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과 잘어울리는 백약이오름
제주에 살기 시작한 지 언 1년
좋지 않은 상황에서 제주로 넘어와
모든 상황을 극복하고 있다.
극복하는 과정에서 제주와 사랑에 빠졌고
3개월의 시간을 넘어 1년 아니 2년 혹은 평생을
제주와 함께 하고자 한다.
나는 현재 제주에서 미래를 그리며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여행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는 여행이 끝나면 그 추억과 함께 하루를 보내고, 여행이 다시 시작되면 새로 다가올 모험에 설렌다. 그렇다. 우리의 인생이 빵이라면 페이스트리처럼 겹겹이 추억을 쌓아 커다랗게, 또 맛있게 만들려 노력한다. 그래서 우리는 여행을 떠난다. 하지만, 모든 여행이 그렇듯, 모든 게 좋은 기억으로 남지는 않는다. 그 요인들은 곳곳에 있다. 여행 중에, 여행이 끝나고 난 뒤의 여러 요인 때문에 말이다. 내게 이곳은 조금은 달콤하고, 조금은 씁쓸한 여행지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은은한 황금빛 일몰 위에 모든 것을 괜찮게 만드는 곳이 이곳이라는 것이다.
백약이오름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표선면 성읍리 산1
백약이오름의 원래 이름은 '개여기 오롬'이라 불렸다. 하지만, 19세기부터 '백야기 오롬'이라 바뀐 이름으로 불리면서 오늘날에까지 전해지고 있다. 이런 백약이오름은 둥글넓적한 굼부리를 갖춘 오름으로 북동쪽엔 문세기오름과 동검은이오름이 있고, 동쪽엔 좌보미 오름이 있어 마치 한라산을 뒤로한 능선처럼 보인다. 또한, 북서쪽에는 동쪽의 유명한 오름 중 하나인 아부오름이 있고, 서남쪽에는 돌리미오름과 개오름이 있다. 물론 그 중심에 가장 우뚝 서 있는 오름은 바로 이곳 백약이오름이었다. 높이 356.9m의 이 오름은 감히, 동쪽 오름의 여왕이라 불려도 손색 없는 오름이라 말하고 싶다.
능선을 한 바퀴 크게 돌며 백약이오름을 제대로 즐겨보자
이런 백약이오름의 가장 큰 특징은 오름 군락지인 송당 산간에 있다는 것이었다. 저멀리 보이는 한라산을 두고, 여러 오름들이 능선을 이뤄 마치 지리산 자락을 연상케 하니까. 도로변 바로 옆에 위치한다는 것 또한 큰 특징이다. 접근성이 좋아 많은 관광객들이 쉽게 찾을 수 있다는 것만큼 여행의 큰 메리트는 없테니까.
또, 도로 옆에 오름이 있기에 풍경이 새로운 풍경을 볼 수 있다는 것. 그것이 이 오름을 사랑할 수 밖에 없는 이유다. 구비지는 도로, 그 뒤로 펼쳐진 하얀 풍력 발전기, 그리고 황금빛 억색의 조화까지 모든 것이 아름다운 한 편의 그림처럼 보이는 이 풍경은 백약이오름, 아니 오름 전체를 통틀어서 가장 아름다운 뷰를 선사한다.
은은한 빛 뒤로 펼쳐지는 송당리의 모습은 왜인지 퍽 사랑스럽다.
올해 들어 백약이오름은 처음이다. 작년엔 꽤나 많이 올랐던 이곳을 2021년 마지막이 돼서야 찾게 되었다. 나는 그 기간에 꽤나 놀랐다. 그리곤 혼자 중얼거렸다. '아, 역시 여행은 사람이 전부구나.' 매번 여행을 하며 느끼는 거지만, 여행은 사람의 손을 많이 탄다. 백약이오름은 어쩌면 사람이 그리운 여행지였다. 사람이 그립기에 찾지 않았던 곳. 그곳이 이곳 백약이오름이었다. 처음 제주에 정착했을 때, 들었던 백약이오름의 극찬, 그리고 같이 떠났던 여행, 좋았던 추억이 그곳에 고스란히 남았기에 갈 수 없었던 백약이오름.
나는 1년이 지나고서야 이곳을 찾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때의 기억이 이제는 비로소 웃으며 맞이할 수 있는 기억이 되었으매 더 가벼운 발걸음으로 이 오름을 오를 수 있었다. 그리고 정상에 서서, 그때의 기억을 마지막으로 곱씹으며 한라산을 향해 날려보냈다.
한라산 뒤로 펼쳐지는 주황빛 노을의 향연
한결 마음이 가벼워진 나는 한 바퀴를 크게 거닐며, 송당으로 뻗어가는 도로 위로 쌩쌩 달리는 자동차들을 멍하니 바라보며 걸었다. 또, 그 뒤로 펼쳐지는 황금빛 억새들, 초록빛의 넓은 초원들은 내 눈을 사로잡아 한시도 그곳에서 눈길을 떼지 않은 채 걸었다. 그렇게 천천히 걷보니 나는 어느 순간 제자리로 돌아왔다. 나는 한라산이 가장 잘 보이는 그곳 한구석에 자리 잡아, 털썩 자리에 앉고 저 멀리 보이는 한라산과 그 뒤로 펼쳐질 노을의 향연을 기다렸다.
날이 썩 좋지 않아 과연 내가 바랐던, 작년의 노을을 볼 수 있을까 걱정했다. 하지만, 걱정과는 다르게 흐린 하늘은 어느새 개기 시작했고, 한라산 뒤로 붉은 태양이 은은한 주황빛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해가 짧아지기 시작한 겨울, 다섯시 반이 되었을 무렵 붉은 태양은 매직아워 시간을 선물했고, 제주의 오름들 사이사이로 스며드는 햇살은 황홀함을 선사했다. 작년의 노을보다 더 아름다운 노을을 선물한 백약이오름. 나는 그날의 기억을 조금은 내려놓고, 오늘의 기억만을 간직한 채 노을을 바라보며 하루를 끝마쳤다.
백약이오름 주요 정보
현재 백약이오름은 '오름가꾸기 자문위원회'의 오름 자연휴식년제 결정에 따라 2020년 8월 1일부터 현재까지 자연휴식년에 들어있다. 이 휴식제는 2022년 7월 31일까지 계속될 예정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백약이오름을 탐방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현재 탐방로는 자연휴식제와 상관없이 접근할 수 있고, 지금은 정상 봉우리 출입만 금지되어 있다.
만약, 무단으로 출입할 경우 자연환경보전법(제66조)에 따라 200만 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백약이오름의 정상을 오르진 못해도, 탐방로는 퍽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사계절 어느 하나 빠짐없이 아름다운 백약이오름. 제주 동쪽을 여행하는 사람들에겐 꼭 가보라 말하고 싶은, 추천하고 싶은 오름 중 하나이다. 이곳에서 경험할 사랑스러운 추억, 그 추억을 꼭 만들기를 바라며, 이 오름을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