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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는 아기가 태어나면 아기가 원하는대로 다 들어줄 수 없다고 가르친다 시간을 정하여 우유를 먹이고 시간이 되면 재우고 손가락을 빨면 못하게 하고 때가 되면 우유를 끊고 음식을 먹이기 시작하고 시키는 대로 하지 않으면 벌도 준다
자유로운 미국도 이러니 엄격한 일본이야 오죽 심하랴 했으나 실상은 그렇치 않다
일본의 자유허락 곡선은 미국과 정반대다 미국은 아이를 통제하고 성인이 되면 자율을 인정하고 노인이 되면 다시 통제한다
그러나 일본은 어린 아이와 노인에게 최대한 자유를 주고 성인은 최소한의 자유만 준다 미국의 성인은 선택과 활동을 개인 판단에 맡기지만 일본 성인은 온갖 규율과 속박에 정신수양까지 해야 한다
미국도 어린 아이들을 사랑하지만 일본은 또하나의 더 큰 이유가 있다 바로 혈통잇기이다
일본에서 대를 잇지 못한다는 것은 인생의 실패를 의미한다 죽은 뒤에 제사도 못받고 가문의 명예와 재산을 지키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아이를 낳지 못하는 여자는 대단히 불안정한 위치에 놓이게 된다 결국 남자는 밖에서 양자를 들이고 여자는 평생 고개를 숙이며 산다
아기를 낳을 때는 은밀한 장소에서 고통을 참으며 조용히 낳는다 막 태어난 갓난 아기는 새로 장만한 침구에서 홀로 자게 한다 손발을 스스로 움직일 정도로 어느 정도 크면 엄마 곁에 재운다
태어난지 30일 정도 되면 신사에 데려가서 참배하고 바깥구경을 시키기 시작한다 등에 업고 다니며 동네어른들에게 인사도 시키고 볼 일도 본다 먼저 태어난 형제들이 대신 업기도 한다
큰 기저귀를 채우고 수시로 용변 가리는 법을 가르치고 걷기 훈련도 일찍 시킨다 말을 가르칠 때 높임말도 같이 가르치고 어른에게 머리 숙여 인사하는 법도 가르친다 이즈음 되면 아이들이 뛰어 다니며 장난이 심해진다 어지간하면 내버려둔다 넘어지면 스스로 일어나게 한다 문지방과 다다미틈은 밟지 못하게 한다
늦은 나이까지 또는 동생이 태어날 때까지 젖을 먹게 한다 모성애의 즐거움이기도 하고 별다른 이유식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젖을 뗄 때나 어리광을 부릴 때 '너는 이제 애기가 아니란다' '너는 여자애가 아니란다' '옆집 아이는 이러지 않는다' '엄마는 저 아이가 더 좋아' '엄마는 너보다 아빠가 더 좋아' '누가 이 말 안듣는 아이 데려가세요' ... 라면서 위협을 준다 이러한 놀리거나 밀쳐내거나 무서움을 주는 대화들이 나중 성인이 되어서도 잠재의식에 기억된다
집안의 어른들은 자연스럽게 서열을 가르친다 사내아이는 무척 관대한 대우를 받는다 원하는 걸 들어주고 실수해도 웃고 심지어 엄마나 할머니에게 난폭하게 화를 내거나 폭행을 해도 그냥 받아준다 사내아이는 남자고 엄마나 할머니는 여자이기 때문이다
같은 남자인 아버지에게는 조심하고 경어를 쓴다 아버지는 자녀 교육에 간섭하지 않는다 가끔 노려보거나 짧게 훈계만 한다 할머니 할아버지는 어리광을 다 받아준다 버릇이 나빠진다고 며느리는 불만이 많으나 결국 순종한다 동생이 태어나면 그동안의 특권을 양보해야 한다 동생과 다툼이 생겨도 형이 양보하게 한다
