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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마 예식서(Lima Liturgy)와 그 영향
1.리마 예식서(Lima Liturgy) 형성 배경1)
세계교회협의회(wcc) 산하기관인 “신앙과 직제 위원회”(Faith and Order Commission) 는 1982년 페루의 수도 리마(Lima)에서 개최된 총회에서 “세례, 성만찬, 사역”(Baptism, Eucharist, Ministry: BEM이라 약칭) 이라는 제목으로 소위 ‘리마 문서’를 채택 하였다. 1927년 로잔느 대회를 통해 조직된 ‘신앙과 직제 위원회’는 ‘생활과 사업’(Life and Work)이란 에큐메니칼 단체와 함께 1948년 세계교회협의회(wcc)를 탄생케 하는데 산파역을 담당 하였으며, 그 이후 WCC의 산하 기관으로서 세계교회의 가시적 일치(Visible Unity)를 추구 하는데 중심적 역할을 하였다. 특별히 이 위원회는 나뉘어진 교회들이 가시적 일치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거기에 선행되어야 할 조건들 중의 하나가 “세례와 성만찬과 사역”에 대하여 서로의 견해들이 일치할 수 있어야 한다는데 인식을 같이 하게 되었다. 따라서 신앙과 직제위원회는 일치 운동의 핵심 주제로서 “세례”, “성만찬”, “사역”을 다룰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리마 문서의 채택은 1927년 제1회 신앙과 직제 위원회 대회 이후 근 50년 이상의 연구와 토의에 의한 결실로서 1974년, 1978년, 1982년 리마 총회를 통해 끊임없이 수정과 보완되는 과정과 세계 교회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과정을 거쳐서 교회의 공식적인 문서로 채택되기에 이르렀다.
리마 예식서(Lima Liturgy)는 이 리마문서(BEM)의 정신을 살려 1982년 리마 총회를 위해 마련된 예배-예전으로서, 본래는 리마문서를 통해 성취된 성만찬에 관한 신학적 공감대를 설명 하려는데 그 목적이 있었다. 그러나 리마문서가 채택된 역사적 사실에 감사하여 베풀어졌던 이 예전이 세계의 많은 교회들에게 공감대를 불러 일으키면서 차츰 광범위하게 확산-수용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1983년 6차 WCC 벤쿠버 총회는 기독교 역사상 최초로 세계 교회의 대표들이 주님의 성만찬을 공동으로 베푸는 자리를 마련하게 되었던 바, 이것은 세계교회 일치를 위한 새로운 이정표를 마련한 중대한 사건이 되었다.
이 날의 성만찬 예전에는 러시아 동방 정교회의 대주교가 기도를 하고, 독일의 카톨릭 주교가 성서를 봉독 했으며, 남인도 교회의 한 감독이 설교를 하고, 영국의 켄터베리 대주교가 성찬 예식을 집례 했는데, 이 성찬 예식을 보조 하기 위해, 덴마크의 루터교회, 인도네시아의 개혁교회, 베닌의 감리교회, 헝가리의 침례교회, 자메이카의 모라비안 교회의 목사들과 케나다 연합교회의 여성 목사가 선택 되기도 하였다.
여기서 지금까지 설교 위주의 예배나 성례전 우선의 예배를 고집하던 교회들 모두가 말씀과 성례전이 엄숙이 묶어진 예배-예전의 가치를 경험하게 되었고, 전 세계의 교회가 예배-예전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게 되었다.
이와 정 반대로 WCC 산하기관인 “신앙과 직제 위원회”(Faith and Order Commission)에서 채택한 ‘리마 예식서(Lima Liturgy)’를 부정적 평가로 지지하는 예장 합동 측 의견도 이 글 6항에서 제시 하겠다.
2.리마 예식서(Lima Liturgy)의 구성2)
리마 예식서(Lima Liturgy)는 개회의 예전, 말씀의 예전, 성만찬의 예전 등 3부로 구성되어 있고, 35개의 작은 순서들로 이루어져 있다. 다음과 같다.
★개회의 예전
1.개회 찬송 2.인사 3.죄의 고백 4.용서의 선언 5.자비의 연도 6.영광송
★말씀의 예전
7.오늘의 기도 8.구약성서 봉독 9.명상의 시편 10.서신 봉독 11.알렐루야 영창 12.복음서 봉독 13.설교 14.침묵 15.신앙고백 16.중보의 기도
★성찬의 예전
17.준비 기원 18.인사의 교환 19.처음 기원 20.삼성창 21.성령 임재의 기원Ⅰ 22.성찬 제정사 23.기념사 24.성령 임재의 기원Ⅱ 25.추모의 기원 26.마지막 기원 27.주의 기도 28.평화의 인사 29.분병례 30.하나님의 어린양 31.성찬에의 참여 32.감사의 기도 33.폐회 찬송 34.분부의 말씀 35.축복기도
리마 예식서(Lima Liturgy)의 내용의 이해를 돕기 위하여 초기 기독교 문헌의 예배 형태와 비교 하면서 얼마나 근접 되어 있는지를 살펴 보자.
