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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욱의 양자 공부
필자 김상욱은 KAIST에서 물리학 학사•석사•박사 학위를 받고 부산대학교 교수를 거쳐 경희대 물리교육학과 교수이다. 도쿄대학과 인스브루크대학교 방문 교수를 역임했다. 인공지능 컴퓨터가 반란을 일으키고, 살인 로봇을 만들어 생명체를 제거하는 끔찍한 가정을 한다면, 인간은 컴퓨터와의 전쟁에서 전멸 직전으로 몰린다는 가정을 해보자. 남은 것은 과학자인 당신과 아이들 몇 명이다. 남은 인간을 제거하기 위한 터미네이터가 수색 중이다. 당신은 용케 컴퓨터의 본체에 잠입했고, 스위치를 누르면 당신과 함께 컴퓨터가 산산조각이 난다. 그러면 모든 터미네이터는 동작을 멈추고 당신의 아이들은 살아남는다. 그러면 아이들이 지금과 같은 문명을 일으키려면 얼마나 많은 시간이 필요할까? 죽기 전, 과학자로서 어떤 문장을 남길까 중요한 단서를 남겨야 한다. 천재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먼’은 아래와 같이 답한 바 있다.
All thing are made of atoms. ‘모든 것은 원자로 이루어져 있다.’
빛도 자명종의 소리도 된장찌개의 냄새도 모두 원자로 이루어졌다. 텅빈 공간에 무엇이 차 있다, 200년 전에는 기체라고 명명했다. 이 기체는 원자로 이루어져 있다. 따라서 자명종 소리는 원자들의 진동이다. 책상의 컴퓨터는 왜 우리 눈에 보일까? 태양광의 반사로 컴퓨터에 부딪혀 내 눈에 도달했기 때문이다. 가장 기본적인 명제는 컴퓨터는 원자로 이루어져 있다. 는 것이다. 사람의 몸이 보이는 이유도 똑같은 이치로 사람의 몸은 원자로 구성되어 있다. 아침을 하는 아내의 된장찌개 냄새가 코를 자극한다, 냄새가 내 코까지 온 것은 된장찌개가 원자로 구성되어야 한다. 그러나 된장찌개는 원자에 있기보다 분자에 있다. 하지만 분자는 원자로 이뤄진 것이니 어색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우리의 뇌파는 무엇인가? 우선 뇌는 원자로 구성되어 있다. 뇌파란 전기의 펄스다. 컴퓨터와 같은 전자 회로에서는 전자들이 움직여서 전기 펄스를 만든다. 전기 펄스는 전하를 가진 칼륨 원소와 나트륨의 원소들이 움직여서 만든다. 세포막에는 칼륨이 지나갈 통로가 있는데, 세포막의 원자 통로는 원자로 구성되어 있다. 이 통로는 칼륨 원자만 선택적으로 통과시킨다. 이 기능이 마비되면 뇌파를 만들 수 없어 우리는 죽게 된다. 뇌파가 없으면 왜 죽을까? 심장이 뛰고 호흡하는 것도 소뇌에서 만들어진 뇌파가 움직이라고 심장과 허파의 근육에 명령하기 때문이다. 내가 동작해 화장실에 가 문고리를 잡는다. 내 손도 문손잡이도 원자로 되어 있는데 내가 손을 잡는데 왜 두 원자는 서로 섞이지 않는 것일까? 손을 이루는 원자와 문손잡이의 원자는 무엇인가에 단단히 묶여 있다. 원자는 음전하를 띤 전자들로 둘러싸여 있다. 전자들이 서로 자기 전자기력으로 밀어내기 때문이다. 21세기는 생명 과학의 시대 아닌가? 유전 물질이란 다름 아닌 DNA다. DNA는 원자로 되어 있다. 원자의 세계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설명하는 과학이 이 책의 주제인 양자 역학이다.
양자 역학은 원자 세계를 기술하는 학문이다. 원자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일상생활에서도 일어난다면 어떤 모습일지 살펴보자. 당신이 어떤 것을 할머니에게 설명해 주지 못한다면, 그것은 진정으로 이해한 것이 아니다. 원자는 구형(球形)의 솜사탕과 비슷하다. 가운데 작은 씨가 들어 있다. 솜사탕의 솜은 전자, 씨는 원자핵이라 부른다. 전자는 음전하, 원자핵은 양전하를 띠는데, 양전하와 음전하의 양이 정확히 일치하여 전체적으로 중성의 상태를 형성한다. 원자핵은 전자 무게의 대부분을 차지하지만, 크기는 원자 반지름의 10만분의 1에 불과하다. 전자가 그 주의를 돌아다니는데, 어떻게 돌아다니는지를 기술하는 것이 양자 역학이다‘. 전자는 크기가 거의 없을 만큼 작으므로 서울시만 한 공간 안에 농구공 말고는 아무것도 없이 이어 있다는 말이다. 우리 몸도 원자로 되어 있다. 따라서 우리 몸은 사실상 텅 비어 있다. 다른 모든 물질도 마찬가지다. 재물에 욕심을 두지 마시라. 모두 비어 있는 것이다. 色卽是空 空卽是色 “물질이 빈 것과 다르지 않고 빈 것이 물질과 다르지 아니하다.” 그렇다면 왜 모든 것이, 텅 빈 것으로 보이지 않는 걸까? 본다는 것은 반사된 빛이 내 눈에 들어온 것을 말한다. 원자가 텅 비어 있지만 빛이 투과하지 못하고 튕겨 나온다면 적어도 내 눈에는 뭔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결국 원자는 텅 비어 있지만 빛이 투과하지 못하여 꽉 찬 것으로 보인다는 뜻이다. 물론 인간이 볼 수 있는 빛은 가시광선뿐이다.