아이를 가르칠 때 과자를 계속 주면서 달래고 절에 데려가서 상징적인 기도를 하게 한다 아주 심할 경우 뜨거운 쑥뜸을 한다 나쁜 버릇을 고치는 민간요법이라고 하나 아이에게는 고통스런 기억만 준다
앉는 방법도 가르치고 잠자는 자세도 가르친다 남자아이는 아무렇게나 자도 되지만 여자아이는 손발을 반듯하게 모으고 몸을 옆으로 구부려 품위와 자제력이 있게 자야 한다 특이하게도 일본 여인은 목욕하는 알몸을 보이는 것은 부끄럽게 여기지 않으나 잠자는 모습을 보이는 건 몹시 부끄럽게 생각한다
어떤 행동을 가르칠 때는 직접 손을 잡아 가르친다 젓가락 쓰는 법 활 쏘는 법 절하는 법 아기 업는 법 서예하는 법 등등 직접 어린 아이의 손을 잡고 그대로 따라하도록 한다
길에서는 어린 아이들이 무리지어 다니며 말썽도 부리면서 성적인 장난도 치고 욕도 하고 자유롭게 논다 어른들은 그럴 나이라면서 전혀 제지하지 않는다 친구 중에서도 같은 나이인 동갑에 대한 우정이 유독 깊다
학교에 들어가서 2-3년이 지나면 조금씩 통제가 시작된다 은혜에 보답하는 규칙도 배우고 산만한 말썽꾼은 별도로 교육도 받는다 계속 말썽을 부리면 '따돌림'도 받는다 긴신(謹愼)이라 하여 학교에 가지 못하고 반성문을 쓰고 친구들 앞에서 사과도 해야 한다 가족들에게도 야단 맞으면서 문밖으로 쫒겨나기도 한다
서양학자들은 이 모습을 특이하게 본다 대부분 문화권에서는 다른 조직의 공격을 받으면 일치단결하여 방어를 하나 일본은 정반대이다 다른 조직과 같이 징벌을 하고 다른 조직이 인정하여만 비로소 같이 인정한다 세계 유례없을 정도로 일본 사회는 외부세계의 인정이 중요하다
여자아이는 집안에서는 남자형제보다 제약을 많이 받지만 밖에서는 남자아이들과 똑같이 행동하면서 어울린다 10세 정도 되면 학급도 나누어지고 남자아이 대신 여자아이들끼리만 어울리기 시작한다 그전의 활달함 대신 조용하게 지낸다 이제부터 평생 자중에 자중만 거듭하며 일생을 보내게 된다
남자아이들은 자중과 함께 각종 기무와 기리를 배운다 이름에 대한 기리도 이때 배운다 처음으로 경쟁하는 입학시험을 거쳐 상급학교에 진학한다 상급생에게 무수한 괴롭힘(いじめ)을 당한다
원한을 품은 하급생은 당장 대들지는 못하지만 나중 복수하기 위하여 깊이 기억한다 무술을 익혀 졸업한 후 거리에서 폭행하거나 가족 연고를 이용하여 회사에서 해고를 시키기도 한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무언가 아직 할 일이 남은 느낌'을 갖게 된다 이 느낌이 바로 일본인들이 가지는 복수의 핵심이다
군대에서도 같은 현상이 생긴다 고참병이 신참병을 괴롭힌다 학교보다 훨씬 심하다 장교는 모른 척한다 일본 군대 법도의 제1조는 '장교에게 일러바치는 것은 자신의 체면을 잃는 것이다' 라고 한다 모든 일은 병사들끼리 해결하게 하고 그것이 '단련'이라고 한다 신참병은 고참이 되면 새로 온 신참병을 괴롭히며 단련시킨다
이들이 군대를 제대하면 아주 저돌적인 군국주의자가 된다 충성교육을 받아서가 아니라 자존심을 건드리는 굴욕적인 괴롭힘을 많이 당한 경험을 가지고 나오기 때문이다 나중 비슷한 상황을 다시 만나면 짐승처럼 변한다
학교나 군대에서의 괴롭힘이 갑자기 생긴 것은 아니고 일본 사회에서 예전부터 내려오던 조소(嘲笑)와 모욕의 습관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름에 대한 기리 때문에 이런 괴롭힘에서 느끼는 일본인의 고통은 미국인이 느끼는 고통보다 훨씬 크다
