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만의 신비한 이유
남대천 연어산란 다이빙
글, 사진 민경호 /온더코너 대표, PADI MI
만추의 남대천, 그 신비로움
2020년 11월 11일. 만추의 어느 날이었던 그 수요일은 특히나 맑고 따뜻 했습니다. 구름은 없고 하늘은 높고 바람은 멈춘 날. 늦가을의 선물 같 은 날에 양양 남대천을 방문했습니다. 연어들이 많이 올라왔다는 소식 을 듣고 달려왔습니다. 김광복 작가와 파인드블루(www.findblue.co.kr) 김환희 대표의 기획으로 마련된 자리입니다. 양양 남대천 강변에 한국 수산자원공단(FIRA) 동해생명자원센터(대표 김두호)가 있습니다. 동해 생명자원센터에서는 가을에 남대천으로 올라오는 연어들을 인공수정 시키고, 봄에 치어들을 방류하는 연어 복원 및 보호 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연어들이 모여드는 양양 남대천의 생태관리 또한 맡고 있습 니다. 남대천에서 연어들의 질주를 촬영하기 전에, 김광복 작가의 주선으로 동해생명자원센터 견학을 진행할 수 있었습니다. 연어의 인공수정과 부화, 치어들의 방류, 연어의 생태와 회귀 등을 안내받았고, 김두호 센 터장과의 면담을 통하여 해당 복원사업의 의미와 연어의 신비로움을 보다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1,000마리의 연어를 방류하면, 그 중 3마리가 다시 돌아온다고 합니다. 먼 바다에서 16,000km 이상의 긴 여행을 3~4년 동안 마치고 돌아오면서 그들이 넘어야 했을 사선들 의 험난함은 아득했습니다. 그 여정을 통과한 마지막 주자들의 질주가 남대천에서 이뤄지고, 그 발화하는 모습을 곧 만난다는 생각에 가슴이 뛰었습니다.
1 혼인색을 띈 수컷 연어
2 육상에서 바라본 연어들
3 남대천 보호구역의 전경
4 해질무렵의 남대천
5 동해생명자원센터에서의 미팅
6 연어 수정란의 관리시설
7 연어알에 대한 안내
8 인공수정 작업의 모습
연어의 질주와 최후
격류 속 질주
남대천은 말 그대로 하천입니다. 물이 바다를 향해 한 방향으로 흐르기만 합니다. 연어들이 모여드는 곳은 수심이 얕은 자갈밭입니다. 유량에 따라 다르지만, 제가 방문했을 때는 수심이 0.7~1.5m 정도였습니다. 얕은 수심 자갈밭을 쓸어내리는 듯한 격류를 버티어가며 연어를 만나야 했습니다. 격류에 몸을 얹은 채 드리프트를 하여 그 속도를 활용하면 연어에 적극적 으로 다가갈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속도감이 대단하여, 불과 몇 초 만에 바위에 부딪힐 뻔한 적이 많았습니다. 11월 11일은 다행히 맑고 따뜻 하여 육상에서는 얇은 옷차림도 가능했습니다. 수온은 민물이다 보니 같 은 시점의 바다 보다 낮아 10~12도 정도였습니다. 끝없이 밀려오는 격류 를 거슬러 오르며, 연어들은 쉬지 않고 질주했습니다. 촬영하는 다이버들 의 존재는 격류 속 질주 중인 그들이 신경 쓸 수 있는 대상이 아닌 것 같 았습니다. 저는 그곳에서 철저하게 손님이었습니다.
사선을 넘어온 용사들
산란이 임박한 연어들은 모습이 많이 바뀝니다. 혼인색을 띄고, 수컷은 얼 굴이 얇고 길어지고, 암컷은 배가 불러옵니다. 특히 수컷의 모습이 인상적 이었습니다. 아래턱이 길어지면서 호전적인 모습이 되었습니다. 70cm 정 도의 크기라서 오랜만에 대물 다이빙을 한다는 느낌도 있었습니다. 대부 분의 연어들은 몸에 상흔이 깊었습니다. 헤아릴 수 없는 사선들을 넘어 오다보니 지느러미는 닳아버리고, 비늘은 뜯기고, 몸 여기저기가 찢어지 고 패였습니다. 아래턱이 너덜거리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다들 생의 마지 막을 목전에 두었다는 긴박함이 가득했습니다. 생명의 촛불이 꺼지기 직 전 마지막 질주. 연어의 생은 마치 2차함수의 그래프처럼 끝으로 갈수록 폭발하듯 타오릅니다.
