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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운에세이] 이색(異色) 구경거리
우리 아파트 바로 앞에 한 일 주일 전부터 새로운 구경거리가 하나 생겼다. 좀 색다른 구경거리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지금까지 공터로 남아있던 자리에 마침내 무슨 건물을 새로 짓는 공사가 해동(解冬)과 더불어 막 시작이 된 것이다. 예정되어 있던 부지(敷地)에 이곳 송도2동 주민센터건물을 짓는 공사라고 한다. 옛날로 치면 '동사무소'다. 동사무소라는 말이 어째서 굳이 '주민센터'라는 '짬뽕' 이름으로 바뀌어야 했는지는 필자로서는 알 길이 없다.
오늘 아침은 얼음만 얼지 않았다 뿐이지 찬 바람이 쌩쌩 부는 게 마치 한겨울 날씨 같다. 4월이 며칠 남지 않았는데 아직도 이렇게 춥다니, 지구가 거꾸로 돌아가는 건가. 날씨도 날씨려니와 주말이고 해서 그런지 시가지 아침 거리가 매우 한산하다. 이런 날은 운동하는 사람의 수도 으레 적다. 이런 때면 내 특유의 오기(傲氣)가 유감없이 발동한다. 단단히 무장을 하고 식전 운동(걷기)길에 나섰다. 송도신도시에서 제일 높은 64층 아파트, 1st World를 지나 해돋이 공원(Sunrise Park)과 센트럴 파크(Central Park) 두 군데를 갔다 오기로 마음을 정했다. 공원 끝까지 가지 않는다면 한 시간 반이나 두 시간이면 될 것 같다. 두 공원 사이도 도보로 15분 남짓 정도의 거리밖에 안 된다.
나가는 길에 우선 아파트 앞 공사장 입구를 지나갔다. 거기에는 신축건물의 조감도(鳥瞰圖)가 실물 사진 못지 않게 그려져 붙어있다. 가까이 다가가서 자세히 한참을 들여다 보았다. 지하 2층 지상 5층짜리 건물인데, 마치 새가 포르르 하늘을 날아갈 듯 아름답고 산뜻한 그림 같은 건물이다. 이건 하나의 예술 작품이 될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건물이 차지할 면적에 비해 넓은 공터는 소공원과 주차장이 된다고 한다. 내가 사는 집에서 지척에 이렇게 아름다운 건물이 들어서게 되었으니 이런 행운이 어디 있나. 보나마나 훌륭한 주민복지시설도 갖추어질 터이니 자못 기대가 된다. 하루 빨리 건물이 완공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하다.
이곳 신도시는 주택이며 상가, 공공시설 등 모든 건축물 하나하나가 적당히 지어지니는 게 아니고 각별한 관심과 정성이 기울여지는 것 같다. 국제도시라는 이름에 걸맞게 계획되고 설계가 되어지고 있다. 신도시는 한국의 맨해튼이니 한국의 홍콩이니 등으로 불리면서 야심차게 출발을 했다. 그러나 그 동안 국내외 어려운 경기 탓으로 아직 제모습을 다 갖추지는 못했다. 진도가 늦다뿐이지 서서히 계획대로 진척이 되고 있음은 물론이다. 한동안 주춤하던 이곳 건설 경기가 근자에 들어 다시 활기를 되찾고 있는 모습이 역력하다.
요즘은 건축 공사를 할 때면 공사터가 노지(露地)로 훤히 들여다보이게 그냥 둔 채로는 일을 시작하지 않는다. 울타리라 해야 할지 담장이라 해야 할지 가림막부터 먼저 둘러쳐 완전히 막아 놓고 공사를 시작한다. 그것도 대충 하는 게 아니고 미관(美觀)을 고려해서 제법 근사하게 한다. 이것 하나만 봐도 우리나라가 얼마나 잘 사는 나라인가를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특히 주위가 이미 기존의 주택이나 다른 건물들로 둘러쌓인 지역에서의 공사라면 더욱 철저히 그렇게 한다. 그것은 대로변에서도 마찬가지다. 시가지 공사현장 주변 길을 걸어본 사람이면 누구나 수긍이 가고도 남을 일이겠다.
IT, 전자, 자동차, 조선(造船) 분야 등을 필두로 현재 우리 나라의 건축토목기술 또한 세계 최고의 수준에 달해 있음은 자타가 공인하는 사실이다. 근년에는 인천대교며 거가대교 등의 건설을 통해 세계 최초의 신공법을 선보임으로써 국내외 관계자들의 지대한 관심을 모은 바도 있다. 말레이시아 쿠알라품푸르에 있는 세계에서 두서 두 번째로 높다는 건물, 페트로나스 쌍둥이 빌딩(Petronas Twin Towers)도 우리나라의 삼성과 극동건설이 그 중 하나를 시공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지금까지 송도2동 주민들은 송도1동의 주민센터를 이용해야 하는 관계로 다소간의 불편이 따랐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신도시가 날로 발전을 거듭하고 주민의 수가 급격히 불어나면서 주민 봉사기관 건립을 더 이상 미룰 수 없었던가 보다. 그 공사 현장이 바로 내가 사는 아파트 동(棟) 바로 앞, 우리집 거실에서 정면으로 내려다보이는 곳이다. 직선 거리로 따져도 얼마 안 된다. 20, 30m나 될까. 그야말로 눈앞이요 코앞이다. 이 이색 구경거리를 보는 데는 우리집보다 더 좋은 조건의 장소는 없을 것 같다.
