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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께서 잊지 않으신다" 쌍용차 사태의 조속한 해결과 이 땅의 해고노동자들을 위한 242차 미사 2015.07.20.월. 평택 쌍용차 공장 정문 앞
존엄한 인간 선언을 목격하는 자리
강론 : 이강서 신부(서울대교구 삼양동선교본당)
안녕하냐는 일상적인 안부 인사가 무색한 시절이다. 오히려 정색을 하고 안부를 물어야하는 공안통치, 공포정치의 시절이 도래했다. 지난 2013년 11월 18일, 대한문 미사를 마무리하고 한 달에 한 번 관심과 연대의 끈으로 정동에서 드려오던 매월 미사가 또 다른 상황으로 평택 쌍용차 공장 정문 앞에서 거행하게 되었다. 올해 3월 25일 101일간의 굴뚝농성 중에 안타까운 마음으로 굴뚝을 바라보며 울타리에서 미사를 봉헌하던 것과는 또 다른 미사를 봉헌하게 되어 만감이 교차하게 된다.
1. 우리가 와 있는 자리 평택 공장으로 오면서 미사를 봉헌하는 이 자리가 어떤 자리인가 묵상하게 되었다. 이 자리는 통상 수천 명의 노동자들이 출퇴근하는 공장 정문이지만, 누군가에게는 부당하게 강요된 정리해고로 아직도 돌아가지 못하는 공장의 정문일 것이다. 그것도 지난 7년간 이 앞을 서성이거나, 한탄하며 가슴을 쥐어뜯고 눈물을 훔치던 자리다. 그러고 보면 이 자리는 백척간두와 같은 삶의 끝자리라는 생각이 든다. 올해 두 동지가 내려온 농성굴뚝이 70m였다면, 이 백척간두의 끝자락은 1년에 100m씩 솟아오른 700m 벼랑이 아닐까 한다. 그것도 이제는 한 발 내딛을 공간도 없는 아슬아슬한 마지막 까치발 정도만 남긴 자리다. 이 백척간두와 다름없는 끝자락은 오고 싶어 온 곳이 아니다. 정작 이곳은 쌍용차 동지들 중 누구도 오고 싶지 않은 자리다. 공정과 정의를 바랬지만, 돌아온 것은 최루액과 곤봉 세례요, 우리 사회의 무관심과 냉대로 등 떠밀려 마지못해 오른 자리다. 그리고 이 한 뼘 마지막 자리에서 지난 4월 30일, 안타깝게도 28번째 노동자가 떠밀려 떨어진 자리다.
2. 우리가 발 딛고 있는 시간 쌍용차 해고노동자와 함께 벼랑 난간과 같은 자리에서 미사를 봉헌하는 오늘 이 시간도 대부분의 사람에게는 그저 7월 20일이겠지만, 누군가에게는 해고통지일인 2009년 4월 8일 과거에 머무르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시간은 현재도, 과거도 아닌 미래를 미리 맛보는 시간이다. 결코 도래하지 않기를 바란 미래이자, 자본권력에 휘둘리고 패배한 노동자의 비참한 미래이다. 깨어나지 않는 노동자, 단결하지 않는 노동자, 투쟁하지 않는 노동자가 마주해야할 미래는 바로 지금 이 자리에서 예견할 수 있는 셈이다. 그러나 한편 이러한 미래는 새로운 미래가 아니라 오래된 미래이기도 하다. 이미 독점자본주의 발흥시기에 경악할 수준의 노동착취와 노동자를 소모품으로 간주해온 자본주의의 오랜 악습을 떠올려보면 쓰고 버리는 일회용 노동정책과 대량해고는 자본주의 시장논리의 해묵은 재탕이기도 하다. 따라서 오늘 이 시간은 단지 달력의 하루가 아니라, 노동역사의 과거와 미래를 관통하는 진보역사의 하루이다.
