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석희’의 『장면들』
1. 20년 가깝게 대한민국 최고의 언론인으로 인정되었던 손석희가 JTBC 시대를 정리하는 에세이를 2021년 후반기에 출간했다. 책의 출간과 함께 손석희는 사장직에서 물러나 순회 특파원으로 현장에 복귀했다. 기형적인 종편방송의 하나로 출발한 JBTC는 과감하게 손석희에게 뉴스에 대한 전권을 부여했으며, 손석희는 편집, 인사, 재정에 대한 독립적인 권한을 행사하며 새로운 뉴스의 영역을 시도했고 확장했으며 성취했다. 최근 출간된 『장면들』은 그가 목표로 했던 저널리즘의 본질을 실현시키기 위한 JTBC의 뉴스 방송의 핵심적 요소와 치열한 실천이 담겨 있다.
2. 손석희의 JTBC 행은 당시 수많은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MBC에서 <100분 토론>과 <시선집중>을 통해 오랫동안 진보적이면서도 독립적인 견해를 보여주었던 손석희가 보수적인 JTBC로 갈 때 사람들은 그의 진의를 왜곡했으며, 미래를 불신했다. 하지만 손석희가 MBC를 퇴직할 때는 이명박, 박근혜의 보수 정부에 의해 손석희의 입지는 축소되었고, 자유로운 방송 환경이 위축되던 시기였다. 손석희는 당시 MBC 간부에 의한 노골적인 개입을 증언하고 있다. JTBC 행은 저널리즘의 핵심을 지속하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던 것이다. 그 후 이루어진 손석희의 방송 실험은 분명 한국 민주주의의 언론적 영역을 발전시킨 획기적인 도전이었다.
3. JTBC의 첫 번째 시험대는 삼성그룹의 노조 무력화 공작에 대한 보도였다. JTBC와 삼성은 비록 독립적인 기업임에도, 서로의 인척 관계로 인해 같은 세력으로 인정되고 있는 집단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삼성에 대한 객관적인 보도는 JTBC가 반드시 넘어야 할 검증의 벽이었다. JTBC는 어떤 방송보다도 치열하고 공정한 방식으로 주변의 의심어린 시선을 극복할 수 있었다. 그때 손석희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방송의 원칙은 저널리즘에서 중시한 ‘어젠다 세팅’이라는 의제를 선정하고 주목받는 것을 넘어, ‘어젠다 키핑’이라는 스스로 창안한 개념으로 주요 문제에 대한 지속적인 취재와 보도를 유지하는 것이었다. “미디어가 지속적으로 화두를 던지면 시청자들은 이를 서로 주고 받으면서 네트워킹을 하게 된다. 모든 것이 빨리 바뀐다고 해도 저널리즘이 미래적 가치로 키켜야 할 것이 어젠다 키핑이다.” 진실은 하루 아침에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의 사실과 논리를 통해 밝혀지기 때문이다.
4. 손석희의 뚝심있는 ‘어젠다 키핑’과 사실과 공정의 보도 원칙은 2014년에 발생한 세월호 침몰과 2016년과 2017년에 걸친 최순실 테블릿과 박근혜 탄핵에 이르는 시간 동안 절정에 이르렀다. 세월호 보도 때, 태만과 거짓에 의해 ‘기레기’로 비난받았던 다른 언론과 다르게 JTBC는 세월호 유족들의 신뢰를 받은 유일한 방송이 되었으며, 독보적인 객관성과 지속성을 통해 '세월호 정국‘에 또다른 중심으로 역할을 다했다. 이러한 JTBC에 대한 신뢰는 최순실의 테블릿 취득으로 이어졌고 탄핵정국의 ’스모킹건‘으로 작동했다. 결국 전 국민의 ’촛불시위‘를 이끌어내었고 2017년 박근혜는 헌법재판소로부터 탄핵을 받아 대통령에서 퇴직해야만 했다.
