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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2월 15일 토요일(금요무박) 낙동정맥 6회 (하삼의리~황장재)
S 산악회
낙동정맥 6 회차: 하삼의리~임도삼거리~봉화산~명동산~포도산~여정봉~장구메기~화매재~삼군봉(시루봉)~황장재
산행거리 : 약 26 km (접속거리 2.3 km 포함) 산행시간 : 약 9 시간
하삼의리~임도삼거리 : https://www.ramblr.com/web/mymap/trip/371711/1909040
임도삼거리 ~ 황장재 : https://www.ramblr.com/web/mymap/trip/371711/1909094
거리 23.9 km
소요 시간 8h 48m 17s
이동 시간 8h 36m 9s
휴식 시간 12m 8s
평균 속도 2.8 km/h
최고점 830 m
총 획득고도 733 m
난이도 힘듦
낙동정맥 (洛東正脈) 06 – 명동산, 포도산, 삼군봉
내 다리
양산박
고산준령 마다않고 다니는건 두다리요
다리따라 몸뚱아리 덩달아서 유람일세
내몸땡이 두다리는 한데붙어 한몸인데
그속에든 내마음은 주인인가 객일런가
몸뚱아리 아프다고 마음마저 아플손가
마음먼저 아파지면 몸도따라 아플텐가
몸뚱아리 죽고나면 마음또한 죽을런가
그렇다면 몸과마음 한통속이 다름없네
날 씨 : 흐리고 미세먼지 나쁨, 밤에 비가 내림, 기온은 따뜻함..
옷차림 : 세 겹옷
해돋이 : 안개와 미세먼지로 일출풍경 없슴. 포도산에서 날이 밝음
한주의 날씨: 따뜻한 기온에 봄이 온 느낌..
프로로그
이제 경상북도 청송과 영양 그리고 영덕까지 내려갔으니 버스 타는 시간이 길어진다. 산행시간을 길게 갖기 위해 서울 출발시간을 30분 앞당겨 11시에 출발하기로 했다. 신사역에 여유있게 가기위해 1시간 전인 10시에 집을 나서는데 윤이와 미리가 한 마디 던진다. 저런 산행을 뭐하러 하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고 한다. 저런 산행이란 안내산악회 버스를 타고 금요일 밤에 잠도 안자고 산행을 떠나 그 다음날 하루 종일 20~30 km 긴 구간을 걷는 것을 말한다.
나 스스로도 가끔 회의를 느끼는 것을 이렇게 듣고 나니 뒤통수를 한 대 맞은 느낌이 든다. 정말 나는 왜 ‘저런 산행’을 하는가? 부족한 잠은 물론이고 맘놓고 앉아 음식을 먹거나 물을 마실 시간도 없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밤길을 걸어야 하는 ‘저런 산행’을 통해 내가 추구하는 것은 무엇인가? 어쩌면 이런 물음에 대한 대답은 앞으로 산행을 하면서 얻어야 할 화두가 될 것 같다.
왜 산에 가는가? 하는 질문에 사람들은 여러가지로 대답한다. ‘산이 거기 있으니까’하는 것은 이것 저것 답을 하기 싫어서 내놓는 궁색한 대꾸다. 건강을 위해서 다니는 사람도 있고 호연지기(浩然之氣)를 키우기 위해 다닌다는 사람도 있다. 산에서 보는 장엄한 풍경을 보고 마음이 넓어진다는 것이다. 이런 여러가지 답변 중에서 나는 왜 등산을 하는 건지 그리고 왜 낙동정맥 무박산행을 다니는가에 대한 내 나름의 이유를 찾아봐야 한다. 분명 남이 장에 가니까 거름지게 지고 따라가는 것은 아닐 터이다.
산행기
경부고속도로, 영동고속도로를 거쳐 중앙고속도로로 갈아타고 안동휴게소에서 이른 조식을 위해 30분간 머문 후 다시 당진-영덕간 고속도로의 동청송 나들목으로 나가 산골짝 청송의 34번 국도에서 오늘 산행의 날머리인 황장재를 지나고 다시 911번 지방도로로 바꿔탄다. 화매재를 거쳐 새벽 3시 30분 마침내 오늘 산행의 들머리인 하삼의리에 도착했다. 30분간의 휴식시간을 감안하면 4시간동안 쉬지 않고 달려온 것이다.