3. 여기 삶의 자리에서 우리가 보는 것 이곳 현장 미사에서 우리가 보는 것은 극명하게 두 가지로 드러난다. 우선 첫 번째 시야는, 피도 눈물도 없는 자본의 무자비한 탐욕과 먹이를 두고 다투는 이윤의 세계, 야만 이외에 아무것도 아닌 시장경제의 실상을 본다. 그 실상이란 갈가리 찢긴 채 폐기물처럼 버려진 해고노동자, 희망퇴직자들이다. 더 이상 인간의 품위를 갖출 수 없는, 노동과 인간의 존엄성을 빼앗긴 참혹한 실태이다. 두 번째 시야는 자본의 횡포와 국가 공권력의 폭력에 굴하지 않는 위대한 인간 품성의 실상을 본다. 나약하고 부서지기 쉬운 육체의 인간이 자기 한계를 넘어서 불굴의 기상과 의지, 불의와 거짓에 타협하지 않으려는 투지, 정의를 향한 늠름한 투쟁의 현실을 생생하게 목격하고 발견하게 된다. 그래서 이곳은 자본과 국가가 노동자와 인간을 짓밟지만, 결코 굴하지 않는 불굴의 정신, 그리고 존엄한 노동자로 우뚝 서며 존엄한 인간 선언을 목격하는 자리인 것이다.
4. 우리는 여기에 왜 왔는가 이렇듯 이 자리는 우리 일상과는 사뭇 다른 현장이다. 우리가 여기에 온 것은 다름 아니라 하느님 때문이며, 우리가 고백하는 신앙 때문이다. 우리가 고백하는 하느님은 어제도 불의의 희생자들 가운데, 고통으로 울부짖는 이들과 함께 계셨듯이, 오늘도 노동의 존엄함이 짓밟힌 비정규직 노동자, 해고노동자, 희망퇴직자들의 절망 가운데 계시기 때문이다. 더욱이 자본과 재화, 이윤만이 최고 가치가 된 시대에 그것들 보다 더 인간의 품위가 더 소중하다고 선언하시며 인간이 자본을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니라, 자본이 인간을 위해 있다고 선포하시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도 정리해고 통지를 받고 절망의 밑바닥으로 내 처진 노동자와 똑같이 처형당하고 계시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가난하고 빼앗겼으며, 짓밟히고 고통 받는 사람들과 연대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이 연대는 바로 고난 받고 십자가를 진 스승 예수와의 연대며 그리스도인의 신원 고백이기도 하다. 이 고백은 ‘빼앗기고 고통 받는 이들과의 연대만이 우리를 구원할 것이다’라는 의미이다. 구원은 저 홀로, 안락하고 위험을 배격한 왕실같은 자리에서가 아니라 예리고로 가는 길, 광야에서 강도를 만나 반쯤 죽어 널브러진 고통의 자리에서 일어난다는 뜻이다. 또한 우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다. 이 모든 일이란, 불의를 끝내 넘어서는 정의를, 자본보다 위대한 노동의 가치를, 폭력을 무력화하는 자비를, 이윤보다 인간의 소중함을 깨닫고 온갖 압제와 폭력의 사슬을 끊어 해방되는 일련의 과정을 말한다.
5. 표징을 요구하는 세대 오늘 복음에서는 예수님께 표징을 보여 달라는 바리사이들의 요청이 등장한다. 하느님 존재의 증거요 하느님 은총과 사랑의 표시를 보여 달라고, 그것도 당장! 참 황망한 요구를 하는 셈이다. 이것은 마치 단칼에 문제를 마무리 짖고, 조속한 성과를 내고 애초 의도한 것보다 더 큰 승리, 풍성한 결실을 요구하는 우리의 속마음을 대변하고 있다. 그러나 예수님의 우문현답이 이어진다. 바로 요나 예언자의 회개선포와 솔로몬의 지혜다. 쌍용차 해고노동자의 지난한 투쟁이 있다. 이 투쟁이 지닌 가치는 슬라보예 지젝의 지지선언처럼 아무리 강조해도 모자랄 것이다. 이 투쟁의 결과도 중요하지만, 이 투쟁 자체도 큰 의미가 있다. 기나긴 이 투쟁의 시간이 고래 뱃속의 암흑에 놓였던 요나의 처지며, 해고무효 복직투쟁의 외침이 바로 우리 시대의 회개선포라는 의미이다. 아울러 이 투쟁의 의미를 소중히 여기는 것 또한 큰 지혜임에 틀림없다. 우리 사제, 수도자, 교우들의 연대도 힘을 잃지 않을 것이다. 그리니 여러분 쌍용차 노동자께서도 힘을 잃지 마시고 힘차게 전진하시길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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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년 전 년 작고하신 ‘전사 시인’ 김남주 선생의 시를 읽으면서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을 떠올리게 되었다.
