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울의 움직이는 성'을 본 적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하울의 눈부신 외모를 찬양하게 됨과 동시에(물론 이것은 내 개인적인 생각일 수도 있지만) 움직이는 성 자체에 매혹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다이얼을 돌릴때마다 다른 곳으로 연결되는 문, 네발로 기우뚱거리면서 움직이는 성, 그 기상천외한 성에 어울리는 기상천외한 거주민들 까지. 내가 샌드아트를 보면서 느낀 감정 또한 움직이는 성에 대한 감상과 비슷하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그림이 모래위에 새겨지고, 날 가보지 못한 것으로 끌어주는 움직이는 성의 마법같은 예술, 그것이 바로 샌드 아트다.
사실 샌드 아트라고 할때 사람들은 모래로 그린 그림을 떠올리지만 정확히 말하면 샌드아트는 한 장의 그림 보다는 연속적인 그림, 즉 애니메이션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파도에 쓸려 사라지는 해변의 모래성처럼, 모래에 그린 그림은 지우고 다시 그리는 것이 간편하고 오히려 그런 면을 적극적으로 이용해서 샌드 아트 만의 독특한 퍼포먼스를 탄생시켰다. 어두운 강연장에서 유일하게 비치는 빛이 모래에 의해 덮이고 가려지는 광경은 뭐라 말 못할 경험이었다. 물론 이러한 라이브 퍼포먼스도 좋았지만 대신 그림들을 빠른시간 안에 그리고 변형시켜야 하므로 샌드아트의 진면목은 동영상에서 드러났다. 회심을 기울여 만들었을 한장 한장의 그림이 편집되어 빠른속도로 만들어지고 변형되고 사라지는 동영상은 정말 대단하다는 말밖에 할 수 없다.
하지만 이것은 샌드아트에 대한 보편적 평가일 뿐 이번 강연에 대한 후기가 될 수는 없다. 이번 신미리 작가님의 강연은 간단하게 말하자면 그 자체로 하나의 예술처럼 느껴졌다. 난 대학교 1-2학교때 뮤지컬 동아리를 하면서 간단한 주크박스 뮤지컬-이미 있는 곡들에 내용을 붙여서 만드는 뮤지컬-을 만든작이 있었는데, 음악과 안무와 어우러지고 그 전체를 묶어주는 스토리를 위한 대사를 짜는 데 진땀을 뺐었다. 이처럼 뮤지컬은 음악과 춤, 그리고 대사가 어우러진 정합 예술이라 할 수 있는데, 이번 강연 또한 주제를 가지고 유기적으로 퍼포먼스와 배경음악, 그리고 이야기 어우러지는 모습이 마치 뮤지컬 같은 종합 예술을 연상시키는 모습이였다. 어렸을 때부터 그림그리기를 좋아했지만 무언가를 그릴때마다 그림에 대한 재능이 없다는 것을 처절하게 느낀 나로서는 신미리 작가님이 손을 놀릴때마다 그림 한편이 뚝딱 만들어지는 모습이 경이롭고 마법으로 느껴지기 까지 했다. 그리고 직접 시범을 보여주시면서 간단한 그림을 알려준 다음 융합사 친구들에게 직접 그림을 맡기고 같이 그림을 그리는 퍼포먼스는 세대간의 화합을 보여주는 모습 같아서 굉장히 감동 받았다.
이건 사족이지만 모래의 감촉이 어떨지 궁금하기는 했지만 용기가 없어서 나중에라도 만지지 못한게 좀 후회된다. 작가님이 누구나 할 수 있다고 말씀해 주셨지만 없다시피한 그림 재능이 내 발목을 잡았다. 도전이라는 융합사의 모토와는 안 어울리는 일이었다고 지금에서야 반성을 해 본다. 그리고 구불구불한 머리를 가진 여인의 모습은 간단하게 만들 수 있어서인지는 몰라도 여러 그림에서 나타났는데 그것이 신미리 작가님의 자화상이 아닐까 생각을 해 보았다. 작가님이 모자를 쓰고 계서서 머리가 웨이브졌는지는 보지 못했지만 세월호 추모 영상에서 슬퍼하는 작가님의 모습을 대변하는 것이나 행복을 주제로 할 때 남편가 행복하게 늙어가는 여자의 모습다 작가님의 모습으로 느껴졌다. 사실 모래로 그린 그림은 곧 지워지기 때문에 덧없다. 하지만 그것이 지워지고 변형되는 모습을 보여줄 때, 영상으로 남아 우리에게 다가올 때 모래그림은 더 이상 덧 없지 않고 예술이 된다. 흔히들 인생이 덧없다고 하는데, 샌드아트는 우리가 그 순간순간을 기억하기에 덧없지 않음을 보여주었다. 그래서 난 이 강연을 들은 게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