오늘 걷는 코스는 악시오나사의 영양 풍력발전단지가 있는 임도삼거리에서 시작해 황장재까지 24 km인데 길이 평이하고 큰 오르내림이 없어 11시간이면 충분하다며 오후 2시 30분까지 하산하라 한다.
새벽 3시 30분 하삼의리에서 산행을 시작한다.
지난주에 얼마간 남아있던 얼음이 봄기운에 다 녹아버렸다.
버스에서 미리 산행채비를 갖춘 산님들은 차에서 내리자마자 걷기 시작한다. 지난 회차에 중단했던 임도삼거리에서 산행을 이어가기 위해 계곡을 따라 임도를 걷는다. 발빠른 사람은 점차 간격을 넓혀가다니 임도를 반쯤 걸어가자 벌써 시야에서 사라진다. 그러나 내 뒤에도 꽤 많은 사람들이 머리에 헤드랜턴을 밝히고 따라오고 있으니 나는 쫒기듯 발걸음을 쉼없이 내 딛는다. 길 가 개울에는 지난 주 남아 있던 얼음이 말끔히 녹아버렸다. 얼름짱 밑으로 흐르던 봄이 바야흐로 온 계곡에 넘쳐 흐른다.
봉화산 (烽火山 733 m)
임도삼거리에서 지난 주에 끊었던 정맥길을 이어간다. 풍력발전기는 어둠속에서 쉬지 않고 돌아간다. 쉭쉭거리는 바람개비소리를 뒤로 하고 임도를 따라 걷다가 나뭇가지에 붙어있는 선답자들의 시그널을 따라 잡목사이로 난 산길로 접어든다. 겨우내 얼어있던 땅이 녹아 진흙이 미끄럽다. 산님들은 마치 안시성 성벽을 기어오르는 당태종의 군사들처럼 숨을 헐떡거리면서도 쉬지 않고 올라간다.
마침내 능선길에 오른 후 잠시 평평하던 길은 다시 꾸준한 오르막으로 이어진다. 주변은 어둠에 싸여 있고 입에서 김이 뿜어져 나와 헤드랜턴에 하얗게 비칠 뿐 아무것도 보이지 않으니 마치 협곡속을 걷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주변에 아무것도 볼 수 없으니 사실 우리는 어둠속 좁은 계곡을 걷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속에서 봉화산에 오른다.
연기와 횃불로 위급 신호를 송수신하던 봉수대
그렇게 얼마간 올라가니 앞서 간 사람들이 모여있다. 봉화산(烽火山 733 m)이다. 봉화산은 옛날 통신수단인 봉수신호를 받고 전달하던 장소니 주변에서 가장 높은 장소일테고 주변이 탁 트여있을터인데 깜깜한 밤이라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정상에서 조금 내려오니 정상 아래에는 봉수대(烽燧臺)가 돌탑처럼 서있다.
명동산 (812 m)
잠시 고도를 낮추던 산길은 다시 꾸준히 올라간다. 가끔 내리막 길을 만나지만 그 이상으로 계속 오르막이다. 내리막이나 평평한 길에는 낙엽이 수북히 쌓여 있다. 수령이 오래된 굴참나무가 길 가에 늘어서 있다.
나뭇가지 사이로 정월 대보름을 1주일 넘긴 반달이 걸려있다. 빠른 걸음으로 걷다보니 몸에 땀이 배인다. 능선길에 올라서면 동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시원하다. 분명 동장군은 제대로 힘 한 번 써보지 못하고 물러갔나보다.
깜깜한 어둠속에 랜턴불빛만이 지나가는 모습이 마치 협곡을 통과하는 것 같다.
그렇게 명동산 정상까지 오르막이 지속된다. 명동산 정상에도 어두움만이 자리하고 있다.
보름을 일주일 넘긴 반달이 나뭇가지에 걸려있다.
산행을 시작한지 거의 2시간만인 5시 20분 명동산에 도착했다. 6.2 km 를 걸었으니 평균 속도가 3.1 km 로서 산악회에서 제시한 시간 안에 산행을 마칠 수 있을거라는 자신감이 든다. 원래 조망이 아주 좋은 산 봉우리 명동산이라는데 깜깜한 밤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정상 한켠에 서 있는 무인산불감시 시설만 보일 뿐이다.