물리학도 사이의 ’쟤물포‘는 쟤 때문에 물리 포기했어’란 은어이다. 전자의 운동을 설명한 그림이 나온다. 벽의 직사각형 구멍 2개를 뚫고 빛 대용으로 야구공을 쏘면 구멍을 통과한 공만 스크린에 도달한다. 이 구멍을 ‘슬릿’이라 한다. 야구공에 접착제를 붙여 스크린에 달라붙도록 한다면 이 중 슬릿이 생긴다. 이 장치를 물에 담그고 물을 출렁이어서 파동을 만들면서 동심원을 그려 전 공간으로 퍼진다. 슬릿이 2개이므로 동심원도 2개, 이렇게 2개의 동심원은 서로 뒤섞이며 마루와 골로 무늬를 만든다. 간섭무늬라 부르는 여러 개의 줄무늬가 생긴다. 이 결과를 이해하는 것이 양자 역학의 알파요 오메가라 필자는 주장한다.
2개의 줄무늬가 생긴다는 말은 입자는 2개의 줄무늬를 만들어야 한다. 문제는 단지 전자가 입자라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지 상태가 아름다운 운동이라고 했다. 모든 물체는 결국 정지한다. 그런데 달과 별 같은 천체는 왜 정지하지 않는가? 아리스토텔레스는 우주를 지상계와 천상계로 나눈다. 지상계의 운동은 시작과 끝이 있는 직선으로 되어 있고, 천상계의 운동은 원운동으로 구성된다. 하지만 뉴턴은 천상계와 지상계가 하나의 법칙으로 기술된다. 생각했다. 사과는 지구로 떨어지는데 왜 달은 안 떨어질까? 달도 지구로 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천상의 달도 지구의 사과처럼 떨어지고 있다. 다만 땅에 닿지 않을 뿐이다. 이렇게 천상계와 지상계는 하나가 되었다.
문제는 원자가 아니라 인간이다. 수소의 원자는 양자 역학에 따라 정해진 특정 진동수의 전자파만 흡수한다. 태양 빛의 스펙트럼을 보면 특정 빛만 흡수하여 검은 띠를 볼 수 있다. 이 때문에 우리는 태양이 수소로 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양자 역학은 완벽하게 작동한다. 양자 역학의 단서는 흑체 복사에서 나왔다. 온도를 가진 물체는 빛을 낸다. 용광로의 쇳물이 붉은빛을 내는 이유다. 이런 빛을 흑체 복사라 한다. 스펙트럼이란 진동의 세기를 진동수의 함수로 나타낸 것이다. 예로 인체의 체온으로 나오는 적외선 영역의 흑채 복사를 보지 못한다. 야시경으로 볼 수 있지만 말이다. 양자 역학의 ‘양자’는 ‘quantum’인데 띄엄띄엄한 ‘양’을 의미하는 라틴어다. 빛이 입자라는 사실을 발표한 1900년 10월의 독일 물리학회에서의 ‘플랑크’는 괴로워했다. 그는 빛의 입자라고 말하지 않고 단지 ‘빛의 에너지가 불연속적’이라고 했다. 빛이 입자라고 분명하게 말한 사람은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이다. 당시 이 주장은 비상식적이지 못해 미친 생각에 가까웠다. 현행 물리학 교과서에는 1905년 아인슈타인의 광양자(光量子) 가설로 빛의 입자성이 밝혀졌다고 설명한다.
