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냥년은 환향녀(還鄕女)에서 온 말일까
화냥년이라는 욕설이 있다. ‘화냥’은 서방질하는 여자를 가리킨다. ‘화냥’만 해도 바람난 여자를 지칭하는데, 이를 더욱 경멸하기 위하여 ‘년’을 덧붙여 나타낸 말이 화냥년이다. 화냥을 더욱 얕잡아 이르는 말로 화냥데기란 말도 있다. 절개 없이 이리저리 빌붙는 것을 야유하는, ‘화냥년 시집 다니듯’이란 속담도 있다. 여인의 정절을 최고의 가치로 여겼던 우리 문화 속에서, 화냥기 있는 여자는 가장 더럽고 저속한 여자로 취급되었다.
그러면 이 화냥년이라는 말의 뿌리는 무엇일까?
이에 대해서는 종래 여러 가지 주장들이 있어 왔는데, 첫째 병자호란과 관련한 환향녀(還鄕女)에서 왔다는 설, 둘째 신라 때 생긴 화랑(花郞)에서 유래했다는 설, 셋째 음란한 여자를 뜻하는 만주어 하얀(hayan)에서 왔다는 설, 넷째 유녀를 뜻하는 중국어 화냥(花娘 huāniág)에서 유래했다는 설 등이 있다.
그러면 이들 주장에 대하여 하나하나 살펴보기로 하자.
먼저 환향녀 설을 보기로 한다.
환향녀는 병자호란 때 청나라에 잡혀갔다가 다시 돌아온 여자를 말한다. 이때 끌려간 여인의 수가 50만 명에 달했는데, 당시의 인구가 1000만 명이었음을 감안하면 엄청난 숫자다. 여유 있는 사람들은 돈으로 몸값을 지불하고 돌아왔으나 돈이 없는 사람은 돌아올 수가 없었다. 또 중간에 브로커들이 날뛰면서 처음에 비하여 그 값이 몇 배나 오르기도 하여, 보통 사람들은 엄두를 내지 못하였다.
그런데 돌아온 이들도 이미 몸을 더럽혔다 하여 욕된 삶을 이어 갔는데, 많은 사람들이 이혼을 요구 받았다. 그런 치욕을 견디기 어려워 목숨을 끊는 일도 비일비재하였다. 남자들이 이혼을 청구할 경우에는 먼저 왕의 허락을 받아야 했다. 이혼 청구를 받은 조정에서는, 이혼을 요청한 상황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으나 절개를 잃은 것으로 볼 수 없기 때문에 허락할 수 없다고 하며 청구를 거절했다. 이 같은 방침에도 불구하고 남편들은 첩을 얻어 부인을 멀리했다.
이에 대한 변칙도 생겼다. 영의정 장유의 며느리는 실절했다는 이유로 시부모로부터 이혼청구를 당했으나, 허가를 받지 못하자 시부모에게 불손하다는 이유로 허락을 받아 이혼시켰다. 이처럼 암울한 역사의 산물인 돌아온 여인들은, 당시의 신분제도 아래에서는 더 이상 설 자리가 없었다.
사태가 이런 지경에 이르자, 조정에서는 궁여지책으로 그들을 홍제천(弘濟川) 물에 몸을 씻게 하고, 그것으로 그들의 정절을 회복시켜 주는 조치를 취하기도 했다.
화냥년이란 말은 이렇게 정조를 잃고 돌아온 환향녀(還鄕女)에서 유래되었다는 것이다.
다음으로 화랑설을 보자.
일반적으로 화랑도는 군사집단인 줄로만 알고 있다. 이것은 화랑 관창이나 사다함 등의 이야기에 견인된 듯하다. 그러나 화랑의 원래 성격은 그런 것이 아니다. 화랑은 불교가 들어오기 전, 토착신앙[風月道]을 섬기며 제사의식을 행한 일종의 종교집단이었다. 그들은 토착종교인 샤머니즘 곧 무(巫)적인 기능을 담당한 무리였다. 그래서 이름도 원화(源花)였고, 미녀들로 구성되었던 것이다. 삼국사기에는 “아름다운 사람을 가려 화장을 시키고 곱게 꾸몄다.”다고 하였고, 삼국유사에는 “인가의 낭자 중 아름답고 요염한 자를 가려 원화로 삼았다.”고 하였다.
