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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9 과
영적 성장을 가로막는 사단의 전술
교회가 영적으로 부흥하기위해서는 연합해야 한다. 그러나 사단은 교회 내외적으로 문제들을 발생시켜 분열하도록 만들어서 영적 성장을 가로막으려고 한다. 부흥하는 초대교회도 역시 사단의 공격에 예외는 아니었다. 사단은 결코 순조롭게 교회가 부흥하기를 바라만 보고있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어떻게하면 영적으로 성장하지못하도록 여러 문제들을 이용하여 분열을 야기시키고자 한다. 또한 사람들로하여금 할수만 있으면 타락시키려고 노력한다.
“거라사에서 사귀들린 자를 만난 일은 제자들에게 한 교훈이 되었다. 그것은 사단이 온 인류를 끌어내리고자 애쓰는 그 타락의 깊이를 보여 주었고 또 그의 권세에서 사람들을 자유하게 하시는 그리스도의 사명을 보여 주었다. 무덤에서 살면서 사귀에 들려서 억제할 수 없는 정욕과 끔찍한 육욕의 노예가 되었던 이 비참한 사람들은 사단의 지배 아래 넘어갈 때에 인간이 어떻게 되는가를 보여 준다. 사단은 항상 사람들에게 그들의 감각을 혼란 시키고 악한 마음을 품게 하며 강포와 죄악을 범하게 하려고 힘쓰고 있다. ”(소망, 341)
사단이 영적인 성장을 가로막기위해 이용하는 대상이 되지않도록 영적으로 깨어있어야 한다. 사단이 지배하도록 허용해서는 안될 것이다.
교회가 영적으로 부흥하려고할 때 사단은 그 부흥의 불이 붙지못하도록 찬물을 붓는다. 갑자기 이런 저런 일들을 교회 안에 있는 일으키거나 교회 안에 있는 문제들을 이용하여 연합을 깨뜨리고 분열을 조장하며 불화의 씨를 던져놓는다.
사단은 초대교회에 어떤 문제들을 통해 영적부흥을 가로막고자 하였는가?
사단은 교회를 내부적인 문제와 외부적인 문제를 통해 영적 성장을 가로막았다.
A. 사단의 내부 공격
1. 원망과 불만
(행 6:1) 『그 때에 제자가 더 많아졌는데 헬라파 유대인들이 자기의 과부들이 그 매일 구제에 빠지므로 히브리파 사람을 원망한대』
초대교회가 부흥하면서 필요에 의해 새로운 구제사역이 시작되었다. 열두 사도까지 이 구제사역에 매진하고 있을 정도로 중요한 사역이었다. 그런데 이 구제사역에서 문제가 발생된 것이다.
헬라파 유대인들의 과부들이 매일 구제에 빠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히브리파 사람을 원망하는 일이 발생된 것이다.
“ 사단은 이 연합이 계속 존재하는 한, 복음 진리가 널리 보급되는 것을 막을 수 없음을 알고, 이전의 사고방식을 이용하여, 그것으로 교회 안에 불화의 요소들을 끌어들이고자 하였다.”(행적, 87-88)
“사도들의 노력으로 개종한 사람들의 마음은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부드러워지고 연합되었다. 이전의 편견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모두 서로 조화되었다. 사단은 이 연합이 계속 존재하는 한, 복음 진리가 널리 보급되는 것을 막을 수 없음을 알고, 이전의 사고방식을 이용하여, 그것으로 교회 안에 불화의 요소들을 끌어들이고자 하였다.
그리하여 시간이 흘러 제자들이 증가하였을 때에, 원수는 믿음의 형제들을 질투하고 그들의 영적 지도자들의 과오를 찾는 습관을 가졌던 어떤 사람들을 의심하게 하는데 성공하였다. 그리하여 “헬라파 유대인들이 … 히브리파 사람을 원망”하게 되었다. 불평의 원인은 헬라파 과부들이 매일 구제 도움을 받는데서 빠졌다는 주장이었다. 복음 정신에 어떠한 불평도 있어서는 안 될 것이었으나, 사단은 의심을 일으키는데 성공하였다. ”(행적, 87-88)
존 스타트
“교회에 사단이 심어놓은 가장 강력한 세력은 원망이다.”
공동체를 분열시키는 것은 원망이다. 공동체의 연합을 깨뜨리는 것은 바로 원망이다. 이것은 교회의 영적힘을 빼앗는 것이다. 교회를 스스로 무너지게하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으로 홍해를 건넌 경험을 하였지만 불과 사흘 후에 물이 없으니까 원망하기 시작하였다.
