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표소를 지나며 눈이 녹아 칠떡거리던 오름길이 오를수록 쌓인 눈의 깊이를 더하여 갔
기에 안전을 위하여 스팻치와 아이젠을 착용하였다. 다리도 시원찮은 판에 넘어졌다가
는 거저저도 구들장 신세나 져야될 것 같았기에 살아오면서 아직 먹어보지 않은 겁도 먹
어야만 하였다. 왼쪽 다리가 어찌될세라 잔뜩 긴장을 하고서, 가파르지도 않은 경사면을
네발로 기듯이 한발한발 신중을 기하여 오른다.
유일사갈림길에서 잠시 망설였다. 완만한 길을 택할 것이냐 아니면 좀 더 경사진 길을
오를 것이냐, 지난 여름 어두운 길을 랜턴도 켜지 않은 채 어둠속을 오르면서 유일사로
오르는 오른쪽길이 수풀로 우거져서 너무 어두웠기에 넓은 도로를 택하였었다. 이번엔
유일사를 꼭 다녀가리라 마음먹었었는데, 다리 사정이 그리 좋은 편이 아니었기에 또
다시 편한 길을 택하여 오르지 않을 수가 없었다.
몸은 불편하여도 눈길을 걷는 기분이 꽤나 고조됨을 느겼다. 40여분을 올라 우측으로
꺾어오르면서 지난 봄 새벽 뒤쳐져 오르는 친구들을 이곳에서 기다렸던 생각이 났다.
'어서 오시라'는 듯 우뚝 서서 반기는 주목의 눈인사가 반갑다. 키가 훤칠하고 잘 생긴
미남자를 만나는 것 만큼이나 기분이 좋다.
"지금 내 곁엔 그런 보호자가 필요한데....."(욕심은 금물?^*^)
갈림길에서 2Km 올라온 지점, 유일사로 오르는 길과 합류하는 곳이다. 유일사 뒷쪽에
위치한 쉼터가 있는 곳이다. 이곳까진 최대장님과 나란히 이야기를 주고 받으며 지겹
지 않게 올랐다.
갑자기 불어닥친 눈보라가 땀을 앗아간다. 경쾌하다. 바람 새어들 틈을 주지 않고 꽁꽁
꾸려입고서 마음의 준비마저도 완전무장을 하였다.
조금 더 오르니 스님 한분이 목탁을 두드리며 시주를 요한다. 천연기념물 주목나무가
서있는 앞이다. 산님들이 기념 촬영을 하기에 붐비었다. 지난 봄 기념촬영한 것이 여러
장 있기에 박꽃향기는 그대로 지나쳐 가기로 하였다.
이곳부터는 주목군락지이다. 살아서 천년 죽어서 천년을 산다는 주목나무이다.
생장추는 나무의 나이를 알아낼 때 사용하는 기구이다. 나무의 속 고갱이를 뽑아낸 뒤
나이테 숫자를 세어 나이를 가늠한다. 생장추로 알아낸 우리나라 최고령 나무는 정선군
사북읍 두위봉에 있는 천연기념물 433호 주목나무이다. 나이가 1,400살, 주목은 생장이
더딘만큼 오래 살고 죽어서도 잘 썩지를 않는다.
백두대간을 이어가는 높은 봉우리마다 기괴한 모양을 한 오래된 주목들이 자란다. 북쪽
으로 점봉산에서 두위봉, 함백산, 태백산, 소백산에 이르기까지 매서운 겨울의 칼바람에
도, 여름날의 강한 자외선에도 의연히 버티어 준다.
웬만한 굵기면 수백년, 좀 굵기가 있다 싶으면 지나온 세월이 1,000년을 넘나든다. 주목
이 지구상에 나타난 것은 아스라이 먼 3백억년 전, 한반도에 살아온 세월만도 2백만년이
훨씬 넘는다. 빙하기의 혹독한 삶을 이겨내고 자자손손 삶을 이어왔다. 그러나 몸속에 간
직한 붉은 속살과 잘 썪지 않는 몸체 때문에 오래전부터 수난의 나무였던 것도 사실이다.