원화인 준정이 남모를 질투하여 죽인 사건이 발생한 후로, 구성원을 여자에서 미모의 남자로 대치하였는데, 그 역할은 변함이 없었다. 역사서를 보면, 화랑들이 ‘산수에 나가 놀았다’거나, ‘무리로 하여금 놀게 했다’는 기록이 나오는데, 이때 ‘놀았다[遊]’는 것은 화랑들이 단순히 자연을 즐기며 소풍 삼아 놀았다는 뜻이 아니다. 이것은 무격적인 산신숭배사상과 관련된 종교적 행사를 치른 것을 가리킨다. ‘놀 유(遊)’자가 그러한 뜻으로 쓰인 예가 옛 기록에 종종 보인다.
삼국유사에 흥륜사의 중 진자가 미륵상 앞에 가서, 미륵이 화랑으로 화현해 주기를 주야로 기도하여 마침내 이를 실현시켰다는 기록이 있다. 이는 화랑이 불교와 같은 종교적인 무리였음을 말하는 것이다.
이러한 화랑의 기능은 삼국통일 이후에 급속히 약화되어, 민간의 단순한 무당 신분으로 떨어졌다. 고려에 와서 화랑은 팔관회(八關會) 제의(祭儀)에 양가(良家)의 자제를 뽑아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게 했다는 기록에서 겨우 그 유풍을 볼 수 있고, 조선시대에 이르러서는 남자 무당 곧 박수[覡]를 가리키게 되었다. 지금도 경상도에서는 무당을 화랭이라고 부른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화랑은 원래의 성격과는 완전히 다른 계층으로 전락하게 된 것이다.
이와 같이 하층신분으로 떨어진 화랭이들은 몸을 팔기도 하였다. 조선왕조실록 성종 20년 조에 “화랑과 유녀가 음란한 짓을 하여 이득을 꾀하고, 승려와 속인(俗人)이 서로 즐겨 괴이하게 여기지 아니한다.”는 기록이 보인다.
화랑이 이와 같이 음녀로 떨어짐으로 해서, 음도 화랑과 유사한 화냥년이라는 말이 생겨났다는 것이다.
다음으로 화냥년이란 말이 만주어 하얀(hayan)에서 왔다고 하는 주장을 보기로 하자.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에도 이렇게 설명되어 있다. ‘하얀’이 음탕한 여자를 가리키는 말인데, 이 말이 곧 음란하다는 뜻의 화냥년이 되었다는 주장이다.
끝으로 중국어 화냥(花娘)에서 유래했다는 설을 살펴본다. 이 주장의 가장 강력한 근거는 음과 뜻에서, ‘화냥’과 매우 가깝다는 것이다. 음도 화냥[huāniág]이고 뜻도 기생이나 논다니를 가리키는 말이기 때문이다.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각각의 주장들은 모두가 그 나름대로의 일리가 있어 보인다. 그러나 이들 주장의 속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거기에는 다시 생각해야 할 문제점이 많음을 발견할 수가 있다.
첫째, 화냥년이 환향녀에서 왔다고 하는 데는 그렇게 보기 어려운 맹점이 숨어 있다. 그것은, ‘환향녀(還鄕女)’라는 한자어가 그 당시의 어떤 문헌에도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환향녀란 말 자체가 후대에 와서 호사가들의 입에서 지어진 말임을 알 수 있다. 그러니 화냥년이 환향녀에서 왔다는 것은 성립되지 않는다.
또 ’화냥년’이란 말의 뿌리가 되는 말이 병자호란 이전에 이미 순우리말로 존재했다는 사실이다. 이수광의 지봉유설에서는 이기(李墍)가 쓴 송와잡설(松窩雜說)의 글을 인용하고 있는데, 거기에 우리가 잘 아는 청개구리 우화 같은 이야기가 나온다.
“옛날에 어떤 사람의 아들이 매우 불순했는데, 동쪽을 물으면 서쪽을 가리키고, 북쪽을 물으면 남쪽을 가리켰다. 그 아버지가 병이 들어 죽으려 할 즈음에 아들에게 일러 말하기를, 내가 죽으면 반드시 높은 봉우리에 묻어 달라 하였다.
평지에 묻히고 싶어서 일부러 아들에게 거꾸로 말한 것이었다. 그 아들이 이를 듣고, 죽음에 이르러 하는 말이니 따르지 않을 수 없다고 생각하고 그 말대로 따랐다. 아버지의 뜻을 변환시켰다 하여 그 산의 이름을 환야산(幻爺山)이라 하였는데, 지금 사람들이 남을 욕할 때 환야라 하는 것도 여기서 나온 듯하다.”
여기에 나오는 ‘환야(幻爺)’라는 표기는 우리말 ‘화냐’를 한자로 끌어다 쓴 것이다. 어원에 대한 풀이는 허황된 민간 어원설에 지나지 않지만, 고유어 ‘화냐’가 있었음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내용으로 보아, ‘화냐’는 천하에 몹쓸 사람을 가리켜 욕할 때 쓰는 말임에 틀림이 없다. 다시 말하면 ‘화냐’는 아무짝에도 못 쓸 망나니를 이르는 말이다.