시인은 돌아가시기 직전 자신이 쓴 첫 시집『진혼가(鎭魂歌)』(1984년)를 읽고 유고시를 남겼다.
그 유고시는 마치 김남주 시인이 연대하러 온 우리들에게 들려주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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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진혼가(鎭魂歌)』를 읽고
김남주
나는 싸웠습니다 잘 싸웠거나 못 싸웠거나 한 십년 싸움에 나는 불만이 많습니다 싸움이 미지근했기 때문입니다 뜨겁지도 않고 차갑지도 않고 이 미지근한 싸움에 나는 죽고 싶을 정도로 부끄럽습니다 서투른 싸움은 그래도 용서받을 것입니다 역사로부터 그러나 최선을 다하지 않은 싸움 그것은 유죄입니다 역사 앞에서 나는 유죄입니다 적어도 이제까지의 나는
피와 살과 뼈와 근육으로 이루어진 인간 그 본질인 노동 그 노동으로 피가 맑아지고 살아 아름다워지고 뼈가 튼튼해지고 근육이 팽팽해져 굳세고 다부지고 건강하고 아름다워지는 인간, 바로 그 인간의 노동의 성과가 노동하지 않는 비인간들(인간이 아닐진데 그것은 짐승이고 버러지고 기생충일 터)에 약탈당하고 빨리고 털리는 그런 사회에서 그리하여 사람과 사람의 관계가 누르는 자와 눌리는 자, 착취하는 자와 착취당하는 자의 관계로 이루어진 그리하여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가 주인과 종으로 만나지는 그런 사회에서 싸움말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없었습니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살아왔습니다
노동의 적, 짐승이고 버러지이고 기생충인 인간의 적은 죽어야 합니다 짐승이라면 그는 창으로 찔려 죽어야 제격입니다 버러지라면 그는 말발굽에 밟혀 죽어야 제격입니다 기생충이라면 그는 독약으로 독살되어야 제격입니다 그들이 사람의 형상을 했다 해서 딴생각을 가져서는 아니 됩니다 적과의 싸움에서 감상을 죄악입니다
나의 시는 내가 싸운 싸움의 부산물 외 아무것도 아닙니다 내가 한 싸움이 내 맘에 들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내가 쓴 시가 내 맘에 들지 않습니다 하물며 독자의 마음에야! 부끄럽고 부끄럽습니다
------------------------------------------- 『진혼가』는 1984년 첫 시집의 제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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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번째 여름에는 승리를...
김득중 금속노조 쌍용차 지부장
안녕하세요. 제가 지부장이 되고 나서 요즘 제가 맨날 거짓말 친다고... (웃음) 다섯 번째 해부터 꼭 마지막이다. 그리고 송전탑 앞에서는 여섯 번째 겨울로 끝을 내겠다 그랬는데, 다시 일곱 번째 여름에 끝내겠다는 얘기를 이 자리에서 드립니다. 그렇게 한 해 한 해 계절이 바뀔 때마다 끝내겠다는 절박함을 가지고 저희가 왔는데, 쉽지 않습니다.