(출 15:22-24) 『[22] 모세가 홍해에서 이스라엘을 인도하매 그들이 나와서 수르 광야로 들어가서 거기서 사흘길을 행하였으나 물을 얻지 못하고 [23] 마라에 이르렀더니 그 곳 물이 써서 마시지 못하겠으므로 그 이름을 마라라 하였더라 [24] 백성이 모세를 대하여 원망하여 가로되 우리가 무엇을 마실까 하매』
홍해를 건너게해주신 놀라운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했다면 어떠한 필요도 채워주시고 인도해 주실 것을 믿고 기다렸어야하는 것이다. 그러나 홍해를 건너게해주신 하나님의 능력도 사흘을 넘지 못한 것이다.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그리고 애굽에서 나온지 한달이 되었을 때 그들은 또 먹을 것으로 인하여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기 시작하였다.
(출 16:1-3) 『[1]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이 엘림에서 떠나 엘림과 시내산 사이 신 광야에 이르니 애굽에서 나온 후 제이월 십오일이라 [2] 이스라엘 온 회중이 그 광야에서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여 [3] 그들에게 이르되 우리가 애굽 땅에서 고기 가마 곁에 앉았던 때와 떡을 배불리 먹던 때에 여호와의 손에 죽었더면 좋았을 것을 너희가 이 광야로 우리를 인도하여 내어 이 온 회중으로 주려 죽게 하는도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가지고 나온 양식이 점점 떨어지자 이제 원망이 나오기 시작하였다. 왜냐하면 먹을 것을 어떻게 해결해야할지가 걱정이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원망의 대상은 누구일까? 외면적으로는 모세였다. 그러나 내면적으로 들어가면 그 원망의 대상은 결국 하나님이라는 것이다.
(출 16:8) 『모세가 또 가로되 여호와께서 저녁에는 너희에게 고기를 주어 먹이시고 아침에는 떡으로 배불리시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자기를 향하여 너희의 원망하는 그 말을 들으셨음이니라 우리가 누구냐 너희의 원망은 우리를 향하여 함이 아니요 여호와를 향하여 함이로다』
원망의 근원지로 들어가면 아직도 그들은 애굽에 열 재앙을 내리신 하나님의 능력과 홍해를 건너게해주신 하나님의 능력을 잊어버렸다. 그 정도 놀라운 기적을 경험했으면 하나님께서 그 어떤 것도 책임져주실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을 믿고 기다려야 했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이 여전히 무엇을 믿고있는지 한달이 지나자 드러나게 된다. 곧 그들이 믿고 있는 것은 하나님의 능력도 아니었다. 그들이 아직까지 믿고 있는 것은 그들이 가지고 나온 양식을 믿고 있었던 것이다. 홍해를 가르신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먹을 것은 해결할 수 있도록 인도하실 것이라는 믿음을 왜 갖지못한 것일까? 참으로 안타까운 일인 것이다.
초대교회 안에 발생되는 문제도 보니까 구제 곧 먹고 살아가는 것에 관한 문제이었다. 그 문제로 사도들을 원망하였을 것이다. 그들이 원망하는 것도 그 근원으로 들어가면 결국 하나님에 대한 신앙의 문제라는 것이며 믿음의 문제이다. 하나님의 능력을 보고도 그 능력을 잊어버리고 하나님을 믿지않는 문제인 것이다.
그럼 사도들은 헬라파 과부들에 대한 원망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였는가?
사도들은 문제해결을 위해 구제사역을 담당할 사람들을 뽑도록하였다.
(행 6:2-4) 『[2] 열두 사도가 모든 제자를 불러 이르되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제쳐놓고 공궤를 일삼는 것이 마땅치 아니하니 [3] 형제들아 너희 가운데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듣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 우리가 이 일을 저희에게 맡기고 [4] 우리는 기도하는 것과 말씀 전하는 것을 전무하리라 하니』
(행 6:5) 『[5] 온 무리가 이 말을 기뻐하여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 스데반과 또 빌립과 브로고로와 니가노르와 디몬과 바메나와 유대교에 입교한 안디옥 사람 니골라를 택하여 』
일곱집사들의 이름은 헬라식 이름을 가진 자들이 대부분이라 할 수 있다. 이 말은 구호부를 대부분 헬라파 유대인들로 선임을 하였다는 것이다.