박점고개
물 마시고 간식을 먹고 가는 사람들이 더러 있으나 난 망서림없이 봉우리를 떠난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산정에서 굳이 꾸물댈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다. 명동산에서 산길은 급격히 내리막을 달린다. 미리 보아둔 지형도를 보면 이번 구간도 정맥길은 S 자를 그리면서 왼쪽으로 달리다가 다시 오른쪽으로 크게 도는 모습인데 밤길을 걸으면 방향감각을 잃어버린다. 우리는 분명 남쪽을 향해 걷고 있어야 하는데 하늘에 떠 있는 달은 오른편 앞쪽에 기울어 있다가 어느새 왼편으로 가 있는 것은 우리가 남쪽으로 가다가 서쪽으로 방향을 틀었다는 뜻이겠다.
정말 이런 산행은 왜 해야 하는건가 하는 의문이 계속 머릿속에 맴돈다. 극기훈련을 하는 것도 아니고 밤 산길에 마라톤을 뛰는 것도 아닌데 왜 나는 모두 자고 있는 이 한밤중에 집에서 멀리 떨어진 숲 속을 걷고 있는가?
바가지 상점이 있었다는 박점고개.
잠시 완만한 길을 달리던 길은 갑자기 왼쪽으로
급격하게 떨어지고 곧이어 넓은 임도를 만난다. 박점고개다. 옛날
나무를 깍아 바가지를 만들어 파는 가게가 있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포도산 (葡萄山 740 m)
내 뒤에 바짝 따라오던 사람들의 숨소리에 길을 비켜주니 서너 명이 삽시간에 앞으로 치달린다. 벌써 10 km 이상 달려왔을텐데 전혀 지치지 않은 모양이다. 나는 다시 혼자가 되었다. 내 뒤에 적지 않은 사라들이 오고 있지만 지금은 나 혼자 걷는다. 왼쪽은 경사가 매우 급격한 사면이다. 이런데서 굴러 넘어지면 끝도 없이 구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원래 정맥길은 능선을 타고 가지만 가끔 산행의 편리함이나 안전함을 고려하여 사면을 걷는다.
길은 다시 급히 고도를 높혀간다. 이런 산길에서 숨이 넘어가지 않고 고른 숨을 쉬면서 걸을 수 있게 된 것은 어쩌면 그 동안 내공이 쌓인 덕분일 것이다. 낙동정맥을 처음 시작할 때 내 체력이 너무 약하다는 것을 느끼고 매일 퇴근 후에 1시간 정도 바이크를 탔다. 땀이 흠뻑 날 만큼 가쁜 숨을 몰아쉬면서 운동한 덕분에 산길을 걷는 속도도 조금 빨라진 것 같고 지구력도 좋아진 느낌이다. 이런 오르막 길을 걸을 때도 숨이 가빠지다가 잠시만 서 있어도 원래의 호흡으로 안정되는 것은 그런 운동덕분이라는 생각이다.
산 비탈의 사면을 걸아간다. 왼쪽은 경사가 심한 낭떨어지다.
포도산 분기점 : 여기에 배낭을 두고 약 600 미터 떨어진 포도산을 다녀온다.
오르막이 끝나가는데 앞서 간 산님들이 모여서 쉬고 있다. 포도산 분기점( 690 m)이다. 포도산은 낙동정맥에 들어있지 않은 봉우리이지만 주변 산에 비해 높아 랜드마크 역할을 하는 산이니 체력이 허락하는 한 포도산을 다녀오는 것이 관례라 한다. 두 명의 산우가 우측으로 길을 잘못들어 내려가길래 포도산은 직진으로 가야하는 거라고 알려주고 나도 포도산을 향한다.
옛날 머루가 많이 나는 산이라 하여 포도산이라 불른다고 한다. 이런 산골이라면 머루나 다래는 흔하디 흔할텐데 포도산이라 부를 만큼 유독 이 산에 머루가 많이 났다는 것은 쉽게 이해할 수 없다. 이 곳 마을에서는 ‘구머리산’이라 부른다는데 구머리는 머루의 경상도 사투리라 한다.
산에 머루가 많이 났다고 하여 머구리산이라 불렀고 이후 포도산이라 부른다 한다.
6시 40분 주변이 서서히 어둠에서 깨어난다.