아침에 되게 걱정을 했어요. 아침에 비가 온다 하고, 습도가 상당히 높고, 그리고 날씨도 불쾌지수가 상당히 높게 그런 날씨여서 많은 분들이 함께 못할 거라 생각을 했는데, 우리 신부님들, 수녀님들, 교우 여러분들, 생계 때문에 전국에 흩어져 있던 우리 조합원 동지들, 지역에 함께 하시는 분 등 많이 계십니다. 해고자들을 대표해서 지부장 김득중, 고맙다는 인사를 먼저 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오늘 미사 중에 곰곰이 생각해보니까, 제가 미사에 참석한 게 꽤 오래된 것 같아요. 왜 그런가 생각을 해 봤더니 지난 유월 달 미사에 제가 참석을 못했습니다. 그래서 날짜를 물어보니까, 6월 8일 날 했다고 합니다. 그날이 저희가 해고 통보를 받은 지 만 6년이었고, 그날 이곳 정문 앞에서 저희가 기자회견을 했습니다. 지난 6년의 삶 속에서 쌍용차 해고 노동자들의 건강과 삶의 변화가 어떻게 바꿨는지를 고려대 보건과학대학 김승섭 교수 팀하고 함께 우리가 설문조사를 했습니다. 우리가 예상했던 것처럼 우리 해고자들의 72,5%가 우울과 불안장애를 겪고 있고, 91%가 아직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소외 받고 있다는 느낌을 받고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 정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면서 정말 벼랑 끝에 서 있는 이 쌍용차 해고 노동자들 문제는 우리가 지난 29일부터 교섭을 15차 같이 진행하고 있으니, 회사가 조속하게 결단을 내리기를 바란다고 얘기를 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저는 개인적으로 미사에 두 달 만에 참석을 하는 것 같습니다. 그날 기자회견을 하고 오후에 제가 못 올라왔던 것은 최종식 쌍용차 신임 사장과 공장 안 김규현 위원장과 만났습니다. 정말 처음으로 3시간 이상이나 되는 긴 시간 동안 얘기를 한 것 같습니다. 저도 지난 6년, 7년의 이 시간들을 스스로 돌아보며 제가 하고 싶던 얘기들, 우리 조합원 동지들이 하고 싶던 얘기들을 다 했고, 회사도 그리고 공장 안 기업 노조도 이제는 사회적 정치적 쟁점이 된 쌍용차 문제를 이제는 뭔가 해결 하자는 이런 의견을 좀 모은 바가 있습니다. 근데 벌써 이제 7월 하고도 중순이 왔죠, 아직 그 문제에 대해서는 일단 해고자 문제를 풀자 라는 것 까지는 서로 인식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187명에 대한 해고자 복직과 47억에 대한 손해배상 감내의 문제에 있어서는 한 걸음도 나아가고 있지 못합니다. 그래서 지난주에도 저희가 교섭을 했지만 다시 그런 쳇바퀴 도는 얘기만 했고, 아직 추후 일정은 잡지 않았습니다. 저는 이것이 지난 1월부터 시작됐던 그래서 15차, 16차까지 왔던 실무 교섭의 첫 수를 넓히는 것이 아니라 몇 개월 수개월이 지나면서 내용이 정리되는 것이 아니라, ‘정말 회사가 이제는 입장과 계획을 가지고 이제 만나야 되는 거 아니냐’ 지난 두 번째 본 교섭에서 회사측 대표에게 이렇게 전달을 했습니다. 그래서 아마도 고심을 할지 아니면 다시 파국으로 갈지에 대한 모든 선택과 결단은 회사가 가지고 있지 않나 생각됩니다.