유럽의 도제 제도에서도 후배를 괴롭히는 사례는 자주 볼 수 있다 그러나 일본에는 특이한 점이 있다 괴롭힘을 당한 일본인 후배는 새로 온 후배를 연쇄적으로 괴롭히기도 하지만 나중에 자기를 괴롭혔던 선배에게 복수를 한다는 점이다
일본은 이제 달라져야 한다 학교나 군대에서 선배들이 후배에게 - 개처럼 꼬리를 흔들게 하고 매미 흉내를 내게 하고 식사시간에 물구나무서기를 시키고 등 - 괴롭히고 또 묵인하는 악습을 버려야 한다 대신 애교심을 강조하고 동창을 사랑하는 방법을 가르쳐야 한다
여자는 이름에 대한 기리를 배우지 않는다 군대도 가지 않고 선배의 괴롭힘도 비교적 적다 일생을 사는 동안 남자보다 변화가 적다 그래서 남자에게 양보를 많이 하여야 한다고 교육받는다 여자에게 필요한 처세술은 주장할 권리가 없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여자는 엄마와 할머니를 통해서 배운다 14세에 약혼을 한 어떤 여인은 어머니의 가르침에 따라 한번도 얼굴을 본 적이 없는 미래의 남편을 위하여 매일 남편의 식사를 준비하고 마치 같이 식사하는 듯 밥상에 같이 차리고 물론 남편 밥을 먼저 챙긴다 옆에 있는 어머니와 할머니는 보이지도 않는 미래의 사위에게 말도 걸곤 했다고 회상한다 그러면서 자기도 점점 남편을 존경하게 되고 스스로도 조심하게 되었다고 기억한다
아이들이 어릴 때 이미 부모들이 결혼 상대방을 결정한다 다른 남자와의 혼전 임신이 있어도 부모들은 별로 개의치 않고 결혼을 정한다 여자에게 친절한 남자는 나쁜 남자라 생각한다 좋은 남자는 무뚝뚝해야 한다 성교육은 게이샤나 창부에게 배운다 결혼하고도 유흥업소를 계속 찾는 이유 중의 하나다
여자는 오로지 정숙하여야 한다 외간남자를 만나려면 남들 눈에 띄지않게 만나야 한다 일본에서는 신경과민적인 여자를 히스테리라 부른다 아내에게 성실하지 못한 남편 때문에 성적인 불만을 가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시골부터 상류층까지 대부분 여자들은 여성용 자위도구를 하나씩 다 가지고 있을 정도이다 아이를 낳고 나면 성적인 농담과 행동을 스스럼없이 한다 일본 여성은 특히 신분이 낮을수록 성적인 자유를 누린다 성적으로 적극적인 여자가 많아 정숙함과 음탕함을 자유로이 넘나든다
남자는 술 취하는 걸 좋아하고 술좌석에서는 낯선 사람과도 잘 어울린다 어릴 때 자유롭게 놀던 기억이 있어 그 시절로 돌아가는 것이라 한다 자칫 충동이 지나치면 과도한 행동으로 번지기도 한다
행동이 자유로운 유년시절에는 어머니로부터 얼마나 인정받는가에 예민하다 행동에 구속을 받는 나이가 되면 세상사람들의 인정을 받아야 한다 그러지 못할 경우에는 버림받는 벌을 받는다 말을 안들으면 밖에 내다버리겠다는 부모의 협박도 그렇고 친한 친구들로부터 따돌림 받는 것은 육체적인 폭력보다 더 무서운 것이다
일본인들은 투정을 마음껏 부릴 수 있었던 어린 시절의 기억과 행동의 제약을 엄격히 받는 성인 시절을 거치면서 이중적 행동을 자주 보인다
연애를 하다가 갑자기 부모의 뜻에 따른 결혼을 한다든지 향락에 빠져있다가 갑자기 엄숙한 기무를 수행한다든지 겁많은 모습을 보이다가 갑자기 공격적으로 바뀐다든지 상사에게 순종하다가 갑자기 통제를 벗어난다든지 여러가지 경우를 쉽게 볼 수 있다
이중적인 행동은 항상 스스로 긴장을 하게 된다 이런 긴장에서 벗어나기 위해 일부러 기계적으로 짜여진 일상만 반복한다든지 또는 스스로 감정이 없는 듯 행동하기도 한다 일본인은 거울을 자주 들여다 보면서 부끄러움 없는 자아를 계속 확인한다