어둠의 베일에서 깨어난 산길
구머리산까지 650 미터로 그리 길지 않지만 짧지도 않다. 특히 나처럼 속도도 빠르지 않은데다 지구력도 없는 사람이 고민하지 않고 길에서 벗어나는 것은 쉽지 않은 결정이다. 조금 오르다보니 앞서간 선두팀이 벗어 놓은 배낭이 여나무 개 눈에 띈다. 다시 갈림길까지 되돌아올 것이니 굳이 배낭을 메고 갈 필요는 없다. 내 등뒤에 매달린 배낭의 무게가 새삼 느껴진다.
봉우리로 오르는 마지막 20여미터는 급격한 경사를 이룬다. 아직 어둠속에 둘러싸인 포도산 정상에서 각자 인증사진을 찍고 서둘러 돌아간다. 주변이 조금씩 밝아오는 느낌이 든다. 포도산에 함께 올랐던 영우님도 앞서 가버리고 나니 다시 혼자가 되었다. 내 뒤에 있던 사람들은 포도산을 들르지 않고 모두 지나가 버렸다. 기왕 혼자 남았으니 이제는 뛰지 않고 내 페이스를 찾기로 했다.
여정봉 (630 m)
포도산 갈림길에서 잠시 길이 헷갈린다. 내 짐작대로 포도산에서 돌아와 오른쪽으로 방향을 잡고 걸어가는데 갑자기 따라가기 기능을 설정한 램블러가 진동한다. 어두울 때 이곳에 올라왔는데 날이 밝으니 방향감각을 잃어버린걸까 하고 다른 방향으로 둘러보지만 램블러는 여전히 울어댄다. 결론적으로 램블러는 좌표의 편차가 너무 커서 내가 따라가기 설정한 선답자의 행로가 너무 멀리 떨어져 있는 것으로 잡힌다고 판단하였다. 그 이후로도 자주 울어대는 램블러를 무시하고 다녔다.
날이 밝으니 주변이 잘 보이지만 미세먼지로 인해 나뭇가지 사이로도 먼 곳은 볼 수 없다. 길가에 늘어선 늠름한 소나무를 감상하면서 천천히 걷는다. 묘지를 지나고 송전탑을 지나고 여정봉에 도착했다. 넓지 않은 정상에는 별다른 표식이 없고 바닥에 삼각점이 있고 그 옆에 삼각점에 대해 설명해놓은 철판 안내문이 세워져 있다. 나뭇가지로 둘러싸여 조망은 전혀 없다.
똑 같은 산 이름이 경상북도 김천시 황학산에도 있는데 그 뜻은 모르겠다.
송전탑을 지나고
여정봉에 도착한다.
여정봉 정상에서 잠시 급 내리막이 이어진다.
장구메기 (575 m)
여정봉에서 급한 내리막길을 조금 내려오니 나무도 크지 않고 산길이 꽤 넓어졌다. 낙동정맥 트레일 안내판을 지나 선답자들이 달아놓은 시그널을 따라 정맥길을 조금 더 진행하니 오른쪽으로 넓은 사과 과수원이 나타난다. 나무 아래 바닥에는 햇볕을 반사시켜 일조량을 늘리기 위한 방편으로 비닐 종이가 깔려 있다. 지인의 산행기에서 가을철에 해수(멧돼지, 고라니, 까치?)로부터 과일을 보호하기 위해 고성능 앰프를 설치하여 시끄러운 음악을 틀어놓아서 여길 지날 때 마음이 상했다고 적어 놓았다. 지금은 사방이 쥐죽은듯이 고요하다.
과수원을 둘러싸고 쇠울타리를 쳐 놓았고 그 울타리를 따라 낙동정맥이 이어지는데 왼쪽은 급경사 낭떨어지다. 낭떨어지와 쇠울타리 사이로 난 낙동정맥길은 수풀로 우거져있고 과수원에서 버린 비닐종이와 알미늄 판박이 어지러이 흩어져있다. 지금도 이 지경인데 여름날 이 곳을 지나려면 고생 꽤나 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여정봉에서 내려오면 시골 동네 뒷산같은 풍경이 나타난다. 사람사는 동네가 가까와짐이다.
영양군에서 실시하는 임도따라 걷거나 자전거를 타고 따라가는 낙동정맥트레일 안내도가 보인다.