나눠줄 것이 너무 많은 나무, 낙랑고분의 나무관이 주목이었고 그 외에 활을 만드는 재료
로서, 임금을 알현할 때 손에 드는 현에 이르기까지 그들 육신을 주어야 할 곳이 많고도
많았다. 환경적응력이 떨어지는 원시적인 나무라서 경쟁력에 밀리고 겨우 살아남으면,
사람들 손에 잘려나가야만 하였다. 낮은 산자락이 싫어서가 아니라 살아남기 위하여는
어쩔 수 없는 높은 곳으로 차츰 옮겨가지 않을 수가 없었을 것이다.
영월~태백을 잇는 국도 38호 길은 동남천 물줄기가 굽이굽이 돌아 흐르는 절경이다. 아
직도 우리 머릿속엔 탄광으로만 남아있는 사북읍에 조금 못미쳐 '도사곡휴게소'가 있다.
여기서 출발하여 등산화 끈 단단히 졸라매고 두 시간쯤 산길을 올라가면 철쭉으로 유명한
두위봉의 산등성이에 이른다. 두위봉이란 이름처럼 가파른 산세가 아니라 두리뭉실하고
펑퍼짐한 능선을 이어간다. 해발 1,280m의 높은 곳, 여기에는 우리나라에서 자라는 모든
나무중 가장 오래 살아온 주목 세그루가 있다. 나무는 세로로 나란히 자라는데 가운데가
맏형이다. 나이는 자그만치 1.400년에 이르고 지름은 세 아름에 이른다.(펌)
김유신. 계백장군과 동년배, 백제와 고구려가 망하고 신라로 나라가 통일되는 한반도의
역사적 대격변기에 이 곳 두위봉 한 구석에서 가녀린 싹을 올리고 뿌리를 내렸으리라.
그들은 자람을 서두르지 않았다. 다른 나무의 그늘 밑에서도 인고의 세월을 무던히도 흘
려 보냈으리라.
태백산의 주목나무는 천연기념물로 지정이 되어 보호를 받고 있다.
朱木( Japanese yew );주목은 일본이 원산지로 북반구에 널리 분포되어 있고 키가 16m
이상까지 자란다고 한다. 우리나라에는 주목과 설악눈주목이 있고 근래에 서양주목이 들
어와 정원수로 심어진다고 한다. 주목의 잎은 뾰족한 바늘잎이 달리고 4월에 꽃이피고 9
월에 붉은색의 열매가 달리며 최근 항암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괜한 수난을 당하지
않을까 걱정도 된다. 나무결이 좋고 홍갈색이라 붉은나무라는 뜻의 주목이다.
태백산 주목나무
꽃피고 단풍들던 그 날이
언제였더냐.
눈덮인 태백산에
하얀 설관 눌러쓴 네 밑을 걷노라니
천년 세월이 무심하다.
천년 향기 피워놓고
남몰래 눈물 지었을
너의 말없는 고백에
눈보라 속을 헤치며
난 知天命에도 허우적여
겨우 그 곁을 스친다.
작은 부상에도 마음 끓여
안으로 움츠리던 소심함에
부끄러움을 감추지 못하며
태백산천에 은빛 날리는
너의 찬란한 면류관(冕旒冠)을
당차게 물려 받으리라.
천년의 꽃씨는 못뿌리더라도
한세월 살아
부끄럽지 않은 이름 석자
네 앞에 흘리며 가리라
태백산 주목나무여!(09.02,05)
설화 핀 주목의 아름다운 모습을 잠시 카메라에 담아보았다.
작은 경사면에도 힘에 부치는 박꽃향기의 모습이다.
지난 봄에는 나물을 뜯으며 새벽의 태백산을 이리 뛰고 저리 뛰어다니며 깔깔거렸었는데
불과 몇달 사이건만 지금의 모습은 네 발로 기지 않으면 이 완만한 길도 걸을 수가 없을
정도로 힘에 겨웠다.
눈에 띄는 주목마다 눈길을 잡아 놓는다. 발길이 쉽게 옮겨지질 않는다.
오랜 풍상속에서도 생명력을 잃지않고 살아있는 주목, 그 중에서 사람들에게 가장 인기
가 많은 나무이다.
이곳의 주목중에서도 사진작품에 곧잘 등장하는 나무이다. 대부분 눈꽃이 핀 장면을 보
여 주는데 오늘은 원래의 모습 그대로이다. 푸근한 날씨 덕분에 눈꽃이 모두 녹아내린 장
면, 그러나 잘 생긴 모습이다. 수형(樹形)도 좋고 키도 적당하며 고사된 모습에 살아있는
나뭇가지가 양쪽으로 대칭을 이루며 전체적으로 안정감이 있어보이는 주목의 형상이다.
