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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토바이 세계일주, 일본 30일차 / 후쿠오카의 축제.
5월 4일 일요일 맑음
내일이면 일본을 떠난다.
만남은 떠남을 목적으로 만나지는 않지만 숱한 인연이 만나고 헤어진다.
헤어짐은 늘 아쉬움을 동반하고 오는 것이라서 어떤 이는 슬프고 어떤 이는 시원하고 어떤이는 섭섭하다고 한다. 나에게 일본은 과연 어떤 의미일까? 시원할까? 섭섭할까?
내일 떠나려니 이제는 관광지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마을 회관 수도에서 씻고 다시 출발한다. 시간이 좀 남아서 고개 마루에서 산행을 한다.
일본에 와서 두 번째 산행이다.
‘왕복 두 시간만 산행하자.’
산은 자국의 언어가 없다. 그래서 산에 올라가면 다 통한다. 산은 어디를 가나 내나라 내땅의 나무 같고 흙 같다. 사시사철 갈아입는 이파리와 꽃의 피고 짐에도 언어는 같다. 새 역시 같다. 아침마다 나를 깨우는 새의 노래는 우리나라의 노래와 같다. 나는 그래서 자연을 사랑한다. 이 언어의 장벽이 없는 무한 언어의 노래를 나는 사랑한다.
드디어 후쿠오카 시내에 도착한다. 은실 이를 세우고 걸어 다니며 시내를 구경하고 싶었는데 일요일이라 썰렁하다. 한참 항구 쪽으로 달리는데 신사참배객 행렬이 도로를 따라 행진한다.
“은실아! 이런 구경 처음이지 좋으냐?”
“영화에서 보던 사무라이 복장을 하고 행진하네. 신발 좀 봐. 나막신을 신고 가는 것 봐.”
“은실아. 넌 눈이 참 밝구나. 내가 보지 못한 것을 너는 보는 구나.”
그들은 나무로 만든 신을 신고 마치 탭댄스를 추듯 아스팔트에 묘한 걸음말을 흘리며 지나간다.
‘또다닥 또닥 또다닥 또닥’
다시 달린다. 하카타항을 찾아야 하는데 없다. 지나는 청년에게 묻는다.
“나는 페리를 타고 부산에 가야 하는데 타는 곳이 어딘지 알 수 있을까요?”
내 언어가 길다. 그가 다 건너뛰고 두 단어에 반응한다.
“부산, 페리?”
“아. 예”
낯선 타국에서 언어는 길 필요가 없는 것인가?
그가 한국어를 좀 한다. 한국을 사랑한다고, 한국을 사랑하니 한국 사람인 나도 좋다고, 사내의 입담이 구수하다.
“모셔다 드릴게요.”
나는 사내를 따라간다.
사내는 자기의 목적지도 아닌 항구까지 친히 나를 안내하고 돌아선다.
돌아서서 가는 사내의 뒷모습이 화창한 신록의 오월 같다. 멋지다. 내가 여성이라면 인연 있으매 차라도 한 잔 마시고 가라고 할 것만 같은 사람이다.
항구에 가서 한국어 카운터에 묻는다.
“예약 날짜를 변경해서 그러는데 담당자 있습니까?”
“문을 닫았고요. 고려해운 사무실은 3층에 있어요. 올라가 보세요.”
나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간다. 노크한다. 대답이 없어서 들어간다. 두 사람의 직원이 바쁘게 움직인다.
전후 사정을 이야기했더니 예약이 확실히 변경된 것 맞으니 내일 늦지 않게 오란다. 고맙다.
대합실에 앉아 잠깐 폰을 들여다보고 있는데 옆에서 한국말이 들린다.
한 달 동안 듣지 못했던 고국의 언어가 들리는 것이다. 그것도 여기저기서……. 여기가 한국인가? 후쿠오카 하카타항은 한국인 반 일본인 반이 섞여있다.
나는 옆자리에 앉아 이야기 하는 단체 관광객분 두 여성분과 잠시 이야기한다.
“그래 일본 단체 여행은 즐거우셨는지요?”
“벳푸 온천을 갔는데 같이 간 할아버지가 자기 동네 찜질방 보다 못하다고 ......”
내가 맞장구를 친다.
“저도 별로였습니다. 그럼 어디가 좋으셨습니까?”
“아소산이 좋았어요. 유황냄새가 진동하는 산인데…….”
내가 가 본적이 없는 산이다. 나는 해안선을 따라 이동했기에 내륙의 관광지는 가지 않았다.
“음식은 어떠셨어요?”
“왜 이렇게 짜요? 그런데 혼자 오토바이를 타고 한 달이나 여행하셨다고요? 대단하세요.”
“고맙습니다. 그런데 한국 어디에 사십니까?”
“여수에 살아요. 여수 와 보셨어요?”
“아니요.”
“뭐야? 여수도 와 보지 않고, 얼마나 좋은데요. 여수에 와 본적이 없는 분하고는 이야기 하고 싶지 않네요. 호호.”