산을 개간하여 조성한 사과 과수원에서 조금 남겨놓은 산자락을 밟고 낙동정맥을 이어간다.
개발과 보존 또는 균형발전이라는 화두를 던진다.
처음으로 지명(地名)을 지은 사람의 의도는 무엇이었을까. 장구메기는 이 곳 지형이 장구목처럼 생겼다고 하여 붙인 이름이라고 한다.
산길은 과수원 끝에서 다시 오른쪽으로 방향을 잡고 잠시 과수원과 멀어진다. 그리 크지않은 나무가 우거진 산길을 조금 진행하니 나무에 장구메기라 쓴 푯말이 붙어있다. 한라산 관음사코스를 가다보면 보이는 장구목이와 같은 의미겠지만 이 장구메기 주변의 지형에 대해 아는 바가 없으니 과연 그게 같은 유래에서 생겨난 이름인가는 확신할 수 없겠다.
말발굽 형태로 굽어진 정맥길은 금방 과수원을 다시 만난다. 그리고 과수원 관리를 위해 만든 콘크리트 포장도로에 잠시 내려섰다가 다시 숲길로 들어간다. 숲길은 길 옆으로 소나무가 열병식을 하는 듯 줄지어 서있는 아주 호젓한 오솔길이다. 땅에는 솔잎이 두텁게 깔려있어 발도 무척 편안하다.
낙동정맥길은 임도와 숲길을 들락거린다.
잠시 트인 조망
포산리 일대 정맥길은 소나무가 길가에 도열해 있는 오솔길이다.
송이버섯 채취꾼들의 임시 주거시설 - 안에서 불도 피울 수 있는 시설을 갖추고 있다.
사당인지 창고인지 용도가 궁금한 건물이다.
솔밭길은 여러 번 콘크리트 임도와 숨바꼭질한다. 잠시 임도로 나왔다가 곰솔나무 숲으로 들어간다. 송이버섯 수확철에 버섯꾼들이 임시 주거지로 사용하는 천막 두 동이 파란색 타폴린으로 단단하게 덮여 있다. 이 곳은 송이버섯이 많이 나는 곳인 듯 주요 길목에 송이 불법 채취를 경고하는 플래카드가 많이 보인다. 소나무 숲길에 허름한 시멘트 벽돌로 지어 놓은 당집이 있다.
화매재 (336 m)
포산리 마을 뒤쪽으로 나 있는 소나무 오솔길을 걷는데 마을에서 닭우는 소리가 들린다. 벌써 오전 9시가 되었다. 걸어오면서 빵 몇 조각 사과 몇 조각에 물을 마셨더니 허기는 느껴지지 않는다. 길이 편하니 몸도 힘들지 않다. 다만 남은 거리가 얼마나 될까 그리고 제 시간 안에 도착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에 쉬지 않고 걸음을 재촉한다.
임도 길 가에 버드나무에 꽃이 피었다. 일기예보에 오늘 밤 전국적으로 비 또는 눈이 내리고 기온이 크게 떨어질 예정이라 하는데 동장군이 물러간 줄 알고 성큼 나와 버린 봄처녀가 마지막으로 동장군과 씨름을 벌여야 할 판이다. 어느 핸가 4월에도 눈이 내리고 기온이 영하로 떨어져 봄처녀가 큰 충격을 받은 적이 있었는데 올해는 어찌되려는지. 아까 과수원을 지나올 때 과수원 옆 길위에 개쑥갓 꽃이 노랗게 피어 있었고 산길에는 낙엽속에 쑥부쟁이가 새싹을 틔우고 있는걸 보았다. 앞으로 눈이야 서너 번 올지 몰라도 봄은 불가역적으로 우리곁에 머울것이다.
포산리 마을에서 닭 우는 소리 개 짖는 소리가 들린다.
화매지 1 km 전 송전탑 아래에서 짧은 휴식을 갖는다.
다음주에 진행할 대둔산이 조망된다.