이 나무는 우리 민족이 찬란하였던 시대, 세종대왕께서 한글을 창제하는 과정의 힘에 겹
고 어려웠던 소리를 귀에 전해 들으며 살았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지금도 꿋꿋한 모습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주목의 형상이다.
주목에 눈이 팔린 사이 어느 덧 1시를 지나고 있었다. 눈보라치는 중에도 추위를 잊을 수
있음은 주목의 화사하고 쉽게 꺾이지 않는 기개로움에 반한 때문이 아니었을까?
묵정님이 배고프다며 삶아온 계란을 내어놓는다. 두알씩 나무어 먹고 사과 한알 꺼내 쪼
개어 목을 축인 후 얼른 그 자리를 떴다.
장군봉으로 향하는 길은 바람이 더욱 매서웠다. 능선 위로는 철쭉이 군락을 이루며 북서
풍이 불어오는 태백의 혹한을 이겨내고 있었기에 지난 봄 이곳에서의 화려하였던 이야기
꽃을 떠올리며 잠시 추위를 잊어보았다. 맑은 날이었으면 이 능선에서의 전망은 최고에
달하였으리라. 오늘은 조망에 관한 이야기는 언급을 않기로 하겠다.
장군봉을 지나며 지난 봄 이곳에서 맞이하던 일출을 떠올리며 빙그레 웃어보았다. 날씨
가 그렇게도 청명하던 그 날, 새벽 바람도 차갑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를 않았었다. 아만
다님께 부탁하여 찍은 사진과 함께 봄날의 사진을 함께 올려보기로 한다.
꽃피는 춘삼월이 지나고 백두준령 화방재에 봄기운이 넘쳐나는 유월이 오면 화사하게
이 곳의 능선을 메우고 있는 철쭉들도 꽃을 피워 태백산을 붉게 물들이리라. 지난 봄엔
이상기온 현상으로 태백의 철쭉 꽃망울들이 대부분 꽃을 피우지 못하고 얼어 죽고 말았
는데 올해는 지난 해 못한 갑절의 화려한 꽃을 피워주었으면 해지는 바램이다. 그 때쯤
이면 박꽃향기도 다시 태백을 찾지 않을까 해진다.
북서풍의 강한 바람에 밀리며 겨우 천제단에 도착하여 보니, 천제단과 태백산 정상석
앞에는 기념촬영하는 사람들로 온통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목표지점에서 몇발자국
떨어져서 얼른 몇장 사진기에 담아가지고 천제단을 떠나기로 하였다.
태백산(높이 1,567m), 한반도 척량 산맥인 태백산맥의 주봉이며, 이곳에서 소백산맥이
갈라져나와 남서쪽으로 발달한다. 흰모래와 자갈이 쌓여 마치 눈이 덮인 것 같다 하여
태백산이라 불렸다고 하며, '크고 밝은 뫼'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신라 5악 중 북악이었
으며, 한국의 12대 명산의 하나로 꼽힌다. 또한 우리나라 삼신산의 하나로 예로부터 영
산(靈山)으로 추앙받아왔다. 이 산을 중심으로 함백산(1,573m)·청옥산(1,277m)·구룡산
(1,346m) 등과 함께 주위 20㎞ 내외에 1,000m 이상의 봉우리들이 100여 개나 연봉을 이
루고 있어 하나의 거대한 산지를 이루고 있다. 능선은 북서-남동 방향으로 뻗어 있으며,
곳곳에 암석이 노출되어 있고 깊은 계곡들이 발달했다. 태백산을 중심으로 강원도와 경
상북도의 지리적·문화적·역사적인 경계가 나뉜다. 산정 부근에는 중생대 말기 이후 지반
의 상승운동으로 형성된 비교적 넓은 고위평탄면이 나타난다. 북쪽과 북서쪽 사면은 완
만한 경사를 이루나, 나머지 사면은 급경사이다. 서쪽 사면에서 발원한 계류는 남한강의
지류인 옥동천으로 흘러들며, 동쪽·남쪽·북쪽 사면에서는 황지천의 지류가 발원하여 낙동
강의 상류를 이룬다. 일대의 지질구조는 시생대 변성암류, 고생대·중생대 퇴적암류, 중생
대 화성암류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기후는 대륙성기후의 특성이 뚜렷하며, 연평균기온
10℃ 내외, 연평균강수량 1,100~1,200㎜이다. 토양은 주로 갈색삼림토이다.