첫째, 영국 성공회의 예배 신학자인 그레고리 딕스(Gregory Dix)는 신약 성서에 기록된 최초의 성만찬에 나타난 예수의 성례전 절차를 다음과 같이 7가지로 분류 한다.3)
1.떡을 취하심 2.축사 하심 3.떡을 떼심 4.나누어 주심 5.잔을 취하심 6.축사 하심 7.제자들에게 나누어 주심
둘째, 그러나 이 7가지 행위는 다시 4가지 행동 양식으로 정리 된다.
1.떡과 잔을 취하심 2.그 위에 축사 하심 3.빵을 떼심 4.그것들을 나누어 주심
셋째, 그레고리 딕스(Gregory Dix)는 바로 이것이 성만찬 의식의 발전 과정 중에서도 가장 기본적인 틀이 되었다고 한다. 그 후 2세기 중엽 저스틴 마터(Justin Martyr)의 기록에 나오는 예배 순서는 이러한 윤곽 속에서 다음과 같이 발전하게 되었다.
1.성경 봉독 2.성경 해설 3.중보 기도 4.빵과 포도주와 물을 집례자에게로 가져 옴 5.성만찬 기도 6.빵을 쪼갬
7.빵과 잔을 나눔.
저스틴 마터(Justin Martyr)의 예배 순서는 그 후 기독교 예배 의식의 골자로 전해져 내려 오게 되었는데 1-3항은 말씀의 예전으로, 4-7항은 성만찬 예전에 해당되는 순서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볼 수 있는 것은 이와 같은 골격을 계속 지켜야 할 교회들이 한편에서는 성만찬만을 지속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설교만을 지속한 채 지금껏 지내 왔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예배, 예전의 모순이 바로 리마 예배-예전에서 지적되고 근본적인 회복을 시도 하기에 이르렀다.
3. 리마 예식서(Lima Liturgy)의 구성과 절차
내용에서 본 대로 리마 예식서(Lima Liturgy)의 구성은 전체가 3부로 구성 되어 있다.
처음 부분인 개회의 예전에서는 고백과 기원과 찬양의 행위를 통하여 하나님의 백성들이 자리를 함께 하게 된다. 여기서 예배자들의 마음과 뜻과 정성이 모아져 영광의 하나님을 향한 예배를 드릴 수 있는 준비를 갖추게 한다.
두 번째 부분인 말씀의 예전은 준비 기도로 시작되어 예언자의 말씀(구약), 사도의 말씀(서신서), 그리스도의 말씀(복음서)이 봉독된다. 그 다음 우리에게 영원히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설교가 계속 된다. 설교 후에는 침묵으로 명상을 하고 교회의 신앙을 신조(Creed)에 따라 고백하며 중보의 기도를 통해 모든 인간의 어려운 사정을 하나님께 아뢴다.
세 번째 부분인 성만찬의 예전은 준비 기도와 주의 기도를 전후에 추가한 긴 성찬 기도와 평화의 인사 그리고 성만찬에의 참여를 기본 요소로 하고 있다. 특별히 이 부분에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한 세례를 받은 공동체로서 자신들의 정체성을 인정하고 성만찬에 참여 하도록 하고 있다.
이 예식은 예배를 인도하는 목사와 성만찬을 집례 하는 목사가 공동으로 집전 하고 있다. 예배를 인도 하는 목사는 입례와 인사, 용서의 선언, 기도 등을 하고, 그 교회의 담임목사가 성만찬 예전을 집례 하면서 처음 기원, 성령님 임재의 기원, 성찬 제정사, 회상과 재현의 말씀, 기원 등 감사의 기도와 축복 기도를 하게 된다. 이 예식에서 회중들은 죄의 고백, 영광송, 신조, 주의 기도 등에 동참하여 교독(교창)을 하거나 아멘으로 화답 하게 된다. 그날의 성서 일과를 봉독 하도록 세 사람을 선정 하여 읽도록 하고 있다. 그리고 설교는 선지자의 기능을 맡은 목사가 설교를 하고 있다
4.리마 예식서(Lima Liturgy)의 통합적 신학4)
종교개혁자들을 하나로 묶을 수 없었던 중요한 쟁점은 바로 성만찬 논쟁이었다. 성만찬에 대한 자신들의 신학적 해석까지 바꾸어 가며, 공동 보조를 취하고자 한 개혁자는 아무도 없었다. 때로는 개혁자들의 분열을 막아 보려는 노력을 기울이기도 하여 1529년 마르부르크(Marburg)회담을 열고 성만찬에 대한 통일된 신학과 해석을 정립하려 했으나 그러한 노력은 영원한 결별을 안겨줄 뿐이었다.
