三菱勤労挺身隊韓国側協議団代表の
李尚甲弁護士の熱い決断を歓迎する !
3.1節は、私たちにとっても記念すべき日です。
この日は、名古屋三菱・朝鮮女子勤労挺身隊訴訟を名古屋地方裁判所に提訴した節目の日です。私たちは、1999年のこの日、訴状を裁判所に提出しました。
韓国から来日された勤労挺身隊ハルモニ(以下、「ハルモニ」ともいう)らと、固く手をつないで、裁判所の前をともに行進したことが忘れられません。
この記念すべき日に当たり、私たちは、李尚甲弁護士の熱い決断を心から歓迎します。
勤労挺身隊訴訟は、1944年、詐欺と脅迫によって、幼い少女に対して行われた強制連行・強制労働の責任を追及する訴訟でした。
連行から60年近く経過した日本の裁判所で、当時の日本政府と三菱重工業の行為を裁こうとする裁判は、厚い法律の壁に、幾重にも阻まれた困難な闘いでした。
私たちは、名古屋地方裁判所で勤労挺身隊ハルモニらの人生を奪ったに等しい深刻な被害事実を認定させました。
そして、名古屋高等裁判所では、ハルモニらの被害が「強制連行・強制労働」による被害であることを明確にさせ、日本政府と三菱重工業の「不法行為」責任を認めさせる成果を勝ち取りました。
しかし、結果は、敗訴でした
裁判所は、「人倫にもとる不法行為が行われた」ことを認めながら、政治的理由で、裁判所には賠償を命じる権限がないとして、ハルモニらの訴えを棄却したのです(10年近くにわたる訴訟は2008年11月11日、最高裁で、敗訴確定)。
私たちは、事実の認定と困難な法律論では勝利しました。しかし、政治のために敗訴したのです。
裁判所は、日本政府と三菱重工業が勤労挺身隊ハルモニらの人権を蹂躙したことを明確にし、人道的責任があることを認めました。
私たちは、敗訴という結果に屈することなく、人道的責任という重い課題を果たすべく、毎週金曜日の早朝、遠く東京の三菱重工業本社前に立ち、ハルモニらの人権の回復を求め続けました。
この運動は、訴訟以上に困難な闘いでした。
くじけそうになる心を支え続けたのは、ハルモニらやその遺族の尊厳は必ず回復されなければならないとする確固たる信念でした。
重い三菱重工業の扉が開いたのは、敗訴が確定してから2年近く経過した2010年7月のことでした。
その前月、2010年6月に来日した「勤労挺身隊ハルモニらとともにする市民の会」(以下、市民の会という)は13万5000名もの韓国市民の署名を携え、真剣な思いの籠もった三歩一拝デモを通して、ついに三菱重工業を話し合いのテーブルに引き出すことに成功したのです。
市民の会の先頭には、李尚甲弁護士の姿がありました。
李尚甲弁護士は、勤労挺身隊ハルモニに寄り添い、ハルモニらとともに行動する初めての光州の弁護士でした。市民の会は、私たちにとって待望の韓国の運動であり、李尚甲弁護士は、待ちに待った韓国の弁護士でした。
李尚甲弁護士には、苦境にあるハルモニらに寄り添う暖かい心、熱い情熱と、勇敢な行動力があります。
現在、李尚甲弁護士は、三菱重工業との協議団の韓国側代表として、説得力ある言論と行動で、三菱重工業との交渉を有利に導くため、絶大な力を発揮しています。
その明晰な論理と、判断の確かさ、そして、ときに相手方メンバーを圧倒し、ときに相手方の懐に飛び込むような行動力は、私たちを、しばしば驚嘆させました。
私たちは、李尚甲弁護士が卓越した法律家であり、目を見張る政治的素養の持ち主であることを確信しています。
残念ながら、三菱重工業のかたくなな態度のため、協議は、いまだに報告すべき成果を挙げたとはいえない状況にあります。
しかし、勤労挺身隊ハルモニらが高齢であることを考えるとき、被害救済は早急になされなければなりません。
私たちは、韓国側協議団代表である李尚甲弁護士の今回の決断が、早期の被害救済を果たすための、大きな力となることを確信しています。
李尚甲弁護士は勤労挺身隊ハルモニらが、日本で受けた苦しみと韓国に帰ってから味わった辛い暮しに、心から共感して涙を流す暖かい人です。私たちは、熱い情熱と博学な法律的知識、そして暖かい心と、豊かな政治的行動力を持った李尚甲弁護士の熱い決断を歓迎し、ますます奮闘されることを、勤労挺身隊ハルモニらのために、心から念願するものです。
2012年 3月 1日
高橋 信(たかはし まこと 名古屋三菱・朝鮮女子勤労挺身隊訴訟を支援する会 共同代表)
寺尾光身(てらお てるみ 同 共同代表)
中村紀子(なかむら のりこ 同 共同代表)
内河惠一(うちかわ よしかず 名古屋三菱・朝鮮女子勤労挺身隊訴訟弁護団 団長)
岩月浩二(いわつき こうじ 同 事務局長)
미쯔비시(三菱) 근로정신대 한국측 협의단 대표인
이상갑 변호사의 뜨거운 결단을 열렬히 환영한다!
3.1절은 우리들에게 있어서도 각별히 기념해야 할 날입니다.
13년 前 이 날은 나고야(名古屋) 미쯔비시 조선여자근로정신대 소송을 나고야 지방재판소에 제소한 뜻 깊은 날입니다. 우리는 1999년 이 날, 소장을 마침내 재판소에 제출했습니다.
한국에서 오신 근로정신대 할머니(이하, ‘할머니’라고 함)들과 굳게 손을 잡고, 법원 앞을 함께 행진했던 일이 지금도 잊혀지지 않습니다.
