노루고기, 사슴고기, 양고기, 토끼고기. 이렇게 말하면 그가 부유했기 때문에 값비싼 음식을 좋아했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천만의 말씀. 값싼 돼지 머릿고기도 좋아했다. 돼지 머릿고기를 겨자 소스에 찍어 먹곤 했다. 송아지고기와 소고기 스테이크를 즐겼을 뿐 아니라 우설(牛舌)도 자주 먹었다. 우설은 맛은 심심하지만 식감이 매력적이다. 독일에서는 훈제 우설이 대중적인 식재료로 유통되었다.
온천 휴양지 칼스바트에 머물 때 괴테는 아내에게 편지를 보냈는데, 편지 말미에 이런 대목이 보인다.
'기회가 생겨, 라이프치히에 있을 당신에게 소포를 하나 보냈소. 아마 지금쯤은 받지 않았을까 싶군요. 별로 값비싼 것은 아니지만 최고급 훈제 소혀랍니다. 잘 있기를. 그리고 내 생각하길 바라며, 빨리 답장 써주길 바라오. G.'(1808년 7월2일)
우설만 좋아한 게 아니다. 송아지 혀와 돼지 혀 요리도 즐겼다. 돈설(豚舌)! 이것으로 미뤄 작가는 동물의 '혀'를 선호했다는 점을 짐알 수 있다. 채식주의자가 보면 아마 구역질을 했을 것이다.
그의 아침 식탁에도 스테이크와 훈제 우설이 올라왔다. 아침 식사를 가볍고 적게 먹는 식습관이 자리 잡은 요즘 통념에서는 무척 낯설다. 그런데도 큰병 없이 천수를 누렸다.
그가 예외적인 체질이어서였을까. 괴테 연구자의 한 사람으로서 나는 이런 식습관은 그의 루틴과 관련이 깊지 않을까 추론한다. 그는 오전 6시에 일어나 공복 상태에서 글을 썼다. 그리고 아침 식사는 10시에 했다. 점심 식사는 오후 2시. 점심 식사 이후에는 반드시 일룸 공원을 산책했다. 그가 아침부터 '무겁게' 한 것은 아침을 먹기 전에 충분한 두뇌활동을 했기 때문이리라.
생선도 대구, 가물치, 뱀장어, 송어, 청어, 잉어를 비롯해 회귀성 어종인 연어까지 즐겼다. 생선류 중에서 특히 좋아한 것은 연어 요리. 비스바덴에 머물며 바이마르의 아내에게 쓴 편지 속에는 연어 찬가가 등장한다.
'이런 상황에도 언제든 연어는 맛볼 수 있으니 이 얼마나 즐거운 일이겠소. 30크로이처만 내면 언제고 훌륭한 젤리와 함께 연어 요리를 먹을 수 있다오.'(1815년 6월3일)
▲ 1787년 로마 캄파냐 유적지를 여행 중인 괴테. '이탈리아 기행'은 상당 분량을 식도락 기행에 할애하고 있다 / 사진출처 = 위키피디아
제철 채소와 제철 생선을 즐기다
우리가 눈여겨봐야 할 것은 괴테가 생선이든 채소든 과일이든 제철 음식을 철저하게 챙겼다는 사실이다. 아내 크리스티아네에게 특정 채소가 가장 맛있는 시기와 특정 식재료의 구입 시기와 장소를 알려주었다.
'파우스트'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서는 식도락 이야기를 거의 찾아보기 힘들지만 '이탈리아 기행'은 이탈리아 식도락 기행이라고 해도 크게 틀린 말이 아니다. 1000쪽이 넘는 자서전 '시와 진실'에도 식도락 이야기가 심심찮게 등장해 읽는 즐거움을 선사한다. 그는 작가답게 음식 하나하나를 세심하게 음미했다. 그리고 그것을 일기나 편지, 또는 시나 산문에 기록했다. 괴테의 위대함이 여기서 나온다.
'시와 진실'에 보면 라이프치히 대학 시절 이야기가 다양하게 나온다. 그중에서 가장 재미난 것은 역시 먹는 이야기다. 그중 한 토막.
'…사순절이 다가오자 토마스 광장에 있는 빙글러 교수댁 근처에서 바로 강의 시간에 맞추어 아주 맛있는 튀김 요리들이 프라이팬에서 요리되어 나왔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을 먹느라 늘 지각을 했다. 그 결과 우리의 노트에는 공백이 늘어갔고…'
▲ 죽기 4년 전인 1828년에 요셉 스타일러가 그린 괴테 초상화. 79세라는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혈색이 좋다 / 사진출처 = 위키피디아
미식가이자 대식가인 괴테의 식탁은 오래전부터 연구대상이었다. 19세기 말 오스트리아 빈에서 출간된 식품 사전에는 괴테가 좋아한 식재료가 언급되었다고 하니 더 말해 무엇할까.
괴테 식탁 연구의 일차 자료는 그가 쓴 다양한 글이다. 여기에 의외의 공로자가 등장한다. 하인 고틀리프 크라우제. 그는 1831년 12월25일부터 죽는 날까지 문호의 식탁에 올라간 식재료 목록을 작성했다. 주인을 닮아 충실한 메모를 남긴 하인 크라우제에게 감사할 일이다. '훌륭한 요리 앞에서는 사랑이 절로 생긴다'의 편역자 요하임 슐츠는 이렇게 맺음말을 썼다.
'이리하여 괴테는 죽을 때까지 좋은 음식을 먹을 수 있었다. 바로 그랬기 때문에 그는 그렇게 오래 살 수 있었고, 불멸의 시인으로서뿐만 아니라, 미식가로서 모범적인 인물이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2022년은 괴테 서거 190년이 되는 해다.
조성관 / 작가
뉴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