끝내 교회의 분열을 가져온 이들의 핵심 문제는 “그리스도는 어떻게 성만찬에 임하시는가?”라는 문제였다. “그리스도의 참 몸과 피가 실질적으로 성만찬에 임재 하신다.”는 루터파의 주장과, “성만찬은 사람의 살과 피의 신비한 상징이며 이것은 계속적인 기념 속에서 지켜지는 것”이라는 쯔빙글리의 주장은 서로 합의점을 찾지 못한 채 결국 교회의 분열로 이어졌다.
그러나 성만찬에 대한 세계교회의 통합적 신학의 작성을 위한 노력은 바로 리마예식서(Lima Liturgy)에서 대단한 발전을 보게 되었다. 이들의 연구 가운데서 특이할 만한 것은 성경에서 “너희가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Anamnesis)하라”(눅 22:19)는 말에 대한 재해석과 공감대 형성이었다. 즉 여기서의 회상은 히브리 민족의 사상에서 단순한 기념적 의미만을 갖지 않고 과거에 있었던 사건의 결과를 현재 속으로 이끌어 오는 것을 뜻한다는 새로운 해석이었다.
이러한 해석은 십자가의 수난을 당하시고 부활 하신 주님의 희생을 회상 하고 그 부활의 승리와 귀하신 교훈을 되새기는 성례전으로서의 성만찬을 강조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우리가 마땅히 져야 할 십자가의 형을 대신 지시고 희생 하신 주님의 구속 사건에 대한 철저한 회상을 요구하는 것임을 인정하게 되었다. 그래서 여기서의 회상(Anamnesis)은 유대민족이 이집트로부터의 해방을 회상하면서 하나님의 현재적 역사를 재경험 하는 유월절 식탁(paschal meal)과 같은 성격의 성만찬이 되어야 한다는 데에 거의 일치된 견해를 갖게 되었다.
이와 같은 해석을 통해서 리마문서의 성만찬은 ‘기념, 임재, 희생’에 대한 새로운 통합적 신학의 틀을 마련하게 되었다. 이러한 틀 속에서 리마 문서는 “성부께 대한 감사”, “그리스도에 대한 회상과 재현”, “성령님의 초대”, “성도의 교제”, “하나님 나라의 식사”로서의 성만찬이라는 공동의 신학적 합의를 이룩하게 되었다. 이러한 통합적 신학의 내용을 좀 더 자세히 설명 하면 다음과 같이 요약 할 수 있다.
가. 성부께 대한 감사로서의 성만찬(The Eucharist as Thanksgiving to the Father)
먼저 성만찬은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기리고 선포하는 것으로서 성부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는 예전이다. 성만찬은 하나님께서 인류의 창조와 구속을 위해 이루신 모든 아름다운 행위에 대한 감사와 찬양의 제사이다. 성만찬은 창조와 구원과 성화에서 완성된 모든 것에 대하여 인간들의 죄악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교회와 세계속에 이루신 모든 것에 대하여 그리고 장차 하나님 나라를 완성하실 때 이루실 모든 것에 대하여 성부께 드리는 큰 감사이다.
또한 성만찬은 교회가 전 피조물을 대신하여 드리는 위대한 찬양의 제사이다. 이러한 찬양의 제사는 오직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리스도와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가능하다. 그리고 땅의 소산이자 인간의 수고의 결실인 떡과 포도주는 신앙과 감사 속에서 하나님께 봉헌 되어야 한다.
성만찬의 명칭이 감사(thanksgiving)를 의미하는 ‘성체성사(Eucharist)’로 불리고 있다는 점과 마태복음 26:26-27에서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 하시고” 또 “잔을 가지사 사례 하시고” 등의 표현은 모두 감사를 의미 하고 있다는 점에서 성만찬의 감사의 의미를 발견 할 수 있다.
나. 그리스도에 대한 회상과 재현으로서의 성만찬(The Eucharistas Anamnesis of Memorial of Christ)
성만찬은 그리스도의 유일회적인 희생 제사로서 십자가 희생에 대한 성례전적 임재(sacramental presence)를 의미한다. 성만찬은 십자가에 달리시고 부활 하신 그리스도께 대한 그리스도의 희생적 삶과 그 희생에 대한 실제적인 표징이다. 여기서 기념이라는 개념은 하나님의 백성에 의해서 예배가 거행될 때 하나님의 역사 하심이 현재적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스도 자신은 우리와 모든 피조물을 위하여 이루신 모든 것과 더불어 이 ‘회상’과 ‘재현’ 가운데 임재 하셔서 우리와 친히 교제를 나누신다. 성만찬은 영원히 살아 계셔서 우리를 위하여 중재 기도를 드리는 그리스도의 유일무이한 희생제사의 성례전으로서 이것은 하나님께서 세상의 구원을 위하여 행하신 모든 것에 대한 기념이다. 그러므로 성만찬을 재현 하면서 교회는 우리의 위대한 대제사장이신 그리스도와의 교제 가운데서 중재의 기도를 드린다. 성찬 의식에 있어서 중심이 되는 것은 그리스도의 성찬 제정의 말씀과 행위(the words and acts)여야 한다. 고린도전서 11:23-26에 기록된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는 말씀은 그리스도의 희생의 예전을 회상하고 재현하는 성만찬에 대한 성서적 근거가 되고 있다.
