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4월달에 한번 모임을 갖기로 했으나, 그 때도 지난 3월의 부산에
서 46회 동창회 모임처럼 번개불에 콩볶아 먹듯이 일정을 타이트하게
잡는 바람에 7명 정도만 온다고 하여 많이 모이는 것이 낫다고 판단되
어 부랴부랴 일정을 취소하였다.
이번에는 아예 충분히 한달간의 여유를 주면서 모임을 알렸다. 오명선
와 강미연 둘이 연락을 도맡아 하여 수고를 해주었다. 물론 최종적으로
내가 점검차 다시 연락을 다했다. 서울*인천*경기에 18명이 있는데,
15명이 나온다고 했다.
못나오는 친구들 중 정인순(왕촌, 인천)이는 마침 허리디스크수술을 해
3개월동안 꼼짝 못하는 신세라고 했다. 쾌차를 빈다. 중표(왕촌, 이천)
는 근무가 밤 8시에 끝나 도저히 못나올 것같았다. 홍정영(중촌, 의정
부)는 친동생이 갑자기 올라와 못온다고 했다. 늦게라도 나온다던 강태
진(중촌, 서울)는 갑자기 손님이 찾아와 못올거라 했고, 권정자(대현,
안성)도 마찬가지였다. 대전사는 3명의 친구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엊그제는 비가 내려 내일도 날씨가 좋지않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어제
아침 날씨가 너무나 화창하였다.
약속시간이 오후 5시에 였지만, 집에서 보신각(종각)까지 차로 20분 거
리에 있지만, 우리 영은(딸래미)를 태우고 3시 50분쯤 서둘러 집을 나
섰다. 집사람이 간호사라 병원에서 근무를 하고 있어 어쩔 수 없이 딸
아이를 데리고 나갔다.
오늘 월드컵기념 한일전이 있다는 걸 깜빡했다. 서울시내가 꽉 막혔다.
광화문 네거리에 일찍부터 온 수만명의 붉은 악마가 응원을 하기 위해
모여 있었다. 작년 이맘때 그날 속으로 들어온 느낌이었다.
종각에 가려면 그곳을 통과해야 했는데, 도저히 빠져 나갈 수가 없었
고, 5시 약속시간을 못 맞출 것같아서 어느 빌딩옆 골목길에 차를 버
리다시피 두고 애들 안고 뛰었다. 다행히 종각에 도착하니 4시 57분이
였다. 아무도 안나왔다.
조금후 홍명숙(중촌, 서울 불광동)가 5시 정각에 도착했고, 나머지
친구들은 다들 먼 지역에서 오는 바람에 시간을 정확히 계산 못해
늦게씩들 도착했다. 조금후 홍재승(중촌, 서울)이와 정찬운(중촌, 서
울)이가 함께 오고, 민병술(내평, 인천), 오재석(왕촌,서울), 유차현
(신촌, 안산), 오명선(신촌, 성남), 민영부(오휴, 수원), 강미연(대현,
수원), 이옥수(오전, 구리)가 차례로와 모두 모였다. 11명이였고, 민영
순(내평, 서울)이는 일때문에 2시간 정도 늦는다고 했다. 모두들 거의
15~20년만에 만남이라 어떤 모습으로 변했는지 궁금점을 가지고 나타났
다. 세월을 속일 수 없는지 삼십대 중반의 나이라 그런대로 이제 서서
히 아저씨티와 아줌마티들이 났다. 물론 솔로인 사함도 있지만...
우리는 내가 구해놓은 종각역 인근의 갈비집에서 2시간동안 회포를 풀었
다. 그리고, 2차는 인사동의 멋진 곳으로 데려가는 도중 미술전시관으
로 유명한 공평아트센타빌딩앞 포장마차들이 즐비한 곳을 지나가다 어
느 포장마차에서 틀어놓은 TV에 한일전축구 후반전을 열리고 있었다.
아예 우리는 인사동 가기를 포기하고 그곳 포장마차에서 자리를 잡고 술
과 안주를 시키고 소주와 맥주잔을 주고 받으며 열심히 응원을 했다.
그때 민영순이가 도착했다. 도합 12명이 되었다. 18명중 12명이면 많이
온 것이었다.
후반이 끝날 무렵 이을용이 센터링한 공을 안정환이 그대로 슛골인하여
1:0으로 한국이 승리했다. 작년 이맘때의 그 월드컵 16강전 한국대 이태
리의 경기를 보는 듯한 느낌이였다. 그날의 감격이 다시 밀려오는 감격
스런 장면이 연출되었고 지난번 일본에게 뼈아픈 실수로 진 것을 말끔
히 만회한 경기였다. 홍재성이가 직장에서 한일전 경기 내기를 걸었는
데, 혼자 한국이 1:0으로 이긴다고 걸어 이날 승리로 포장마차 술값은
재성이가 쏘았다.
3차는 인사동 허리우드극장 옆 한 노래방에서 신나게 새벽 1시까지 즐겼
고, 이후 나는 자는 아기를 데리고 택시를 타고 집으로 향했고, 나머지
는 4차로 인근 호프집에 갔다. 호프집에서 새벽 3시경에 나와 5차로 올
림픽공원으로 가 인근에서 해장을 하고 6시무렵 뜬 눈으로 집을 향했다
고 한다.
이번에는 12시경에 다들 집에 가겠꺼니 생각했으나, 너무 반가워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다들 헤어질 줄 모를 정도로 밤을 지새웠다. 나도 다
시 나가려했으나, 집사람의 만류와 다시 합석은 못했다. 서울의 첫
46회 동창모임은 이렇게 막을 내렸다. 아쉽지만, 다음엔 경조사가 있을
시 자주 모이기로 했고, 아니라도 주기적으로 모이기로 했다.
첫댓글 미안하이 하도 늦게보아서 자네도 수고 했구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