이 각별히 기념해야 할 날에 즈음하여, 우리들은 이상갑 변호사의 뜨거운 결단을 마음속으로부터 환영합니다.
근로정신대 소송은 1944년, 사기와 협박으로 인하여 어린 소녀들에 대해 저질러진 강제 연행·강제 노동의 책임을 묻기 위한 소송이었습니다.
강제 연행으로부터 60년 가까운 세월이 지나 일본 재판소에서, 당시 일본정부와 미쯔비시중공업의 책임을 밝히려고 하는 재판은, 법이라는 두꺼운 벽 앞에 몇 겹으로 막혀진 그런 곤란한 싸움이었습니다.
우리들은 나고야 지방재판소에서, 근로정신대 할머니들은 인생을 빼앗긴 것과 마찬가지라고 하는 심각한 피해 사실을 인정시켰습니다.
아울러, 나고야 고등재판소에서는, 할머니들의 피해가 ‘강제 연행·강제 노동’에 의한 피해였다는 것을 밝혀, 일본정부와 미쯔비시중공업의 ‘불법 행위’ 책임을 인정시키는 성과를 냈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패소였습니다.
법원은 ‘인륜에 어긋나는 불법 행위가 행해졌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정치적 이유 때문에, 재판소에는 배상을 명할 권한이 없다고 하여, 할머니들의 제소를 기각한 것입니다. (10년 가까운 소송은 2008년 11월 11일, 최고재판소에서 패소 확정).
우리들은 사실을 인정받는 것과 함께 난해한 법률론(법리적 다툼)에서는 승리했습니다. 그러나 정치로 말미암아 패소했던 것입니다.
법원은, 일본정부와 미쯔비시중공업이 근로정신대 할머니들의 인권을 유린한 것을 밝혔으며, 인도적 책임이 있다는 것을 인정했습니다.
우리들은 패소라는 결과에 굴하지 않고, 인도적 책임이라는 무거운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매주 금요일 이른 아침, 멀리 도쿄(東京)에 있는 미쯔비시중공업 본사 앞에 서서, 할머니들의 인권 회복을 계속 요구해 왔습니다.
이 운동은, 소송 이상으로 곤란한 투쟁이었습니다.
좌절할 것 같았던 마음을 계속 유지해 준 것은, 할머니들과 그 유가족들의 존엄은 반드시 회복되어야 한다는 확고한 신념 때문이었습니다.
무겁기만 한 미쯔비시중공업이 문을 열게 된 것은, 패소가 확정된 지 2년 가까운 세월이 흐른 2010년 7월이었습니다.
그 전인 6월 달에 일본을 찾은 ‘근로정신대 할머니들과 함께하는 시민모임’ (이하, ‘시민모임’이라고 함)은 13만5,000명이나 되는 한국 시민의 서명을 들고, 진지한 정성이 어린 3보 1배 시위를 통하여, 결국 미쯔비시중공업을 대화의 장에 끌어내는 일에 성공했던 것입니다.
‘시민모임’ 선두에는, 이상갑 변호사 모습이 있었습니다.
이상갑 변호사는 근로정신대 할머니들과 마음과 행동을 함께하는, 광주에서는 처음 만난 변호사였습니다. ‘시민모임’은, 우리들이 기다리고 기다리던 한국 국내의 운동이었으며, 이상갑 변호사는 우리가 갈망했던 한국 측 변호사였습니다.
이상갑 변호사에게는, 역경에 계시는 할머니들과 마음을 함께하는 뜨거운 열정과, 용감한 행동력이 있습니다.
현재, 이상갑 변호사는 미쯔비시중공업과의 협의단 한국 측 대표로서, 설득력 있는 언변과 행동으로, 미쯔비시중공업과의 교섭을 유리하게 인도하기 위해, 절대적 힘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그 명석한 논리와 판단의 확실함, 그리고, 때에 상대방 대표들을 압도하면서, 때로는 상대방 호주머니 속에 뛰어 들어 가는 것 같은 행동력은 우리들을 자주 경탄시켰습니다.
우리들은 이상갑 변호사가 탁월한 법률가이며, 놀라울 정도의 정치적 소양을 갖고 있다는 것을 확신합니다.
유감스럽게도 미쯔비시중공업이 완고한 태도 때문에, 협의는 아직 보고드릴 만한 성과를 올렸다고는 못하는 상황입니다.
그러나 근로정신대 할머니들이 연령을 생각할 때, 피해자 구제는 하루빨리 마무리해야 됩니다.
우리들은 한국 측 협의단 대표인 이상갑 변호사의 이번 결단이, 조속한 피해자 구제를 위한, 큰 힘이 될 것을 확신하고 있습니다.
이상갑 변호사는 근로정신대 할머니들이 일본에서 받은 괴로움과 한국에 돌아가고 나서 겪으셨던 힘든 생활에 대해, 마음속으로부터 공감하면서 눈물을 흘릴 줄 아는 따뜻한 분입니다. 우리들은 뜨거운 정열과 박학한 법률적 지식, 그리고 따뜻한 마음과, 풍부한 정치적 행동력을 가진 이상갑 변호사의 뜨거운 결단을 환영하며, 더더욱 분투하실 것을, 근로정신대 할머니들을 위해 마음속으로부터 바라는 바입니다.
2012년 3월 1일
다카하시 마코토(高橋信) (나고야 미쯔비시 조선여자근로정신대 소송을 지원하는 모임 공동대표)
데라오 미쯔노부(寺尾光身) (同 공동대표)
나카무라 노리코(中村紀子) (同 공동대표)
우치카와 요시가즈(内河惠一) (나고야 미쯔비시 조선여자근로정신대 소송 변호인단 단장)
이와쯔키 고오지(岩月浩二) (同 사무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