“일곱 집사 중의 으뜸되는 스데반은 깊은 경건과 넓은 신앙의 사람이었다. 비록 유대 태생이었으나 스데반은 헬라어를 말하고, 헬라 사람의 관습과 예절에 익숙하였다. 그러므로 그는 헬라파 유대인의 회당에서 복음을 전파할 기회를 얻었다.”(행적, 97)
사도들은 지혜롭게 대처함으로 제도적인 문제를 개선하게 되었다. 이 원망의 문제가 제도적인 문제와 인간의 행정실수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근원으로 들어가면 그 원망이 결국 하나님의 교회를 위태롭게할 수도 있는 문제로 확산될 수도 있는 문제이며 그 불만과 원망으로인해 하나님께 대한 믿음을 버리고 떠날 수도 있다. 그 일로 사도들, 곧 지도자를 헐뜯음으로 교회 전체에 대한 지도자의 리더쉽에 큰 타격을 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결국 지도자에 대한 원망은 교회 전체의 영적인 일에 영향을 주고 교회를 위태롭게 만드는 불씨가 될 수도 있다. 성령충만하고 영적부흥의 길을 가고 있는 초대교회였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육적인 문제가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들이 원망과 불만의 소재로 삼은 것은 육적인 것이었다.
그리하여 사도들은 이 문제로 말미암아 영적인 일에 전심전력해야겠다는 것을 깨닫게된다.
(행 6:4) 『우리는 기도하는 것과 말씀 전하는 것을 전무하리라 하니』
교회 안에는 영적이지 않는 일로 계속하여 문제가 발생될 수 있다. 그 문제가 영적인 문제와 관련이 없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결국 들어가면 그것은 영적인 문제에서 드러나는 문제이다. 원망과 불만의 소재들은 겉으로 보기에는 모두 육적인 문제로 보여진다. 그러나 내면으로 들어가면 그것은 바로 육적인 것에 집착되어있는 영적 신앙의 문제라는 것이다.
마치 이스라엘 백성들이 마실 것, 먹을 것에 대한 원망과 불만을 드러낸 것은 그들이 아직 육적인 상태에 머물러 있다는 증거였다. 하나님의 놀라운 기적의 역사를 보고서도 하나님께서 인도해주실 것에 대한 믿음을 갖지못한 결과라는 것이다. 문제는 영적인 축복을 주신 하나님의 역사에 집중되지 못하고 육적인 것에 집중하여 원망과 불만을 드러내는 것이다.
영적인 부족은 육적인 문제들로 드러난다. 영적인 문제는 육적인 문제로 드러난다.
그럼 이러한 육적인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였는가? 하나님께서도 백성들의 원망을 결국 들어주신다. 사도들도 그 원망의 문제들을 들어주고 해결해준다. 그리고 영적인 양식으로 그들을 채운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하늘의 만나로, 사도들은 말씀과 기도로 문제를 해결하였다. 왜냐하면 연약하기 때문이다. 영적으로 성장하기까지는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광야 40년이 걸릴 수도 있다. 그들도 영적으로 자랄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그리고 교회는 문제가 발생될때마다 함께 연합하여 기도하며 영적으로 해결해나가야할 것이다.
(행 6:6) 『[6] 사도들 앞에 세우니 사도들이 기도하고 그들에게 안수하니라』
육적인 일이 발생되었지만 그 처방은 기도하며 영적으로 치료해 나가고 봉합해 나가야 하는 것이다. 이 일을 위해 함께 협력해야하는 것이다. 이것이 교회를 영적으로 성장하게 만드는 길이다.
“그들이 그리스도와 연합할 때에만 제자들은 그에 수반되는 성령의 능력과 하늘 천사들의 협력을 바랄 수 있었다. 이러한 거룩한 대리자들의 도움으로 그들이 세상 앞에 연합 전선을 펴서 끊임없이 흑암의 권세들과 싸워야 할 투쟁에서 승리하게 될 것이었다. 그들이 연합된 수고를 계속할 때에 하늘의 사자들은 그들 앞서 길을 열 것이며 마음들이 진리를 받아들이도록 준비되어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께 인도될 것이었다.”(행적, 90-91)
이 일을 해결하기위해 선택되어진 자들은 거룩한 대리자들이다. 이들의 수고로 인하여 믿음이 부족한 자들이 믿음이 성장하게되고 진리를 마음에 받아들일 수 있도록 도와주고 그리스도께로 나아가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이 모든 일은 곧 교회를 더욱 영적으로 발전하게 도와주는 일이 될 것이다.
초대교회는 그 결과 교회 성도들의 수가 더 심히 많아지게 되었다.
(행 6:7-8) 『[7]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지고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이 도에 복종하니라 [8] 스데반이 은혜와 권능이 충만하여 큰 기사와 표적을 민간에 행하니』
사도들은 말씀과 기도에 전무함으로 교회는 더욱 영적으로 성장하게된 것이다. 그래서 교회는 목회자들이 말씀과 기도에 전무할 수 있도록 헌신하고 봉사하는 일꾼들이 필요하다.
