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의 순정이 베르너의 '들장미'로 분강에 울려 퍼지고~"
도산구곡을 굽이 굽이 거침없이 역행하며 흘러온 낙수는 부내汾川(분강촌, 분천동)에 와서는 잠시 여독을 풀고 쉬어가는 정거장으로 삼았다. 분강촌에 이르러서는 거친 강물이 크고 널따란 돛단배 같은 지형에 모아지면서 수려한 분강을 만들었다. 산야가 아름답고 노닐 수 있는 누각과 숭대들이 많고 재미나는 민담과 전설이 주렁주렁 달린 동네이다 보니 강물인들 어찌 그냥 지나칠 수 있으리오~.
점심 시간이 되자면 아직도 거반 한 시간 경은 남아 있었다. 막간을 이용해서 선생님께서 니치(nicheㆍ틈새) 이벤트를 진행하셨다. 모두가 푸른 잔디밭 왕버들나무 그늘 아래에 둘러 앉아서 흘러가는 비취색 강물을 바라보며 쉬고 있는데 선생님께서 우리들을 보시며 말씀을 내놓으셨다.
"이 아름다운 분강 강변에서 누가 멋진 노래를 들려 줄 수 있을까요?" 그리고는 우리들을 빙 둘러 보셨다.
그런데 갑자기 일순간 조용한 정적이 돌며 어찌된 영문인지 손을 드는 아이들이 아무도 없었다. 반장인 나는 어찌 되었든 간에 이 아름다운 왕버들 무대를 해치고 싶지 않아서 분위기를 반전시켜야겠다는 생각이 불현듯이 머리 속을 스쳐 갔다. 반장으로서 느끼는 일종의 책임감이라 할까 아니면 이 서먹한 상황으로 인해 우리 고운 선생님을 실망시키면 안된다는 아름다운 순정의 마음이라 할까.
"선생님~ 제가 불러도 될까요?"
"그래~ 반장부터 한 번 불러 보거라."
나는 지난해 늦가을 보름달이 훤하게 비추던 분강 언덕 양수장 푸른 잔디밭에서 여러개의 남포등에 환하게 불을 밝힌 채 마치 연등처럼 소나무 숲 가지에 주렁주렁 걸어 놓고서는 동네 4H 활동을 하는 형님들과 누나들이 무용을 하며 가르쳐 준 노래가 머리 속에 번뜩 선곡으로 떠올랐다. 베르너가 작곡한 번안곡 "들장미"였다.
"선생님. 제가 들장미를 부를 거예요."
"그래. 그렇게 하렴. 여러분~ 모두 박수로 종구 노래를 맞이해 주세요."
"웬 아이가 보았네~
들에 핀 장미화~
갓 피어난 어여쁜~
봄 햇살이 무성한 물레방간 푸른 언덕에서 사모하는 고운 선생님을 앞에 두고 흘러가는 낙강을 바라보며 왕버들 가지에 앉아서 놀고 있는 하얀 물새들과 눈을 맞추며 애일당 소나무 숲에서 산들산들 불어오는 하늬바람을 맞으며 한 소절 한 소절 들장미를 부르고 있자니 하늘에서 작은 요정들이🧚♀️🧚🧚♂️ 분강에서 만들어 온 무지개빛으로 반짝이는 고운 아지랑이 포말들을 물레방간 파란 잔디밭으로 소록소록 뿌려주는 동화 같은 세상이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아마 들장미 가사를 지은 볼프강 괴테도 젊은 시절 쉬트라스부르크에서 프리데리케라를 사랑할 때 요정들이 뛰어 노는 아름다운 들판에서 빨갛게 피어나 있는 들장미를 바라보면서 어여쁜 그 소녀를 생각하며 순결한 마음으로 이 시를 써 내려 갔으리라.
푸른 초원에 갓 피어난 청초하고 어여쁜 들장미를 바라보는 순정의 맑은 눈빛과 가슴 속에서 솟아나오는 신비한 꽃향기에 취해서 빨간 들장미 곁을 떠나지 못하고 하염없이 꽃송이를 지켜보는 가운데 어느덧 청춘은 강물처럼 흘러갔으리라.
