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꽃이 만발할 무렵 달은 떠있고
아낙 둘이 물을 길다가 뭔가 상념에 빠졌다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일까
뒷문 곁으로 난 돌담...
이웃집 양반네가 그녀들을 보고 있다
달빛이 은은하고
풍만한 바위 위에 꽃, 우물가의 물동이도 어여쁘다
여인네의 생각하는 폼새도 귀엽기 그지없다
늑대처럼 아저씨가 등장해서 그림에 춘정을 가득 심어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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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서방이 지난밤 다리가 부러져 집에 드러누워 있다는 소문이 이른 아침 우물가에서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다리가 부러진 사연이 기가 막혔다.
아침상을 물리고 난 동네 사람들이 하나둘 송서방네 집으로 모여 들었다.
부러진 오른쪽 무릎에 부목을 대고 광목으로 다리를 칭칭 감은 송서방이 누워서 끙끙 앓고 있고, 의원은 진맥을 하고, 부인은 송서방 가슴팍을 때리며
“아이고 이 미련한 사람아~
쌀 한자루가 뭐 그렇게 중하다고 도깨비한테 달려들었소, 그래!”
하며 하소연했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여?”
마을 사람들의 물음에 윗몸을 겨우 일으킨 송서방이 간밤에 생긴 일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삼경이나 되었을 거요.
부엌에서 뭔가 덜거덕거리는 소리가 나 옷을 입고 나가 봤더니 글쎄...”
송서방은 말을 잇지 못하고 와들와들 떨었다.
의원이 건네준 우황청심환 한알을 삼키고 난 송서방은 다시 입을 열었다.
“어둠 속에서 시커먼 놈이 쌀자루를 메고 부엌문을 열고 나가지 뭡니까.”
동네 사람들은 숨소리조차 죽였다.
“제가 다듬이 방망이를 들고
‘게 섰거라.
이 도둑놈아’
소리치며 달려들자 그 쌀도둑이 돌아서는데...
아~ 글쎄~
외눈깔에 털북숭이 얼굴에 머리엔 뿔이 달린 도깨비지 뭡니까.
그 도깨비란 놈이 한손으로 내 멱살을 잡더니 하늘로 추켜올려 마당에 냅다 패대기를 칩디다.”
동네 사람들의 탄성이 터졌다.
“덩치는 크던가?”
“키는 저만한데 힘이 장사였어요.
한손으로 저를 추켜드는게 꼭 호리병 하나 드는 것 같았어요.”
도깨비의 공포가 조용하던 동네를 덮쳐 밤만 되면 사람들은 마실도 가지 않고 문을 꼭꼭 닫아 걸었다.
보름쯤 지나자 송서방이 나들이를 하기 시작했다.
오른쪽 다리를 굽힐 수가 없어 뻗정다리가 된 송서방은 지팡이를 짚고 절뚝거리며 동네로 나왔다.
도깨비가 이제는 떠나갔다고 동네 사람들이 가슴을 쓸어내릴 때쯤, 홍초시네 집에 도깨비가 나타났다.
쌀 한자루를 퍼 가는 걸 문틈으로 뻔히 보고서도 꼼짝없이 숨을 죽였다.
쌀도둑 도깨비는 밤만 되면 온 동네를 헤집고 다녔다.
이씨네, 김가네, 곽서방네, 권참봉네가 도둑을 맞았다.
나이 지긋한 어른들은
“때가 되면 도깨비가 동네를 떠날테니 괜히 달려들다가 송서방처럼 병신 되지 마라”
며 젊은이들을 타일렀다.
도깨비의 쌀도둑질은 계속 이어졌다.
어느 날 밤~
“도깨비를 잡았다!”
는 고함 소리에 동네 사람들이 횃불을 들고 몰려왔다.
임가가 쓰러진 도깨비를 타고 앉아 주먹을 날리고 있었다.
도깨비 탈을 잡아당겨 벗기자 그는 바로 뻗정다리 송서방이었다.
며칠 전 장에 갔다가 고개를 넘어오던 임가가 배탈이나 풀숲에 들어가 엉덩이를 까발리고 앉았는데, 송서방이 지팡이를 짚고 쩔뚝쩔뚝 고개를 넘다가 사방을 두리번거리더니 지팡이를 옆구리에 차고 성큼성큼 걸어가는 걸 봤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