“이러한 영혼의 수확은 사도들이 확보한 더 큰 자유와 일곱 집사들이 나타낸 열심과 능력 때문이었다.”(행적, 89-90)
교회가 질서대로 잘 운영이 되어질때 원망은 사라지고 하나님의 말씀이 왕성해지며 제자의 수가 많아지고 지역사회에 영향력을 미치는 교회로 발전해가게 될 것이다.
발생된 문제가 육적인 문제이었지만 영적으로 해결한 결과 초대교회는 영적성장을 가져오는 축복이 되었다.
우리 모든 인간은 불완전하기 때문에 어느 곳에서든지 문제가 발생될 수 있다. 또한 문제는 문제가 있다는 것이 문제가 아니다. 부흥하는 교회는 문제가 많이 발생된다. 교회가 성장해가면서 계속해서 이전에는 문제가 되지않았던 일들이 이제는 문제가 되어서 이전에 없었던 문제들이 하나씩 하나씩 발생이 된다. 성도의 수가 100명일 때 100개의 의자는 문제가 되지않는다. 그러나 성도의 수가 200명이 될 때 의자뿐만 아니라 그에 따른 여러가지 문제들이 발생된다. 공간의 문제, 소그룹 문제, 교사의 문제, 식사의 문제, 주차문제, 관계문제 등 이전에 없었던 문제들이 계속 발생하게된다. 그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해가느냐에 따라 영적 성장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어떤 상태의 교회일지라도 모든 교회들은 교회의 주인이 주님이시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또한 주님께서 바라시는 것이 무엇이었는지를 결코 잊어서는 안된다. 예수님께서 우리들에게 바라시는 것이 무엇인가?
(요 17:11) 『[11] 나는 세상에 더 있지 아니하오나 저희는 세상에 있사옵고 나는 아버지께로 가옵나니 거룩하신 아버지여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저희를 보전하사 우리와 같이 저희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
예수님께서 교회들에게 바라시는 것은 예수님과 아버지 하나님이 하나이신 것처럼 우리도 하나가 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우리의 정신은 연합과 섬김의 정신이 되어야할 것이다. 그리고 살든지 죽든지 주님의 영광을 위해 헌신하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할 것이다.
(엡 4:12) 『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빌 1:20)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럽지 아니하고 오직 전과 같이 이제도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게 하려 하나니』
예수님께서 교회에 바라시는 것은 교회가 하나로 연합되는 것이다. 연합이 중요한 이유는 무엇인가?
(전 4:12)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능히 당하나니 삼겹 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
“그들이 연합을 유지하는 한 교회는 “달같이 아름답고 해같이 맑고 기치를 벌인 군대같이 엄위”(아 6:10)있게 나아갈 것이었다. 그 어떤 것도 교회의 발전을 막을 수 없었다. ”(행적, 91)
우리가 연합해야하는 이유는 교회 성도들이 연합될 때 더 큰 영적으로 힘있는 교회가 되고 연합을 통해 교회가 발전되고 성장하기 때문이다. 교회의 성장에 있어서 필요불가결한 것은 바로 연합이다. 모든 교회들이 연합을 통해 성장을 이루어가는 교회가 되어야할 것이다.
초대교회의 모습이 오늘날 모든 교회가 따라가야할 모습이 되어야할 것이다.
“예루살렘에서의 교회 조직은 진리의 사신들이 복음으로 개심자들을 얻게 될 모든 다른 지역의 교회 조직을 위한 본보기가 되어야 하였다.”(행적, 91)
2. 교리문제
“안디옥 교회는 크고 성장하는 교회였다. 이 교회는 선교 활동의 중심지로서 그리스도교 신자들 가운데 가장 중요한 무리의 하나였다. 그 교인들은 유대인과 이방인 중에서 나온 많은 계층의 백성들로 구성되었다.”(행적, 188)
복음이 전파되자 이방인들이 나오면서 할례문제가 발생되었다. 유대로부터 내려온 형제들이 이방인에 대한 할례문제를 제기한 것이다.
