덴버 박물관 소장품 특별전
남북 아메리카 인디언의 삶과 역사, 문화에 관한 전시를 기대했는데,
북미 인디언의 생활상과 미술, 공예에 관한 전시였다.
즉 역사와 인디언들의 깊은 생각, 감정에 관해서는 거의 배제된 전시..
잔혹한 학살과 억압, 구속에 관해서는 미국 역사의 치부라 덴버 박물관에서도 아예 배제시키고 있을까.
북미지역 인디언 부족들의 거주지역 지도.
노래 인디언 레저베이션의 주인공 체로키족은 테네시 부근에 살았고,
아파치족은 텍사스지역에 거주했음을 알 수 있다
역사 책들에 따르면, 인디언들은 약 2만년 전후 빙하기에 아시아 동북부지역에서 얼어서 연결된 베링해협을 건너 아메리카 대륙의 알래스카로 넘어갔고,
이후 점점 아래쪽으로 이동하여 남아메리카 안데스산맥을 지나 파타고니아 끝까지 이동하면서 정착해 아메리카 원주민이 되었다.
오래전에 러시아 하바롭스크의 자연사박물관에서 과거 러시아 동북지방 일대 원주민들의 사진과 생활상을 재현한 물건들과 거주형태등을 본 적이 있는데, 이들은 우리와 비슷한 황인종 집단이었다.
약 2만년 전후 베링해협을 건넌 사람들은 아마도 러시아의 북동지역 사람들 특히 오늘날 러시아 사하공화국과 그 부근의 인류일 가능성이 높다.
사하공화국은 현재는 원주민 황인종과 새로 진입한 것으로 추정되는 러시아인들로 인구가 구성되어 있는데, 스타노보이산맥 위 베르호얀스크산맥 동서지역인데, 오늘날 전 세계의 집단 거주지역 중 가장 추운 온도를 기록한 오미야콘을 비롯해 극한의 추운 지역이다.
이런 극한 지역이라 생활에 적정한 지역을 찾아서 빙하기에 연결된 근처의 베링해협을 건너 러시아에서 아메리카로 이동하지 않았을까..
들소를 쫒아 이동 생활하는 특정 인디언들의 생활
초원에서 생활하는 부족들의 집, 티피
사는 지역의 기후에 따른 다양한 주거 형태
북극 사람들에게 동물은 매우 중요하다. 바다 동물로 만든 옷을 입고 카약을 타고 나가 사냥을 한다.
의례용 외투, 전투복, 일상복(왼쪽부터)
존경의 상징인 독수리 깃털머리 장식. 부족 중에서도 존경받는 사람들만 착용
다양한 축제의 모습
인디언의 생활 모습 그림들
인디언 원주민들에게 자연은 소유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었지만,
북미 이주민들에게 북미 대륙은 기회이자 풍요의 땅이었다.
1492년 콜럼버스의 상륙이후 영국에서는 1607년 버지니아 첫 이주, 1620년 청교도 북미 이주등이 있었고,
후에 독일인들의 이주와 아일랜드 대 기근으로 인한 아일랜드인들의 대규모 이주도 있었다.
처음에 원주민 인디언과 이주민들 사이에는 큰 대립이 없었는데 유럽인들로부터의 전염병에 면역력이 없는 인디언들은 쉽게 감염되어 많은 인구가 죽었다.
그리고 유럽의 북미 이주민들은 최초의 동부 해안 거주에서 미국의 독립이후 영토를 계속 남쪽과 서쪽으로 확장해갔고,
골드러시이후에는 대규모 인구가 서부로 몰려들면서 원주민 인디언들과 거센 충돌이 일어났다.
수많은 학살이 이뤄졌고 인디언들에게 일정 지역으로의 이주를 강요했다
골드러쉬로 서부로 달려가는 모습
서부로 이동하는 마차들
인디언과 이주민의 전투 장면
광산
어떻게 하늘과 땅을 사고 팔 수 있는가?
시애틀 족장의 말.
1500년대 스페인과 포르투칼의 점령 시기 지도
유럽을 벗어난 새로운 세상으로의 탐험은 1400년대 초 포루투칼 엔리케 왕자가 가장 먼저였고,
바로 이어 1492년 스페인이 그라나다의 정복으로 이베리아반도에서의 이슬람의 최종적 축출, 즉 '레콘키스타' 직후 이사벨 1세의 콜롬버스의 항해 지원으로 경쟁적 참여가 시작되었다.
포루투칼은 향료등의 무역, 즉 상업적 목적이었으나 스페인은 달랐다.
그들은 점령과 착취, 식민지 경영이 목적이었다.
1511년 에르난 코르테스가 쿠바를 점령, 군대를 상주시킨 후 1519년 멕시코시티의 외항인 베라크루스로 함대와 함포, 660명의 군대를 보내 우수한 화력을 바탕으로 마야문명을 이은 아즈텍문명의 4만명 원주민 군대를 이기고 점령, 학살과 강탈, 착취를 시작했다.
