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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2.24.천마산둘레길 봄마중갑니다. ♣ 일정 ; 동대신동 전철역 → 꽃마을 마을버스 → 꽃마을에서 구덕산 천마산 둘레길 → 대티고개 → 감천마을(종료) → 마을버스 → 자갈치 해수탕목욕 → 자갈치시장 곰장어 * 양산부산대병원 입원친구(박명찬) 병문안 → 증산김치찜집 저녁 [내 용] ♣ 2~4 ; --사돈 어원 ♣ 5. ; ----서진의 고려의 한을 읊은 시와 조선 태종 ♣ 6. ; ----스님 사우와 왕순식 장군 ♣ 22~35 ; 월성 백씨 가문과 풍수지리 ♣ 36~40 ; 고려개국공신 신숭겸 ♣ 41~49 ; 옛시가들 41~49 (박휘겸/ 채수/ 최수성/ 이언적/ 허한/ 이황/ 성윤배/ 왕백/ 신천) 1. 지난 겨울이 따뜻해서 오늘 2월 24일 현재 서대신동 꽃마을~감천까지 구덕산, 천마산을 지나는 둘레길을 등산하면서 간간히 피어 있는 매화꽃 촬영. 꽃이 한 일주일 한 열흘 먼저 핀 것같다. 이 좋은 꽃길 계절에 친구들과 재미나는 얘기들을 나누고자 한다. 2. <사돈査頓의 어원에 대하여> * 사돈은 우리나라씩 한자말이다. 고려 윤관 장군과 부하 장군 오연총과 사돈을 맺었던 얘기다. 윤관 장군은 파평윤씨 가문이고, 원래는 문과에 급제한 문신으로 여진을 토벌할 때 군사를 지휘하여 공을 세운 장군이다. 아주 신뢰하는 부하 장군으로 오연총과 사돈을 맺었다. 3. * 두 장군의 댁은 한 동네에서 개울을 사이에 두고 반대편에 살고었다. 두 분이 자기 집에서 술을 잘 빚어(가양 ; 家釀) 드셨는데, 以心傳心으로 사돈과 한잔 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하인에게 술단지를 지워서 거의 동시에 집을 나섰다. * 그런데 갑자기 소낙비가 오기 시작했다. 개울물이 갑자기 많이 불어나 개울을 건널 수가 없었다. 4. * 개울가에서 만난 두 사돈은 마침 나무를 베어낸 등걸에 앉아 건너편에 있는 사돈에게 머리를 조아리는 예를 갖추면서 상대에게 술을 권하는 시늉을 하고 자신이 부어 마시는 대작을 하며 풍류로움을 즐겼다. 여기서 <사돈>이란 말이 나왔다. * 즉 나무등걸 사=査, (머리)조아릴 돈=頓, 그래서 사돈(査頓)이다. 얼마나 멋진 어원인가? 이런 以心傳心으로 통하는 멋진 사돈을 만난다면 얼마나 큰 행운일까?// 5. 붉은 꽃 흰 꽃이 조화롭다. 이 장면은 근사하지요? <서진의 의기로운 시> 고려말 사헌부 장령 서진徐甄(甄 ; 진, 견 두가지 발음이 있음)은 고려가 기울어져 가자 벼슬을 그만두고 물러났고, 조선이 건국되자 시를 지어 고려 멸망을 슬프했다. 천년이나 되는 신도神都(고려 서울 송도)가 한강을 격했는데, 忠臣과 良臣이 쑥쑥 나와 명왕(明王; 고려의 어진 임금)을 도왔더라 후삼국을 통일한 공은 어디로 갔나 문득 전조의 왕업이 길지 못한 것을 한恨한다. 이씨왕조에 아부하는 무리들이 죄인으로 몰려고 하였다. 멸망한 나라를 슬프하는 것도 죄란 말인가? 문가 좌익세력들 무조건 적폐 운운, 잡아족치는 것 밖에 할 줄 모르듯이~ 왕(태종)이 듣고 얼굴색을 고치며 말하였다. " 진이 고려의 신하로서 시를 지어 생각하는 것은 백이 숙제의 류(절조있는 선비)이다. 상을 주지 못할 망정 죄는 부당하다." (태종 이방원의 이런 면모의 관용도~) 6. <스님의 혼이 태조 왕건의 전승을 돕다.