전자는 원자핵 주위를 돌고 있다. 이것은 태양계의 모형과 비슷하다. 태양과 지구 사이에 중력이 작용하고, 원자핵과 전자 사이에 전기력이 작용하는 차이만 있을 뿐이다. 문제는 여기에 있다. 전하를 띤 입자가 가속운동을 하면 전자기파, 즉 빛을 방출한다. 원운동은 가속운동이다. 따라서 원자핵 주위를 원운동 하는 전자는 빛을 방출하며 에너지를 잃게 된다. 전기가 에너지를 잃으면 원자핵에 가까워진다. 만약 반대로 에너지를 얻으면 멀어진다. 로켓을 지구로부터 멀어지게 하려면 막대한 에너지가 필요한 것과 같다. 분광학은 스펙트럼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닐스 보어’는 아인슈타인이 노벨상을 받은 이듬해인 1922년에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천재다. 이 두 분은 절친한 친구로 자주 만나 토론을 했다. 이 둘이 깨달은 것은, 오늘날 카오스의 혼돈 개념이다. 보어의 원자 모형이 성공적으로 스펙트럼을 설명했던 원자는 수소다. 우주에서 가장 단순한 원자로 하나의 양성자와 하나의 전자로 구성된다. 원자 번호도 1번이다. 원자가 진동하는 진자들의 모임이란 이론을 내놓는다. 보어의 이 이론은 진자란 용수철에 매달린 추를 말한다. 아인슈타인의 이론에 따르면 빛은 파동이면서 입자다. ‘보어’에 따르면 전자는 한 궤도에서 다른 궤도로 순식간에 이동할 수 있다. 이런 현상은 우리의 경험과 모순된다. 달이 지구로 낙하하고 있으나 땅에 닿지 않을 뿐이라는 뉴턴의 설명은 놀랍다. 이것은 우주 밖으로 나가서 지구와 달을 함께 보지 않으면 이해하기 힘들다. ‘파도이면서 입자다. 하나의 정상 상태에서 다른 정상 상태로 전자가 도약한다.’ 이 개념도 마찬가지다. 움직이는 사람의 시간이 느리게 간다는 특수 상대성 이론도 직관과 맞지 않는다는 점에서 비슷하다. 하지만 적어도 상상은 가능하다. “파동이면서 입자다.”라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입자가 파동의 모습으로 움직이는 것도 아니다. 마찬가지로 양자로 도약하는 전자를 상상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양자 역학을 정말 이상하다. 하지만 문제는 원자가 아니다 문제는 바로 우리 자신이라고 필자는 주장한다.
“원리적으로 측정 가능한 양(量) 사이의 관계만을 근거로 이론 양자 역학의 기반을 정립하고자 한다.”라는 말은 핵심이 들어 있다. ‘원리적으로 측정할 수 있는 양’이란 무엇일까? 수소 원자는 양성자 1개와 전자 1개로 구성된다. 하지만 전자를 직접 본 사람이 있나? 음극선의 강렬한 빛을 본다고 전자 그 자체를 보는 것은 아니다. 전자가 음극선과 내부의 공기와 부딪쳐 들뜬 원자가 내는 빛을 본 것이다. 보어가 설명한 스펙트럼은 무엇인가? 이것은 수소 원자가 내는 빛이다. 우리의 몸은 원자로 되어 있다. 지금은 당신의 손을 볼 수 있다. 손은 수없이 많은 원자로 구성되어 있다. 그렇다면 당신은 원자나 전자를 보고 있나? 당신이 보는 것은 원자가 아니라 원자가 내는 빛이다. 원자는 행렬이다. 전자는 파동이다. ‘드 보이드’의 이 연구를 프랑스 학회에서 말도 안 되는 발상이라며 퇴짜를 놓으려다 귀족의 논문이라, 독일의 아인슈타인에 프랑스는 검증할 사람이 없다는 핑계로 자문을 구한다. 놀랍게도 아인슈타인은 “이 연구는 물리학에 드리운 커다란 베일을 걷어냈다.”라고 찬사를 답장으로 보내왔다. 아무도 파동인 줄 알았던 빛이 입자라면, 전자파가 파동이 아닌 이유가 뭐란 말인가?
1926년 양자 역학이 탄생했다. 아이는 둘이 탄생한다. 하나는 ‘하이젠베르크’가 낳은 행렬 역학은 기존 물리학을 뒤엎는 전제가 필요했다. 반면 다른 하나인 ‘슈뢰딩거’의 파동 역학은 입자가 파동이라고만 생각하면 어느 정도 수긍할 수 있는 이론이었다. ‘하이젠베르크’의 주장을 요약하면 우리는 원자에 대해 측정할 수 있는 것만 가지고 논의해야 한다. 지금껏 원자를 본 사람은 없다. 미래에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원자를 이루는 전자의 위치나 속력 따위를 이야기하면 안 된다. 우리가 원자에 대해 알 수 있는 것은, 원자가 내놓는 빛의 에너지, 보어의 이론이 따른 전자의 급격한 상태 변화다. 이것만 가지고 이론을 만들면 행렬 역학이 나온다. 양자 역학의 핵심에는 이런 불연속성이 있다. ‘슈뢰딩거’의 파동 역학은 시공간상에서 직접적으로 변하는 파동으로 전자를 기술한다. 불연속성이 없는 이런 방법은 근본적으로 올바른 이론일 수 없다. 1926년의 그의 입장을 정리한 것이라 필자가 쓴 내용이다.
2024.05.19.
김상욱의 양자 공부
김상욱 지음
사이언스북스 간행
첫댓글
물리학자가
내다보는 세상
좋은 글
감사합니다.
싱그런 하루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