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장 만남 5
불빛이 흔들린다. 바람이 분다. 바람은 돌들의 입에서 나온다. 돌들은 돌격한다. 광란의 파티를 벌이려......
불빛이 흔들린다. 바람소리가 난다. 돌들이 부숴진다. 병사가 피를 쏟고 쓰러진다. 여기 저기서 불이 치솟는
다. 돌들은 녹아버린다.
이제는 불덩어리들이 나타난다. 머리 셋달린 개도 나타난다. 돌들은 점점 줄어든다. 병사들도 줄어든다. 돌들은 사라졌다.
"예상밖의 행동입니다."
"......"
"골렘들이 이렇게 머리를 써서 야습을 할 줄이야......"
"......"
"피해가 너무 큽니다. 이젠...... 이길 수 없을 겁니다."
"......"
"......후퇴...... 합시다......"
"......"
피의 광란이 벌어진 곳. 여기저기에 피웅덩이가 보인다. 라이샤는 말 없이 피 웅덩이를 만들어낸, 아까 까지
는 살아있었던 것을 바라보았다. 처참하게 일그러지고 부숴졌다. 라이샤는 말 없이 자신의 앞에서 찌그러진 갑
옷을 입고 자신에게 말하는 젠스를 바라보았다.
"......내...... 잘못...... 인가......"
"......"
"내가...... 내가...... 내가 저들을 저렇게 만든것인가...... 대답해라 젠스."
"그것은......"
"그렇다!"
젠스는 휘둥그래진 눈으로 자신의 뒤에서 자신있게 그렇다고 말한 자를 바라보았다. 라이샤는 힙겹게 자신의
눈동자를 굴려 그 병사를 바라보았다. 그 병사는 아까 라이샤에게 바보라고 하였던 그 병사였다. 젠스가 놀라
다시 뭐라하려 했을때 병사는 재빨리 입을 열어 젠스의 입을 막았다.
"네 놈이, 네 놈이 잘난척을 하였기에, 이들은 힘도 제대로 써보지 못하고 이렇게 죽어간것이다. 다 네놈, 네
놈 때문이야."
"......"
라이샤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모두 옳은 소리였기에 라이샤는 아무런 반박도 하지 못했다. 그 병사는
그런 라이샤의 모습을 잠시 바라보다 말했다.
"흥. 그렇게 회의를 느끼고 반성을 한다하여도 살덩어리가 되어버린 저들이 다시 살아나진 않아! 내가 말했
지? 넌 바보라고! 난 네가 이런 짓을 할것을 이미 예상하고 있었다."
"그럼 어찌...... 말하지 않은거요?"
젠스는 지금 이 앞에 있는자가 보통인물이 아님을 알고 존댓말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그 병사는 콧방
귀를 뀌며 말했다.
"내가 왜 그걸 말해야하지? 그 잘난 높은 자리에 있으신 젠스 라티아님은 그런 사실조차 몰랐단 말인가? 병
사인 내가 알아냈는데?"
젠스에게 신랄한 말을 내뱉을 병사는 고개를 푹 수그리고 아무런 말도 못하는 젠스를 바라보다 다시 라이샤
를 바라보며 말했다.
"넌 어떻게 옛날과 달라진것이 하나도 없는거냐! 내가 널 바보라 한 이유중 하나가 몇년이 지나도 넌 어찌
달라지는 것이 없는게냐!"
"옛날과...... 달라진 것이 없다고......?"
"흥! 넌 옛날 네갈 마을의 가이샤를 아버지로 가지고 마이샤를 동생으로 가진 라이샤였다. 하지만 지금 너는
창조주 가이샤를 아버지라 두고 물의 신 마이샤를 동생으로 둔 불의 신 라이샤란 말이다. 너의 직위는 보통
인간이라면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높아진 것이란 말이다. 하지만 너의 행동은 달라진 것이 없었어. 그 성질하
며, 자신이 무엇을 잘하면 누가 제대로 대해주는 것, 그리고 칭찬받으면 자만하여 다음일을 생각하지 않는것!
넌 옛날과 달라지지 않았어."
"......어떻게...... 어떻게 옛날의 나를 아는거지......? 난 자이드라에서 사라진지 이미 6년이 지났다. 6년동안 나
는 그 누구도 지나가지 않는곳에 있었어. 그리고 내가 신이 된것은 천상계의 존재나 극소수의 사람이 아니면
알지 못한다. 그걸 네가 어떻게 아는거지? 난 널 여기서 처음보았는데."
"흥! 그걸 알아내서 과연 어쩌려는 거지? 그것을 알아내고 날 죽이기라도 하겠단말인가?"