> * 고려 태조 왕건이 후백제의 견훤을 대적하여 후삼국통일의 막바지 고지를 달성하려는 즈음이다. 강릉은 당시 지명으로 <명주>라고 했고, 명주에 호족 명주장군 <왕순식>이 있었다. 태조가 군사 부족을 걱정하고 있었는 데, (뜻밖에) 왕순식이 (자발적으로) 정병 3천을 인솔하여 태조에게로 가서 적의 앞뒤에서 협공하여 신검군을 대파했다. * 태조가 왕순식에게 고마움을 표시하면서, 꿈 얘기를 했다. "짐은 간밤 꿈에 이상한 스님이 갑사 3천명을 데리고 왔는데, 오늘 경이 와서 적군을 격파하게 한 징험이었나 봅니다. 경은 그 스님의 후신 後身인 듯 하오." 왕순식이 대답했다. "신이 명주에서 떠나 대관령을 지날 때 이상한 스님의 사우祠宇(추모하는 집)가 있기에, 전승戰勝하기를 기원하였습니다. 폐하께서 꿈에 만나신 그 스님이 바로 그 사우의 스님인가 합니다." * 태조가 놀라워 하고 그 꿈 속에서 본 스님의 지위를 높이고, <이승사異僧祠>를 다시 고쳐세웠다. 7. 지난 가을에 피었다가 진 덩쿨의 씨앗. 아마도 사위질빵 덩쿨인듯. 8. 지난 가을에 피었다가 진 꽃의 씨앗. 아마도 당국화(과꽃) 인듯. 9. 대티고개 도로 위에 둘레길 편의를 위해 설치된 다리 10. 대티고개 도로 위 다리. 왠 말馬이냐? 11. 대티고개 다리옆의 조경, 푸른 풀은 새싹일리는 없고 늘푸른 잔디 종류인듯. 감천문화마을 12. 판자촌이 관광지로 크게 발전한 감천문화마을 13. 6.25의 피난민 흔적, 태극도들의 집단마을에서 출발했다. 감천문화마을 ; -甘川 ; 물이 좋아서 / 별칭 多內里 ; 다대포 안쪽 마을 -반달고개 ; 감천동~아미동 옛고개 -태극도인 집단촌 ; 태극도는 1918년 조철제가 창시(사후 분열, 아들 조영래 태극도 계승(감천마을)와 , 박한경의 대순진리회(서울) -옥녀봉~ 천마산 산자락 마을 -계단식 집단주거 ; 앞집이 뒷집 조망 가리지않아 공동체 배려의 미덕이 보임. 14. 일요일이라 그런지 관광객이 붐빈다. 15. 자원봉사자? 한복을 빌려 입은 관광객. 16. 벽에 붙박이 조각, 요란하다. 17. 감천문화마을 18. 감천마을 그린 벽화 19. 겨울이 다 지나갔다. 날씨가 포근하다. 19-1. 감천문화마을 전경(2015.10.25.) 20. 아파트 건설현장의 건설사가 설치한 사하경관 사진 21. 아파트 건설현장의 건설사가 설치한 사하경관 사진 대부분이 올해 古稀를 맞이하는 벗들의 오늘(2019. 2.24.) 활기찬 모습들. 고루 촬영하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22. 마음씨 좋은 할배 <월성백씨 가문과 풍수지리설 얘기> * 경주 월성 안강읍 옥산동에 중랑장 백창직의 아들 독이라는 분이 살았다. 독은 임종시에 세아들에게 간곡한 유언을 내렸다. 23. 기관차 같은 중후함 월성 백씨가문 * "내가 보아둔 명당자리가 있다. 내가 죽으면 저 앞산 시루봉 자좌오향에 꼭 묻어다오. 황룡도강터라 앞으로 삼대정승판서가 날 명산이다." 24. 3조개국공신을 배출한 한국 유일한 가문 배문 후손(그런 측면에서 한국 최고 명문)/ * 부친이 운명하자 세 아들은 풍수를 불러 그 자리를 찾아갔다. 풍수는 한숨을 쉬고 다른 곳으로 잡으라고 권했다. 명당이기는 하나 심각한 결함이 있다는 것이다. 할 수없이 다른 풍수를 또 불러보였다. 그 풍수는 그 사유를 이야기 해주었다. 25. 삼조란 ; 신라(배지타)/ 고려(배현경) / 조선(배극렴) 월성 백씨가문 * 이 곳에 묘를 쓰면, 삼우제날 맏상주가 죽고, 소상날 둘째 상제가 죽고, 삼년상날 세째 상제가 죽는 다는 것이었다. 