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영화 속 영웅]
잔 다르크(Jeanne d‘Arc, The Messenger: The Story Of Joan Of Arc), 1999
 
평화는 창끝에서 나온다
 
감독: 뤼크 베송/출연: 밀라 요보비치, 존 말코비치
15세기 프랑스와 영국이 100년 넘게 싸운 전쟁이 백년전쟁(1340∼1453)이다. 프랑스 왕위 계승을 둘러싸고 벌인 이 전쟁에서 프랑스가 이겼다. 이때 큰 공헌을 한 전쟁영웅이 19살의 소녀 잔 다르크(1412∼1431)다.신의 계시를 받았다는 그녀는 백성들로부터도 절대적인 지지를 받으며 전투에 앞장섰다
이로써 승기를 잡은 프랑스는 116년 만에 마침내 프랑스 영토에서 영국군을 몰아낼 수 있었다.
하지만 잔 다르크는 결국 영국군에게 잡혀 마녀로 몰려 화형에 처해진다. 영화 ‘잔 다르크’는 그녀의 무용담과 그녀가 신의 계시를 받은 인간으로서 왕정과 종교에 맞서 조국 프랑스를 위기에서 구해내는 이야기를 다룬다. 남성이 중심이 되는 전쟁에서 어린 소녀 병사로서 겪는 아픔과 십자군 원정으로 피폐해진 유럽 분위기 속에서 귀족 및 성직자에게 당당히 맞서는 모습을 보여준다.
소녀, 왕정·종교에 맞서 조국 프랑스를 구하다
당시는 십자군 전쟁(1096∼1291)이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유럽사회에 종교적 분위기가 강했고 마녀 사냥이 성행했으며 교회의 이단논쟁도 끊이질 않았다.
1420년대, 프랑스는 영토의 절반을 잃고 왕권마저 영국에 강탈당한다. 그러나 프랑스 황태자 샤를 7세(존 말코비치)는 이에 굴복하지 않고 대관식을 거행해 왕이 되고 싶어 한다. 대관식을 위해 렝스(Rheims)로 가야 하지만 그곳은 영국군이 점령하고 있어 갈 수 없다(렝스에서 왕관을 쓰지 않으면 왕으로 인정받지 못한다).
이 무렵 신의 계시를 받고 백성으로부터 ‘신의 메신저’라고 불리는 잔(밀라 요보비치)이 성안에 도착한다. 그녀는 어린 시절 자기 대신 언니가 영국군에게 잔인하게 살해당하자 언니를 위해 복수하기로 신에게 맹세했다.
잔은 샤를 7세와 성직자들에게 “국민이 피를 흘리는 동안 당신들은 좋은 옷을 입고 스스로를 속이고 있었다. 난 묘기를 보이러 여기에 온 것이 아니다. 나에게 군대를 달라. 그곳에 가서 신의 뜻을 증명하겠다”고 말한다.
전쟁서 크게 승리하지만 왕의 시기 받아
샤를 7세에게 어렵게 군대를 받은 잔은 부하들을 이끌고 영국군을 공격한다.
그녀는 선두에 서서 “나를 사랑하는 자들아. 나를 따르라!”며 첫 번째 전투에서 크게 승리한다. 그러나 잔은 전쟁터에 널린 시체들을 보고 괴로워한다.
다음 전장에서 혼자 앞으로 나아간 잔은 “신의 명령이다. 이 들판에 묻히고 싶지 않으면 물러가라!”고 한다. 그러자 기적적으로 영국군이 철수해 오를레앙을 탈환한다. 피를 흘리지 않고 승리한 것이다.
이로써 샤를 7세는 렝스 대성당에서 대관식을 올리고 프랑스는 왕권을 되찾는다. 하지만 잔은 아직 영국군에게 점령당한 많은 땅에서 굶어 죽어가는 백성들의 처절한 편지를 받고 있었다. 그들을 구해야만 하는 잔과 전쟁을 계속할 이유가 없어진 샤를 7세. 그는 잔 다르크 덕에 왕이 됐지만, 그녀의 치솟는 인기가 불편하다.
파리 탈환을 주장하는 잔과 협상을 원하는 왕의 대립
영화는 프랑스군과 영국군 간의 전쟁을 묘사하는 것에서 점차 잔 다르크와 샤를 7세의 대결 양상을 그리는 것으로 바뀐다. 신과 백성의 뜻을 따르는 잔 다르크와 권력을 좇는 왕 샤를 7세를 포함한 왕족 및 중세 성직자의 대립 구도로 전환되는 것이다.
영화 후반부, 샤를 7세는 왜 병사를 지원하지 않느냐며 따지는 잔에게 “외교가 더 경제적이고 더 문명적이고 더 안전하다”며 영국과 협상을 원한다고 말한다. 이에 잔은 “평화는 창끝에서 나온다”며 파리를 탈환해 영국군을 완전히 몰아내야 한다고 주장한다.
영화 속 잔 다르크는 나이 어린 소녀로 출발해 전쟁영웅이 된다.
야만과 약탈과 어둠의 시대였던 유럽 중세기에 그녀는 언니의 죽음 등 끔찍한 약탈과 고통을 겪지만, 오히려 이 같은 시련과 비극 안에서 강철처럼 단련돼 여전사로 성장한다. 그리고 신력(神力)을 얻어 나라를 구하는 영웅이 된다. 잔 다르크가 오늘날까지 구국의 여전사의 표상으로 쓰이는 이유다.
그랑 블루·니키타 등 비주얼에 강한 뤼크 베송 감독
여주인공 밀라 요보비치는 뤼크 베송 감독의 ‘제5원소’를 통해 세계적인 스타로 발돋움했으며, 액션 스릴러 ‘레지던트 이블’ ‘울트라바이올렛’ 등에서 잇따라 여전사 역을 맡아 드물게 액션 이미지가 강한 여배우로 자리매김했다. 이 영화의 감독 뤼크 베송은 ‘그랑 블루’ ‘니키타’ ‘제5원소’ ‘루시’ 등 비주얼이 강한 영화를 만들었다.
확신을 가진 지휘관이 얼마나 위대한가를 보여줘
영화는 비정한 권력의 속성을 알려주면서 전쟁 속에서 자기 확신을 가진 지휘관이 얼마나 위대한가를 보여준다. 잔이 받았다는 ‘신의 계시’는 어쩌면 백성의 소리였는지도 모른다. 왕위에 오른 샤를 7세와 권위만을 고집하는 중세 성직자와는 다르게 그녀는 백성을 대변해 전쟁의 당위성을 얘기했다. 백성의 생명과 안녕을 최우선으로 생각한 것이다.
전쟁을 원하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평화가 거저 유지되는 것은 아니다. 핵무장이 우리 사회의 이슈가 되고 있는 요즘, “평화는 창끝에서 나온다”는 잔의 말이 우리 가슴에 절실하게 와 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