다. 성령님의 초대로서의 성만찬 (The Eucharist as Invocation of the Spirit)
성만찬에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다시 사신 그리스도께서 성령님으로 우리에게 임재하심으로 성찬 제정의 말씀 가운데 포함된 약속을 성취 시킨다는 뜻이다. 그리스도의 임재는 성만찬의 중심이며 이것을 가능케 하는 것은 성령님의 능력이다. 또한 성령님은 빵과 포도주가 그리스도의 몸과 피의 성례전적 상징이 되도록 한다. 성만찬의 전체 행위는 성령님의 역사 하심에 의존 하고 있기 때문에 성령님에게 의존하는 성격을 지니게 된다.
사도시대 이후 성만찬 예전에서 ‘성령님의 임재의 기도’는 중요한 위치를 차지 하여 왔다. 교회는 하나님 앞에 모인 회중과 성만찬의 떡과 포도주에 성령을 보내시어 그 떡과 포도주가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성별될 수 있게 하시고 모인 회중이 한 교회로 속하여 최후의 심판이 내릴 때 그 심판에서 구원 받을 수 있도록 해 주시기를 간구 하였다. 생명을 주는 영은 인간이 획득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지는 것이므로 교회는 영적인 것을 먼저 간구 해야 한다. 성만찬 현장은 성령님의 역사 속에 이루어지는 예전이 되도록 해야 하며 성령님의 임재의 기도를 잃어버린 교회들은 이 순서를 회복 할수 있어야 한다.
라. 성도의 교제로서의 성만찬 (The Eucharist as Communion of the Faithful)
성만찬 예전은 성도의 교제 현장이다. 교회의 생명을 양육 시키는 그리스도와의 성만찬 때의 교제는 곧 교회가 되는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의 교제를 의미한다. 한 장소에서 하나의 빵과 공동의 잔을 나눈다는 것은 어느 때 어느 곳에서라도 거기에 참여하는 자들이 그리스도와 그리고 그들의 동참자들과 하나가 됨을 말해 주며 그러한 효험을 가지게 된다. 하나님의 백성 공동체는 바로 이 성만찬 가운데서 완전히 표현된다. 성만찬 의식은 항상 전 교회와 관련되며 전 교회는 각 지역의 성만찬 의식과 연관을 갖는다. 또한 성만찬 의식은 하나님의 한 가족 안에서 형제들과 자매들로 간주되는 모든 사람들간의 참여를 요청하며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 삶에 있어서 적절한 관계를 추구 하도록 한다.(마5:23, 고전 10:16 ,11:20-22, 갈 3:28)
여기서 성도의 교제로서의 성만찬은 그리스도와 성도, 성도와 성도, 교회와 교회, 교회와 사회의 범위까지를 포함하여 언급 하고 있다.
마. 하나님나라의 식사로서의 성만찬(The Eucharist as Meal of the Kingdom)
성만찬은 창조의 종국적인 갱신으로서 약속된 하나님의 통치를 대망 하도록 해 주며 또한 그것을 미리 맛 보게 된다. 성만찬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 나라가 도래함을 축하하고 예상하는 잔치이다.(고전 11:26, 마 26:29) 예수께서 이 땅에 계실 때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식탁의 교제를 나누신 것처럼 성만찬 안에서 그리스도 몸의 지체된 자들은 화해의 종으로 또한 부활의 기쁨을 증거 하는 종으로 버림받은 자들과 유대를 가져야 한다. 성만찬을 거행하는 것은 곧 교회가 이 세계에 대한 하나님의 선교에 동참한다는 예증이다. 하나님의 은사인 성만찬은 기독교인들을 현세에서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변혁 시키며 그리하여 그의 힘있는 증거자들로 만드는 새로운 한 실재를 가져다 준다. 성서 속에는 성만찬을 하나님 나라에서 이루어질 “메시야의 향연(Messianic feast)의 예형(anticipation)”으로 보고 있기도 하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리마 문서에 포함된 성만찬 신학이 ‘기념’과 ‘임재’와 ‘희생’이라는 관점을 포괄함으로서 기독교 성만찬이 갖는 의미는 그것이 창조와 구속의 하나님께 대한 감사와 찬양의 제사요, 그리스도의 희생에 대한 기념이며, 성령님의 임재 속에 행하여진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인 성도들의 교제이며, 장차 하나님 나라에서 갖게 될 잔치의 모형임을 밝히고 있다.