효심이 깊은 아들 3형제는 의논을 했다. 이 때, 큰아들 둘째 아들은 갓 장가를 들었으나 아직 소생이 없었고, 세째는 총각이었다. * 첫째도 둘째도 그런일이 일어난다해도 아버님 유언을 어길 수 없다는 결심을 보였으나, 세째 아들은 의견이 달랐다. 아들들이 모두 죽으면 자손이 없는데 어떻게 삼정승 6판서가 나온단 말인가 하며 반대했다. 26. 제일 폼이 멋진분! 월성 백씨가문 * 결국 그 자리에 묘를 썼는데, 과연 차례로 두 아들이 죽었다. 그러자 과부가 된 두 형수가 액땜을 할지 모른다면서 묘막을 지키는 시동생을 강제로 묘막에서 쫓아내 멀리 객지로 유람을 떠나보냈다. 27. 갑옷같은 방비. 월성 백씨가문 * 세째 아들은 정처없이 떠돌아 다니다가 어떤 산골에서 한 노파가 홀로사는 집에 하룻밤 신세를 지게 됐다. * 그 노파는 산너머 마을에 수양딸이 있는데, 오늘 그 딸의 어머니 제삿날이라 자신이 가봐야 겠다, 안가면 제삿밥을 가지고 찾아오는 수고를 하게 된다며 수양딸 집으로 떠났다. 28. 샘날 정도 월성 백씨가문 * 그런데 공교롭게도 그 날밤 처자가 제삿밥을 이고 왔다. 서로 길이 엇갈린 모양이었다. 총각은 이것은 기회다 싶어서, 처녀를 끌어안았다. 처녀도 반항하지 않았다. 처녀는 간밤에 꿈이 신기해서 이게 내 운명인가보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 그 꿈은 모친이 알밤 세 개를 주었고, 그것을 받아 품에 안자 양날개가 돋아, 어머니와 함께 온 천사를 따라 하늘로 날아가는 꿈이었다. 29. 일품 미소 월성 백씨가문 * 그날 밤, 산길은 깊고 험해서 노파는 오지 않았고. 두 청춘이 하룻밤을 꿈같이 보냈다. * 이튿날 총각이 떠나려 하자, 처녀는 신분, 거처 등을 알려줄 것과 정표를 요구했다. 자신의 꿈이야기도 해 준 것은 물론이다. 가진 것이 없었던 총각은 국화꽃 한 송이와 갓의 옥관자 고리 하나를 떼서 주었다. 처녀가 붙들었지만 기어이 떠났다. 30. 건배제창 위원회 이사장님, 표정관리 월성 백씨가문 * 세째 아들은 흘러흘러서 금강산 신계사에 이르렀다. 한 노승(그 절의 방장)이 길에 쓰러진 것을 보고 절까지 보호해 드렸다. 총각은 죽는다는 삼년상 날짜가 돌아왔으나 부처님과 스님의 가피를 입어 죽지않았다. * 이런 계기로 그 절에 기거하게 됐고, 결국 스님이 됐다. 그러나 액땜을 위해서 환갑전에 고향에 가면 안된다고 방장 스님이 단단히 일러주었다. 31. 박력있는 모습! 월성 백씨가문 * 스님이 된 세째 아들은 환갑을 넘긴 후에야 비로소 고향을 찾아갔다. 고향은 많이 변했고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사연을 알아보니 옛집에 살던 가족들은 모두 한양으로 이주했는 것이다. 32. 힘드시죠? 월성 백씨가문 * 그 오랜 세월 동안의 변화는 이러했다. 하룻밤을 지낸 처자는 남편의 고향이라며 경주 월성으로 찾아갔고, 태기가 있어서 아이를 낳으니, 세쌍둥이 였다. 두 형수의 극진한 환대를 받았으며, 두 형수(이제는 동서)에게 아들 하나씩을 주어서 맡겨 모두 잘 길렀다. 33. 눈이 편하겠습니다. 월성 백씨가문 * 그 세 아들이 차례로 모두 장원급제하여 세월이 지나자 승차하여 정승 판서 반열에 올랐다는 것이다. 부모 묘를 찾아가니 비석이 멋지게 장식됐고, 살아있는 자신의 가묘도 있었다. 가족들은 죽은 줄로만 알고 있었던 것이다. 34. 강소기업상 시상식이 빛났어요. 위대한 분! 