이 의외의 구경거리 등장으로 최대 수혜자가 된 사람은 연로하신 필자의 어머님이시다. 대부분의 노인들이 그러하듯 어머님도 평소 어려워하시는 부분이 무료한 시간을 보내시는 일이다. 사람은 배만 부르다고 살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마땅한 소일거리가 있어야 한다. 심심하지도 않아야 한다. 이런 차에 마침 색다른 볼거리가 하나 목전에 나타났으니 이런 횡재수(橫財數)가 어디 있을까.
아직은 공사가 준비단계다. 그런데 그 준비단계인 정지(整地)작업이 그렇게 거창하게 이루어지는 지는 예전엔 필자로서는 본 적도 없고 상상도 할 수도 없었다. 그렇게 넓어 보이지도 않는 대지(垈地)에다 왠 파일(pile : 기초 공사용 말뚝) 을 그렇게도 많이 깊이 박는지 그 공정(工程)이 여간 힘들어 보이지가 않는다. 수를 세어보지는 않았지만 전봇대보다도 더 크고 긴 기둥을 수백 개는 땅 속에 박았을 것이다. 그 육중하고 긴 파일을 그대로가 아니고 두 개씩 용접으로 이은 다음 수 십미터 깊이로 땅 속 깊숙이 밀어넣는 작업이다.
이 모든 공정은 거의 전적으로 중장비들을 사용함으로써 기계의 힘으로 이루어진다. 각 공정에 필요한 특수 목적의 장비를 설치하고 해체하는 작업도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런 것일수록 더 볼 만하다. 공정이 바뀔 때마다 각기 다른 장비가 투입된다. 공사장의 작업 개시 시간은 아침 9시가 아니다. 7시부터다. 어차피 해야 할 하루 일과라면 아침 일찍 시작해서 일찍 작업을 마치는 편이 훨씬 더 능률적이 될 것이다. 모든 사람에게는 하루 24 시간이 공평하게 주어져 있다. 그러나 성패는 이 주어진 시간을 어떻게 활용하는가에 달려있다. 인력시장을 찾는 일일근로자들이 이른 새벽 집을 나선다는 이야기를 이해할 만하다.
또 이런 건설 공사장의 근로자들은 추측컨대 단순 노무자 같아 보이지가 않는다. 전원이 특수 기술자인 것 같다. 그래서 그런지 작업장에 올 때도 각자가 개인 자동차를 타고 출근한다. 내려다보고 있노라면 그런 것까지 다 파악을 할 수가 있다. 요즘 근로자들은 옛날의 노무자들과는 개념이 다르다. 현대, 기아자동차 근로자의 평균 연봉이 8,000만원대를 넘어섰다는 근래의 기사를 읽고 필자는 놀랐다. 그 액수는 적은 돈이 아니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상당한 전문직이나 고위직 공무원도 그렇게는 처우가 좋지 못했다. 우리나라의 발전상에 격세지감을 느낀다. 노사분규가 발생할 때마다 근로자 편의 목소리가 왜 그렇게 큰지 알 만도 하다.
어머님은 아침 작업이 시작되기도 전부터 거실 전망창(展望窓) 가까이 자리를 잡아 앉으시고는 공사현장 실황을 중계방송하신다. 감탄사의 연발이시다. 평생에 처음 본다는 말씀이 빈도가 제일 높다. 돈 주고도 볼 수 없는 구경이라시며 놀라워 하신다. 간간히 필자가 구경해도 그렇다. 참으로 놀랍고 신통하다는 느낌이 든다. 경부고속도로 닦기부터 축적된 우리나라 건설 노하우가 세계 첨단을 걷고 있다.
여기 송도신도시는 바다를 메워서 만든 매립지(埋立地)다. 이전에는 간석지(干潟地), 즉 개펄이었다. 그런 연유로 모든 건축에는 정지작업이 더 철저하게 이루어지는 것 같다. 사상누각(砂上樓閣)이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동북아무역센터(Northeast Asia Trade Tower, NEATT)는 송도국제업무단지에 있는 마천루인 초고층빌딩이다. 우리나라에서 현존하는 최고의 높이를 자랑하는 건물로 그 높이는 305 m이다. 이 사실만 보아도 현재 우리의 건축 기술이 얼마나 향상되었는가를 짐작할 수가 있다.
아직은 시작에 불과한 이 공사가 언제까지 이어질 지는 미지수(未知數)다. 적어도 일 년 혹은 그 이상의 세월은 걸릴 것이다. 그러나 요즘은 공기(工期)를 단축하기 위해 공사를 서두르는 일은 없어진 것으로 알고 있다. 서두르면 망친다.(Haste makes waste.)는 속담은 역시 진리다. 어쨌건 그때까지는 좋은 구경거리를 항상 볼 수 있게 됐다. 다른 아무데서도 이런 구경거리는 찾을 수가 없다. 이것도 우리집의 경사라면 경사가 아닐까.
2012. 03. 25. 인천 송도에서/ 草雲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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