아까 장구메기를 지나올 때 뒤에서 남녀 두 사람 얘기소리가 들렸는데 포산리 마을을 지나 숲길에 들어서 내리막 길에서 나를 추월한다. ‘감마로드’ 시그널을 배낭에 여러 개 달고 다니는 것을 보니 그 산악회 회원들인가 보다. 백두대간과 정맥 지맥 등 산줄기 산행을 하다보면 J3, 감마로드, 무한도전 등 눈에 익은 시그널을 만나는데 그들은 우리나라 등산문화에 크게 기여하는 일을 하는 것 같다. 미지의 길을 답사하고 기록을 남기고 산행문화를 개선해나가는 일이 그들의 손에서 이루어진다고 생각한다. 물론 일부 회원들은 자신들의 등력에 도취되어 얼마나 빨리 그리고 얼마나 먼 거리를 걸었네 하는 과시욕에 사로잡힌 사람들도 있지만 근본적으로 큰 물줄기는 긍정적인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이다.
감마로드 회원을 앞세우고 내리막 길을 가는데 오른쪽 무릎에 작은 통증이 느껴진다. 지난주에 발생한 통증과 비슷한 느낌이다. 고관절에도 아픔이 전해온다. 평지를 걸을 때는 모르겠는데 내리막 비탈길에는 통증이 심하다. 스틱에 체중을 지탱하고 왼발에 조금 더 의존하면서 속도를 늦춰 천천히 걸어본다. 무사히 황장재까지 갈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밀려온다.
9시 30분 평평한 길 옆에 송전탑이 보인다. 산행지도를 보니 송전탑에서 화매재까지 1 km 거리다. 화매재에서 황장재까지 약 4 km 정도이니 지금까지처럼 시속 3.1 km 정도로 간다면 예상보다 훨씬 일찍 산행을 마감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마음에 조금의 여유가 생겼다. 날이 더워 땀도 식힐 겸 아픈 다리를 쉬어가기로 하고 송전탑 아래 양지바른 곳에 앉았다. 빵과 사과로 배를 채우고 두유와 물로 목을 축인다.
무릎이나 고관절의 연골이 상하면 어떡하나 하는 걱정이 생겨난다. 아직 이십 년 정도는 더 써야 하는데 벌써 고장나면 어쩌나. 그래도 쓰지 않고 묵혀 두었다가 영영 쓰지도 못하고 죽으면 더욱 억울한 일이 아닌가 하는 것이 이제까지의 생각이었다. 두 다리로 해야할 일들이 아직 많이 남았다. 해외 명산도 다녀야 하고 러시아 자전거 횡단도 계획하고 있는데 벌써부터 다리가 아프면 낭패도 그런 낭패가 없겠다.
조금 쉬고 나니 심적으로나마 한결 나아진 기분이다. 1 km 거리라서 금방 갈 것 같던 화매재는 송전탑에서 작은 봉우리 두 개를 넘어서야 나타났다. 화개재 도로에 내려서기 전 작년 가을 피었던 미국쑥부쟁이 마른 꽃이 가득한 밭이 고개를 내밀었다. 누군가 가족묘지로 쓰려고 사 두었는가보다. 밭에는 뭔가 심었던 듯 쇠로 만든 지지대가 드물게 박혀 있다. 그러나 사람손이 미치지 않는 것을 알고 있는 미국쑥부쟁이는 마치 지들 잔치를 벌이듯이 온 밭에 무성하게 자라 꽃을 피웠었다. 밭 가장자리에는 버들강아지가 보드라운 솜털을 하얗게 빛내며 봄이 왔슴을 전한다.
봄의 전령사 - 버들강아지가 피어오른다. 봄은 불가역적으로 우리곁에 다가왔다.
10시 40분 화매재에 도착했다. 목적지인 황장재까지 약 4 Km 남았다.
경북 영덕군 지품면과 영양군 석보면을 연결하는 911번 지방도로가 지난다.
화매재 양편에 있는 밭은 잡풀로 우거져있고 묘지가 많이 조성되어 있는걸로 보아 경작지로서의 기능은 상실된 것 같다.
화매재는 경상북도 영양군 석보면 화매리와 영덕군 지품면 황장리를 가르는 911번 지방도로 고갯길이다. 정맥길은 도로를 건너 왼쪽 황장리쪽으로 조금 내려가 오른쪽 밭 가장자리 사면을 따라 올라간다. 쇠그물 팬스가 쳐져있는 묵밭은 묘지로 쓰이는 듯 오르는 길에 무덤이 많이 보인다. 그리고 오르막 끝에서 산길은 왼편으로 능선을 따라가는데 길 왼편으로는 사과 과수원이 있다. 이 곳도 산을 개간하여 밭을 일구고 그 밭에 사과나무를 심어 과수원을 만들고 또 일부는 외지인에게 팔아 묘지로 쓰게 된 난개발의 전형이다.