가만 보니 두 분의 나이가 나랑 비슷해 보인다. 그 분이 농담을 하는 것이다.
“하하. 예전엔 갔지요. 돌산도도 가고요.”
두 분은 꼭 세계 일주에 성공하고 책 내면 사서 읽을 테니 꼭 연락을 하란다.
편하다. 이 아름다운 언어가 서로 통할 수가 있어서…….
나는 다시 시내로 나온다.
항구 끝에서 사람들이 몰려있어서 가본다.
소녀시대와 비슷한 일본의 소녀그룹이 공연을 하고 자칭 일본의 삼촌 팬들이 환호성을 지른다. 흥겹다. 소녀시대보다 더 무대를 들썩거리게 만든다. 방송에서 나와 찍는다.
한참 구경하다가 오늘은 호텔에서 잘까 하고 찾아보는데 없다.
하카타역쪽으로 가는데 길이 통제되어있고 사람들이 어마어마하게 몰려있다.
나는 은실 이를 세우고 달려가서 구경한다.
일본에 와서 이렇게 많은 인파는 처음이다.
각 시별로 관악대와 볼거리를 가지고 거리를 행진하는데 끝이 없다. 아이부터 어른까지 표정도 다양하고 준비도 대단해서 볼만 했다.
수십만 명의 시민들이 거리를 가득 메우고 이들의 행진을 구경한다. 일본에서 아마 가장 큰 거리 행진이 아닌가싶다. 어쩌면 일본 각지에서 이 장면을 보려고 이 도시로 몰려왔는지도 모른다.
결국 저녁 다섯 시가 넘어서야 나는 그 자리를 뜬다.
마지막으로 한가한 시내 공원에 들린다.
일본의 특징은 어디를 가나 깨끗하다는 점이다. 나는 그곳 공원을 버스커버스커 노래처럼 걷는다. 봄바람 휘날리는 저기 꽃잎 속을, 저기 저수지의 다리 위를…….
장미가 피었다. 고국의 장미가 그립다. 이곳 공원의 장미는 붉은 색이 많이 없다. 나는 새빨간 장미가 그립다. 금방이라도 툭 터져 피가 솟구칠 듯 새빨간 장미, 한국에 들어가면 장미 공원에 가야겠다. 그리고 걸으련다.
호텔의 마지막 밤은 물 건너가고 나는 다시 산속으로 들어간다.
내가 쉴 곳은 정녕 집이 아닌 저 아스라한 산이거나 들이어야만 한단 말인가?
잠잘 곳은 기막히게 잘 찾는다.
산으로 좀 올랐더니 통제된 길이 보인다. 그곳으로 들어갔더니 잔디구장이 있어서 그곳에 텐트를 친다. 편의점에서 사온 도시락과 빵으로 마지막 식사를 한다.
일본의 마지막 밤이다.
어쩌면 다시는 일본의 이 들판에서 잘 날이 오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오토바이 세계일주, 일본 31일차 마지막 회 / 일본을 떠나며
5월 5일 월요일 비온 후 맑음
새벽부터 텐트를 두드리는 빗소리에 잠을 설친다.
일본에 온 첫날 비가 오더니 가는 날도 비가 내린다. 텐트를 두드리는 빗소리가 싫지는 않다. 다만 너무 많이 내려서 바닥이 젖을까 봐 그것이 걱정이다.
우비를 입고 짐을 싸고 나니 비가 갠다. 다행이다.
9시 30분에 항구의 미팅 장소에 간다.
청년이 다가온다. 나는 그에게 서류를 내민다. 그가 서류를 가지고 세관으로 간다.
잠시 후, 은실 이는 떠날 배의 구석에 실린다.
짐이 많아서 페리로 옮기는데 땀이 흥건하다. 별 탈 없이 수속이 끝나고 나는 배의 선실에 도착하자마자 짐을 풀고 샤워장을 찾는다.
나는 선상에서의 샤워를 즐기며 간밤 비 젖는 텐트에서의 궁상을 씻는다.
선상의 점심시간이다.
자판기에 먹을 메뉴를 찾아 누른다. 나는 새우볶음밥을 시켰는데 다른 분들은 김치찌개를 많이 시킨다. 이상하게 유럽에서는 그렇게 한국 음식이 그립더니 일본에선 그렇지 않다.
아마 쌀밥이 나오고 라면도 자주 먹고 고기도 내가 직접 볶아서 먹을 수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닐까?
양념의 준비 부족으로 요리는 거의 하지 못했지만, 체중은 그대로다. 신기하다. 고생을 많이 한 것 같은데 …….
배는 망망의 바다를 향해 나아간다.
고국의 바다를 향해 고국의 땅을 향해.....
드디어 한국 부산이다.
수속을 마치고 나는 오토바이를 배에서 내린다.
우후죽순 하늘 높이 솟아있는 빌딩숲이 반갑다. 멀리 용두산 공원의 전망대가 반갑다.
