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아버지의 기일을 맞아 형제들과 함께 국립현충원을 찾았다. 이른 봄의 공기는 아직 차가웠지만, 묘역으로 오르는 길에는 연둣빛 기운이 은근히 스며들고 있었다. 나란히 누워 계신 부모님의 묘역 앞에 서자, 풀잎 사이를 스치는 바람 소리마저 조심스레 숨을 죽였다.
추도 예배를 올리는 내내 참았던 눈물이 끝내 봇물 터지듯 터지고 말았다. 십 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부모님이 남기신 사랑의 잔상은 여전히 어제 일처럼 선명해 가슴을 후벼 판다. 차가운 비석에 새겨진 함자를 손끝으로 가만히 어루만지자, 마치 오래된 문을 여는 것처럼 기억이 스르르 열렸다. 그 틈으로 생전의 아버지가 보물처럼 곁에 두셨던 ‘청색 체크무늬 가방’이 환영처럼 눈앞을 스쳤다.
그 작은 가방은 늘 아버지 곁에 있었다. 집 안에서도, 병원에서도, 심지어 잠자리에서도 한순간도 떨어지지 않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색이 바래고 모서리가 닳아갔지만, 아버지는 끝내 그것을 버리지 않으셨다. 그 안에는 물건보다 더 많은 것들이, 아버지의 습관과 체온, 그리고 홀로 감당해 온 시간들이 켜켜이 담겨 있었는지도 모른다.
아버지가 시골에 있는 종합병원에서 퇴원하시자마자 홀로 보훈병원으로 향하셨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급히 짐을 챙겨 응급실로 달려갔던 그해 봄날이 아직도 생생하다. 병원 특유의 소독약 냄새와 바쁘게 오가는 사람들 사이에서, 나지막한 간이의자 위에 놓인 낡은 가방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주인을 닮아 입을 앙다문 듯 단정히 닫혀 있던 그 가방은, 말없이 아버지의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가지런히 벗어놓은 점퍼 곁을 파수꾼처럼 지키고 서 있던 그 가방을 보는 순간, 나는 왈칵 부아가 치밀었다. 여든 노인이 제천에서 신탄진까지 혼자 기차를 타고 오시는 동안, 자식들은 무얼 했나 싶어 속이 상하고 죄스러웠던 탓이다. 바쁜 일상이라는 핑계 뒤에 숨어, 정작 가장 가까운 사람의 시간을 놓치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내 자신을 책망했다.
입원 절차를 마치고 가방을 정리하다 마주한 속살은 더 처연했다. 드시다 만 빵 조각, 비닐봉지에 싼 음료수병, 오래 사용해 빛이 바랜 칫솔과 틀니, 그리고 접힌 약봉지들…. 작은 가방 하나가 참 많이도 삶을 집어삼키고 있었다. 그것은 단순한 소지품이 아니라, 아버지가 혼자 견뎌온 시간의 축소판처럼 느껴졌다.
“식사하셔야지, 왜 이런 걸 드셨어요.”
투정 섞인 내 볼멘소리에 아버지는 그저 입맛이 없어 그렇다며 맥없이 웃으실 뿐이었다. 그 웃음에는 미안함과 체념, 그리고 자식에게 짐이 되고 싶지 않은 마음이 뒤섞여 있었다.
폐렴 진단을 받고 열흘간 입원하셨던 아버지를 우리 집으로 모셔 왔을 때도, 그놈의 가방은 한시도 아버지 곁을 떠나지 않았다. 거실 맨바닥에 가방을 베고 등걸잠을 주무시던 뒷모습은 지금도 또렷하다. 등을 둥글게 말고 잠든 모습은 어쩐지 더 작아 보였고, 그 모습이 자꾸만 마음을 저미게 했다.
베개를 가져다드려도 마다하며 당신의 낡은 가방에 고개를 뉘시던 아버지는, 자식 집조차 객지처럼 여기며 미안해하셨다. 수건 한 장도 당신 가방에서 꺼내 쓰시던 그 결곡한 성정은 차라리 아픔이었다. 우리는 가까이 있었지만, 아버지는 끝내 홀로 머무르고 계셨던 것은 아닐까.
아버지는 나를 어떻게 키우셨던가. 기억의 가장 깊은 곳에는, 내가 들은 이야기이면서 동시에 내 삶의 뿌리가 된 장면이 있다. 나는 사시랑이처럼 약골로 태어났는데, 사흘 만에 눈에 핏발이 섰다. 그때 아버지는 혹한의 화천에서 당신 살을 깎아가며 끝내 나를 살려내셨다.
