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걸이무
황 복 선
무라는 이름을 가진 것이 내 앞에 나타났다. 생전처음 보는 것이다. 요리저리 살펴봐도 매끈하게 잘 뻗은 무와는 비교도 할 수 없다. 겉으로 보기에는 배추뿌리 같기도 하고 잔뿌리가 많고 한마디로 무라 하기에는 석연치 않다. 껍질은 두껍고 맛 또한 시원하지도 않고 맵기만 하다. 개걸이무라고 했다.
김치를 담갔을 때 매우 단단하고 매운 맛이 강하기 때문에 금방 무르지 않아 오래 삭혔다 먹어야 제 맛을 낼 수 있다. 가을에 장아찌를 담갔다가 다음해 여름에 먹기도 한다.
나도 조금 심어볼 요량으로 종자 상회에 가서 찾았지만 여주 이천에서만 재배하므로 씨앗을 팔지 않는다. 개걸이무는 예로부터 넉고개를(광주) 넘어가면 안 된다고 한다. 그럼 이곳 사람은 어떻게 심을까 궁금했다. 개걸이무 씨는 아직까지 종자상회에서는 구할 수가 없다. 그 씨를 만드는 법은 선조 때부터 계속 이어져 내려오는 고답 식 방식인데 겨울에 땅에 묻어 얼지 않도록 보관한다. 그 다음해에 땅에 심으면 장다리가 솟아 씨를 만들어 낸다. 그 씨로 경작을 하고 연연히 이어져 오늘날 까지 끊이지 않고 있는 것이 나를 흥미롭게 했다.
시골에 와서 처음 사람을 만났을 때 느낌은 왠지 순순하고 솔직할 것이라고 생각 했다. 그렇게 단순하게 생각 할 것은 아니었다. 그 이면에 거센 말투 억척스러움, 좋고 싫음을 바로바로 표현하는 그들의 저 당당함은 어디서 오는 걸까 의아했다.
도시에서는 속내를 살짝살짝 숨기는 것이 미덕처럼 살았는데 이 곳 사람들은 비밀이 없다. 예전에는 우물가에서 동네 일어나는 모든 사건 사고를 알았다면 요즈음은 회관에 모이면 대소사가 한눈에 짝 펼쳐진다. 적응하기가 쉽진 않지만 더불어 살려고 노력 중이다.
시골 사람들은 다 사장님이다. 내 땅, 내 수고 내 노력으로 살아가기에 누군가의 눈치를 볼 것이 없다. 비위 맞출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그래서 인지 사람뿐만 아니라 풀 한포기한포기가 당당하게 자기 목소리를 내고 있다.
개걸이무는 잎은 열무처럼 위로 오르지 않고 옆으로 퍼진다. 무청은 연해서 이곳 여주 이천사람들은 시래기용으로 심기도 한다. 개걸이무도 당당하게 버젓이 무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그녀는 개걸이무를 이곳의 명품이라고 가져왔다.
개걸이무를 보면서 그녀와 참 많이 닮았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어려서 소아마비를 알았다. 부모님은 안타까움에 무조건 사랑을 많이 주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장애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당당하기가 개걸이무의 장다리보다 높다. 거침없는 성격도 고향이기 때문이리라. 교복이 치마여서 차마 다리를 내어 놓지 못해 고등학교는 스스로 포기 했다고 했다. 친구들이 도시로 떠날 때에도 그녀는 이곳을 떠나지 않고 동네 오빠와 결혼을 했다. 시 부모의 반대가 심했다고 했다. 꼭 한 달만 살아보고 싶다고 해서 허락을 받았다고 한다. 남편은 시부모와 그녀와의 사이에서 갈등이 심했다고 한다. 그 때부터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녀의 남편은 알코올로 세상을 이기려고 한다. 그러다 보니 농사철에는 남편에 대한 푸념이 동네에 퍼진다. 농번기에는 얼굴은 그을리고 늘 작업복 차림으로 멋을 낼 수가 없다.
요즈음은 이동수단이 발달하여 좀처럼 보이지 않지만 예전에는 동네에 소아마비 친구들이 종종 보이곤 했다. 그녀는 오토바이를 타고 그 다리로 복지센터에서 어르신들의 식사 담당을 하면서 밭일을 두루 살피고 있다.
시골에 와서 놀란 것이 있다면 대낮에 어르신들이 정자에 앉아 낯 술을 한다는 것이다. 고용살이와는 달리 새벽 일찍 세 넷 시간 일하고 낯에는 쉬는 것이 보통이다. 그리고 해질 무렵 나가 두세 시간 일하고 파한다. 예전과 달리 모든 일을 기계가 다하고 풀도 매주는 것이 아니라 풀 약을 준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 그녀의 남편도 낯 술을 즐긴다. 알코올 중독으로 병원을 내 집처럼 들락거리며 그녀의 가슴을 태운다.
농사란 것이 다 때가 있다. 심을 때가 있으면 걷을 때가 있다. 식물은 사람들의 사정을 기다려 주지 않는다. 감자를 캘 때도 남편은 술에 취해 있고 마늘을 캘 때도 언제나 술에 취해 그녀의 애간장만 가뭄처럼 타들어 간다. 모든 일은 그녀의 차지가 되어 버리고 아픈 다리를 끌고 무거운 약통을 메고 그 넓은 밭에 풀 한포기 없이 가꾸어 놓은 것을 보면서 안쓰러운 마음이 든다. 그녀도 다리만 아프지 않았다면 아마도 다른 친구들처럼 도시로 나가 한껏 멋을 부리고 고향을 찾아 왔으리라. 친구들이 여행을 가자고 해도 행여 자기 때문에 방해가 된다고 사양했다고 한다. 그저 개걸이무처럼 동네를 떠나지 않고 동네 지킴이가 되어 오늘도 힘차게 살고 있다.
요즈음은 시골동네에는 젊은이가 없다. 그녀는 동네에서는 없으면 안 되는 명품 중에 명품이다. 어르신들의 손과 발이 되고 아들과 딸이 되는 것이다. 동네에 작고 큰일들은 그녀를 걸쳐야 불편함이 해결이 된다.
그녀는 아들들도 훌륭하게 잘 키우고 동네의 젊은이로 마을의 일들을 잘 돌아 보고 있다. 그녀는 객지에 나가 있는 아들들 준다고 개걸이무를 심는다. 개걸이무처럼 동네를 지키며 외지에 가서 외롭게 살고 있는 친구들에게 고향에 오면 반기고 있다. 그녀는 오늘도 오토바이를 타고 가며 똥개도 자기 동네에서는 오십 프로는 먹고 들어간다며 한마디 하며 힘차게 달린다.
첫댓글 씨앗좀 구할수 있는지요
코리아헌터 게걸무 출연자 심광섭씨 010-3779-3414 판매는 종료되었고
3월에 무우를 심어 7월 씨앗수확한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