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검 / 조미숙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은 이제껏 한 번도 겪어 보지 못했다. 5년 전 아버지가 처음이었다. 94세로 생을 마친 아버지는 장수했고 호상이라면 호상이었다. 건강하게 살다가 갔다면 더 없이 그럴 것이다. 하지만 병원에서 한 달여를 힘겹게 보내다 유언 한마디 못하고 돌아가셨다. 날이 갈수록 비쩍 마르면서 거칠게 내뿜는 숨은 그대로 가슴에 박혔다. 아무런 손도 쓰지 못하고 죽음과의 사투를 지켜 보아야만 하는 자식으로서는 그저 죄스럽고 안쓰러울 뿐이었다.
임종은 보지 못했고 입관식에서 아버지의 얼굴을 봤다. 사랑하는 아버지를 여읜 슬픔 안에는 주검을 처음 본다는 두려움도 있었다. 식구들 모두 흐느끼며 입관 절차를 지켜보다가 안으로 들어와 작별 인사를 하라는 말을 듣고 아버지에게 다가갔다. 얼마전까지 뜨거운 피가 흐르던 그 살갗은 차갑기만 했다. 살아생전 다정한 손길 한 번 어루만져 드리지 못하고 뒤늦게야 이렇게 쓰다듬었다. 슬픔이 앞서서인지 내 아버지여서 그런지 생각보다 두렵진 않았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일 년 뒤에 작은오빠를 보냈다. 사고로 두 달여를 의식불명으로 지내다 기적적으로 깨어나 오랫동안 병원 생활을 했다. 퇴원하고는 식구들과 요양보호사의 도움으로 생활하다 어느 날 홀연히 떠났다. 요양보호사가 오지 않는 주말 오후에 근처에 사는 큰오빠가 살펴보러 들렀는데 화장실에서 발견됐다. 제대로 걷지 못하는 작은오빠는 여기저기가 자주 깨지는 바람에 피를 많이 흘렸다. 그날도 역시나 거실에 피가 난장판이 되어 있고 화장실에서 물소리가 나니까 씻는 줄 알았다고 했다. 119를 불렀는데 이미 사망 상태라 경찰이 와야 했다. 부검까지 했다.
그렇게 죽은 오빠를 어찌 볼까 걱정이었다. 그런데 창백했던 아버지와 달리 혈색이 도는 듯 약간 붉어 보였다. 아버지처럼 병을 앓다 가면 살이 쭉 빠져 앙상한 몸이어서 죽음을 더 인정하기 쉬울 텐데, 살집이 그대로 있어 건강한 몸집이 마치 살아있는 듯 했다. 심장이 터져 그렇게 피를 쏟았는데 그것도 모르고 씼겠다고 화장실로 가서 그대로 가버렸다. 맨 정신으로 혼자서 예기치 않는 죽음과 맞닥뜨린 그 공포를 감내했을 걸 생각하면 그렇게 평온한 얼굴을 하고 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정말 죽음은 아무것도 아닐까 싶었다.
그리고 올해 엄마가 돌아가셨다. 이미 같은 곳에서 두 번을 경험한 장례이건만 그래도 주검을 보는 일은 만만치 않다. 엄마는 환자복을 채 벗지도 못하고 영안실의 차가운 냉동실에 누워 있었다. 헝크러진 머리에 마스크도 벗기지 않았고, 단추가 하나 풀리고 옷이 접혀 있는 정돈되지 않는 차림 그대로였다. 무표정한 엄마의 얼굴에선 아무것도 읽을 수 없었다. 미처 임종을 지켜보지 못한 식구들에게 한 번이라도 더 보라고 해서 갔는데 보지 말걸 그랬다. 죽은 사람은 인권도 없을까?
아버지는 화장하기를 싫어했다. 하지만 고향에 매장하면 자식들이 사는 서울과 너무 멀어 돌볼 이가 없다고 해서 어쩔 수 없이 화장했다. 좁은 땅덩어리에 무덤들로 뒤덮인다고 호들갑을 떨던 때가 엇그제 같은데 요즘은 거의 화장을 하는 추세다. 엄마는 "죽으면 불로 꼬실라불어라 "하더니 아버지 화장하는 것을 보고는 묻어달라고 했다. 하지만 이미 아버지 모신 곳에 엄마 자리까지 생각해 2인실로 사 둔 터였다. 화장터로 간 주검들은 가루만 남겼다. 바람 불면 훌훌 날아가버릴 것 같았어도 좁은 항아리에 갇힌 신세가 되었다. 영혼들이 오밀조밀 모여 사는 아파트에 부모님과 오빠는 이웃하고 있다. 환경 오몀이라는 이유를 들어 함부로 유골을 뿌리지 못하게 하는 법 때문에 고향으로도 돌아가지 못하는 신세가 되었다. 썩어서 없어질 몸뚱아리 흙으로도 돌아갈 수도 없어 죽어서도 영어의 몸이 되어버렸다. 당신들이 원하지 않았는데도 말이다.
서울 시립 승화원에서는 하루에도 수많은 주검들이 들어와 한줌 재로 사라진다. 갈 때마다 몇 시간씩 대기하다 순서를 맞았다. 한 사람의 몸이 한 시간 남짓이면 재만 남겨 항아리에 담겨진 채 사랑하는 이의 품에 안긴다. 허망하다. 사연 많은 인생만큼이나 주검들도 다양할 것이다. 어쩌면 내가 본 주검들은 아주 평범한 것일수도 있다. 내 혈육이기에 감정 이입되어 각인되었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어떻게 죽을지, 어떤 주검일지 모를 일이지만 건강하게 살다 내 의지대로 존엄하게 죽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