(행 15:1-3) 『[1] 어떤 사람들이 유대로부터 내려와서 형제들을 가르치되 너희가 모세의 법대로 할례를 받지 아니하면 능히 구원을 얻지 못하리라 하니 [2] 바울과 바나바와 저희 사이에 적지 아니한 다툼과 변론이 일어난지라 형제들이 이 문제에 대하여 바울과 바나바와 및 그 중에 몇 사람을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와 장로들에게 보내기로 작정하니 [3] 저희가 교회의 전송을 받고 베니게와 사마리아로 다녀가며 이방인들의 주께 돌아온 일을 말하여 형제들을 다 크게 기쁘게 하더라』
할례를 받아야만 구원을 얻는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이 유대교 교사들은 큰 확신을 가지고 구원을 얻기 위하여서는 할례를 받아야 하고 의문의 율법을 모두 지켜야 한다고 역설하였다.”(행적, 188-189)
사단이 교회 안에 이방인 할례문제를 일으켜서 얻고자하는 목적은 무엇일까?
“안디옥 교회에서 있었던 할례 문제에 대한 고려는 많은 토의와 논쟁을 초래하였다. 마침내 교인들은 계속된 논의의 결과로 저희 중에 분열이 생길 것을 우려하여, 교회의 몇 책임 있는 사람들을 바울과 바나바와 함께 예루살렘에 보내어 그 문제를 사도들과 장로들 앞에 제시하기로 하였다. ”(행적, 190)
사단은 연합되어가는 교회가 항상 분열되도록 하기위해 여러 가지 문제를 일으킨다. 할례문제는 교회 안의 분열을 일으키게될 것이다. 이방인이 할례를 행하지않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이다.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가지고도 내부의 문제를 일으키고 분열을 일으키고자하는 것이다. 이러한 모습은 아주 바람직하지 못한 일이다. 그 문제로 교회가 분열이 올 것이 뻔함에도 불구하고 분열을 야기하는 말과 주장들을 하는 것은 옳지않는 일인 것이다. 피로 사신 교회를 분열시키고 영적인 힘을 나약하게 만드는 결과가 될 것이다. 우리는 교회 안에 일어나는 모든 문제를 영적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사단은 여러 가지 주장들과 연합되지못한 자들을 통해 끊임없이 교회 안을 분열시키고자할 것이다.
교회 안에 이방인 할례에 대하여 문제가 일어났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문제가 일어나기 전 베드로 사도를 통해 미리 이방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해답을 주셨었다. 예루살렘으로 가져온 할례문제에 대하여 베드로는 다음과같이 주장하였다.
““많은 변론이 있은 후에 베드로가 일어나 말하되 형제들아 너희도 알거니와 하나님이 이방인들로 내 입에서 복음의 말씀을 들어 믿게 하시려고 오래전부터 너희 가운데서 나를 택하”셨다고 하였다. 베드로는 성령께서 할례받지 않은 이방인들과 할례받은 유대인들에게 동일한 능력을 부어 주심으로써 논쟁 중에 있는 그 문제의 결론을 이미 내리셨다고 설득하였다. 그는 하나님께서 각종 네 발 가진 짐승이 가득한 보자기를 그의 앞에 제시하시고, 그에게 잡아먹으라고 명하셨던 그의 환상을 자세히 말하였다. 그가 속된 것이나 부정한 것을 결코 먹지 아니하였다는 말로 먹기를 거절하였을 때에 그 대답은 “하나님께서 깨끗케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하지 말라”(행 10:15)였었다.”(행적, 192-193)
하나님께서는 교회 안에 얼마든지 일어나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답을 미리 예비하신다. 베드로를 통해 복음을 미리 깨닫게하시고 문제가 발생되자 즉각 해결할 수 있도록 인물을 준비시켜 놓으신 것이다. 이 이방인 문제는 너무도 쉽게 해결되었다. 우리는 분열을 야기할 수 있는 문제는 신속하게 해결해야한다.
복음에 대한 이해의 부족은 서로에 대한 이해의 부족으로 나타날 수 있다. 또한 이설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재림하시기 전에 교회 안에서는 거짓 선지자들이 나타나 할 수만 있으면 사람들을 미혹케하고 연합을 깨고 분열을 일으킬 수 있다.
(마 24:11) 『거짓 선지자가 많이 일어나 많은 사람을 미혹하게 하겠으며』
(마 24:24)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이어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게 하리라』
이러한 이설들과 거짓된 주장들이 계속해서 발생될 수 있다는 것을 잊지말아야할 것이다. 교회는 이설들과 거짓된 주장들에 대하여 신속하게 대처함으로 교회의 분열을 막고 성도들을 보호해야할 것이다.
3. 탐욕과 위선적인 신앙
초대교회가 영적으로 부흥하려고할 때 사단은 어떻게 개입하는지를 살펴보자.
초대교회 성도들이 한 마음 한 뜻이 되어 핍절한 사람들을 돕고자 밭과 집을 팔아 판 것의 값을 사도들에게 가져왔었다.