화냥년이란 말은 이 ‘화냐’에 접사 ‘년’이 합해져 된 말이라 볼 수 있다. 그 ‘화냐년’이 어조를 고르기 위해 중간에 ‘ㅇ’이 개입되어 ‘화냥년’이 된 것이다. 모음 사이에 ‘ㅇ’이 개입된 것은 ‘소+아지’가 송아지로, ‘말+아지’가 ‘망아지’로, ‘+비’가 가랑비로, ‘괴+이’가 고양이가 된 것과 같다.(이러한 언어 현상을 모음충돌회피 현상이라 한다.)
송와잡설을 쓴 이기는 1522년에서 1600년까지 살았고, 이수광은 1614년에 지봉유설을 간행했다. 병자호란이 1636년에 일어났으니, 이 ‘화냥년’은 병자호란 전부터 이미 있었다는 증좌가 된다. 그러므로 화냥년은 병자호란 때 속전을 주고 돌아온 여인들과는 아무 관련이 없는 말이다.
둘째, 화랑이 화냥으로 변했다는 설이나, 만주어 ‘hayan’이 화냥으로 변했다는 설은 양자가 다 음탕한 여자와 관련을 보이는 의미상의 유사성은 있으나, 언어학적인 음운상의 변화를 설명할 수가 없다. 즉 화랑이 화냥으로 바뀐 과정을 어학적으로 설명할 수가 없는 것이다.
‘하얀’도 마찬가지다. 이 단어가 병자호란 때 중국 심양에 끌려갔던 여자들이 돌아올 때 같이 들어와 우리나라에 퍼졌다는 것인데, 한마디로 전거가 없을 뿐만 아니라, 음운상으로도 ‘화냥’은 ‘하얀’과 너무나 거리가 멀다. 그렇게 말이 변했다는 논리를 아무래도 찾을 수 없으므로 믿기 어렵다.
셋째, 앞에서도 말했지만, 화냥(花娘, huāniág)은 음성으로나 의미로나 화냥과 매우 가까운 거리에 놓인 말이다. 그런데 여기에도 커다란 함정이 있다.
‘화냥’이 최초로 등장하는 문헌은 ‘박통사언해’(1677)다. 박통사는 중국어 학습서다.
박통사언해(朴通事諺解)에서 중국어 ‘양한(養漢)’을 ‘화냥년’으로 번역했다. ‘양한’이란 여자가 남자와 눈이 맞아 혼외정사하는 것을 뜻한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박통사 번역자가 ‘양한養漢’을 번역하면서, 중국어 花娘 즉 huāniág을 차용하여 풀었다는 사실이다. 이는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더라도 이치에 맞지 않는다. 왜냐하면, 중국어를 번역하면서 중국어로 번역할 리가 없기 때문이다. 사전에 비유하면, 박통사언해는 중한(中韓)사전이지, 중중(中中)사전은 아니기 때문이다.
박통사언해는 중국말을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가르치기 위하여 만든 책이다. 그렇다면 중국말을 우리나라 사람들이 잘 아는 우리말을 사용하여 번역할 것이지, 중국말을 번역하는 데 우리말 아닌 중국말을 거듭 쓰지는 않았을 것이다. 앞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화냥년이라는 우리말이 이미 있었는데, 굳이 중국말을 끌어 사용할 리는 없다. 이로 볼 때, 중국어 양한을 푸는 데, 우리말 화냥년을 그대로 사용하여 푼 것으로 봄이 마땅하다.
그러므로 음이 유사하다 하여, 화냥년이 중국어 ‘화냥’에 우리말 ‘년’이 붙어서 된 말이라고 단정할 수가 없는 것이다. 음이 비슷하다 하여 우리말 ‘보리’가 영어 ‘barley’에서 왔고, 우리말 ‘많이’가 영어 ‘many’에서 왔다고 할 수 있겠는가?
다만 중국어 화냥(花娘)을 화냥(년)에 결부시킨 것은, 그 말이 우리의 화랑과 그 형태가 유사한데다가, 두 말이 다 유녀의 뜻을 함께 지니고 있다는, 공교로운 일치점을 보이기 때문에 견강부회된 것으로 보인다
요약하건대, 화냥년은 ‘환향녀’나 ‘화랑’, 그리고 만주어 ‘하얀’이나 중국어 ‘화냥’에서 유래한 말이 아니라, 순 고유어 ‘화냐’를 말 뿌리로 하고 거기에 ‘년’이 결합되어 생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