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주간지 <타임>과 BBC 에디터 윌 콤퍼츠가 선정한 "크리에이티브 제왕", "현대 광고의 아버지" 이는 모두 한 사람을 지칭하는 말입니다. "팔리지 않는 것은 크리에이티브가 아니며 광고는 예술이 아니다.", "광고는 과학이 아니라 설득이다."라는 명언을 남긴 천재 카피라이터 '데이비드 오길비'가 저의 롤모델 입니다. 제품과 상관없이 그저 현란하고 멋있기만 한 아이디어를 쏟아내는 당시의 광고인과는 달리 '재미보다는 소비자의 설득을 추구해야 한다'는 생소하지만 실용적인 접근법으로 광고계의 패러다임을 바꾸고, 현대 광고의 틀과 기반을 다졌다는 점이 광고 관련 직업을 꿈꾸는 저에게 닮고 싶은 부분으로 다가왔고, 롤모델로 선정하게 되었습니다.
데이비드 오길비는 처음부터 광고인으로써 명성을 떨쳤던 것은 아닙니다. 아버지의 사업실패로 가난한 성장기를 보냈던 그는 직업을 정하지 못하고 방황하다가 30살이라는 늦은 나이에 광고 회사에 지원하게 됩니다. 늦은 나이와 남들보다 뒤쳐진 스펙으로 인해 지원에서 떨어지게 되었지만 포기하지 않고 뉴욕에 조그마한 광고회사를 차리게 됩니다. 그는 당시에 유행했던 현란하고 멋있기만한 광고 스타일을 따라가기 보다는 소비자들의 설득에 초점을 두는 광고 스타일을 만들어 냈고, 이를 자신의 회사의 모든 광고에 적용했다. 이는 의뢰인과 소비자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었고, 그의 회사는 점점 더 성장하기 시작했다. 당시에 그의 롤스로이스 카피("시속 60마일로 달리는 롤스로이스에서 들리는 가장 큰 소리는 전자시계 소리다.")는 현대의 광고와 비교했을 때에도 전혀 오래됬다는 느낌을 받기 힘들다. 그의 광고는 세안제 브랜드 "도브", "해서웨이 셔츠"를 매진 시켰고, 국가 "푸에르토리코"의 가난한 이미지를 180도 바꾸었다. 이를 통해 그는 세계 최고의 광고 카피라이터가 되었다. 이렇게 데이비드 오길비가 만들어낸 광고 스타일을 기반으로 한 광고가 현대에 들어 나오게 되었고, 세계 광고의 흐름을 주도하게 되었다.
데이비드 오길비를 몰랐을 때에 나는 기존에 만들어져 있는 틀과 흐름에 어긋나는 생각을 주장하고, 이를 따라하지 않는 사람들을 소위 말하는 '아웃사이더'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를 알고 나서부터는 남들의 시선을 상관쓰지 않고 자신의 생각을 주장하는 것에 대한 중요성을 알 수 있게 되었다. 데이비드 오길비를 통해 나의 주장을 펼치는 자신감이 다른 사람들을 설득시킬 수 있고, 변화시킬 수 있다는 점을 깨닫게 되어 고마운 마음과 존경심을 느끼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