삼군봉(三郡峰 시루봉 532 m)
어지러운 과수농장을 지나 본격적으로 산길로 접어들기 직전 임도끝에는 누군가 몰래 버려놓은 폐비닐이 너저분하게 널려있다. 중앙정부든 지방정부든 행정력이 미치지 않는 치외법권 지역이다. 진정한 환경보호를 위해서는 이처럼 구석진 곳에 버려지는 오염물에 대해 철저한 수사와 처벌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다음주에 진행할 주왕산 구간 마루금이 펼쳐진다.
그리고 산 구석에는 소리없이 봄이 다가오고 있다. 생강나무 노란꽃망울이 곧 터질듯이 부풀어있다.
감태나무가 많이 보인다.
이 산에는 녹나무과에 속하는 감태나무가 많이 보인다. 추위에 약한 나무라서 중부이남에서나 볼 수 있는데 우리가 서 있는 위치를 잘 보여주는 것 같다. 산 봉우리에 오르니 멀리 삿갓처럼 끝이 뾰족한 봉우리가 보인다. 오늘 산행코스중 대표산이면서 마지막 봉우리인 시루봉이다. 저 시루봉 정상에서 하산기점인 황장재까지 1 km 라 하니 이제 산행의 종점이 다가오는 것을 실감하겠다.
그러나 산은 눈에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다. 내가 두번째 봉우리를 넘어서는데 앞서간 영우님한테서 전화가 온다. 어디냐고 묻길래 이제 시루봉이 보인다고 하니 그럼 다와가네요 하고 끊는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그는 내가 삼군봉 정상에 다 와가는줄 알고 라면을 끓였다가 다 불어터져서 버렸다고 한다. 시루봉 뾰족한 봉우리가 저 앞에 보이는데 산길은 다시 오르내림을 반복한다. 다행히 다리 통증은 조금 완화된 느낌이다. 아마 내려가는 구간은 얼마 안되고 오름 구간이 길어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오늘 여정의 마지막 봉우리 시루봉(삼군봉)이 점차 가까워진다.
역시 멋드러진 소나무 군락과 또 앙상한 가지사이로 어렴풋이 보이는 다음 산행구간의 대둔산과 태행산을 바라보며 산행을 이어간다. 그리고 12시 마침내 삼군봉 정상에 올랐다. 큰 바위 덩어리들이 받치고 있는 좁은 평지가 있고 나무에는 준.희 님이 걸어놓은 정상표식이 있다. 청송, 영덕, 영양군에 공통으로 속해 있는 산이라는 의미다.
작은 바위로 받쳐진 삼군봉(시루봉) 정상
청송 영덕 영양 세 개 군을 아우르는 봉우리.
시루봉에서 급경사를 내려간다. 나무사이로 주왕산 마루금이 어렴풋이 비친다.
황장재 (黃腸峙)에서 산행을 마치다 (13:00)
이제 1 km 남았다. 신갈나무 숲 사이로 다음 산행지인 주왕산 구간이 어렴풋이 보인다. 산 모양이 흐릿하게 보이는 것은 미세먼지가 얼마나 심한가를 보여주는 것 같다. 정상 바위에서 내려서는데 오른쪽 무릎과 고관절에 통증이 심하게 전해진다. 바위에 걸터앉아 잠시 쉬면서 빵과 사과로 요기를 한다.
정상에서 내려오는 초입 짧은 급경사에서 통증이 심하게 다가온다. 왼발에 힘을 싣고 스틱에 의지하면서 천천히 안부에 내려서니 평지성 내리막길이 나타난다. 원두막 쉼터가 나오고 이정표에 황장재 0.94 km라 표시되어 있어 이제 다 왔다는 안도감으로 편안한 임도를 따라 내려가는데 램블러가 또 다시 진동한다. 이를 무시하고 내 나름대로 방향을 잡아 편안길을 따라 내려가니 정맥길에서 많이 벗어나 있다.
쉼터에서 신촌리와 황장재로 가는 이정표를 만난다. 이정표는 낙동정맥을 타는 산꾼에게 혼선을 준다.