6월 지나고 저희 간부들 30여명이 멀리 전라도로 가서 수련회를 좀 했어요. 그 동안 교섭에 우리가 목을 메진 않았지만, 이 지지부진한 교섭에 우리가 계속 지켜볼 수만은 없다, 이 7월과 8월을 교섭도 하고 투쟁도 하는 계획을 가지고 우리가 함께 나갔으면 좋겠다, 이런 계획 속에서 그럼 함께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의견을 모은 것이 공장 앞 천막 농성입니다. 서울에서는 문기주 지회장과 정비지회가 끊임없이 연대 투쟁을 다니고 있고, 평택에는 24명이 15일차 24시간 천막 농성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저희들 아침 6시에 기상을 해요. 기상을 하면 가장 큰 문제가 화장실입니다. 빠르게 화장실도 다녀와야 하고. 다 큰 어른들이 함께 생활한다는데 어려움은 있지만 그래도 모처럼 오랜만에 저희가 다시 합숙 훈련하던 그런 마음으로 저희가 임하고 있습니다.
6시에 일어나면 공장 안 동료들, 야간작업하고 퇴근하는 동료들한테 수고하셨다는, 그리고 다시 수고하라는 얘기를 아침 7시부터 8시 15분까지, 이곳 정문과 아니면 남문, 후문 저 뒤쪽에도 상당히 문이 많거든요. 저희가 4곳에서 인사를 합니다. 동료들의 표정과 손짓, 말 이런 것이 상당히 많이 바뀌었어요. 예전과 다르게. 그래서 저희가 좀 힘들고 고되지만, 또 회사는 우리 문제에 대해서 아직까지 진전된 안을 내놓고 있지는 않지만, 공장 앞 동료들의 마음을 우리가 충분히 아침과 퇴근시간에 받을 수 있어가지고, 힘들지만 힘 받고 진행합니다. 공장 앞이 그런 훈훈함이 있더라고요. 그렇게 저희가 살고 있습니다.
지난주 금요일에 아시겠지만, 저희가 천막을 기존에 있던 거에서 한 동을 약간 더 넓혔거든요. 왜냐하면 숙소개념이었습니다. 우리 24명이 기존 천막에서 다 잘 수가 없으니까, 저희가 천막을 좀 넓히고, 사무실 바닥과 방 등에 나눠서 자고 있는데요. 평택 시청과 경기 경찰청이 천막을 철거하라는 계고장을 지난주와 지 지난주에 보냈고, 그리고 금요일에는 철거하겠다고 경찰 병력을 동원하였고, 송탄 칠성소의 용역 철거반을 이끌고 왔다가 큰 충돌 없이 가긴 했지만... 하여튼 끊임없이... 저는 그런 얘기를 했습니다. 지금 현재 노사가 교섭중이다, 65개월 만에 해고자라는 것을 인정을 받았고, 또 해고자를 대표하고 있는 금속 노조 쌍용차 지부를 인정받았다, 이미 실무 교섭을 진행하고 있고, 대표인 자를 포함해서 노노사 대표가 교섭을 두 번 하고 있다, 이것을 좀 지켜보고 그리고 이 문제가 빠르게 해결되기 위해서는 지방자치도 그 이 역할을 해야 하는 거 아니냐, 이렇게 얘기를 했는데, (그쪽에서는) 상당히 곤욕스럽다는 얘기를 하면서 굽히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저희가 지난 6년 7년 동안 어떤 수많은 탄압들을 받아왔던 것처럼 저희도 굽힐 수 없다, 너희들도 알아서 해라 이렇게 하고 있습니다. 오늘 아침에 평택시로부터 연락이 와서 평택시장이 목요일 날 2시에 면담을 좀 하자 연락이 왔습니다. 저는 분명히 얘기 했습니다. 천막 철거를 전제로 한 면담이거나 간담회라면 저는 응하지 않겠다, 다만 이 쌍용차, 이 지역의 현안의 문제를 함께 풀기 위한 자리라면 저희도 충분히 그 자리에 응할 용의가 있습니다. 그렇게 저희들 차분하게 함께하는 동료들과 한 걸음 한 걸음 그렇게 나아가고 있고요.