5. 어젠다 키핑의 가장 핵심적인 사례는 ‘세월호 침몰’이었다. 세월호 사건이 일어난 후 점차 식어가는 관심 속에서도 JTBC는 결코 보도를 멈추지 않았다. 그 사이에 KBS 노조 위원장이 JTBC 뉴스에 나와 인터뷰하는 초유의 일도 발생하기도 하였다. 오랜 기간 JTBC는 세월호 유가족들의 가장 오랜 동지로 자리를 지켰다. 진도 팽목항에서 그리고 세월호 인양 후 목포 신항에서 모두 521일 간 JTBC는 세월호와 함께 한 것이다. 세월호와 대통령 탄핵 국면에서 JTBC는 모든 언론을 압도하는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으며, 손석희는 최고의 언론인으로 존중받았다. 규모적으로 작은 종편 방송이 지상파 방송을 능가한 것이다.
6. 2017년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면서 많은 변화가 생겨났다. 그것은 지속적으로 변화하고 있었지만 박근혜 탄핵으로 더욱 촉발된 ‘개인 방송’, 특히 유튜브의 확산이었다. 수많은 기성 언론이 공격받았고 언론의 신뢰는 ‘기레기’라는 말처럼 추락하였다. 사람들은 사실과 진실에 대한 개념을 점차 개인적인 의미로 받아들이기 시작하였다. 광장은 다른 목소리가 넘쳐 났고, 거리의 목소리는 디지털 방송의 확대로 더욱 거칠어져 갔다. 사람들은 이제 ‘기자다움’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었고, ‘내편다움’을 원했다. 분명 변질되어 버린 언론 환경과 가치의 개인화와 파편화는 JBTC의 위상까지 무너뜨리고 말았다.
7. 절대적 지지를 받고 있던 JTBC의 몰락의 징후가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미투’에 대한 보도때부터 시작되었다. 서지현 검사, 안희정의 비서였던 김지은의 미투 사건은 이제 진실의 차원이 아닌 논란의 영역으로 변모되었다. JTBC에 대한 불신과 비난이 더욱 커지게 된 것은 ‘조국정국’이었다. ‘검찰개혁’으로 부임한 조국 장관의 사적인 문제와 가족에 대한 검찰의 조사와 관련된 논란은 JTBC에 대한 조국 지지자들의 비난으로까지 확대되었다. JTBC가 개혁의 상징인 조국을 보호하지 못하고 기계적인 중립을 통해 검찰의 논리를 옹호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실과 공정 그리고 균형과 품위’라는 보도 원칙을 지속하기 위한 노력은 진영논리에 의해 무산되었다. 우리 편이 아니면 적이라는 극단적인 사고가 지배하였던 것이다. 이때 많은 JTBC 시청자들이 MBC 뉴스로 옮겼다고 한다. 듣고싶은 뉴스를 듣기 위해.
8. 손석희는 미투와 조국정국의 혼란 그리고 JTBC에 대한 비난을 접하면서 복잡한 심경에 도달할 수밖에 없었다. 언론인이 어떤 진영의 논리를 대표하는 나팔수는 아니기 때문이다. “정치·사회적으로 오랜 억압구조 혹은 모순의 구조 속에서 일어난 현상은 정파적 이해관계를 떠나서 다룰 수 있는 것이 옳은 저널리즘이라면 우리는 최선을 다해 그렇게 해야 한다는 것, 만일 그런 저널리즘을 막는 세력이 있다는 이를 돌파하기 위한 운동을 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진실을 추구하기 점차 어려워지는 시대에 그는 묻고 있는 것이다. “사실과 진실을 누구에 의해 평가받고 증명돼야 하는가?”