새벽 동트기 전 도래샘에서 물을 떠다가 아이를 씻기고 치성을 드리면 낫는다는 말 한마디에 의지해, 아버지는 무릎까지 차오른 눈길을 헤치며 매일 새벽길을 나섰다. 어둠과 추위가 뒤엉킨 길 위에서, 아버지는 단 한 번도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빙판에 구르고 넘어져 복사뼈 부근이 피떡이 되어도, 얼어붙은 양말이 살점에 들러붙어 떨어지지 않아도 아버지는 돌아서지 않으셨다.
백일 만에 내 눈의 핏발이 가시고 기침이 멈춘 것은, 삼신할머니가 아니라 자식을 향한 아버지의 처절한 사투 덕분이었으리라. 그 시간은 단순한 기도가 아니라, 목숨을 건 선택이었고, 오직 자식을 살리기 위한 결단이었다.
부모의 생은 ‘염낭거미’를 닮아 있다. 염낭거미는 알을 낳기 전 거미줄로 집을 짓고 입구를 단단히 봉한다. 그리고 새끼들이 자라 독립할 때까지 그 감옥 같은 공간에서 한 발짝도 나가지 않는다. 먹이를 구하러 나갈 수도, 스스로를 돌볼 수도 없는 상태에서, 오직 자신의 진액을 다 짜내어 새끼들을 키워낸다.
새끼들이 세상을 향해 문을 열고 나갈 때쯤이면, 어미는 이미 모든 것을 내어준 뒤다. 온몸이 마른 껍데기처럼 가벼워진 채, 조용히 생을 마감한다. 그 생은 비극이 아니라 완성에 가깝다.
자식을 살리는 일이라면 당신 몸 하나 축나고 사그라지는 것쯤은 아깝지 않았다. 아버지는 다친 복사뼈가 시큰거리는 고통조차 뒤로하고, 염낭거미처럼 모든 것을 쏟아내며 나를 지켜내셨다. 나는 그 말을 여러 번 들었으면서도 깊이 새기지 못했다. 그저 나이 탓이려니, 세월의 흔적이려니 넘겨버렸다.
뼈마디가 닳고 진액이 마르는 줄도 모르고 어린 딸을 살려냈던 그 헌신은, 예순을 넘긴 딸의 생 구석구석에 여전히 스며 있다. 하지만 나는 부모님께 무엇을 해 드렸던가. 내 자식 귀한 줄만 알고 부모님이 연세 드시는 것은 잊고 살았던 지난날의 무심함이, 비석 앞에서 비수처럼 가슴을 찌른다.
사랑은 언제나 현재형일 줄 알았는데, 뒤늦게 깨닫는 사랑은 늘 과거형으로 남아있다. 추도 예배를 마치고 묘역을 내려오는 길, 자꾸만 눈앞이 흐려진다. 발밑의 흙길이 흐릿해질수록 기억은 더 또렷해진다. 가방을 베고 잠드시던 야윈 어깨, 병실 간이의자에 덩그러니 놓여 있던 가방의 실루엣, 그리고 아무 말 없이 웃으시던 얼굴이 십 년의 세월을 건너와 내 가슴을 묵직하게 누른다.
부모님의 삶을 양분 삼아 자라온 새끼 거미는, 이제야 가벼워진 노병의 빈자리를 대면하며 소리 없이 울고 있다. 너무 늦게 철이 든 것 같아 더 서럽다.
현충원 정문을 나서는 길, 묘역 위로 쏟아지는 봄 햇살이 유난히 눈부시다. 바람은 여전히 차지만, 그 빛은 따뜻했다. 어쩌면 부모님은 이제 그 빛 속에서, 더 이상 아프지 않은 몸으로 서로의 손을 맞잡고 계실지도 모른다.
부모라는 이름으로 평생을 다 내어주고 텅 빈 껍데기만 남긴 채 떠난 염낭거미의 생애가 마음속으로 고요히 걸어 들어온다. 그 생에 대한 이해는 늦은 후회와 맞물려, 오래도록 가슴을 적신다.
나는 오늘, 붉어진 눈시울로 그 생애를 배웅한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조용히 다짐해 본다. 남겨진 시간만큼은, 사랑을 미루지 않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