5. 긍정적 평가5)
성만찬에 대한 신학적 입장은 교회의 분열을 감수하면서 까지도 양보할 수 없는 중요한 내용이었다. 특별히 개신교는 하나의 공동체가 되기를 원했던 그리스도의 정신을 망각한 채 분열과 다툼으로 얼룩진 교회로 지금까지 지속해 오고 있다. 그리고 교리적인 아집과 자신들의 영역의 고수를 위한 성을 쌓기에 바쁜 세월을 보내 왔다. 이러한 결과는 현대의 성도들에게 크고 넓게 볼 수 있는 시각을 축소 시키고 쌓아 놓은 성곽의 안에서만 머물기를 강요하는 결과를 낳았다. 이제 보수라는 이름을 구원과 직결하여 강요해 온 지금까지의 교회 형태는 무엇인가 변화를 시도 해야 한다. 특별히 각 교단이 가지고 있는 교리와 신학은 양보할 수 없는 소중한 원칙이라는 주장을 수용 하더라도 기독교가 수행하여야 할 예배-예전만은 성서와 초대교회의 것과 그 정신과 형태에 있어서 근접할 수 있어야 한다. 어떤 면에서 이러한 노력이 진정 복음적이고 보수적인 움직임이라고 할수 있다. 이러한 차원에서 리마예식서(Lima Liturgy)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의 긍정적인 평가를 받을 수 있다고 본다.6)
첫째, 무엇보다도 종교개혁 이후 세계의 교회가 한자리에서 깊은 감명을 받았던 성만찬을 가질 수 있도록 했던 노력에 대한 평가이다. 동방교회를 비롯하여 성공회, 루터교, 감리교, 장로교, 오순절 교회 등 기독교의 대표 120명이 50년의 긴 연구를 끝맺고 페루의 수도 리마에서 모여 채택한 이 리마문서(Lima Document)는 세계교회를 모두 수용하는 통합적인 신학의 발굴이었다. 그리고 이들의 연구가 단순한 연구로 끝나지 아니 하고 1983년 벤쿠버에서 직접 리마 예식서(Lima Liturgy)를 집례함으로서 세계의 교회가 이들이 연구하고 발표한 성례전의 통합적 신학을 수용할 수 있다는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 주게 되었다. 이것은 종교 개혁자들도 보여주지 못 했던 최대의 과업을 가져온 것이었다고 보아도 무리가 아니다.
둘째, 지금까지의 교회는 상이한 교회의 신학과 교리 그리고 예배-예전의 형태 때문에 자리를 함께 하는 것마저 거부하는 실정이었다. 그러나 리마 예식서의 연구와 실행에 있어서는 이러한 관습적인 문제들을 무너 뜨리고 있다. 적대적 감정에서 호의적 감정으로 발전을 시켜 본 예배-예전은 나누어진 교회들로 하여금 가시적 일치를 추구 하는 결정적 계기를 제공하게 되었다는 점을 높이 평가하지 않을 수 없다.
드디어 성령님 안에서 하나가 되어야 하는 그리스도의 지상 명령을 모두가 공감하는 본 예배-예전을 통하여 가능하게 만든 점은 교회의 본래적 모습을 회복시키는 거대한 발길의 출발이라고 할 수 있다. 서로가 적대시해 온 교회의 풍토를 변혁시켜 한 자리에서 한 그리스도의 성만찬을 가지면서 지금까지의 그릇되고 편협된 자아를 살필 수 있었던 것은 또 하나의 공헌이다.
셋째, 리마 예식서는 말씀의 예전과 (Liturgy of Word), 성찬의 예전(Liturgy of Upper Room)을 균형있게 갖춘 기독교 예전의 통전적인 면을 보여 주었다는 사실이다. 예배의 역사를 면밀히 검토하면 초대교회부터 기독교의 예전은 말씀의 예전과 성만찬의 예전을 언제나 지키고 있었다. 그러나 로마 카톨릭 교회는 말씀의 예전을 지워 버리고,미사(성례전)만을 지속하는 탈선의 길을 걸었고, 거기에 반하여 개신교는 말씀 중심의 예배를 지속하고 성만찬의 예전은 일년에 2회 정도로 축소 시키는 또 하나의 탈선의 길을 걸어 왔다.
이러한 측면에서 볼 때 리마예식서는 기독교의 본래적인 예배의 정신과 형태를 복고하려는 노력을 기울였음이 뚜렷하다. 뿐만 아니라 현대적인 감각으로 예배-예전의 모델을 제시하여 말씀과 성만찬이 동일하게 예전의 축이 되었다는데 대단한 의미를 담고 있다.
