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꽃집의 심술과 몽니
아직 냉동의 시절인데 ‘입춘대길(立春大吉) 건양다경(建陽多慶)’ 을 대문짝에 내 걸고 마치 선전 포고하듯이 동장군을 향하여 당당하게 봄을 선언하는 입춘(立春, 2월 4일)이 겨울 기세를 꺾는가 싶더니 그다음 날 향방을 알 수 없을 만큼 심한 눈 폭풍이 몰아치면서 입춘을 비웃는다. 구름이 걷히자 하늘에서 빛나는 양광(陽光)은 동장군의 포로였던 빙설(氷雪)에게 자유를 만끽하며 산하 계곡에 흐르게 하니 대동강 물도 풀리는 우수(雨水, 2월 19일)가 그 봄의 바통을 잇는다. 이쯤 되었으니 봄이 성큼 다가왔을 법한데도 저 멀리 하얗게 모자를 쓴 설산의 한국화 풍경을 보면서 겨울은 아직 떠날 마음이 없는 것 같다. 한 차례 폭설이 내리고 오가는 발길에 어깃장을 놓으며 강짜를 부린다 해도 어느새 겨울잠꾸러기 개구리는 봄기운에 화들짝 놀라며 봄의 새 아침을 맞이하는 경칩(驚蟄, 3월 5일)이 되었다. 제 놈이 아무리 심술을 부린들 창조주가 정한 섭리를 설마 거역할라구? 빼도 박도 못하는 봄이 곧 다가와 분명하게 동춘(冬春)의 경계선을 그어주고, 흘러가는 저 구름에 몸을 싣고 떠날 것을 주문하는 춘분(春分, 3월 20일)인데 이제는 자신 있게 선을 넘지 말라고 한 차례 훈계라도 해야 할 것 같다. 그런데 고 녀석 참 끈질기도 하다. 이때 사용하려고 설산에 감추어둔 30cm 두께의 눈 폭탄을 안겨주고 기온도 수은주 이하로 끌어내리며 최후 발악을 한다. 이번엔 이미 개화 만발해야 할 남녘의 춘화가 아직도 꽃망울에 갇혀 있다고 하니 봄을 향한 희망의 끈이 점점 가늘어지는 것 같아 심연에 감춰두었던 짜증이 시나브로 올라온다. 꽃샘추위의 진상이다. 심술궂기가 끝이 없으니 네 놈을 ‘심술 꽃샘’이라 칭한다. 하는 짓이 꼭 마귀할멈 뺨친다.
이제 선을 그어주려고 찾아온 춘분은 만물에게 어느 줄에 설 지를 주문한다. 꺼져가는 동장군에 설 것인가? 화사한 봄꽃님에게 설 것인가? 대세는 이미 기울었으니 현명한 판단을 기대한다. 춘분이 노래하자 봄의 걸림돌은 물러가고 봄꽃 잔치에 설렘이 턱밑까지 차오른다. 흔히 봄꽃이 만발하는 시간을 '꽃피는 춘삼월'이라고 한다. 사실 그 달은 음력이니 4월이 되어야 이런 춘향(春香)에 도취되고 해묵은 겨울의 잔상에서 온전하게 벗어날 수 있으리라. 그런데 춘삼월이 되어도 여전히 마음을 불편하게 할 놈이 또 하나 기다리고 있다는데 그 녀석 생각만 해도 또 인상(人相)이 찌푸려진다. 중국 발 누른빛 모래 황사(黃砂)다. 봄이면 고비사막에서 편서풍을 타고 날아오는 불청객, 오는 길에 미세먼지까지 친구 삼아 같이 찾아와서는 사람의 자유를 억압하고 행동을 통제한다. 당장 호흡기 질환이 야기되고 긴 세월 몸에 축적되면서 암을 비롯한 각종 질병의 주원인이 된다고 협박한다. 휴~~ 제대로 봄을 맞이하기가 이렇게 어려운지 긴 한숨에 입이 쩌~~억 벌어진다. 사람들의 봄 잔치에 몽니를 부리는 네 놈을 ‘몽니 황사’라 명한다.
