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엔, 동네에 '어른'이 사라졌다.
아니, 어쩌면, 앉아 있을곳이 없어졌는지도 모르겠다.
우리 어릴적.. 동네어귀, 양지바른곳, 그곳에는 언제나 어른들이 앉아계신다.
긴 나무로 직접 못질과,대패질을 해가며 만들었을, 손때가 묻고, 기름때가 들어 반지르르 광채가난다.
분명, 페인트칠을 하지않았을텐데,
그 나무의자는 처음부터, 진갈색이었던 양, 글로 표현이 될수없는 갈색의 오묘한 느낌이드는 어설픈 의자다.
그런데도 앙그러진다. 세련미라고는 눈을 똑바로 뜨고 찾아봐도 없을, 어떠한 카타로그에도 나오지않을 의자이지만,
얼마나 튼튼한지, 저런색이 나올때까지 버텨낸걸보면, 그의자의 생명력을 인정하지 않을수 없다.
긴의자를 사이에두고, 정방형의 장기판이 놓여있다.
장기판도 예사 장기판이 아니다. 낡았지만, 두툼한 회갈색의 나무판자에, 흐릿한 검정색의 씨줄과 날줄이 칸의 크기는 아랑곳없이 칸수만 맞다. 덧칠해진 흔적이 역력하다. 장기알은 또 어떤가. 크기도 제각각, 卒(졸)중 한두개는 병뚜껑이 올라와있다. 초록의 ‘초’와 빨강의 ‘한‘은 다 지워져 이미 판독불가, 없어지면, 또 만들고, 또 없어지면, 아무것이나 갖다놓고 글짜만, 마,상,포,차,만 써넣으면 되었다. 그러할진대, ’졸’과‘병’의 처지는 안봐도 안다.
시소처럼, 장기판을 가운데두고, 양쪽끝에 걸터앉아, 사뭇, 진지하다. 누가 하나 일어나면
상대편은 뒤로 자빠지게 되어있다.
혹, 소변을 보고싶으면, 먼저 말을하고, 동시에 일어나야 한다. 얼마나 멋진, 예의의고, 매너인가?
우리 어른들의 에티켓은 이런 멋이 있었다. 조금있으면, 한수 물리자고, 쌈박질을 할망정...
작은 돈을 걸고 둘수도 있었을것이다. 훈수하는 사람 야단치는 걸 보면, 그냥 민장기는 아닐듯싶다.
우리 조무래기들이야, 장기알 가는길이나 알았으랴, 그저 어르신들 소리지르고 노는것이 재미있기도하고
또 소리높여 다툴양이면, 우리 애들하고 똑같구나싶어, 동병상련의 마음을 가졌던것이 아닐까...
그렇지만, 그것보다는 그 어른들의 조끼 주머니의 알사탕 하나에 더 마음이 갔었는지도 모를일이다.
할아버지와 애들은 동급이라는데.
그 어른들, 장기두는곳의 배경은, 큰격자 무늬의 유리창이 비추는 곳이다.
당연, 유리창 몇 개는 깨어져서, 예쁜 종이 꽃무늬로 깨어진 각도에 맟춰 나란히 붙여져있다.
그리고는 붉은글씨로 福德房이라 씌여져있었다.
어릴땐, 그 글자의 뜻도 모르면서 형태로 외워 복덕방이라고는 알고있었다. 뭐하는곳인지는 몰랐었다.
그저 할아버지들 쉼터 정도로 이해하고 있었다.
한자를 배우고, 그뜻을 알고보니, 그곳은 요즘으로치면, 재테크의 대명사요, 시험은 고시 뺨친다는 ‘공인중개사’아니던가.
상호는 마켓팅의 중요 요소다. 소비자들을 흡인하고, 유혹해야한다. 그들의 뇌리속에 깊이 박혀있어야할 이름들이다.
그런 간판중, 이렇게 아름답고, 멋지고, 푸근한 상호가 요즘 어디있는가. 福과德이 있는房이라니...
세상에, 그런데. 사실은 뭐하는곳만 알렸지, 상호가 없었다. 효자복덕방이라든지, 창천복덕방이라든지.
앞의 상호는 없고, 그저 복과덕을주는방이라는것만 알리고있으니, 요즘애들이보면, 바보아니냐고 놀랄지도 모를일이다.
영업이 主가 아닌듯했다. 언제나 볕좋은 곳에 앉아 담배만 피우고 있었거나, 늘, 장기만 두고 있었다. 그런데도, 그 어른들은, 조바심도 없었고, 경쟁도 없었다. 구전은 주는대로 받았고, 적다싶으면, 그저 표정으로만 흠흠정도로 표시하면, 또 알아서 더 얹어주기도했었다. 매뉴얼, 조견표, 프리미엄없이도, 오히려, 약자의편에서 역성을 들어주는쪽의 빈도가 더 많았었으리라. 얼마나 느긋하고, 폼나는 복덕방인가.
나름의 조건은 있었다.
