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1:21~28 귀신을 쫒으라
시71:1,12,13, 36:1,3,; 막5:1~20, 시60:1,2,5 설교; 막1:21~28,
예수님은 왜 이 땅에 오셨습니까?
간단한 질의이지만 중요합니다.
예수님의 삶의 목적은 무엇이었습니까?
그분은 우리 죄 때문에 십자가에 죽으러 오셨다고 말합니다.
어떤 이는 이렇게 말하고 또 어떤 사람은 예수님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러 오셨다고 말합니다. 또는 그는 자기 양을 모아서 천국 문을 여시고 성부 하나님을 나타내려 오셨다고 말합니다. 이 모든 답변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요한일서 3장 8절에는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이유에 대해서 또 다른 답변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놀랍게도 요한 사도는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이유로써 마귀를 멸하러 오셨다는 것은 그 동안 익숙했던 이유들과는 완전히 다릅니다.
그것은 목자로서의 모습도 아니고 유월절 양의 모습도 아닙니다.
그것은 군인이 자기 적을 전멸시키고 싶어 하는 전사의 모습입니다.
“온유하고 온화하신” 예수님은 마귀의 일을 멸하러 오셨습니다.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 온 것이라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이는 영원히 거하느니라(요한일서2:16~17)”
21절에 “이에 저희가 가버나움에 들어가니라 예수께서 즉시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 가르치시매”라고 말씀합니다.
회당이란 곳은 어떤 곳이었습니까?
그곳은 지역 유대인 회중이 모이는 곳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마을에는 많은 회당이 있었습니다.
이 회당은 북쪽에 있는 작은 마을 가버나움에 있었습니다.
회당은 유대인이 정착하는 로마 제국 전역에 어디든지 있었습니다.
회당은 사도행전에서 사도들이 처음 그리스도에 관해 전파할 때 갔던 곳입니다.
이런 회당들에서 안식일 예배가 항상 드려지고 평일에도 회당은 열렸습니다.
예루살렘 성전 예배와는 달리 회당예배에는 의식이나 종교적 의례가 거의 없었습니다.
그것은 단순한 예전 곧 찬송을 부르고 기도를 드리고 축도하고 성경 낭독을 했던 장소입니다. 회당에서 실제 초점은 하나님 말씀을 가르치는 것이었습니다.
회당에는 우리처럼 안수 받은 목사가 없었습니다.
요즘에도 사탄의 역사로 그런 교회가 있고 나 혼자 믿음이면 된다는 내가 복음의
믿음 즉, 사탄의 역사죠
그리고 성전을 함부로하고 아무렇게나 대충 이렇게 그냥 세상 회의실 세미나실처럼
하는 것 사탄의 역사이다, 성전의 귀함과 제사의 자리의 위엄과 귀함을 모르는 믿음
23절 “그 회당에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이 있더라”
우리는 마가복음 곳곳에서 이런 악령에 사로잡힌 사람들을 계속 보게 됩니다.
그들의 목숨을 외부세력 곧 사탄이 지배하고 점령했습니다.
마가복음에는 예수님이 광야에서 시험 받으시는 동안에도 사탄이 등장합니다.
이것은 정면 대치였고 중대한 전투였고 사탄이 패배자라는 것이 드러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사탄은 대단한 결단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사역 내내 그는 주님과 주님의 나라를 끊임없이 반대할 것입니다.
성경 다른 곳에서 사탄은 악령들, 귀신들로 이루어진 대규모 군대의 장군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선한 일을 파괴하려는 사탄의 뜻을 땅에서 행합니다.
때로는 사탄의 영이 이 땅에서 강력하고 중요한 자들을 공격하여 광범위한 피해를 입힐 수도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사탄의 악령이 회당에 있는 평범한 사람을 표적 삼아서 삶을 악몽으로 만들어 버린 것을 볼 수있습니다.
귀신들림이 일어나면 그것은 마치 사탄이 그 마음을 해킹한 것과 같습니다.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 하리요?”
우리는 더러운 것, 부정한 것과 관련이 되어 선 안 됩니다. 우리는 죄 짓게 유혹하는 모든 것을 피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분에게 속해 있습니다.
귀신들은 그리스도가 누구인지 인식하는 유일한 자들 중에 하나입니다.