정해진 틀에서 생활해야 한다는 것은 그 틀에서 벗어날까봐 항상 긴장하고 걱정한다는 뜻을 포함한다 그러나 정해진 규율대로 행동했는데도 처리할 수 없는 낯선 상황에 부닥치면 큰 공포에 빠진다 따돌림과 비판을 지나치게 염려하는 일본인들이 흔히 만나기 쉬운 위험이다
여가시간도 즐긴다 예로부터 천진한 즐거움 - 꽃이나 달구경 국화 첫눈 벌레소리 정원가꾸기 꽃꽂이 다도 등을 즐기기로 유명하다 이런 즐거움은 불안감이나 긴장에 쫓기는 모습과 다르다
그러나 일본인은 스스로에게 너무 많은 제약을 건다 세상사람에게 따돌림이나 배척을 받을까봐 본인이 하고싶은 것을 미리 포기한다 선이냐 악이냐가 아니라 기대에 부응하는냐 못하느냐가 중요하다 주변의 기대치에 성실한 사람들이 나라의 명예를 지킨다 그러나 이런 긴장감이 지나치면 일본을 동양의 지도자 또는 세계의 강국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엉뚱한 꿈을 꾸게 된다
어떤 일본인이 회상한다
'영어를 배우기 위해 도쿄의 미션스쿨에 입학했는데 학교에서 개인 정원을 나누어 주면서 무었이든 원하는 걸 심으라는 안내를 듣고 너무나 낯선 희열감을 느꼈다 꽃을 심는 다른 학생과 달리 나는 감자를 심었고 그 순간 하늘을 날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런 느낌이 있다는 것이 놀라웠고 여지껏 자라면서 한번도 말썽을 부리거나 주변의 손가락질 받거나 가문의 명예를 더럽히거나 남에게 피해를 준 적 없이 살아온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자유로움을 느꼈다'
그녀가 기억하는 일본식 정원은 큼직한 바윗돌을 옮겨와 주변과 잘 어울리게 위치를 잡고 매일아침 소나무 가지를 손질하고 소나무 주변을 빗자루로 깨끗하게 쓸어낸 후 골라온 솔잎을 다시 보기좋게 깔아주는 모습이다 국화 전시회에서는 꽃잎을 정리하고 철사 고리를 끼워 보기좋게 세운다
이렇게 보기좋게 만들어진 정원만 보다가 처음으로 자기 마음대로 감자를 심는 자유를 얻은 그녀의 흥분은 충분히 이해가 된다
일본은 이제 개인자유를 인정하는 민주사회로 가야 한다 새로운 문화와 새로운 도덕의 도전을 받게 될 것이다 이를 바꾼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을 것이고 어쩌면 안바뀔 수도 있다 그러나 미국에 사는 일본인2세들은 이미 부모세대와 전혀 다르게 모든게 바뀌었다 일본도 가능성이 있다 국화꽃에 철사 고리를 걸지 않아도 국화꽃이 아름답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일본인에게 칼은 큰 의미를 가진다 이제 일본은 중요한 과도기에 들어섰다 일본인의 표현대로 칼은 칼을 쓰는 사람이 깨끗하게 닦아야 한다 일본은 자기들의 잘못된 행위와 그 결과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들 표현대로 평화시에도 칼을 보존할 수 있다
참고 : <국화와 칼> 요약 2020.04.06
다음은 마지막 장인 제 13장: 패전 후의 일본인 The Japanese Since VJ-Day 를 살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