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
Affection 情
정(情)은 외부의 어떤 것에 의하여 생기는 느낌이나 오랫동안 쌓인 마음의 끌림이다. 마음의 느낌은 심정(心情)이고 인간의 감정은 인정(人情)이며 본래의 성과 정은 성정(性情)이다. 정은 마음(心)과 맑을 청(靑)이 결합한 회의문자다. 순수하고 깨끗한 마음에서 정이 우러나고, 우러난 정은 더 깊은 정을 끌어낸다. 그렇게 하여 펼친 정은 서정(抒情)이다. 원래 정은 성(性)과 같은 것이었으나 시간이 가면서 성은 태어날 때부터 가진 본성을 의미하는 것으로, 정은 바깥과 감응하면서 일어난 작용을 의미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영어의 정은 affection, feeling, emotion, attachment다. 라틴어에서 정은 affectus인데 아펙투스는 ‘영향을 받다(afficiō)’에 접미사 tus가 결합한 것이며, 그 의미는 어떤 것의 영향을 받아서 생긴 기분, 감정, 느낌이다. 그러니까 한자어와 서구어에서 모두 정은 외부 대상으로 인하여 일어난 내부의 감정이라는 뜻이다.
정의 현대적 개념은 감정이다. 감정(感情)은 인간의 내적 외적 자극으로 인하여 마음이 움직이는 것이고, 감정과 유사한 정서(情緖)는 단기간에 걸쳐 강하게 계속되는 감정이며, 정취(情趣)는 약하게 오래 계속되는 고상한 감정이다. 감정의 어원은 라틴어 ‘움직인다(ēmoveō)’의 과거분사인 ēmōtus다. 여기서 e는 ‘바깥’이고 mōtus는 ‘나온다’이므로 ‘안에서 바깥으로 나오는 느낌’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감정은 인간 마음이 외면으로 펼쳐지는 것이다. 마음이 움직이는 감정은 주관적이고, 감각기관이 감지하는 감각은 객관적이다. 주관적인 감정이 외면으로 표현되면 객관적인 것이 된다. 정은 주관적이고 본능적이므로 배우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발휘된다. 한자문화권에서 정은 (주관적 감정을 넘어서서) 마음의 외부 대상으로 인하여 생기는 모든 정서적 반응을 의미한다. 동양철학과 동양문화의 정은 마음이 움직이는 모든 것이다.
[예기(禮記)] <예운>에서는 ‘무엇이 정인가?’라고 묻고 ‘정은 기뻐하고 노하고 슬퍼하고 두려워하고 사랑하고 싫어하고 욕심내는(喜怒哀懼愛惡慾) 것이다. 이 일곱 가지는 배우지 않아도 능히 발휘된다(七子弗學而能)’라고 답했다. 맹자는 선한 성(性)은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으로 발현되고 선할 수도 있고 악할 수도 있는 정(情)은 희노애락애오욕(喜怒哀樂愛惡慾)으로 발현된다고 보았다. 반면 순자(荀子)는 정을 성의 질(質)로 보고, 성의 호오희노애락(好惡喜怒哀樂)이 발현된 것을 정으로 보았다. 한편 불교에서는 오욕칠정으로 인간의 욕망을 분류한다. 눈의 빛(色), 코의 냄새(香), 귀의 소리(聲), 혀의 맛(味), 몸의 느낌(觸)으로 인한 오욕이 재물욕(財物慾), 명예욕(名譽慾), 식욕(食慾), 수면욕(睡眠慾), 색욕(色慾)과 희노애락애오욕(喜怒哀樂愛惡慾)의 칠정으로 발현된다고 정리한다.
정은 송대의 성리학에서 새롭게 인식되었다. 장재, 주돈이, 정호, 정이, 주희에 의하면, 우주 자연의 원리인 이(理)는 성이고 운동의 기운인 기(氣)는 정이다. 성리학에서 이(理)는 선한 하늘로부터 품수한 것이므로 이 자체도 선하고 성도 선하다. 하지만 이는 원리이기 때문에 발현되지 않는 미발(未發)이다. 반면 동적인 기(氣)는 선할 수도 있고 악할 수도 있다. 기는 실제이기 때문에 언제나 발현된 상태의 이발(已發)이다. 이것은 무극/태극 – 음양 – 오행 – 만물의 생성원리 중 무극/태극은 이와 성이고 음양오행은 기와 정으로 보는 이기론에 근거하고 있다. 주희는 정이의 성즉리(性卽理)와 장재의 심통성정(心統性情)을 받아들여 성리학을 정립하면서 선한 본성은 기르고, 악할 수도 있는 정은 제어해야 한다고 말했다. 선하거나 악할 수 있는 심성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수양하고 실천하는 것이 성리학의 핵심이다.
성리학에서 보면, 인간의 심성 중 측은지심, 사양지심, 수오지심, 시비지심의 사단은 착한 본성의 발현이고 희노애락애오욕(喜怒哀樂愛惡慾)은 착할 수도 있고 악할 수도 있는 칠정의 발현이다. 선한 성은 본연지성이고 선악이 혼재한 정은 기질지성이다. 성리학에서는 정을 성에서 발현되는 것으로 보기도 하고, 심(心)의 체(體)는 성이고 심의 용(用)은 정으로 보기도 한다. 여기서 심통성정(心統性情) 이론이 대두했다. 심통성정은 마음이 성과 정을 총괄한다는 장재와 주희의 이론이다. 성정의 처소인 마음의 미발(未發)이 성이고 마음의 이발(已發)이 정이다. 정이 강해져서 중정(中正)을 잃으면 욕심이 지나친다. 천리(天理)인 성을 존중하고 인욕(人欲)인 정을 억제하는 존천리멸인욕(存天理滅人欲)이 수양론의 핵심이다. 조선의 유학자들은 사단칠정, 수양론, 인물성동이론 등에서 성과 정의 관계를 깊이 연구했다.★(김승환)
*참고문헌 老子, 『道德經』.
*참조 <감정⦁정서>, <기>, <기[성리학]>, <미발⦁이발>, <사단칠정>, <성>, <성즉리>, <수양론>, <심>, <심성론>, <심즉리>, <심통성정[장재]>, <심통성정[주희]>, <심통성정[이황]>, <아펙투스[스피노자]>, <음양오행>, <이>, <이[성리학]>, <이[주희]>, <이기론[주희]>, <천리>, <태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