넷째, 성만찬 성례전에 대하여 쯔빙글리의 영향을 받은바 있는 한국교회를 비롯한 개신교의 대부분은 그 신학과 의미의 부여에 진지성을 결여 해 왔다. “나를 기념하라”는 말씀 그대로 기념적 행위로 성례전을 가져 왔을 뿐, 기독교 예배-예전의 핵심적인 부분으로서는 그 가치를 모르고 왔었다. 그러나 리마예배-예전의 문서와 예배의 내용을 통하여 ‘기념’이라는 개념이 단순한 인간 기억 속에 존속이라는 개념이 아니라, ‘회상과 재현’이라는 새로운 의미의 발견과 강조는 중요한 의의를 말해 주고 있다. 이로서 성만찬 예전의 중요성은 더욱 깊이 개신교 속에 파고 들어 갈수 있으며, 주님과의 만남을 더욱 진지하고 두텁게 형성 시킬 수 있게 되었다는 평가를 하게 된다.
다섯째, 지금까지의 WCC의 활동과 주장에 있어서 부정적인 반응들이 각 나라의 교회로부터 적지 않게 일어나고 있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러한 부정적인 반응들은 세계교회의 일치에 대단한 지장을 초래 하였고, 가입 교단으로부터 거센 항의를 받아 왔다. 그러나 리마예식서는 동방 교회와 로마 카톨릭 교회를 비롯하여 한국의 대한 예수교 장로회에 이르기까지 긍정적인 반응을 문서화 시키는데 성공하고 있다. 이들은 4개항의 질문을 만들어 세계교회에 보냈고 거기에 대한 대답은 대체적으로 긍정적이었다. 이러한 긍정적인 반응을 이끌어 내는 WCC의 작업은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특유의 것이며 거대한 결실이라고 보아야 한다. 거듭 밝히거니와 말씀과 성만찬이 바르게 선포 되어지고, 집례 되어 지는 곳이 바로 교회라는 사실에 우리의 정성을 쏟아야 미래의 한국교회의 바른 모습을 되찾으리라 확신한다.
지금까지는 WCC가입 교단인 장신대 교수의 『예배의 신학』pp 198-223에 기록한 것을 원본 그대로 옮겨 놓았다. 이제부터는 총신대. 고신대, 등 WCC 미가입 교단의 부정적 신앙을 제시하여 보겠다. 목사님들의 개개인의 평가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WCC의 리마예식서를 평가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라겠습니다.
리마예식서는 신앙이 같은 동지들이 유대를 강화하기 위하여 공동으로 사용할 목적으로 만든 예식서가 아니다. 교리적인 합의를 통한 일치 운동은 불가능 하다는 결론을 내린 WCC가 의식을 통한 일치 운동의 일환으로 만들어 낸 산물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리마 예식서는 온갖 종교들의 의식을 혼합하여 만든 혼합물이며, 그 신학적 배경도 혼합주의적이다. 그리고 그 근본 뼈대는 천주교의 미사 의식이다. 그러므로 우리 복음적인 교회에서는 수용할 수 없는 것이며, 수용해서는 안 된다고 판단된다. 여기서는 1.혼합주의 산물이다. 2.천주교 미사 의식이 둔갑한 것이다. 이 2개만 여기서 다루고 나머지는 이 글의 7항에 옮겨 놓은 WCC에 부정적인 면으로 반대하는 신학적 내용 전체를 표현 해 내는 합동측 총회장의 WCC를 반대하는 결의문을 참고 바랍니다.
1.리마예식서는 혼합주의의 산물이다.
우선 먼저 생각할 수 있는 것은 리마예식서는 로마 카톨릭, 동방 정교회, 성공회, 루터교 등 여러 종교에서 나온 자료들을 혼합하여 만든 작품이라는 것이다. 한 마디로 말해서 혼합주의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그것은 이미 예건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왜냐하면, 이 예식서를 만든 WCC의 신앙과 직제위원회가 12명의 로마 카톨릭 대표를 비롯하여 그리스정교회, 성공회를 포함한 일부 기독교(대부분의 보수적이고 복음주의적인 교회는 불참 하고 있다.) 대표들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11)
그러면 이제부터 리마예식서의 실제적인 기초자라고 할 수 있는 ‘막스 투리안(Max Thurian)’12) 이 제시하는 바에 따라, 리마예식서의 자료 출처들을 대강 살펴 보기로 한다.