"......"
"또 너는 '이것'이 없다. '이것'이."
"'이것'? '이것'이 뭐지?"
"그것이 무엇인지는 네 녀석 스스로 깨닫도록!"
크우워어~~~~~~~!!!
"이런, 또!"
"흥! 이제 잘해 보시지!"
"......넌 왜....... 넌 왜 자이드라 병사이면서 보기만 한거냐......"
"호오, 그걸 이제 아셨나? 난 자이드라 병사의 흉내를 내는 것일뿐, 그 무엇도 아니다. 고로 난 자이드라가
망하든지 말든지 나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단 말이다."
"......그런가...... 그럼...... 꺼져라. 싸움에 임하는 않는 자식은 필요없다. 꺼져라."
"......"
그 병사는 이때까지 신랄한 말만 계속 내뱉어내던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싸늘한 눈으로 라이샤를 바라보다
등을 돌렸다.
"남은 병력은?"
"대략...... 1000여명 정도입니다."
"1만 대군이...... 1000여명으로...... 제길! 적의 숫자는? 또 골렘들인가?"
"그것이...... 이번엔 긴데스의 병사들입니다."
"병사들이라면...... 난 도와줄 수 없다. 난 이 세계에 이상한 존재들이 존재하지 않는 역활만 할 뿐이다. 저 골
렘들은 긴데스의 어느 마법사들이 사악한 기운을 이용해 만든 것들이었기에 난 도와줄 수 있었다. 이제는......
너희들의 힘으로 해결하여야 한다."
"......진정으로...... 도와주실 수 없는 것입니까......"
"......미안하다."
"그럼 어쩔 수 없군요. 참모장! 적의 숫자는?"
"대략...... 2만정도 입니다."
참모장의 대답에 젠스는 나지막한 신음소리를 내며 말했다.
"음...... 원래 있었다고 해도...... 이기긴 힘들었을 것 같군. 그런데...... 어떻게 마법강국 긴데스에 저렇게 많은
장병들이 있는거지?"
"그것이...... 잘 모르겠습니다. 저번까지 파악되던 긴데스의 군사력은 변방의 군사들까지 대략 10만정도 입니
다. 그 중 전투에 참가할 수 있는 숫자는 1만도 채 되지 못하옵니다. 긴데스도 우리 자이드라만큼 몬스터가 많
이 출몰하기 때문이온데, 병사가 이렇게 많다면 아마 변방의 병사들을 긁어모아서 그럴 것이 옵니다."
"으음...... 제길! 어떻게 무슨 방도가 없는가?"
"지금으로썬...... 절망입니다."
참모장은 지금으로썬을 하고는 힐끗 라이샤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라이샤의 시선은 참모장과 일치하
지 않았다. 라이샤는 자이드라 왕궁을 향해 고개를 돌리고 있었던 것이다.
"크윽...... 지금으로썬...... 전멸하는 것이 다란 말인가......"
젠스가 절망하며 고개를 떨구었을때 갑자기 라이샤가 일어섰다.
"그랬군...... 그랬어! 그 병사가 말하던 것이 무엇인지 드디어 깨달았다! 내가 바보소릴 듣지 않았던 것이 당
연했어."
"에......?"
참모장과 젠스는 얼떨결해진 얼굴으로 라이샤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라이샤는 그들의 시선을 무시한채 긴데
스의 병사들이 몰린것으로 돌진했다.
"어떻게...... 된거죠?"
"글쎄...... 하지만 지금 분명한것은 이제 우리에게도 승산이 생겼다는 거지."
자신있게 말하는 젠스의 눈동자는 엷은 하늘색으로 가득차 있다.
'그래, 그거였어.'
라이샤는 아까부터 이 말을 계속해서 속으로 되뇌고 있었다. 병사가 말하던 바보 라이샤는 아까 아무런 힘도
쓰지 못하고 멍하니 자신이 사랑한다고 제대로 말하지 못한 상대가 있는 곳을 바라보던 라이샤였다. 하지만
바보 라이샤가 아닌 진정한, 불의 신으로써의 라이샤는 바로 지금 이 모습이었다. 라이샤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 병사가...... 말하고자 한것은...... 바로 이것이었어. 바로 이것...... 자신감. 자신감. 이것이...... 나에겐 부족했
던 것이다. 자신감.
자신감. 이것이...... 이것이 나에겐 턱없이 부족했던 것이었어...... 자신감. 자신감. 이것이 없는 내가 바로 바보
라이샤일뿐 이것의 진정한 의미를 알게 된 라이샤는 지금 나. 불의 신으로써, 민트를 사랑하는 한 남자로써의
라이샤일뿐이야!'