월성 백씨가문 * 스님은 한양으로 찾아갔다. 아들들의 어머니가 되는 하룻밤 인연을 맺어 부인이 된 정경부인을 만났으나 오랜 세월이 흘러서 서로 알아보지는 못했다. 이별 당시의 정표와 꿈 얘기를 하면서 확인절차를 거친 후에 가족과 회포를 풀었다. 이제는 많이 늙은 두 형수도 살아있었고, 아들 며느리 손자 등 30 여 명이나 되는 대가족으로 늘어나 있었다 * 그러나 얼마간 시일이 지나자, 스님인지라 가족들이 붙잡아도 홀연히 다시 산사인 금강산 신계사로 해탈의 길을 떠나고 말았다 한다. 35. 야무져 단단한 표정, 기우회 회장님 화이팅! 월성 백씨가문 * 이것은 월성 백씨 가문에 전해오는 가전을 토대로 <월간문학 2019년 3월호(601호)> 에 실린, 아직 따끈따끈한 소설, 박하식 <풍수지리설>을 읽고 요약한 내용이었습니다. * 월성 백씨 가문의 시조는 조선초기 대제학 출신 휘는 白宇經, 호 松溪, 시호 문경. 그 후손에 중랑장 백창직, 그 아들 獨이 있고, 독의 효자 세 아들에 관한 이야기였습니다. 정승 판서가 됐다는 이들의 이름은 이 소설에는 나와 있지 않네요. 36. 중후한 인품. <태조 왕건을 목숨을 구하고 대신 죽은 신숭겸 장군의 충절> * 신숭겸申崇謙은 힘이세고 용감하며 지모가 뛰어난 분이었다. 일찌기 궁예의 신하로 있다가 무도함을 보고 홍유, 배현경, 복지겸 등과 함께 거의(擧義 ; 의로움을 일으켜)하여 왕건을 추대해 고려를 세우는 개국공신이 됐다. * 후백제의 견훤이 신라의 서울 경주로 쳐들어가 경애왕을 포석정에서 죽이고(927) 경순왕을 세운 뒤에 왕제와 재상, 역대보물 병장(兵仗 ; 무기)및 여러 공인(기술자)들을 취하여 군사를 돌이켰다. 37. 경청은 이런 모습 대구 공산 전투 * 이 때 고려 태조가 이 소식을 듣고 대로하여 조사弔使를 신라에 보내고, 곧 군사를 이끌고 남하하려 할 때 신숭겸이 간하였다. " 견훤은 무도하기가 사갈蛇蝎 같고 지금 (신라와) 싸움에 이겨서 예기가 대단할 것이오니 급히 갈 것이 아니옵니다." 그러나 태조는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견훤의 이번 일은 천인이 공노할 바라 하늘이 꼭 벌을 주실 것이다. 그 예기는 겁낼 것이 없다." 그리고 군졸을 급히 몰고 공산(대구동북)에 도착했다. 그때에 견훤의 개선군과 맞부딪쳐서 역전고투를 하였으나, 병력이 워낙 부족하였던 탓으로 마치내 견훤군에게 포위당하였다. 38. 두 분의 상이한 표정은 의아해요. 태조를 사지에서 구하고 대신 죽은 신숭겸 * 이 때 신숭겸은 필사의 힘을 다하여 태조를 탈출시키려 하였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마침내 태조에게 "신이 폐하를 대신하여 항복하는 체할 테니 그 틈을 타서 피하소서" 태조가 눈물을 흘리며 말한다. " 내가 어찌 경을 혼자 죽음으로 보내랴!" 그러나 신숭겸은 굳이 가겠다고 하고 태조의 옷으로 바꿔 입고 의연히 견훤군 쪽으로 나아가니, 그 사이에 태조는 몸을 피하여 빠져나갔다. 신숭겸은 견훤군 쪽으로 가서 호령하다가 죽음을 당하였다. 39. 다들 장엄한 순간 평산 신씨 시조, 장절공 신숭겸 * 그 뒤에 태조는 신숭겸을 <장절공壯絶公> 이라고 시호하고 쇠로 그의 형상을 주조하여 공신연이 있을 때면 꼭 그 초상을 상석에 앉히고 술을 부어 놓았는데, 그 잔의 술이 번번히 말랐다고 한다. 뒤에 그 쇠로 된 동상은 춘천에 안장되었으며 춘천사람들이 이르기를 그의 묘소에 영감이 종종 있다고 하는데, 이 분이 바로 평산신씨의 시조이다. 40. 