아~ 물레방간 푸른 잔디밭 왕버들 숲 무대에 울려 퍼졌던 볼프강 괴테의 애련미 가득한 들장미 싯구여~ 아름다운 선율로 양수장 아래로 흘러가는 분강과 통소와 구여울 위로 날려 보냈던 베르너의 애잔한 멜로디 빨간 들장미여~
그 향기에 취해서~
정신없이 보누나~
장미화야 장미화야~
들에 핀 장미화야~"
♤그림 및 사진 종합 설명(caption) : [그림1 ai 생성] 봄 햇살이 무성한 물레방간 푸른 언덕에서 사모하는 고운 선생님을 앞에 두고 흘러가는 낙강을 바라보며 왕버들 가지에 앉아서 놀고 있는 하얀 물새들과 눈을 맞추며 애일당 소나무 숲에서 산들산들 불어오는 하늬바람을 맞으며 한 소절 한 소절 들장미를 부르고 있자니 하늘에서 작은 요정들이 분강에서 만들어 온 무지개빛으로 반짝이는 고운 아지랑이 포말들을 물레방간 파란 잔디밭으로 소록소록 뿌려주는 동화 같은 세상이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그림2]는 1746년 겸재 정선 선생이 도산서원의 주변 풍광을 그린 "계상정거도(현재 일천원권 지폐 뒷면 산수화)"이다. 도산서원과 더불어 봄소풍 단골 장소인 우리 마을 분강촌은 [그림2] 제일 왼쪽 상단 강과 산이 길게 접한 지역이다. 그림 속에 솔나무가 울창하게 서 있다. 도산국민학교 등굣길은 [그림2] 왼편 상단 산아래에 있는 분강촌에서 시작되어 [그림2] 오른쪽에 있는 도산서원 앞의 천연대를 돌아서 아카시아 가로수 길을 따라 오 리 정도를 더 가야 학교가 나왔다. 분강촌에서 학교까지의 거리는 10리 길이었다. [그림3]은 수몰된 분강촌 마을에 있던 전설의 물레방간 풍경을 처연하게도 그림으로 살려 낸 모습이다.《화랑교육원》 원장을 지냈던 분강촌 출신 교육자이자 화가인 족친 이택 선생이 필자에게 직접 그려 준 1950년대 수몰 전 분강촌 물레방간 주변 전경이다. 필자가 이택 선생께 "70여 년 전 물레방간 모습이 그립다"고 그려 달라고 말씀드렸더니 흔쾌히 그려 주셨다. 이 물레방간 위쪽 오른편 넓은 잔디밭으로 소풍을 와서 '숨은 보물찾기'와 '수건돌리기' 게임을 했다. 푸른 잔디밭 아래에는 넓고 깊고 푸른 분강이 흘러가고 있었다. 1549년 가을에 만년이 된 농암 선생이 귀거래하여 청풍명월을 등불로 삼으며 퇴계 선생과 퇴계의 형님이 되는 온계 선생과 함께 분강의 자리바위에서 어부가를 짓고 읊으며 유상곡수와 선상음악회를 했던 바로 그 장소이다.