<참고문헌;태백산(한국어위키백과)>
이쁜 여인들 사진을 좀 올려볼까 하고 찾아보았더니, 박꽃향기가 사진을 찍지 못하였
다고 카메라에 있던 사진을 올리면서 자신들의 모습은 모두 빼버리고 박꽃향기 사진만
올려놓았으니 이번 산행기엔 온통 박꽃향기 사진 뿐이다. 내 다시는 사진 찍지 못하는
일이 없을 것이니 두고 보시라.(웃음)
1;15 천제단 벽면에 피어난 상고대를 뒤로 하고 서둘러 자리를 떠났다. 아침에 대장님
께서는 망경사에 내려가서 점심식사를 하겠다고 하였으나, 세 여인은 시장기를 느끼
지 못하였기에 그대로 지나쳐 가기로 하였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망경사방향의 계단길을 선택하여 내려갔으나, 박꽃향기 무릎사정
을 생각하여 세 여인은 부쇠봉을 오르는 능선길을 택하여 문수봉으로 향하기로 하였
다.
문수봉 3Km, 부쇠봉으로 오르는 길은 그야말로 설원을 이루고 있어 낙원에 발을 디딘
듯 하였다. 완만한 능선길과 풍성한 눈꽃이 마음을 사로잡는다. 이곳에서도 주목은 군
락을 이루고 있었다. 상고대나 빙화를 꿈꾸며 산행길에 나섰던 아침의 욕심이 이곳의
설화를 보니 마음이 비워져왔다. 지나친 욕심은 금물이라.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겨울
태백의 정취를 느낄수가 있었으니.....
세 여인 정신을 잠시 팔고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었다.
부쇠봉 오르는 길은 완만한 능선길, 포근포근한 눈길과 철쭉의 군락이 잘 어우러진
안온(安穩)해 보이는 풍경이다. 이 길을 택하길 잘 하였다는 생각이 든다. 망경사로
내렸더라면 다리에 충격을 좀 받았으리란 생각이 든다. 망경사길은 오는 봄날 망초꽃
흐드러진 그 앞을 지나보리라 다짐을 해본다.
부쇠봉 정상에서.....
문수봉 2.2Km, 사진 한 장 찍어주고는 어디론가 사라져버린 묵정님을 찾아 잠시 앞으
로 뛰고 뒤를 돌아보고 하였다. 내리막길에선 언제나 강세를 보이는 묵정님이다. 먼저
언덕을 내려와 사진을 찍고 있었다.
부쇠봉 정상을 내려오며 바라본 문수봉 방향의 모습이다. 갑자기 운무가 걷히우길래
한장 찍으려 하였더니 셔터를 누르기도 전 순식간에 다시 산봉우리를 감춰버리곤 하
기를 수차례, 겨우 한장 희미하게나마 찍어보았다.
눈구름 때문에 희끄무레 하기는 하였으나 시원하게 올려다 보이는 문수봉 정상의 모습
이다.
한달음에 달려가 안길 수 있을 것 같았으나 마음 뿐이었다. 험하지 않은 길이나 한발
한발 신중을 기하여 부쇠봉에서 내려갔다. 내려가는 도중 가끔 장애물이 없는 구간에
서는 아만다님과 번갈아 엉덩이 썰매도 즐기면서 웃음꽃을 피워보았다.
아픈 다리로도 문수봉은 오를만 하였다. 다행히도 눈길이었기에 충격은 그다지 심하
지 않은 듯 하였다. 천만다행으로 문수봉 오르는 길엔 눈구름이 벗겨지고 잠시 맑은
날씨를 보였다. 이쯤 걷고보니 슬슬 배가 고파왔다. 문수봉 0.3Km를 남겨두고 눈밭에
주저앉아 준비해온 빵과 우유로 잠시 허기를 면하여 보았다. 지나는 남정네들이 한결
같이 '세상에서 제일 편안해 보이는 자세'라며 한마디씩 던지고 지나갔다.