감응이 빠르신 분 팔공산 * 고려 16대 예종 임금이 지은 이두식 향가 <도이장가 悼二將歌>란 공산전투 당시 왕을 대신하여 죽은 신숭겸, 김락 두 장군을 추모하는 노래이다. 팔공산이란 이 때 희생된 8명의 장수를 추모하여 붙여진 명칭이다. 두 장군과 함께 간 다른 6명은 이름이 잘 드러나지 않은 것은 아마도 하급 무사들이었기 때문이리라. 그러나 그 의기가 빛난다. / 신숭겸 끝 41. 예나 지금이나 늙어지면 쓸쓸해 지는 것, 그래도 멋과 힘이 넘쳐요. <老將 > / 박휘겸(조선 세조 때 무인) 말뚝에 메인 백마 목메어 울고 일없으니 쓰던 칼도 잠자는구나 큰 공 못 다이뤄 늙어가는 몸 꿈속에 본 고향은 봄눈만 싸였네. 42. 우린 벌써 일흔이 넘었는데~ <쾌재정에서> / 채수 (음악에 조예 깊어 장악원 관원을 지냄) 내 나이 벌써 예순 일곱 지난일 생각하면 아득하구나 소년적엔 내 재주 당할 이 없고 한창 때엔 공명도 드날렸다오. 흐르는 세월은 매둘 수 없고 구름은 유유히 걷잡지 못함이여. 이어하면 번잡한 세상일 떨치고 봉래산 올라가 신선 벗하나. 43. 인정사파란人情似波瀾 란 ; 인심은 파도와 같이 변하는 것, 그러나 변하지 않는 언덕도 있지 않는가? <여강을 건너며> / 최수성 (조선, 중종 때) 인정이야 세월따라 변한다 해도 언덕이야 물결 따라 흐를 것이냐 보슬비 내리는 강언덕에 섰으면 배는 쓸쓸히 안개 속에 떠간다. 44. 좋은 경치 보거던 시 한 번 읊어 보세요! 잘쓰면 뭐하고 부족하면 어떤가?
< 무위> / 이언적( 16세기 전기) 만물은 일정찮아 조석으로 변해도 이 한 몸 한가로이 때를 따르리. 이제껏 세상 일에 쫓기다보니 좋은 청산 옆에 두고 시 한 번 못 읊었소. 45. 풀빛도 고른 그리운 초록 들판
<시골집 풍경> / 허한(조선시대 서화가) 봄장마 개이자 비둘기 떼져 울고 너른 벌판 여기저기 풀빛 골라 더욱 좋아 사립문 나서서 휘이 둘러보니 지는 꽃잎 나풀나풀 시냇물에 늘펀하다. 46. 대학자도 스스로를 이토록 초라하게 그렸네. 인생은 정말 한바탕 꿈인가봐. <벗을 생각하며> / 이황(퇴계) 고요함 즐기는 내 성미는 추위도 두려운 앙상한 체구 고향산 솔바람 그윽히 듣고 화로끼고 앉아서 매화나 보네. 늙어서야 세상재미 별반 있으랴 인생의 고빗길은 정말 어려워 깨달으면 모든 것 한바탕 꿈인 것을 내일찍 허황한 줄 알았었지만. 47. 옛사람은 매화 예찬인데, 현대인은 돈 안된다고 베어버리네. 아! 그놈의 돈돈~ < 매화> / 성윤배 매화송이 작다고 깔보지 마소 송이야 작아도 풍치는 멋있으니 새침한 고운 맵시 댓잎 위에 하늘대고 달빛아래 맑은 향기 귀에 들리는 듯 . 48. 가랑비, 복사꽃, 동부새(동풍). 춤~ 좋다! 풍류를 알아요. <산중에서 봄날에> / 왕백(고려후기 문관) 간밤에 가랑비 자욱히 내리더니 울 밖에 화안히 복사꽃 피었네 취한 채 사노라면 늙는 줄을 내 모르네 꽃꺾어 머리에 꽂고 동부새에 춤도 추자. 49. 세상 다 그렇다네, 정치, 경제, 사랑, 건강, 인간만사가 다 외나무 다리. 다~ 내 얘기다! < 외나무 다리> 신천( 고려 후기 문신) 긴 가지 찍어다가 여울목에 가로 놓아 눈보라 서리에도 냇물 위에 걸려 있네 깊은 데 빠질세라 걸음마다 조심조심 공명찾아 헤메는 벼슬길 보는 것 같네. ---------- ★ 단체사진 한장 있었으면 좋았는데, 찍지 않았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