오늘 한 주가 시작되는 월요일인데요. 다른 어느 때보다도 훈훈한 마음, 따뜻한 마음 가지고 한 주를 좀 힘차게 시작해 나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이번 주와 다음 주까지가 상당히 중요한 분수령이 될 것 같아요. 지금 공장 안 노동조합은 회사와 임금 교섭을 하고 있고, 이번 주 오늘 내일 모레까지 집중 교섭을 통해 이번 주까지 교섭을 마무리하겠다는 계획을 가지고 있거든요. 오늘 아침에 기자한테 엄청 많이 전화를 받았습니다. 매일노동뉴스에 ‘쌍용차 해고자 복직 구부 농성 넘었다’ 이렇게 기사를 써가지고요. 기자들이 막 난리가 나 전화를 했습니다. 저도 모르는 그런 내용이 나와 가지고요. 아마도 그 기자가 그렇게 됐으면 좋겠다는 본인의 바람을 조금 담아서 기사를 쓴 것 같습니다. 저희들의 가려운 부분을 긁어주려는 마음을 담은 것처럼. 아무튼 그렇게 언론의 힘과 오늘 함께 해주신 여러분들의 힘을 받아서 지치지 않고 지금까지 달려왔던 것처럼 웃으면서 또 한 걸음 한 걸음 전진해서 정말로 7번째 여름 안에는 승리하는 쌍용차 지부가 되어서 함께 승리의 미사를 드릴 수 있도록 저희도 차분하게 힘내서 나가도록 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이 믿음과 기도가 꼭 현실에 닿도록 부단히 싸우겠습니다
이창근 쌍용차지부 정책기획실장
반갑습니다. 이창근입니다. 미사 잘 참석하지 않았었는데, 계속 잘 듣기는 했습니다. 좀 전에 신부님 말씀 듣다 보니까 오늘이 20일이라고 말씀하셔가지고, 사람 제사 지내는 날은 그 사람이 살아있는 날이죠? 아마 오늘 밤에 아마 어떤 집에서는 제사가 있겠죠. 쌍용자동차 첫 번째 가족 희생자 사망 날짜가 내일입니다. 내일이, 2009년 7월 21일 날 공권력이 아침부터 밀고 들어온 날입니다. 이 날 아침 6시부터 YTN을 시작으로 많은 언론이 보도했고 생방송으로 중계가 됐습니다. 쌍용차 진압이라는 제목을 가지고... 그 소식을 듣고 저희 간부 정책 부장 아내가 자살하는 사건이 2009년 7월 21일 입니다. 오전 7시경입니다. 공장 앞에 있다 보니까 저기 있는 도산 공장이 보입니다. 바로 앞에 공터가 있고 그 뒤가 도산 공장입니다. 저기에 걸터앉아있는 노동자들을 가끔 생각합니다.
2009년이 기억하실지 모르겠지만 굉장히 무더웠어요. 비도 안 오고 무덥고 후덥지근하고 습도 높고... 그런 상황이었습니다. 가끔 정문 앞서 보면 저기 걸터앉아 있던 우리 동지들 이젠 뭘 하고 있는가 생각을 많이 합니다. 열심히 싸운다고는 싸웠지만 놓치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하는 고민도 많이 하고 있습니다. 서른 몇 명 모여 있지만 어떨 때는 각각 시몬스 침대 포켓 스프링처럼 각각 따로 고민을 갖고 있는, 또 옆 사람에게 자기 생각이 전이되지 않는 그런 시간도 뚝뚝 끊기게끔 많이 오고 있는 것 같습니다.
지부장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2015년 7월 달이 정말 국면이 아닌가 싶습니다. 전기가 마련돼서 공장 복직에 단초를 마련하는 시간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고요. 여러분께서 많이 기도해주시는 만큼 그 기도가 정말 현실이 될 수 있게끔 만들어갈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말씀 중에 하느님을 통해서라는 말씀을 많이 하시는데, 정말 우리 해고자들 몸을 관통해서라도 몸과 몸이 이어지는 이 믿음과 소망과 기도가 꼭 현실에 닿기 위해서 부단히 싸우겠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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