(행 4:32-35) 『[32] 믿는 무리가 한 마음과 한 뜻이 되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제 재물을 조금이라도 제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더라 [33] 사도들이 큰 권능으로 주 예수의 부활을 증거하니 무리가 큰 은혜를 얻어 [34] 그 중에 핍절한 사람이 없으니 이는 밭과 집 있는 자는 팔아 그 판 것의 값을 가져다가 [35] 사도들의 발 앞에 두매 저희가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줌이러라』
이러한 분위기에 다른 마음으로 드리는 한 부부가 있었다.
(행 5:1-2) 『[1] 아나니아라 하는 사람이 그 아내 삽비라로 더불어 소유를 팔아 [2] 그 값에서 얼마를 감추매 그 아내도 알더라 얼마를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 앞에 두니』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하나님께 헌신하는 사람들과같이 자신의 소유를 팔아 사도들에게 가져왔다. 그렇게 헌신한 부부는 한 날 함께 죽고말았다.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죽은 이유는 무엇일까?
(행 5:3-4) 『[3] 베드로가 가로되 아나니아야 어찌하여 사단이 네 마음에 가득하여 네가 성령을 속이고 땅 값 얼마를 감추었느냐
[4] 땅이 그대로 있을 때에는 네 땅이 아니며 판 후에도 네 임의로 할 수가 없더냐 어찌하여 이 일을 네 마음에 두었느냐 사람에게 거짓말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로다』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죽은 것은 하나님을 속이며 부흥하고 있는 교회에 나쁜 가라지를 심으려했었던 것이다. 아나니아가 처음부터 하나님을 속이려하지는 않았었다.
아나니아 부부도 재산을 팔아 하나님께 드리고자 하였다.
“ 참석한 모든 사람은 깊은 가책을 느꼈고, 성령의 직접적인 역사로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어떤 재산을 팔아 그 수입을 주님께 드리기로 서약하였다.”(행적, 71-72)
하지만 그들의 마음은 성도들로부터 존경을 받고자하는 마음과 모두 드리기에는 아까운 욕심이 들어서 처음 서약을 깨뜨리고 사람들을 속이고 모두다 드린척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가난한 형제들을 돕기 위하여 그들의 소유를 나누어 준 사람들이 신자들 중에 크게 존경을 받는 것을 보았고, 그들이 이기심 때문에 하나님께 엄숙히 헌납하였던 것을 바치지 아니하였다는 것을 형제들이 아는 것을 부끄러워하였다.”(행적, 72)
“후에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탐욕의 감정을 이기지 못하여 성령을 슬프시게 하였다.
그들은 그들의 약속을 후회하기 시작했고, 곧이어 그리스도의 사업을 위하여 큰 일을 하려는 소망으로 그들의 마음을 뜨겁게 했던 그 아름다운 축복의 감화를 잃었다. ”(행적, 72)
“ 그들은 저희가 너무 조급하게 결정하였으므로 그들의 결정을 재고해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그들은 그 문제를 여러번 이야기하였고, 그들의 서약을 이행하지 않기로 결정하였다. ”(행적, 72)
“ 그래서 그들은 고의적으로 재산을 팔아 그 모든 수입을 공공 기금으로 바치는 척하면서 실제로는 큰 몫을 따로 떼어 두었다. 이리하여 그들은 공공 자금으로 그들의 생계도 유지하고 동시에 형제들의 존경을 크게 얻고자 하였다.”(행적, 72)
아나니아의 삽비라의 이런 행위는 하나님께 온전히 받으신바 되지 못하였다. 사람들은 몰라도 하나님께서는 다 알고 계셨으며 방관하시지 않으신 것이다. 사람은 속일 수 있어도 하나님은 속일 수 없었다.
하나님께서는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탐욕과 위선과 거짓과 허위와 위선으로 성도들로부터 존경을 받는 것을 허용하지 않으셨다.
“하나님께서는 위선과 거짓을 미워하신다.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하나님과의 거래에 있어서 기만을 행하였고, 성령에게 거짓말을 하였으므로 그들의 죄에 대해 신속하고도 무서운 형벌을 받았다.”(행적, 72)
“그것은 그들로 허위와 위선을 피하고,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하지 않도록 주의하라고 교회에게 주신 한 경고였다.”(행적, 73-74)
이러한 탐욕과 위선과 거짓과 허위와 위선의 정신은 배척되어야할 정신이라는 것을 말해준다.