그리고 10세기이후 안데스 고원지대에서 전성기였던 잉카 제국이 양분되어 내전을 치르던 시기인 1931년 프란시스코 피사로가 180명을 이끌고 쿠스코에 상륙하여 에콰도르파에게 강력한 무기를 가지고 지원 의사를 보이는척 하다가 결국 원주민들을 공격하였다.
아메리카의 발견이후 스페인의 탐험가를 자처하는 이들이 신세계로 건너왔는데,
이들은 주로 건달이었고 황금의 땅 엘도라도를 찾겠다는 꿈을 갖고 있었고 이들에게 남미 원주민들은 짓밟혀지게 되었다.
북미 인디언처럼 남미 인디언 원주민들은 구 세계 인간들이 가지고 온 새로운 질병에 면역력이 없어 전염병에 대규모로 죽어갔다.
특히 천연두와 홍역, 발진티푸스가 큰 피해를 주었고,
황열병과 말라리아 같은 모기에 의해 매개되는 치명적 질병들은 중미와 남미의 각 지방을 거의 공동화시켰다.
원주민의 인구는 급격히 감소되었다. 남미의 스페인 제국은 1500년에 약 5천만에서 1650년에 약 400만으로 감소해 유럽인의 지배에 맞서려는 원주민의 저항을 무력화시켰다. 1650년경에 인구 감소는 멈췄는데 인디언 원주민들이 면역력을 갖게 되면서 전염병이 서서히 풍토병으로 변했다.
이후 멕시코와 일부 지역은 인구가 급증했다.
그리고 잉카문명은 철저히 파괴되었고, 카톨릭은 강제되었으며 스페인으로부터 넘어온 신부와 관리, 전문직, 상인등 다양한 사람들과 정치 모리배들까지 활개를 치면서 착취당했고,
아프리카 서부와 남부로부터 잡혀온 노예들로 대 농장이 운영되었다.
저항하는 사람들은 학살되었고, 원주민과의 결혼외에 강간이 많이 자행되어 오늘날 새로운 혼혈 인종 '메스티조'가 남미 인구 중 가장 다수를 차지하게 되었다.
유럽에는 남미로부터 다량의 금, 은이 유럽으로 유입되었고,
유럽의 주변 국가였던 스페인은 늘어난 부를 바탕으로 강대국으로 부상하여 오스만제국을 지중해에서 격파하면서 무적함대의 명성을 날리기도 한다.
그리고 그동안 종종 기근과 영양 결핍의 문제로부터 고통받던 구 세계의 빈민들에게
남미로부터 새로운 영양가 높은 작물들, 감자 고구마 토마토 호박 강낭콩 면화등과 초콜릿 담배등이 전파되어 식량공급이 증대했고 따라서 유럽외에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인구 증가의 계기가 되었다.
그런데 오늘날 중남미 사회의 발전의 침체와 대규모 빈민, 극도의 부의 편중 현상은 이 시기부터의 대농장 소유의 지주, 상업 산업자본가, 관료들의 독점적 지배구조에서 비롯됐다.
이들 지배계급은 오늘날 해외 선진국의 대규모 독점자본과의 결탁으로
이마뉴엘 왈러슈타인이 언급한 '근대 세계경제체제'의 하위 구조에 편입되어 원자재 수출, 수출용 특용작물의 재배,
아마존 열대우림의 파괴와 그 지역 원주민 축출 및 목초지 조성, 산업화, 수입과정에서 이익을 독점하는 '지배자 동맹' 구조를 형성한다.
그리고 그러한 구조는 인구의 대다수인 농민을 배제시키면서 일자리를 찾아 도시로 나오는 '대규모 빈민'과 갱단등의 범죄집단을 양산하는 것이다.
인디언 아버지와 아들.
미국 정부는 인디언을 미국 사회에 동화시키려는 정책을 펼쳤고, 그래서 인디언들은 정체성 혼란을 겪었다.
북미에서는 유럽인의 가치와 법, 사고를 강제한다.
캐나다 여행때 밴쿠버섬의 숲속 안에 몰아넣은 보호구역을 본 적이 있는데,
외딴 곳 특정 지역으로 인디언 보호구역이라는 이름하에 이주하게 하고,
그들 중 상당수는 술과 마약에 빠지는 상황으로 방치가 (심지어) 조장되는 상황이 된다.
존 웨인.
서부를 배경으로 한 영화의 우상이었지만, 원주민 인디언에 대한 인종차별주의 시각을 가지고 있었다.
1971년에 "나는 이 위대한 나라를 그들로부터 빼앗은 것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많은 사람에게 새로운 땅이 필요했고, 원주민들은 그 땅을 그들만 가지려 했어요"
원주민 출신 작가들의 작품
카지노가 그들의 땅에 세워지면서 온갖 타락과 병폐가 생긴 점을 묘사한다
원주민 화가가 그린
소총을 들고 앉아 있는 인디언
첫댓글 https://youtu.be/svyeG5up7eg?si=17Emi-p80w8zdvfR
PLAY
치부를 숨기려하겠지요.
인디언 레저베이션을 떠올리며
읽었는데
아래에 곡을 올리셨네요.
오랜만에 들어봅니다.
네. 인디언 레저베이션은 인디언의 한을 표현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