뱀도 뱀 나름 / 이원우
아픈 과거사 하나. 2003년 초여름, 온천장에 있는 어느 절에 들러 주지스님을 만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일주문을 지나는데 저만치서 까치 몇 마리가 떨기나무 가지에서 땅바닥을 향해 요란하게 짖어대는 게 아닌가? 그건 한가한 오후의 깊은 고요가, 단순한 외부 자극에 의해 깨뜨려지는 그런 정황이 아니었다.
가까이 가서야 나는 거기 섬뜩한 광경을 보았다. 능구렁이 한 마리가 거의 초주검이 되어 배를 드러내 놓다시피 하여 드러누워 있는데, 까치들이 계속해서 녀석을 공격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무리 사악한 뱀이지만, 산사(山寺) 일주문 근처에서 생명을 잃는다? 나는 황망 중에서 얼른 나뭇가지를 하나 주워서는, 그 위에 능구렁이를 걸쳐 숲속으로 던졌다. 그제야 까치들로 잠잠해지더니 날갯짓을 하여 창공으로 솟구치는 것이었다. 만약에 내가 그 자리에 없었더라면 분명 그 능구렁이 녀석은 황천길로 ‘직행’했으리라.
물론 나는 당시 ‘불자’였다. 난 스님 앞에 꿇어앉아 내 불찰로 교내에서 생명을 잃은 한 어린이를 위한 불공을 부탁했다.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면서……. 나 자신 숨도 제대로 못 쉬는 데다 엄청난 회수의 빈맥에 시달리고 있어서, 그렇게 원혼이라도 달래야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주지 스님의 천도재 운운은 오히려 사치스럽게 들렸다.
그런데 그 돈의 출처가 문제인 것이다. 하기야 나 자신이 명재경각의 처지에 다다라 있어, 양심과 생존 사이에서 갈등을 생각할 겨를조차 찾기 힘들다 보니, 금일봉 액수에 연연할 수밖에 없었으리라. 그러나 거듭 밝히지만, 그 20만원은 결코 출처가 깨끗하지만은 않았다. 눈곱만한 직위로 얻은 몇 장의 지폐도 그 속에 포함되어 있었으니.
두더지 혼인 같다? 얼핏 떠오르는 말이었다. 내 분수를 모른 채 엉뚱한 바람, 다시 말해 내 심신의 괴로움에서 벗어나고 싶은 욕심에서 비롯된 전말이란 체념도 나를 지배했다. 진정 고인을 위한다면 깨끗한 그 1/4만 불전에 얹었을 게 아닌가? 차도라니 오히려 나는 그 뒤로 더 처참한 병마와의 싸움에 시달려야만 했다. ‘까치와 능구렁이 사건’의 꺼림칙함에서 도 도무지 벗어날 수가 없었다. 자업자득이라며 혼잣말을 하고선 소스라쳐 놀라기도 했고.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 사뭇 다른 뱀과의 추억(?).
내가 교감으로 근무하는 대천리 초등 학교 교문 앞을 아내와 함께 지나가고 있었다. 조기 축구회에서 무슨 대회를 하는 모양으로 사람들이 운동장에 많이 모여 있었고. 승용차 한 대가 이미 출입이 교문 옆 빈터에 세워져 있는데, 꼬마들이 그 근처에서 떠들고 야단이 났다. 왜 그러느냐고 물었다. 녀석들이 뱀 새끼가 한 마리 바퀴 밑으로 들어갔다는 게 아닌가? 나는 지체 없이 무릎을 땅에 대고 유심히 녀석들이 일러 주는 대로 들여다보았더니 아, 거기 볼펜 굵기 만한 유혈목이 새끼가 한 마리 발발 떨고 숨어 있었다. 앙증스럽기도 하고 어찌 보면 예쁘기도 한 녀석 앞에 잠시 멈칫거렸다. 손으로 붙잡아 볼까? 비록 물리기야 하겠지만 녀석을 살려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용기가 나지 않았다. 아픔보다 선혈이 겁이 나는 것이었다.