나는 잠시 편한 길의 유혹에 빠져 이정표를 따라 진행한다.
다음주 가야할 주왕산 마루금도 보면서
이제 다 왔다는 안도감에 도취되어 편안한 오솔길을 걷는다.
그리고 43번 국도에 내려섰으나 저 윗쪽까지 올라가야 한다. 편안한 길을 선택한 과보다.
12시 50분 마침내 34번 국도에 내려섰다. 고개 위로 오르는 길가에 작은 공원이 있다. 청송면에서 만들어 놓은 공원인데 옛날 소가 끄는 써레에 아이가 타고 있는 조형물이 아스라이 옛 추억을 불러온다. 내가 어렸을 때 사촌 형이 논에 써레질을 하면서 나를 써레에 태워줬던 기억이 새삼 떠오른다. 소공원에는 큰 시비(詩碑)가 세워져 있다. 아마 이 고장 출신의 시인인가보다. 월인(月仁) 이 창환의 <고향>이라는 시가 큰 비석에 단아하게 새겨져 있다.
원래 정맥길은 황장재 휴게소로 내려온다. 철제 팬스가 쳐져있는 틈새로 선답자들이 거러놓은 시그널이 나부낀다. 휴게소는 황토방 팬션으로 탈바꿈한 것인지 원래부터 팬션이 있었던건지 모르지만 언뜻 보아 한산한 한옥 가옥 여러 채가 영업중이다.
엉뚱한데로 내려온 덕분에 옛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멋진 조형물도 만난다.
황장재 휴게소에는 황토구들 팬션이 있다.
오후 1시 고갯마루 버스 주차된 곳에 도착하니 미리 내려와 있던 산님들이 반긴다. 일부는 11시 이전에 도착했고 나머지도 12시 전후로 다 내려온 모양이다. 모두 라면 등으로 점심식사까지 마쳤고 언제든 출발할 만반의 준비가 갖춰져 있었다. 마감시간 1시간 30분이나 일찍 내려왔슴에도 많은 이들이 기다리게 한 것에 미안한 마음 한 컨에 맴돈다.
고개 위에는 영덕군 지품면(知品面)의 유래와 이 고장의 변천과정을 설명하는 큰 비석이 세워져 있다. 바쁜 와중에도 비석 앞에서 인증사진을 남기고 서둘러 버스에 오른다. 1시 30분 황장재를 출발하여 단양팔경 휴게소 및 덕평 휴게소에 정차한 후 오후 5시 서울에 도착했다.
오후 1시에 지품면 황장재 유래비 앞에서 인증사진을 찍고 산행을 마친다.
에필로그
다른 구간에 비해 거리도 짧은 편이고 평이한 흙산으로서 난이도도 제일 낮은(쉬운) 코스였다고 한다. 집에 돌아와 씻고 저녁을 먹고 난 이후에도 무릎과 고관절에 통증이 남아 있어 소염 진통제 한 알을 먹었다.
전에 거래처 지인과 백두대간에 대해 얘기하는 중에 그 분이 한 말이 기억난다. 무릎 통증 때문에 진통제를 먹으면서 대간 산행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왜 그리 해야 하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말이었다. 말인즉슨 산행을 하는 것은 건강이 좋아지라고 하는 것인데 이처럼 건강을 해치면서까지 할 이유가 있느냐는 것이다. 당시 나도 그 말에 적극적으로 동조했었다.
그런데 지금 내가 꼭 그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하룻밤 자고 나니 통증은 다 가시고 자전거로 몸을 풀어주니 원래대로 돌아왔다. 일요일은 하루 종일 집에서 조용히 보냈다. 낮부터 눈이 내리기 시작하더니 밤새 내린 눈이 제법 많이 쌓였다. 글을 마치는 월요일 지금도 늦겨울 눈이 펑펑 쏱아진다.
이번주는 장인 제사가 있어 대구에 가야하는데 황장산 구간 정맥산행에 참여할 수 없을 것 같다. 아프면서도 참고 절뚝거리면서도 걷는 것은 무슨 벼슬을 하고자 하는 것도 아니고 무슨 영화를 누리고자 하는 것도 아닌데 왜 아쉬워하는 걸까. 나도 내마음을 알 듯 말 듯 아리송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