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소설 (14) 어릴 적 추석날 풍경
옛날 나 어릴 적엔 농경중심의사회라서 보리 고개를 지나면 풍성한 가을 특히 추석을 손꼽아 기다렸다 부모님이 일곱 남매 밥 먹이고 학교 보내랴 새벽달보고 들에 나가 허리한번 제대로 못 펴고 여름내 가꾸어놓은 벼가 황금빛 벌판을 수놓은 결실의 계절 가을이 온 것이다 마당에는 빨간 고추를 가득 말리고 엄마는 아직 덜 익은 풋콩을 꺾어다까서 두부를 만든다. 녹두전도부치고 송편도 언니들과 만든다. 추석 전전날 음력13일은 내 생일이다 이날은 동네에서 소를 한 마리 공동구입해 잡아서 집집마다 싸게 필요한 만큼씩 사간다 우리 아버지는 국물을 좋아해서 사골이나 소족과 고기도 넉넉히 사온다 내 생일 저녁부터 소고기국을 끓여 잘 먹는다“순이 생일이 제일 좋은날이여! 이렇게 소고기도 푸짐하게 먹으니말여” 재수 좋은 해에는
인조견 분홍색 한복도 한 벌 얻어 입는 넷째 딸이다 추석날은 큰할아버지 댁에 제사를 지내러 올라간다.
마당에는 고목인 대추나무가 있는 우리 집 보다 몇 배 넓은 안채와 할아버지가 주무시는 사랑채가 있었다
넓은 마당 위 가꾼 우물로 가는 길옆에는 옛 조상들이 쓰던 연자방아( 커다란 맷돌처럼 생겨 윗돌아래에 밑돌을 놓고 그 사이에 벼를 넣어 찧던 방아는 말이 끌어 방아를 찧었다고 한다) 맷돌 밑돌이 묻혀있고 그 옆 언덕엔 돌아가신 사촌오빠가 심었다는 희귀한 꽃들과 목련나무 한 그루가 서 있었다. 봄이면 목련꽃 향기가 온 동네에 퍼졌다 나는 목련나무 밑에 앉아 멀리 건너 마을 수용소뒤 성녘 말 들녘의 아지랑이를 보며 글을 써보기도 했다 옆 텃밭 뚝에는 나무를 깍아 만든 큰 나막신 한짝도 있었다. 추석날 조상들의 제사를 모시려 할아버지 사형제 자손들이 큰집 마루에 가득 모였다
비좁아서 나는 마루아래에 서있어야 알록달록한 사탕과 과일 한쪽이라도 얻어먹을 수 있다
남자들은 둘째할아버지 셋째, 넷째 할아버지 댁까지 차례로 제사를 지내고 다시 큰 할아버지 댁에 가서 아침을 먹는다. 제사가 끝날 때 마다 어른들은 술과 안주로 음복을 한다. 우리 집에서 햅쌀밥과 소고기국을 오랜만에 포식한 나는 설사를 하기도 했다 저녁에는 우리마당과 방앗간 마당사이에서 연극, 노래자랑 콩클대회가 열린다. 하루종일 신이 난 나는 마당과 마당 사이를 이리 뛰고 저리 뛰고 저녁에는 타 동네에서 구경 온 사람들이 옆집 할아버지 댁 마당까지 가득하다
옆집오빠는 여자로분장 누나 옷을 입고 나와 익살을부리고 연극대사를 못외워 뒤에서 불러주는소리가
관중들에게까지 다 들린다 사회자가 그때 라디오에서 광고하는"소화제는 판타제"를 말끝마다 외쳐
웃음바다가 되고 사람들의 호응이 너무 좋았다 노래자랑의 상품은 누런 호박도 주고 일등의 금 일봉은
돈이 얼마나 들었는지, 하긴 앞에서는 저녁때부터 후원금을 받고 이름을 써서 새끼줄에 줄줄이매달아놓았다
추석날 연극행사는 내가 결혼후 친정에 갔을때까지도 명맥이 이어졌다
구경거리가 없는 그때는 추석날 또하나의 기다림이었다
지금은 동네가 모두 사라지고 아파트공사가 한창이다
첫댓글 그 시절을 그려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