개회의 예전에 내용 중 2.인사는 제2바티칸회의 이후에 개정된 카톨릭 교회의 예배 의식에서 새삼 회복된 것이고, 그 다음의 3.죄의 고백과 4.용서의 선언은 미국과 카나다의 루터 교회가 공동으로 사용하고 있는 ‘루터교 예식서’에서 채용한 것이다.13) 5.자비의 연도는 비잔틴 예배의식(동방 정교회)에서 온 것이다.14) 15.신앙 고백은 381년 콘스탄티노플 회의에서 공인된 니케아 신조를 사용 하는데15) 이 니케아 신조는 동방정교회에서 사용 하는 것으로16) 동방 교회와의 화해의 의미에서 채택 되었다.17) 16.중보의 기도는 교황 겔라시우스(Pope Gelasius, D.496)의 년도로서 5세기 말경에 로마에서 사용 되었던 키리에(Kyrie)의 년도를 반영한 것이다.18) 성찬 예전의 내용으로, 17.준비 기도는 유대교 의식의 두 축복기도(로마카톨릭 예식에도 사용되는)와 디다케(Didache)에 근거한 것이고, 또 알렉산드리아 전통과 로마 전통에 따르기 위해서 21.성령 임재의 기원Ⅰ이 성만찬 제정의 말씀 앞에 드려진다.19) 이 성령임재의 기원은 동방정교회로부터 온 것이다.20) 25.추모의 기원은 로마 카톨릭의 전통에 따른 것으로 죽은 자들을 위한 기도이다.21) 26.마지막 기원 역시 로마 카톨릭 예식에서 온 것이다.22)
2.리마예식서는 천주교 미사 의식이 둔갑한 것이다.
리마예식서는 천주교, 동방정교회, 성공회, 루터교 등의 여러 종파의 의식들을 혼합하여 만든 것이지만 특별히 그 큰 뼈대는 천주교의 미사 의식이라고 생각 되는바, 다음과 같이 리마예식서를 천주교의 ‘미사 통상문’과 비교해 보면, 어느 정도 판단이 가능하리라 생각 됩니다.23) 각주 23번의 『카톨릭 기도서』pp.125-169.『미사 해설』pp.23-50.『중요 교리, 전례, 용어 해설』pp.151-161. 『카톨릭 교리 용어집』pp.133-139.를 참고 하십시오.
위와 같이 리마예식서를 천주교의 미사 통상문과 비교해 본 결과 몇 가지 순서와 문장의 표현들이 수정 되었을 뿐, 그 기본 골격은 동일 하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결국 여러 가지 미사여구로 예배 갱신론자들이 극찬하는 리마예식서는 다름 아닌 천주교의 미사 의식을 차용한 것에 불과한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목회자들이 천주교의 미사 의식을 모르기 때문에, 리마 예식서의 정체를 눈치 채지 못하고, 예배 갱신론자들의 주장에 미혹될 수도 있음을 생각하면, 소름이 끼치도록 두려운 일이다. “사탄도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한다(고후11:14)”라고 성경은 지적 하고 있다. 목회자들은 ‘리마예식서’라는 이름으로 ‘천주교의 미사의식’이 침투 하고 있음에 경각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7.“WCC의 제10차 부산 벡스코 총회” 개최에 대한 예장 합동 측 입장과 결의문.24)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합동)는 오래 전부터 WCC에 반대하는 분명한 신학적 이유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이번 제10차 WCC부산 총회를 앞두고 WCC의 정체를 바르게 알지 못한 채 겉으로 보이는 연합 운동만을 바라 보면서 이번 총회를 지지하는 한국교회의 많은 성도들의 신앙에 미칠 악영향을 우려하며 그들에게 바른 가르침을 줄 필요성을 느꼈다. 이에 본 총회(합동)는 2010년 9월 1일 서울 장충동 엠버서더 호텔에서 합동 측 WCC 대책위원회 관계자와 목회자, 그리고 각 교단 관계자 등 2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결의대회를 가지고, 다음과 같은 신학적 결의문을 채택하여 발표 하였다.
결 의 문
WCC(세계교회협의회) 제10차 총회 개최(2013년 부산 백스코)에 대한 우리의 입장을 다음과 같이 밝힌다.
1. WCC는 성경이 정확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사실을 부인한다. WCC는 성경의 창조기사, 출애굽 사건, 예수 그리스도의 동정녀 탄생, 죽음과 부활, 보좌 우편에서의 중보 등을 상징적인 교훈 정도에 불과한 것으로 여기며 특수한 정황에 따라서 자의로 해석한다.
2. WCC의 신론은 종교 다원주의에 근거 하고 있다. WCC는 모든 종교의 신(神)은 명칭만 다를 뿐 동일한 하나님이라고 주장한다. 이는 기독교 유일신 사상에 반대 하는 것이다.
3. WCC는 예수 그리스도를 유일한 구원의 중보자로 여기지 않는다. WCC는 예수 그리스도의 역사적 대속 사역의 절대적 가치를 인정하지 않고 그리스도 구속의 은총을 윤리적이거나 문화적인 영향력 정도로 상대화 시키고 있다.
4. WCC는 변질된 성령론을 주장한다. WCC는 성령을 타 종교와 샤머니즘에서 말하는 정령의 개념과 혼동하고 있다. 그리하여 성령을 단지 영력 정도로 여겨서 여기서 성부와 성자의 영이심을 부인할 뿐 아니라 성삼위일체 교리를 부정하는 데 이른다.