구수한 부산 사투리가 반갑다. 그리고 다시 원 위치된 차선의 방향이 또한 반갑다.
갈 때 응원해준 사돈 친구가 다시 마중을 나온다.
객지에 나가 얼마나 힘들었냐고 맛있는 저녁까지 사준다. 연로하신 우리 어머니 드리라고 떡까지 해서 준다.
‘아! 인정 많은 한국이 맞구나. 내가 정말 한국에 온 것이구나.’
눈물겹다.
언제 이 은혜를 내가 갚을 수 있을지…….
어머니께 달려간다.
“어머니! 저 왔습니다.”
“아이고 내 강아지 왔냐? 그래 사고 소식은 들었냐?”
“예, 어머니 잠깐 들었어요.”
“세상에 그런데도 배를 타고 온 거야?”
90세이신 어머니가 나를 걱정한다.
이 눈물겨운 걱정을 나는 환한 웃음으로 화답한다.
“어머니 제가 아무 탈 없이 돌아온다고 했잖아요. 하하하.”
“원 녀석도.....”
어머니의 미소가 해맑아서 나도 덩달아 환한 달이 된다.
“어머니! 오래오래 사세요.”
-에필로그-
장장 한 달간의 긴 여정이었다.
두려움과 설렘과 알 수 없는 미지의 세상으로 내가 출발 할 때 나의 심장은 평소보다 더 빨리 뛰었다.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을지 알 수 없었고 내가 그 긴 날을 잘 견디고 올지도 알 수 없었다.
이것은 모험이었고 일본을 향한, 세상을 향한 도전이었다.
방송과 지면으로만 알고 있는 일본이란 나라를 나는 내 발로 직접 걸어 들어가 느끼고 싶었고 직접 그 거리를, 그 산하를 달리며 오늘의 우리나라를 견주어보고 싶었다.
무엇이 잘 못 되었으며 무엇이 잘 되었고 왜 그래야 했으며 왜 그랬는가를…….
내가 한 달 동안 달리고 느낀 점을 써서 그것이 정답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나는 보이는 대로 본 것이며 느끼는 대로 느꼈을 뿐이다.
내가 그들의 역사를 파헤쳐본 것도 아니고 내가 그들의 정신세계를 속속들이 알려고 들어간 것 역시 아니기 때문이다.
한 달 동안 쓴 일기에 그 모든 것이 스며들었을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내가 이 일기를 세상에 공개하는 이유는 읽어서 읽힌 대로 해석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조금은 더 부드러운 시선으로 일본을 이해하고 조금은 더 가까운 시선으로 일본을 알았으면 하는 마음이다.
누군가는 내가 달린 그 길을 달릴 것이고 누군가는 나와 같은 생각을 할 것이다.
나는 이미 다녀온 분들에게 많은 배움을 받은 것처럼, 앞으로 달릴 분들에게 작은 참고가 되었으면 좋겠다. 내가 행동한 이 모든 것이 정답은 아니듯 여러분이 달릴 그 길 역시 정답은 아니다.
누가 어떤 길로, 어떤 수단으로, 일본을 가든 선택은 독자의 몫이다.
기간 : 2014년 4월 4일~5월 5일 한 달.
총 지출비용 : 약 199만원 (ferry 운임포함)
달린 총 거리 : 300km 용인출발 ~9500km 용인 도착
민박 : 2일
텐트 : 29일 (주유소, 산, 들판, 논두렁, 터널 내, 아스팔트 위 등)
주요 루트 : 후쿠오카 항에서 규슈 일주, 혼슈 서해안 따라 상경, 홋카이도 일주, 혼슈 동해안 따라 일주, 시코쿠 섬 일주, 구슈 내륙 관통.
환율 : 100엔- 1050원
도로이용 : 100퍼센트 국도와 지방도만 이용. 고속도로 타지 않음.
온도 : 구슈 최고기온 23도 홋카이도 최저기온 0도.
식사: 조식 빵과커피, 중식 외식이나 도시락, 석식 라면이나 고기볶음, 백반. 등
주유소: 1일 8,000원 정도 소요.
나는 이제 시베리아로 간다.
*끝*
외국의 인터넷 환경이 열악해서 이제 언제나 다시 세계일주 후기를 올릴지 알 수 없습니다.
자세한 후기는 귀국을 해서야 올리겠지만, 간간히 제가 어디에 있는가는 소식 전하렵니다.
끝까지 읽어주신 독자 여러분! 부디 건강하시고 다시 뵙는 날까지 견디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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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오랜만에 들어와 보니 일본일주(?)여행을 하고 왔구나. 부럽다 ....
물론 고생도 많았겠지만, 모든사람들의 꿈 아닌가 시간의 구애를 받지 않고 훨~훨 떠나 여행을 한다는 거.
다음 목적지는 어디야?
언젠가는 나도 갈수있으려나~
난 고창소방서로 발령이 났어 2년 되가네 벌써,,
김 기 준
역동적이며
삶의 멋진 파노라마
아름다워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