대부분 복음서에서 모든 사람은 심지어 제자들조차도 어둠 속에 있어서 주님을 알아보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그러나 더러운 귀신들은 예수님께 정말로 어떤 일이 일어나려고 하는지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더러운 귀신이 놀라서 소리지른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멸할 권세를 가지고 오셨습니다.
그러면 그때 더러운 귀신이 이런 말로 예수님 앞에 믿음을 고백하는 것입니까?
아니면 백기 투항을 하고 있는 것입니까?
그런 게 아닙니다. 귀신은 거룩하신 하나님과 공존할 수도 없고 함께 할 수도 없습니다.
24절에 “이분은 나사렛 예수요 하나님의 거룩하신 자”라는 말은 맞지만 하나님과 함께할 수 없는 것입니다.
2. 예수님의 말씀은
“너를 낮추시며 너로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열조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너로 알게하려 하심이니라(신명기8:3)”
마침내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물론 설교를 하고 계셨지만 마가는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을 우리에게 알려줍니다. 예수님은 날카롭게 말씀하셨는데 요지는 “잠잠하고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를 꾸짖어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두 가지 명령을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두 명령으로 마귀를 책망하는 이유를 다른 방식으로 보여주신 것입니다.
첫째, “잠잠하라”고 명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설교가 방해 받는 것을 허락지 않으셨습니다. 여기서 예수님은 복음을 설교하고 계셨고 언제나 그렇듯이 사탄은 그 소식을 청중이 못 듣게 애쓰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그가 말하는 것을 허락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진심으로 사랑하지 않는 자들이 고백하는 것을 싫어하십니다
귀신은 잠잠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문자적으로는 소나 말이 입을 막는 것처럼 “재갈을 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과의 나눔의 시간에는 잠잠하고 생명의 양식을 채우기 위해서는 잠잠하라
너는 생명의 재단을 올리는 시간이고 너희안에 사탄을 쫒아내는 시간으로 십자가의 보혈의 죄씻는 시간이란 것을 알라.
그리고 명합니다 너희안에 귀신 마귀를 쫒아내라.
주님이 떠나가라 명하시기에 나도 선포하고 대적하여 사탄 마귀를 쫒아내야한다.
예수님의 두 번째 명령은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였습니다.
마가복음 5장 8절에서 “더러운 귀신아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이 말씀은 주문이나 마술이 아닙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의 탁월한 권세와 힘으로 “이제 네가 떠날 시간이다”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마가복음 전반에서 예수님은 자신의 말씀으로 기적들을 행하셨습니다.
그분이 말씀하시면 악귀들이 떠나갔습니다.
그분이 나병 환자들에게 깨끗하게 되기를 명하시자 그들은 깨끗해졌습니다.
그분이 저는 자에게 걸어가라고 명하시자 걸었고, 귀먹은 사람이 듣게 되고 눈 먼 사람은 보게 되고 폭풍은 잠잠해졌습니다.
그들은 모두 그분의 말씀을 경청하였고 순종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로서 그분의 능력은 정말로 대단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께서 더러운 귀신에게 명하시자 그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26절 “더러운 귀신이 그 사람에게 경련을 일으키게 하고 큰 소리를 지르매 그가 그 사람에게서 나오니라” 그 귀신이 떠나려고 하지 않아서 폭력적 행동이 일어났습니다.
집 없는 사람이 되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나 귀신은 거기서 나와야 했습니다.
마가복음 5장의 군대 귀신들은 돼지 떼에 들어가 바다에 돼지들이 빠져 죽었지만 본문의 귀신이 일단 그 사람에게서 나와서 어떻게 될지는 우리가 알 수 없습니다.
물론 그 귀신이 그 사람에게서 나왔다는 사실은 마귀와 함께 불 못에 던지울 모든 귀신들의 종국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이 더러운 귀신도 요지는 그가 도망 중에 있다는 것입니다.
사탄은 단지 피조물일 뿐입니다.
그는 강하지만 무적은 아닙니다. 그는 정말 똑똑하지만 완벽하게 현명하지는 않습니다.