우유회사의 광고사진 같기도 하고, 자신들의 사진은 모두 빼버리고 박꽃향기 사진 뿐
이다.
문수봉(해발 1,517m)에서 또 한번의 기념촬영이 있은 후, 당골까지 4Km의 하산길을 재
촉하였다.
문수봉, 태백산 동쪽 봉우리로 바위로 이루어진 것이 특이한 형태이며, 옛날에 이 산봉
우리의 바위로 문수불상을 다듬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태백산 문수봉은 황학
산 직지사, 강화도 마니산, 오대산 적멸보궁과 함께 '기를 폭포수처럼 뿜어낸다'는 생기
처(生氣處)로 알려져 있다. 태백산에서는 유독 문수봉 정상에만 바위가 모여있는 것이
신기하기도 하면서.....
정상에서의 세찬 바람에 등이 떠다밀리 듯하여 하산길에 들었다. 내려오는 길에 만난
주목나무, 지난 봄엔 이곳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내려갔었다.
하산길이 눈에 덮여있어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봄날의 거친 돌밭길을 걷지 않아도 되
었으니 그럭저럭 불편하기는 하였으나 큰 무리없이 당골까지 내려올 수가 있었다. 당
골까지 300m정도 남겨두고 총무님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4시가 되었는데도 내려오지
않으니 걱정이 되셨던가 보다. 두여인을 먼저 내려보내고 얼마 남지 않은 길을 신중을
기하여 내려왔다.
고광나무가 꽃을 뭉터기로 피웠던 그 자리에 잠시 멈추어 지난 날의 화려함을 되새겨보
았다. 지금은 앙상한 가지만이 추운 겨울을 견뎌내고 있었지만, 따뜻한 봄날엔
또 다시 찬란함의 꽃을 피워내리라. 그 날 다시 이곳을 찾을 것을 약속하면서.....
박꽃향기는 고광나무의 고결한 빛을 보고싶어 벌써부터 6월이 기다려진다.(미소)
고광나무꽃(山梅花)이여!
천사의 마음이나 저 빛을 닮았을라나
어찌도 그 빛이 청정해 보이던지
그 자리 그대로 허물벗고 눌러앉아
山梅花로 피어나고 싶었던
太白山 골짜기에서
고요가 넘쳐 적막으로 덮쳐오던
太白의 밤하늘로부터
거칠 것 없이 쏟아져내리던 어젯밤 별빛이
고광나무 덩굴 위에 앉아
눈이 시린 빛을 가슴 안으로
마구 부어대고 있었기에
단 하룻만의 깊이를 잴 수 없는
은밀한 언어들을 시상의 줄에 꿰어
열락(悅樂)의 무아경(無我境)을 넘나드는
천의무봉(天衣無縫)한 시 한 수 낚고 싶었다.
내 어찌 그 꽃이 될 수 있으랴마는
淸明한 빛이라도 마음에 담아볼까 하였기에
산매화 향기 그윽한 여인이고 싶었다
그 빛 닮은 시인이 되고 싶었다.
이토록이나 모질게도 내 마음 흔들어놓는
고광나무꽃이여!(08.06,13)
묵정님이 찍은 얼음조각공원에서의 사진을 올려본다.
첫댓글 선생님을 산사람임을 증명하네요. 맘의 만족, 흡족, 자연과의 쉼 그리고 건강이 모두 가져야 할 소중한 것들이겠지요. 늘 산여행 전해주시길 바라며 성공하세요.
썰렁하던 카페에 이제 좀 훈기가 도는 듯 합니다. 여행은 보람이 있었던지요
매곡당님 다리가 완치된 상태 아닌 듯 하여 걱정이 됩니다. 산에서는 본의 아니게 자칫 부상을 키울 수도 있기에 말입니다. 빨리 완쾌하시어 아름다운 봄산도 자유로이 다니실 수 있기를 바래봅니다
이렇게 旻鈺 양병우님 곁에서 걱정해 주시는데 완쾌가 되겠지요. 노력은 하고 있습니다만 아직도 후유증에 시리고 있습니다. 진래 필 때쯤엔 산길에서 훨훨 날 수 있었으면 합니다만..... 고맙습니다. 잠시 안보이시길래 걱정을 하였답니다. 늘 건강하시고 행복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