가로막힌 길
안타깝게도, 연어들이 그토록 거슬러 오르고 싶었던 상류의 은밀한 산란 장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습니다. 수많은 보가 설치되어 있고, 환경오염 이 산재하여 있습니다. 치어로 방류된 연어들은 단지 본능적으로 격류를 거스를 따름입니다. 그들이 가고자 하는 곳은 그들이 태어나기 전에 이미 존재하지 않는데도 말입니다. 남대천에 연어가 모이는 곳에는 펜스가 설치되어 있습니다. 더 이상 갈 수 없는 상류의 어느 지점으로의 여행을 그 만 멈추게 하고, 동해생명자원센터의 인공수정 절차를 거치게 하기 위함 입니다. 연어들은 계속하여 펜스에 충돌하고 좌절하다가, 생명자원센터로 연결되는 수로를 오르게 됩니다. 수로의 끝에서, 그들은 인공수정의 칼을 받습니다.
생의 한가운데
당면하는 죽음
격류를 버티어가며 유영하던 한 마리의 큰 수컷 연어가 유독 기억에 남습 니다. 야성의 아우라가 진하게 묻어났습니다. 연어는 방정방란과 동시에 심장이 멈추고, 심장이 멈추는 그 순간을 향해 계속하여 질주합니다. 오 전, 오후 각 1회씩 총 2회 입수하였습니다. 오후 늦은 시각이 되자, 태백산 맥 뒤로 넘어가는 해가 수중에 여러 다발의 햇살을 꽂습니다. 죽음의 질주 를 하고 있는 연어들에게도 햇살이 느껴질까요. 죽음을 당면하고, 죽음을 오히려 추구하는 존재는 무척이나 경이로웠습니다.
달성하는 존엄
연어라는 ‘종의 복원’을 위해 강에 펜스를 설치하고 연어들의 배를 갈라 인공수정을 하여, 다량의 치어를 방류하는 일련의 행위들에 회의나 아쉬 움을 가지긴 어렵습니다. ‘복원사업’이 없다면 연어들의 아름다운 질주 또 한 없기 때문입니다. 다만, 각 개체로서 존재하는 연어들은 생을 완성하 는 방식이 곧 방정방란이자, 동시에 필연적으로 찾아오는 죽음입니다. 연 어에게 산란과 죽음이란 동의어이자 삶의 목표이며 각자가 쟁취해낸 승리 이고 달성한 존엄입니다. 자신의 삶을 끝내기 위해 일말의 주저 없이 사선 으로 뛰어드는 그들의 질주는 무거운 감동을 줍니다. 연어들은 이 순간이 바로 ‘생의 한가운데’인 것입니다. 격류를 거슬러 질주하며 움켜쥐는 그들 의 존엄은 해질 무렵 강어귀에 깊은 울림을 남기고 있습니다
1 산란둥지를 만드는 연어
2 배가 불룩한 암컷 연어
3 연어들의 질주
4 펜스에 충돌하는 연어
생의 한가운데
루이제 린저는 그의 소설 ‘생의 한가운데’를 통하여, 생에 대한 애착은 각 자의 자유를 진정하게 추구하는 것에 있다고 외칩니다. 애착과 자유는 죽 음을 대할 때 본질이 드러납니다. ‘생의 한가운데’의 주인공 니나는 의사 인 슈타인에게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죽음이란 중요한 일이에요. 인간은 그것을 단 한 번밖에 체험하지 못해요. 그런데 어떻게 의식없이 받아들일 수 있나요? 죽음이란 건 굉장한 것, 아마도 무언가 멋진 것일 거예요.”
각자의 생에서 ‘한가운데’가 어느 지점인지 알기는 어렵습니다. 다만 연어 의 ‘한가운데’는 바로 격류를 거슬러 질주하는 지금입니다. 죽음으로써 생 을 완성하는 그들의 존엄에서 역설적으로 생에 대한 강한 애착과 자유가 느껴집니다.
질주하던 연어와 멈춰선 오늘
‘숨차다’라는 표현조차 부족하게 느껴질 만큼, 쉼 없이 격류를 거슬러 오르 는 연어의 모습을 마주하니, 멈춰있는 오늘이 마치 남대천에 설치되어 그 들을 가로막는 펜스처럼 느껴지기도 하였습니다. 연어 다이빙을 마치고 속 초 항구에 있는 횟집에서 일행들과 저녁을 먹으며 그러한 대화를 나누었습 니다. 코로나 시국은 연어를 막아선 펜스와 같다. 단지 연어들은 그 펜스를 결국 뛰어 넘지 못하지만, ‘코로나’라는 펜스는 곧 뛰어넘을 수 있다는 희 망이 보입니다. 저의 하루가 연어의 질주처럼 폭발적이진 않을 지라도, 곧 갈 수 있는 펜스 너머의 그곳을 기대하며 거슬러 올라보려 합니다.
출처
http://www.sdm.kr/bbs/board.php?bo_table=magazine_view&page=3&page=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