사탄은 많은 귀신과 이 세상에서 많은 동맹을 맺을 수 있지만 그들 중 그 누구도 그리스도를 대적할 수 없습니다. 거룩하신 분이 계신 곳에는 사탄이 떠나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한 말씀으로도 마귀를 쫓아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오신 이유는 바로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입니다. 예수님은 광야에서 마귀를 물리치셨습니다. 이제는 회당에서 귀신을 물리치심으로 예수님은 마귀를 멸하러 오셨다는 것을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일을 많이 하실 것입니다.
하지만 무언가 더 필요한데 이 전투는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과 함께 끝날 것입니다.
사탄은 그리스도의 죽으심에도 손을 뻗칠 것입니다.
악한 귀신이 가룟 유다에게 들어가서 그가 주님을 배반하게 만들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다시 한번 예수님의 능력을 봅니다.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목숨을 버리심으로 그를 믿는 자들을 흑암의 권세에서 구원하시고 우리를 영원히 자유케 하셨습니다. 마귀는 패배했고 그 권세는 무너졌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실질적인 결과를 낳았습니다.
이는 오늘만 아니라 이번 주의 싸움을 위해서도 구원받기 위해서는 그리스도께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스도는 악마가 여러분을 소유하길 원치 않으십니다.
주님은 여러분의 삶이 타락하거나 마음이 나뉘어서 세상의 계속된 죄로 통제불능이 되는 것을 바라지 않으십니다. 예수님은 여러분이 더 중요하고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것 때문에 사탄의 포로가 되는 것을 원치 않으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 도와달라고 하세요.
예수님의 갑옷을 사용하고 그분의 말씀의 검을 잡으시기 바랍니다.
그리스도께서 계신 곳에는 사탄이 떠나야 합니다.
“우리의 돌아보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은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간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니라(고린도후서5:18)”
3. 귀신의 말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갈라디아서6:8)”
오늘 본문은 놀라움으로 시작하고 놀라움으로 끝납니다.
오히려 오랜 전통적 해석을 바로잡으시고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라고 말씀합니다.
정말로 중요한 하나님 나라, 하나님에 관한 것, 하나님을 위해 산다는 것의 의미들에 대해서 진리를 단순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완전히 독자적으로 말씀하셨습니다.
그럴 때 사람들은 그분이 어디서 훈련을 받았는지 의아해했습니다.
마가복음 6장 3절 “이 사람이 이런 것을 어디서 배웠느냐? 이는 마리아의 아들 목수가 아니냐?”라고 했습니다. 그들은 그분의 설교에 놀랐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마귀를 쫓아내셨을 때도 마가복음 1장 27절에 “다 놀라 서로 물어 이르되 이는 어찜이냐 이는 권위 있는 새 교훈이로다”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권위는 말씀만 아니라 마귀에게 명령하실 때도 나타났습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은 그분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당시 사람들은 그 나라(왕국, 천국)에 대해서 들어본 적이 없기 때문에 새로운 것이 아니라 예수님 안에서 그 나라가 임하고 있기 때문에 새로운 것입니다.
27절 하 “더러운 귀신들에게 그분이 명한 즉 순종하기” 때문입니다
믿음
3. 이시대의 교회
(전도서3:20~21)다 흙으로 말미암았으므로 다 흙으로 돌아가나니 다 한곳으로 가거니와 인생의 혼은 위로 올라가고 짐승의 혼은 아래 곧 땅으로 내려가는 줄을 누가 알랴
감동을 받았지만 변화는 없었습니다.
예수님의 명성이 온 지역에 퍼질지는 모르나 그것은 믿음이 퍼지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귀신들만 이 사람이 누군지 알았고 떨었습니다.
긍정적 입슬
마지막으로 우리 교회가 가버나움 회당과 어떻게 차이가 나야 하는지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당시 가버나움은 마지막 십자가 전투에 대한 결말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마가복음에서 첫 전투의 결과도 알고 십자가와 빈 무덤과 마귀의 나라가 어떻게 파멸되었는지 거룩하신 분의 참된 권세와 사랑을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가버나움이 그분을 위대한 선생 내지 강력한 설교자 정도로 감동만 받아서는 안 됩니다. 오늘 우리는 그분을 구주로 고백해야 하고 그분을 우리의 주로 섬기며 순종해야 하고 항상 그분을 신뢰할 때 내 안에 사탄 마귀는 떠나고 믿음의 승리로
새하늘과 새땅이 열리는 여러분 되시길 예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