이러한 정신이 교회에 들어와 성도들을 기만하고 교회를 기만하고 하나님을 기만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탐욕의 정신으로 하나님의 교회가 위선적인 재료로 교회가 지어져가서는 안되기 때문에 구약시대때에도 탐욕때문에 하나님께 드려야할 것을 드리지않았던 아간의 죄를 즉각 심판하셨던 것이다.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죄를 이렇게 신속하게 심판하신 것은 그 죄가 미치는 영향이 매우 큰 것이기때문이었던 것이다.
영국격언
“하루를 행복하려면 이발소에 가고,
일주일을 행복하려면 결혼을 하고,
한 달을 행복하려면 말을 사고,
일 년을 행복하려면 집을 사라.
그러나 평생 행복하려면
정직한 인간이 되라.”
탐욕의 정신은 허위와 위선과 정직하지 못한 죄까지 양산한다는 사실이다. 가라지 한 나무에서 맺어진 가라지 씨앗은 아주 많은 죄들을 양산한다는 것을 말해준다.
우리들의 신앙을 살피고 정결치 못한 신앙들이 있고 탐욕의 정신과 허위와 위선과 정직하지 못한 죄가 있다면 하나님이 아간과 아나니아와 삽비라에 가졌던 거룩한 분노의 마음을 가지고 과감하게 버려야할 것이다.
“탐욕과 기만과 위선에 대한 하나님의 가중히 여기심에 대한 이 실례는 초대 교회뿐만 아니라 장래 모든 세대에게 하나의 위험 신호로 주신 바 되었다.”(행적, 74)
왜 이러한 정신을 버려야 할 것인가?
“생애의 각 부분에서, 가정에서, 사회에서 심지어 교회에서도 많은 무리들이 오늘날 사단에게 굴복하고 있다. 포악과 죄악이 세상을 뒤덮고 죽음의 휘장처럼 도덕적인 암흑이 사람이 사는 곳을 둘러싼 까닭은 바로 이 때문인 것이다. 사단은 그럴듯한 유혹을 통하여 사람들을 점점 더 악한 일을 행하게 하여 결국에는 완전히 타락하고 멸망하게 한다.”(소망, 341)
이러한 정신으로인해 사단이 원하는 것은 완전히 타락하고 멸망하도록 만드는 것이었다.
욕심과 허위와 위선적인 신앙이 사라지자 교회는 어떻게 달라지게되었는가?
교회가 정결케되자 하나님을 믿고 나오는 자들이 더 많아지게되었던 것이다.
(행 5:12-14) 『[12] 사도들의 손으로 민간에 표적과 기사가 많이 되매 믿는 사람이 다 마음을 같이하여 솔로몬 행각에 모이고 [13] 그 나머지는 감히 그들과 상종하는 사람이 없으나 백성이 칭송하더라 [14] 믿고 주께로 나오는 자가 더 많으니 남녀의 큰 무리더라』
B. 사단의 외부 공격
1. 협박과 죽음
사단은 하나님의 교회를 내부적으로 공격을 해도 통하지않을때에는 극단의 방법을 사용한다. 그것은 바로 협박과 죽음이다.
(행 5:17-18) 『[17] 대제사장과 그와 함께 있는 사람 즉 사두개인의 당파가 다 마음에 시기가 가득하여 일어나서 [18] 사도들을 잡아다가 옥에 가두었더니』
사도들이 사람들에게 말씀을 가르치고 표적과 기사를 행하며 예수님을 믿는 자들이 많아지자 대제사장과 사두개인들과 서긴관 장로들은 시기하는 마음을 갖게되었다. 그리고 사도들을 옥에 가두며 협박을 통해 더 이상 말씀을 가르치고 예수님을 전하는 일을 하지못하도록 막는다.
교회가 말씀이 왕성하여 갈때 초대교회 부흥과 성장을 막기위해 사단은 교회를 구제로인해 원망하게 만들고 사도들을 붙잡아 가르치지 못하도록 협박하였다.
스데반이 은혜와 권능이 충만하여 큰 기사와 표적을 민간에 행하자 그들이 스데반을 당해내지 못하게 되자 그를 붙잡아 공회에 세웠다.
(행 6:8) 『스데반이 은혜와 권능이 충만하여 큰 기사와 표적을 민간에 행하니』
(행 6:10) 『스데반이 지혜와 성령으로 말함을 저희가 능히 당치 못하여』
(행 6:15) 『공회 중에 앉은 사람들이 다 스데반을 주목하여 보니 그 얼굴이 천사의 얼굴과 같더라』
협박하는 일로도 통하지않자 급기야 사단이 사용하는 방법은 무엇이었는가?