9. JTBC의 뉴스 시청률은 점차 하락되었으며, 경영진에서도 앵커 교체를 논의하기 시작하였다. 손석희는 더 높은 직위에 올랐지만, 그것은 세속의 평처럼 그를 교체하기 위한 포석어었는지 모른다. 비록 손석희는 부정하고 있지만 말이다. 하여튼 내부적으로 손석희는 2020년 지방선거를 끝으로 물러나는 것으로 합의를 보았다. 하지만 이별을 결정하고 진행되는 연애처럼 그것은 고통의 시간임에 분명했다. 결국 2020.1월 신년 방송을 끝으로 손석희는 앵커 자리에서 물러났다. 그의 말처럼 자연스런 세대교체였으며, 시간에 따른 변화였을 것이다. 하지만 JTBC의 영광과 몰락의 순간순간을 지켜본 사람들에게는 그것은 분명 씁쓸한 인상을 주던 사건이었다.
10. 손석희는 글 속에서 자신의 추구했던 언론의 본질과 원칙에 대한 생각 그리고 JTBC 뉴스의 꼭지를 만들고 구성했던 뒷이야기를 생생하게 들려준다. 그 자체로 새롭고 흥미로운 이야기였다. 같은 그룹이었지만 논조에서는 상반되었던 ‘중앙일보’에 대해서는 이렇게 말한다. “JTBC의 정체성은 ‘합리적 진보’다. 중앙일보의 그것은 ‘열린 보수’다. 그 두가지의 정체성이 공유하는 것은 ‘이성과 합리’일 것이다.” 그는 글을 쓰면서 자신이 직접 경험했던 것만을 적는다고 했다. 기자들의 실명을 공개하면서도 그와 관련된 주요한 역할에만 한정했다. 그럼에도 그와함께 고민했고 고생했던 동료와 후배에 대한 애정은 감추지 않았다. 비록 움추려들었지만 새로운 언론을 만들어낼 것에 대한 믿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11. 2010년대 한국 사회의 중요한 동력으로 작용했었던 손석희의 내면의 목소리를 직접 들을 수 있어 반가웠다. 그는 사건에 대한 객관적 정보에 집중했다. 사건에 대한 감정적, 개인적 소회는 극히 제한했다. 하지만 담담하게 증언하는 그의 말 속에서 한 시대의 거인의 퇴보를 발견하는 것은 아쉬운 일이었다. 언론의 본질을 지키기 위하여 추구했던 노력이 현재의 파당적 분위기 속에서 퇴색되었다는 점은 분명 아쉽다. 개인적으로도 조국 사태 때 JTBC에 대한 비난을 이해할 수 없었다. 손석희의 이야기를 통해 그때의 생각이 어긋나지 않았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12. 사람들은 이제 사실과 진리를 원하지 않는다. 오로지 신념과 쾌락의 정서를 만족시켜주는 대상만을 원할 뿐이다. 손석희가 추구했던 ‘어젠다 키핑’은 지루함과 피곤함의 대상일 뿐이다. 손석희는 언론의 미래를 긍정적으로 결론내리지만 어쩌면 철학자의 알랭 드 보통의 다음과 같은 말에 대한 인용과 같이, 언론의 위기에 더 큰 방점이 있을지 모른다. “민주정치의 진정한 적은 다름아닌 뉴스에 대한 적극적인 검열이라고 여기기 쉽다. 하지만 진정한 적은 무작위의, 쓸모없는 짧은 뉴스들의 홍수다.” 그러나 이제 현직에서 물러난 그가 던질 수 있는 것은 사족을 통한 고백일 뿐이다. “방식이 달라도 가는 길의 방향은 같기를 소망한다. 그렇게 한다면 방식이 바뀌는 것이야 물러나 있는 내가 어쩔 수 없는 것이다. (....) ‘시대는 변하는 것이니’”
첫댓글 - 어려운 시대 시민들의 생각의 틀을 바로잡을 수 해주었던 손석희 앵커, 뉴스를 볼 때마다 기억난다. 혼탁한 세상에서 믿을 수 있는 뉴스를 접할 수 있었다는 것은 이 시대의 행운이었다. 뉴스다운 뉴스, 비평다운 비평, 정의다운 정의를 생각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