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리언” 시리즈의 창시자 리들리 스콧이 1979년 원작 이후, 2012년 <프로메테우스>(Prometheus)와 2017년<에이리언: 커버넌트>(Alien: Covenant)의 감독으로 복귀했을 때, 20세기 “에이리언”과 괴리감이 크다는 비판이 지배적이었다.
화물 우주선 “노스트로모”호에서 전개하는 이야기의 공포와 전율, 그리고 숨 막히는 긴장감의 부재, 즉 공상과학 스릴러(Sci-Fi Thriller) 장르 영화적이지 않았다는 것. 스콧 감독의 의도였든 아니든, 철학, 종교, 역사, 문화, 인류의 기원과 인간의 욕망과 같이 다양한 요소들이 지배적이었고, 그렇게 심오하고 다소 복잡 난해한 서사에 반해 외계생명체의 산성 타액 배출량은 현격히 줄었다. 데이비드 핀처(David Fincher)와 장-피에르 주네(Jean-Pierre Jeunet)의 <에이리언 3>(Alien 3, 1992)와 <에이리언 4>(Alien Resurrection, 1997)의 연장선에 있다고 봐도 과언은 아닌 모양새.
원작자가 제작자로 후방에 남은 <에이리언: 로뮬러스>(Alien: Romulus)의 감독 페데 알바레스(Fede Álvarez)는 그러한 연유에서 시리즈의 뿌리 찾기에 집중한 것으로 보인다. 영화 전개의 속도와 이야기의 설정 등, 원작에 대한 그의 애정이 온전히 이 영화에 담겼다. 원전의 긴장감과 공포, 위협을 근간으로 재미라는 오락적 요소 또한 놓치지 않았다.
알바레즈의 연출은 근본으로의 회귀, 즉 스콧 감독의 참신한 원조 방식을 재현해내고자 했다. “로물루스”는 전편의 난해한 서사와 달리 매우 직접적인 이야기 구성으로 우리를 매료한다. 다섯 명의 인간과 합성 인조인간이 완벽한 살인 기계를 실은 우주 정거장에 탑승하여 탈출을 위해 싸워야 한다는 내용이 핵심. 사실 그게 전부다.
간결한 줄거리 덕분에 영화는 우주 정거장이라는 폐쇄적 공간, 즉 세트에 더 집중할 수 있는 여력이 생겼다. <다크 나이트>를 작업한 나완 마샬의 프로덕션 디자인은 블록버스터 공상 과학 영화 중 최고 수준을 자랑한다. 원작과 마찬가지로 캐릭터들이 머무는 공간은 삶과 죽음의 장소이며, 그 안에서 곤경에 처한 상황은 실제 사실감이 뚜렷하다. 알바레즈와 그의 팀은 이 영화의 주 무대 우주 정거장의 양쪽 절반인 로물루스와 레무스에 경이로운 배경을 만들어 냈다.
폐소공포증 유발 공상과학물의 원조에 필적하는 수준이며, 리들리 스콧의 원작 영화가 왜 걸작으로 남았는지 여실히 증명한다. 면상을 휘감아 안고 숙주을 입을 통해 체스트버스터의 배아를 주입하는 페이스 허거 군단과 함께 통로를 달리는 장면이나 놀랍도록 잘 만들어진 엘리베이터 시퀀스, 이 영화에서 가장 호불호가 갈릴 수 있는 마지막 장면 등 어느 한 장면을 손꼽기 어려울 정도이며, 이 시리즈의 과거 이미지에 경의를 표하는 동시에 영화에 땀이 흐르고 어둡고 불길한 느낌을 주는 시각적 팔레트를 선사한다.
“에이리언”시리즈의 서막, 리들리 스콧의 <에이리언>(1979)은 우주를 배경으로 한 흉가(凶家) 영화로 악명높다. 지상의 유령 대신 우주 외계인이 등장할 뿐, 단일 장소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루기 때문이다. <에이리언: 로물루스>는 이 점을 잘 이해하여 오랜 시간 검증된 이 공식에 들어가는 모든 요소를 재현하려고 노력했다. 우리는 유령의 집이나 우주선에 갇힌 인물들처럼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강렬해지는 악몽에서 어떻게 탈출할 수 있을지 궁금해하는 기분이 들기를 원한다.
영화를 보는 내내 사실 그 생각만 하다 지나간다. 또한 알바레즈 감독의 7번째 “에이리언”은 이전 영화들과 예술적으로 매우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 1979년을 원년으로 올해 2024년 7편에 이르기까지, 장장 45년, 세기의 강을 건너 장고의 세월이 흘렀고, 시리즈의 진정한 팬들이 그 후로 오랫동안 원했을 수 있는 대단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