라이샤는 속으로 계속해서 자신감을 되뇌었다. 이때까지 자신이 마이샤만도 못하고 민트에게 제대로 말도 못
하고 그녀에게 쌀쌀맞게 굴던 이유를 방금전 병사의 말로써 깨달을 수 있었다.
병사가 부족하다던 '이것'은 바로 자신감. 자신감이 자신에게 없었던 것일 뿐. 그 다른 이유는 없었다.
라이샤는 지금 매우 상쾌했다. 이때까지 자신의 삐뚤어진 생각과 지멋대로인 성격의 근본지를 찾았기때문이
다.
라이샤는 도약했다. 높이, 아주 높이...... 그리고...... 긴데스의 병사들이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훗...... 드디어...... 드디어...... 바보에서 벗어났군...... 바보같은 자식."
아까 라이샤에게 신랄하기 짝이없던 말을 내뱉던 그 병사의 눈은 이미 밝은 아침 이슬의 한방울으로 변해있
었다.
라이샤의 몸은 높이 떠올랐다. 그리고 빠른 속도로 떨어졌다. 라이샤의 몸은 어느덧 자신이 원하던 곳에 위치해 있었다. 바로 긴데스의 병사들 앞에.
"멈춰!"
라이샤의 이 한마디에 선두에 나서던 병사들은 콧방귀를 뀌었다. 홀로, 단신으로 자기네들 2만병사를 멈추라고 한 것이었다.
병사는 말했다.
"저 자식 미친새끼아냐? 야! 무시해!"
"멈추하고 했다!"
"야! 안 꺼져? 왜, 니 애인이 널 안 받아주디? 죽을려고 자살하는 거냐? 이 미친새끼야!"
병사들은 낄낄 거리며 좋아했다. 병사들의 말을 다 들은 라이샤는 그래도 끈기 있게 말했다.
"멈춰!"
"이거 완전 맛이간 놈이네? 야 저 자식 자르고 잘라 오늘 저녁요리로 해먹어볼까?"
"오~ 그거 아주 좋은 생각인걸? 낄낄......"
자신들끼리 히히덕 거리며 좋아하던 병사들은 라이샤가 검을 빼들자 웃던 그 모습 그대로 죽었다.
어두운 천막안, 그 안에 검은 두건을 싼 자와 긴데스의 기사복을 입은 자가 서 있었다.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
"무언가?"
"선두의 병사들을 가로막는 자가 있다고 하옵니다."
"숫자는 몇이냐?"
"하나입니다."
"하나라...... 용사 바하무드가 살아나기라도 했는가보군. 헛소리하지마라!"
"......사실이다."
이때까지 아무런 말도 않던, 검은 두건을 쓰고 있던 자가 입을 열었다. 그 목소리는 메말라버린 샘에서 나오
는 건조한 목소리였다. 그의 말에 긴데스의 기사는 어이없다는 듯이 말했다.
"예? 사실이라고요? 카이젤님! 아무리 우리 긴데스의 궁정 마법사를 능가하셨다고 하여도 우리 2만병사는 허
수아비가 아닙니다. 그리고, 어찌 죽은 바하무드가 살아나겠습니까?"
"지금...... 병사들의 앞에선 불과같은 기 하나가 춤을 추고 있다. 그의 검에는 힘이 실려있어. 마치 정당한 이
유를 가지고 자신이 옳다고 여기고 있는것 같이......"
'이녀석들이 내 말을 무시했지. 그리고 나에 대해 욕을 했지. 감히 불의 신 라이샤님에게 말야. 그러니 내가
이들을 벤다고 하여도 그 누가 뭐라하겠어?'
라이샤는 역시 라이샤였다. 자신이 깨달은 자신감을 다른 쪽으로 처음 사용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이 사실에
굉장히 확신을 두고 있는 듯 검의 끝에 무시무시한 기가 매달려있었다.
"멈춰라."
라이샤는 마음속을 파고드는 이 한마디에 멈춰섰다. 이미 병사들은 자신의 주위에 보이지 않았다. 병사들은
두개로 갈라져 있었는데 가운데에는 그 누구도 나서지 않았다. 갈라진 파도의 모습을 한 병사들의 맨 끝에는
막사가 하나 서 있었다. 그리고 그 앞에는 아까 검은 두건을 쓴 자가 있었다.
"드디어...... 빌어먹을 운명이 장난을 치기 시작했군."
벽을 기대고 서 있던 가이샤가 내뱉은 한마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