토박이 할아버지였어야 했을것이다. 그동네를 누구보다도 더 잘 알고있어야했고, 동네주민들로부터, 존경은 몰라도
어느정도 인격적으로 인정을 받아야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복덕방에 집을 내놓겠는가?
그 어른들은, 그래서 그지역의 유지들이나, 소시민들의 일거수일투족을 다 알아야했고, 집안의내력, 됨됨이, 심지어는 며느리의 출신이나, 사위의 성분까지도 파악이 되어야한다.
가까운 일가의 근황정도는 꿰고 있어야, 복덕방을 열 라이센스를 받을 자격을 가진다.
그것은 지금의 공인중개사보다 훨씬더 어렵고,힘든 일이다. 어느집 숟가락 숫자까지 알고 있어야 했었으니까...
그 어른들이, 민법, 물권법, 계약, 소송, 담보, 등기, 뭐 이런것들 세세하게 알턱이 있었겠나. 그저 ‘믿음’과 ‘소신’그리고 ‘괸록’으로 그 자리를 지키고, 그 자리의 세글자 ‘복덕방’의 이름에 흠집나지 않게 만 했으면 되었다.
또 하나 있다. 그곳 주변의 주간 경비역할이다. 낯모를사람이 얼쩡거리면, 어디 찾느냐고 묻기도하고, 가르쳐주기도한다,
혹, 풍기문란이면, 호되게 야단도친다. 애들 숨어서 담배피우는 것을 보면, 한바탕 훈시가 나오고, 앞장세워 그애들의 집까지 가서 부모님께 인수인계도 했다.
그근처, 어디서나 우리의 어떠한 ‘못된짓’은 어불성설이다. 그곳은 그동네의 파수꾼이자. 동네 교육장이다. 애들도, 복덕방 할아버지는 언제나 아버지보다 높아 보였고, 혹시, 뭐 걸리기만하면, 그날은 집에 다 들어갔다.
그곳엔 동네 ‘어른’들이 계셨었다. 단지,집을 주선하고, 세입을 도와주는 차원을 넘어, 그동네의 상징이고, 그마을 정서의 대변자라 하면 과한 표현일까?
지나가며 아버지들의 인사를 받고, 근황을 알려주며, 시장다녀온 엄마들의 미소를 받고, 안부를 묻는다. 그리고, 동네 어른들이 있음에, 복덕방이 있음에, 넉넉한, 그리고 든든한 마음을 가질수있었다.
지금은 거의 없다. 전당포는 압구정동에는 있다.
복덕방은 없다. 젋고, 똑똑하고, 매끈한 잘생긴 청년이, 커리어우먼이, 복과덕보다는 재테크와 눈치를, 투기와 요령을 가르치고, 또 팔고있을뿐이다. 세태가 그랬다.
복덕방은 부동산붐이 일면서, 보다 돈을 더벌기위한 현대인의 필수학으로, 투자의 대상으로 변하는 시류에따라
자연 퇴출 1호가 되어버렸다. 그저, 주인만 바뀌는것이 아니었다. 어른들이 사라지고, 정서가 마르고, 인정마저 함께 퇴출 되어버린 것이다.
볕이 있는곳엔, 틀림없이 콘크리트 대형건물이, 고층아파트가 서있다. 깨진 유리창의 빨간글씨는 어디에도 있을곳을 잃어버렸다. 그 의자는 어디갔을까? 장기판은 또 어디로갔을까? 장기판밑, 평평한땅에서 계집아이들이 놀던 공깃돌은 어디서 찾을까? 전봇대도 콘크리트로 바뀌고, 송전탑이 대신해, 그나마 전봇대도 없어졌다. 자연스럽게, 말뚝박기, 비석까기도 없어졌다. 골목이 없어졌으니까...
할아버지들의 넉넉한 웃음소리, 천둥같은 고함소리가 들리는듯하다.
그러나 아이러니다. 고령화 사회에서 노인들이 골칫거리의 대상이 되었으니 말이다. 그많은 고령화세대는 대체 다 어디로 갔을까? 종묘앞, 탑골공원으로,지하철1호선 신창, 천안으로 다 가버렸단말인가?
노인은 많아도 ‘어른’이 없어졌다.
할아버지의 흰머리칼, 수염, 조금 때묻은 흰저고리에 푸른색 조끼, 때묻은 진갈색 길다란 의자, 허름한 장기판, 조악한 장기알, 그래도 형형한 눈빛을 잃지않고, 넉넉한 미소를 지으며 동네를 지켜주시던 어른들, 그뒤에 있었던 복덕방이 정말 그립다. 전봇대옆, 다 타버려 재만남은 누런 연탄재마저도...
어른이 없어졌으니, 집엔, 아버지가 남았을리만무다. 그곳엔, 돈벌어와야 하고, 애들, 아내 눈치만 봐야하는 ‘아빠’와 '자기'만 덩그마니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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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복덕방이 그리운 이유다.
정종현님의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