올해 우리나라의 춘삼월엔 나라와 민족의 미래를 책임지고 다음 세대에게 꽃 잔치 향연(香煙)을 날릴 국가적 행사가 짜여있다. 제22대 국회의원을 뽑는 총선거다. 우후죽순(雨後竹筍)처럼 이름도 모를 정당들이 국민 앞에 선을 보이고 적임자를 정한다고 공천 한마당이 펼쳐졌다. 얽히고설키는 동안에 어렵사리 낙점을 받은 후보들은 상기된 얼굴로 국민 앞에 선다. 겨우 예선전 통과했는데도 마치 결승전에서 승리를 거머쥔 사람처럼 벌써부터 양 어깨에 힘이 들어가는 후보도 있다. 그런데 밤새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본 선거는 그냥 요식 절차일 뿐 이미 의원 계급장을 어깨에 달고 임관한 장교처럼 있던 그가 후보직 사퇴 혹은 공천 취소라는 철퇴를 맞고는 비명횡사할 일이 터진다. 기억에서조차 이미 지워진 지 너무 오래된 말(言語)의 실수가 원인이다. 아직 철 모르던 청년 때의 호기 서린 말말말. 그때나 그 이후에 들었던 사람도 아무런 문제거리가 아니라서 그냥 껄껄 웃으며 넘길 수 있었던 그 말이었는데 이렇게 무서운 부메랑이 되어 폐부를 타격할 줄 그 누가 알았을까? 춘삼월엔 꽃 잔치 벌여놓고 샴페인 터뜨리며 브라보를 외칠 만반의 준비가 이미 끝난 그들에게 여전히 심술 꽃샘과 몽니 황사가 작동했다. 꽃 잔치는 그렇게 쉽게 열 수 있는 아무나의 잔치가 아닌 게 분명하다.
말씀이신 하나님이 그 형상대로 창조하신 인간에게만 있는 특별한 능력이 말(言)이다. 때로 내뱉은 말은 타인의 가슴을 아프게 하는 비수(匕首)가 된다. 그것이 돌고 돌아서는 결국 농설가(弄舌家)인 본인의 꿈을 뭉개고 재기의 기회마저 잔인하게 짓밟는다. 세치밖에 안 되는 짧은 혀가 길고 긴 인생길의 몽니가 되어 심술을 부리고 있다. 우리 속담에 “낮말은 새가 듣고 밤 말은 쥐가 듣는다”라고 했다. 밤이고 낮이고 나 혼자 한 말은 영원한 비밀처럼 여길 수 있지만 그 말을 새와 쥐가 들을 줄 누가 알았을까? 낮에 한 말을 들은 새가 심술을 부리고 밤에 한 말을 들은 쥐는 내 길에 몽니가 되었다. 진정 어린 사과의 눈물을 흘리며 용서를 구하지만 정치언어 사전에는 그런 용어 자체가 등재되어 있지 않다. 예쁜 말, 기쁜 말, 사랑의 말이 우리 사는 겨울 세상에서 봄꽃 잔치를 치를 수 있는 비결인 걸 깨닫는다. 긍정, 칭찬, 감사의 언어는 춘삼월에 벌어질 봄꽃 잔칫상에 올려야 할 메인 디쉬가 되어야 한다. 그 상을 받은 착한 국민들은 때 아닌 행복에 겨워 너무 기쁜 나머지 눈물로 화답할 게 분명하다. 항상 심술과 몽니가 될 내 입술에 재갈을 물려야 할지 고민해야 진정 그리스도인이다. “너는 이 말씀을 가지고 여호와께로 돌아와서 아뢰기를 모든 불의를 제거하시고 선한 바를 받으소서 우리가 송아지를 대신하여 입술의 열매를 주께 드리리이다”(호세아 14:2).
심술 꽃샘이 만든 봄의 눈꽃 세상
잔인하게도 예쁘게 핀 봄 꽃에 앉은 눈송이
심술 꽃샘 때문에 아직도 꽃망울에 갇혀 있는 봄꽃들 - 진해 군항제의 벗꽃들(3월 21일)
몽니 황사가 찾아온 희미한 풍경
고비사막은 중국과 내몽골에 위치해 있다.
고비사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