어린이들에게 해코지를 하지 말라고 단단히 놓고는 왕복 한 시간쯤 걸리는 산에 올랐다. 그러나 내내 애간장을 태웠다. 아니 후회가 되었다. 아내도 마찬가지, 발을 동동 구르는 모습이었다. 이심전심, 우리 둘은 조금 서둘러 하산하였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우리는 학교 앞으로 종종걸음을 쳤다. 승용차는 그대로 서 있었다. 그리고 거짓말 같지만, 새끼 유혈목이가 그 때까지 바퀴 밑에서 옹크리고 있었고. 순간 나는 섬광을 가슴으로 느끼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나는 팔을 뻗었다. 그런데 기다렸다는 듯이 나를 향해 기어 오는 새끼 유혈목이! 나는 환희를 느끼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드디어 내 숨결이 닿을 만한 곳까지 다가왔을 때 나는 배낭에 있던 비닐봉지를 꺼내 녀석을 거기에 몰아넣었다. 그리고 재빠르게 철조망 울타리(대천리 초등학교에는 악동들 때문에 보기 싫어도 그걸 쳐 놓았다)가까이 다가가 그 너머 풀밭에 녀석을 떨어뜨렸다. 나는 손을 털면서 부르짖었다. 인마, 넌 꼭 살아야 해! 그리고 이튿날인 월요일 어린이들에게 훈화 형식으로 기막힌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뭉뚱그려 말하면 둘 다 십여 년 전의 사건이다. 기적처럼 건강을 회복한 지금도, 가끔 그 능구렁이와 유혈목이의 생사에 대해 구름 잡는 추정을 한다. 뱀의 수명은 보통 10-15년으로 치더라만, 그렇다면 두 녀석이 어쩌면 지금 이 순간 금정산 기슭에서 아침 이슬을 먹고 있을지 모른다? 경칩이 지난 지 보름이니까.
그런 저런 인연이 있어서인지 모르지만, 뱀에 대한 이야기가 참 재미있어 귀가 솔깃해진다. 며칠 전에서는 인도네시아에서 길이 15미터 무게 450킬로그램짜리 비단뱀이 잡혔다지. 물론 기네스북에 등재 될 테고. 40년 전 서울 신문에 연재되던 어느 엽사의 ‘명포수 열전’에서 읽었던 우리 나라에서 가장 큰 뱀에 대한 기억도 재생된다. 낙엽이 지는 가을 그가 지리산에서 종일 허탕을 지고 내려오던 중, 쓰러진 나무 가지를 무심결에 타고 넘었다. 기분이 이상하여 살펴보았더니 아뿔싸 사람 신체만큼 굶은 뱀이 아닌가. 총으로 쏘아 잡아 갈라본즉 속에 노루가 한 마리 들어앉았더란다. 그런가 하면 세계에서 가장 작은 뱀은 에계계 겨우 10센티미터란다. 스파게티 가락 굵기 만하고. 전설에 의하면 뱀이 100년 살면 이무기가, 거기 900이 보태져서 용이 되어 승천한단다.
그러나……세월이 가면 뭐하나. 여전히 나는 양심에 어긋나는 짓을 많이 하고, 한갓 미물인 뱀도 뱀이지만 만물의 영장인 사람의 생명이 얼마나 소중하다는 걸 제대로 깨닫지 못하니. 오죽하면 이런 이야기에조차 흥미를 가질까? 여기서 어느 스님이 전해 준 신부 발(發)우스갯소리 하나. 뱀은 창조주가 만든 모든 들짐승 가운데 가장 간교하였다. 선악과를 따 먹도록 남자와 여자를 꾄 것이 뱀이었으니. 만약에 그 에덴동산이 우리 나라에 있었다면 남자는 뱀을 보자말자 물부터 끓여 뱀을 솥에다 집어넣었을 거라는 것. 그 뒤의 역사는 사람마다 상상의 날개를 따로 펼 수밖에.
당연히 나 자신 남자와 여자의 후손이다. 하여 뱀에 악연과 선연(善緣)이 있었고, 마침내 꽃뱀이라는 말에도 흥미를 갖는다. 복잡하다. 꽃뱀은 실제론 유혈목이? 유혈목이 정력제로 쓰이는 분명하니 야릇한 느낌마저 갖게 된다. 어쨌든 거듭 말하지만 뱀도 뱀 나름이다.
17장/ 2011년 4월 3일
이원우(<한국 수필> 84년 천료/ <한글 문학> 소설 97년 신인상/ 지은 책 16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