(행 7:59-60) 『[59] 저희가 돌로 스데반을 치니 스데반이 부르짖어 가로되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하고 [60] 무릎을 꿇고 크게 불러 가로되 주여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이 말을 하고 자니라』
사단이 사용하는 최종적인 방법은 성도들을 죽이는 일이다. 그러나 과연 이 일이 성공할까? 아니다.
(행 8:1,3) 『[1] 사울이 그의 죽임 당함을 마땅히 여기더라 그 날에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에 큰 핍박이 나서 사도 외에는 다 유대와 사마리아 모든 땅으로 흩어지니라 [3] 사울이 교회를 잔멸할새 각 집에 들어가 남녀를 끌어다가 옥에 넘기니라』
사단은 스데반을 죽임으로 성공했다고 여겼을 것이다. 그리고 사단은 이 때다 싶어 교회를 잔멸시키려는 목표를 세우고 사울을 통해 성도들을 잡아다가 옥에 넘기기 시작한다. 그 결과 예루살렘의 성도들은 흩어지고 말았다. 예루살렘에 집중된 복음 확산을 막았다.
하지만 오히려 흩어졌었던 성도들에 의해 복음이 이방 땅에까지 전해지기 시작하게 되었다.
“그분의 대표자들이 국외로 흩어져 거기에서 다른 사람들을 위하여 일하도록 하시기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핍박을 허락하셨다.”(행적, 105)
하나님의 교회가 위험에 빠져도 그것을 이용하셔서 복음이 더욱 잘 전파되도록 하신다.
어떠한 핍박가운데서도 복음전파는 멈추지 않을 것이다.
(행 8:4-5) 『[4] 그 흩어진 사람들이 두루 다니며 복음의 말씀을 전할새 [5] 빌립이 사마리아 성에 내려가 그리스도를 백성에게 전파하니』
복음의 뜨거운 열기는 아무리 닫고 억압하고 가로막는다고해서 막을 수 없었다.
막고자했었던 사단의 정책은 오히려 복음을 더 넓게 더 멀리 확산되게하는 계기가 되었다.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에 밀어 닥친 핍박은 복음 사업을 크게 촉진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그 곳에서의 말씀 사역에는 성공이 따랐으므로 제자들은 온 세상에 나가라는 구주의 사명을 생각지 아니하고 그 곳에 너무 오래 머무를 위험이 있었다. ”(행적, 105)
“사마리아에서의 빌립의 사업은 큰 성공을 거두었고, 이리하여 용기를 얻은 그는 도움을 구하려고 예루살렘에 사람을 보내었다. 이제 사도들은 “너희가 …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행 1:8)는 그리스도의 말씀의 뜻을 더욱 완전히 이해하였다.”(행적, 107)
하지만 사단은 여기에서 포기하지 않는다.
집사들 중에 한명을 죽인 것으로 만족하지않고 사도들 중 몇 사람을 해하고자 계획을 한다.
사도들 중 첫 번째 순교자가 된 사람은 누구인가?
(행 12:1-2) 『[1] 그 때에 헤롯 왕이 손을 들어 교회 중 몇 사람을 해하려 하여 [2] 요한의 형제 야고보를 칼로 죽이니』
사도중 야고보를 죽인 일로 인해 유대인들이 기뻐하자 그 다음 계획한 일은 어떤 일인가?
(행 12:3-4) 『[3] 유대인들이 이 일을 기뻐하는 것을 보고 베드로도 잡으려 할새 때는 무교절일이라 [4] 잡으매 옥에 가두어 군사 넷씩인 네 패에게 맡겨 지키고 유월절 후에 백성 앞에 끌어 내고자 하더라』
민간에 큰 영향력을 끼치고있던 베드로까지 잡아 죽이고자 하였다. 하지만 이 일에 하나님께서 직접 개입하시므로 사단의 계획은 실패로 돌아가고 만다.
(행 12:7,11) 『[7] 홀연히 주의 사자가 곁에 서매 옥중에 광채가 조요하며 또 베드로의 옆구리를 쳐 깨워 가로되 급히 일어나라 하니 쇠사슬이 그 손에서 벗어지더라 [11] 이에 베드로가 정신이 나서 가로되 내가 이제야 참으로 주께서 그의 천사를 보내어 나를 헤롯의 손과 유대 백성의 모든 기대에서 벗어나게 하신 줄 알겠노라 하여』
선교의 사명은 결코 멈추어지지 않는다. 그 어떤 핍박과 죽음의 위협도 선교를 막을 수 있는 것은 없다.
(행 4:20)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
사단이 아무리 교회의 영적 성장을 가로막는다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그 일을 통해 오히려 하나님의 목적을 성취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