[그림4, 사진1] 당시 물레방간 풍경이다. [그림4]는 물레방간 앞 강가 전경이고 [사진1]은 물레방간 아래로 넓게 펼쳐진 잔디밭 풍경이다. 마을로 불어오는 강바람을 막아주는 울창한 소나무 숲을 옛사람들은 강수江藪(일명 '쑤', 쑤는 '수풀 수藪', 강바람을 막아주는 소나무 숲을 말함)라고 불렀다. 강변 오른편으로 넓게 펼쳐져 흘러가는 분강이 보인다. 분강 아래에는 깊은 통소가 있었고 통소의 물이 넘쳐나는 곳에는 여울목을 이루는 구여울이 있었다. 구여울을 지나가는 낙강은 굽이 굽이 물길을 따라 부포로 흘러 갔다. [사진1]의 솔밭 주변과 물레방간 윗쪽이 봄소풍 무대였다. 솔나무가 강변을 따라 울창하게 서 있고 앞에는 낙강이 깊고도 넓고도 푸르게 흘러가는 형상이었다. 사진은 분강촌 재술이 아재가 유년시절(1970년8월) 오뉴월에 동생들과 강수(분강 강변의 소나무 숲) 앞 넓고 푸른 잔디밭에 앉아 놀고 있는 전경이다. 솔밭 오른쪽으로 넓고 깊은 분강이 고적히 흘러가는 모습이 희미하게 보이고 있다. 분강촌 사람들이 이름하여 "통소"라고 불렀던 바로 위에 있던 지대이다. 강물이 항아리 통같이 깊고 우묵하게 생긴 곳에 "소"를 만들어서 통소라는 지형 이름이 붙여졌다.(사진출처: 이재술ㆍ도산국민학교 51회)
[사진2]는 수몰 전 토계번화가 도산지서 앞에 있던 자생당 약방(권영진 선생, 1995년 작고ㆍ향년 58세)의 자제인 필자의 동창 내영(도산국민학교 58회)이가 1974년 4학년 때 우리 동네 분강촌 애일당 아래 물레방간 강가에 봄소풍을 와서 이재일(85)-안계화(78) 선생님 내외분과 함께 한 광경이다(사진출처: 권내영). 오른쪽 아이는 내영이의 동생 두현군이다. 1972년 필자가 도산국민학교 2학년 때 우리들의 담임 교사였던 이재일-안계화 선생님 내외분은 현재 대전에 계신다. 종종 소통을 하면서 정겨운 옛 얘기를 나누고 있다.[사진3]은 [사진 2]의 바로 아래에서 촬영한 사진이다. [사진2]와 같은 시기인 1974년 봄소풍 전경이다. 필자의 도산국민학교 58회 동창인 선희(앞줄 중간)가 친척인 친구와 그녀의 언니랑 함께 한 모습이다(사진출처: 조선희). 선희 뒤에 어른은 당시 34세 청춘의 모습으로 자녀의 봄소풍에 나들이를 나오신 선희의 어머님인 송복자 여사이다(2025.6.28 작고ㆍ향년 85세). 이제는 모두 다 그리운 옛 사람들이다. 분강너머로 섬마(섬마을) 강변과 작은 포플러나무 그리고 부포로 이어지는 희멀건 산들이 희미하게 보이고 있다.
[그림1]은 분강촌 애일당 아래에 있는 물레방간 앞으로 흘러가는 분강 강가에서 필자가 친구들과 선생님과 물새들을 바라보며 베르너의 '들장미'를 부르고 있는 모습을 ai를 통해 생성시켜 보았다. 연푸른 빛이 이는 잔디밭과 고즈넉이 흘러가는 분강과 왕버들나무 위에서 소년의 노래를 듣고 있는 물새들의 전경이 그지없이 평화롭고 정겨워 보인다. 유년시절 분강 강변에서 있었던 봄소풍에 대한 애틋한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그리운 전경이자 그리운 옛 사람들이다. 나는 유년시절 분강 주변에 있던 물레방간과 통소와 양수장 강가에서 혼자서 낚시질을 즐겨 하며 적지 않는 시간을 보냈다. 시절이 아름다운 계절에는 거의 반나절을 이곳에서 종종 보내기도 했다(그림5 ai 생성).
굽이 굽이 흘러가는 낙강을 바라보며 먼 곳(목실골)에 사시는 부모님의 안부를 강물에게 물어볼 때면 여울진 구여울 강물은 언제나 부드럽고 인자한 소리로 곧잘 대답을 해주곤 했다.
"영원의 눈을 가진 푸른 저 강물은 어디로 흘러 가는 것일까. 저 강물이 다다르는 먼 산너머에는 누가 살고 있을까. 그리고 나는 커서 무엇이 될까."
어느 때는 이렇게 소요하고 사색하는 시간이 반나절을 훨씬 넘기는 때도 있었다. 낚시질을 하며 턱을 괴고 푸른 강물을 바라보며 깊은 상념에 젖어 있는 소년의 모습이 적이 떠오른다♧.
첫댓글 시원하고 정겨운 왕버들 늘어진 그늘 밑 강변에서 추억의 동심을 AI가 분위기에 맞게 잘 구현 했네...
AI가 반원들이 오와 열을 맞추어 경직된 모습으로 생성 한것에 비해
더 자연스럽게 둘러 앉은 모습으로 업그레이드. 되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