5. WCC는 성경적 교회관을 벗어나 종교들의 일치를 추구한다. WCC는 교회를 초월하여 모든 종교들의 일치와 연합을 이루고자 하는 종교 다원주의를 추구했다. WCC는 가시적 교회의 교제만을 편향되게 강조하여, 교회를 복음을 전하며 성도를 양육 시키는 구속의 공동체가 아니라 사회 구호 단체나 협력단체 정도로 전략 시키고 있다.
6. WCC는 교회 본연의 사명인 복음 선포와 선교는 등한 시 했다. WCC는 종교 다원주의 입장에 서서 문화적이며 사회적인 교류에는 힘썼으나 교회 본연의 사명인 복음 전도와 선교에는 큰 관심을 쏟지 않았다.
7. WCC는 동성애를 묵인하고 있다. WCC는 성경의 진리를 무시하고 동성애를 인정함으로서 창조의 질서를 파괴 하고 있다. 이는 하나님의 섭리를 거역 하는 것이며, 변태적인 쾌락주의에 동조하는 처사이다.
8. WCC에 참가한 교단은 한국교회에서 소수에 불과하지만 (기감, 성공회, 통합, 기장), 마치 자신들이 한국교회를 대표하듯이 행동하고 있다.
WCC의 실체가 이러하므로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교단은 소수 교단에 의해서 진행하는 WCC총회 부산 유치가 가져 올 한국교회의 분열과 반목, 그리고 성도들의 신앙과 삶에 미칠 악영향을 심히 우려하며, 한국교회 보수교단들이 연합해 성도들을 바른 진리로 인도 해 WCC의 어떤 미혹에도 넘어가지 않도록 적극적으로 대처할 것을 결의하는 바이다.
2010년 9월 1일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
총회장 서정배 목사
WCC대책 위원장 서기행 목사 외 WCC결의대회 참석자 일동
WCC총회 유치가 확정된 이후부터 지금까지 WCC에 대한 합동측의 입장을 대변해 주는 많은 논문들이 발표되고 있으나, 이 결의문이야말로 지금까지 나온 그 어떤 논문들보다도 가장 체계적이고 종합적으로 입장을 대변해 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25)
8. 토론 합시다
1.리마예식서의 25번 순서인 추모의 기원은 죽은 자들을 위한 기도인데 다음과 같다.
또한 우리보다 먼저 그리스도와 평화 안에서 죽어간 우리의 자매와 형제들, 그리고 그들의 믿음이 주님께만 알려진 모든 사람들도 기억해 주시옵소서! 주께서 모든 백성들을 위해 예비하신 기쁜 잔치에 우리보다 먼저 간 모든 성도들과 더불어 이들도 참여할 수 있도록 인도해 주옵소서! 이 모든 형제들과 더불어 주님을 찬양하며 주님의 나라에서 사는 기쁨을 기다리나이다.26)
죽은자들을 위한 기도와 주님께만 알려진 모든 사람들도 기억 하소서!
이런 기도를 어떻게 생각 하십니까?
2. 리마예식서 4번 ‘용서의 선언’으로 그 내용을 보면 “목사: ...나는 교회의 부름을 받고 안수를 받은 목사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권위를 힘입어,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여러분의 모든 죄가 용서 받은 것을 선언 합니다.”27)
목사에게 사람들의 죄를 용서해 줄 권세가 있습니까?
3. 성찬용 빵(떡)과 포도즙을 개발해서 각 교회에 보급 할 목사님 안 계신지요?
1. 여기서는 적어도 두가지 오류를 지적할 수 있겠다. 하나는 죽은자들을 위하여 기도 하는 것이 성경적인가 하는 것이고, 두 번째는 “그들의 믿음이 주님께만 알려진 모든 사람들도 주의 백성들을 위해 예비하신 기쁜 잔치에 같이 참여할 수 있도록 인도해 달라”는 내용이다. 여기서 “그들의 믿음이 주님께만 알려진 모든 사람들”은 누군가?그것은 교회 밖에도 구원이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말하는 소위 ‘익명의 그리스도인’ 이 아닌가? 결국은 교회에 다니지 않고 예수를 믿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착하게 살았던 영혼들을 천국에 들여 보내 달라는 기도가 아닌가? 그렇다면 이것은 믿지 않는 자들이 ‘죽은 영혼들이 좋은 곳에 가게 해달라고 명복을 비는 것’과 다를 것이 없다.믿는자든지, 안 믿는 자든지 간에 죽은자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은 사후기회론을 전제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은 성경적인 사상이 아니다.
2.“목사: ....나는 교회의 부름을 받고 안수를 받은 목사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권위를 힘 입어,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여러분의 모든 죄가 용서 받은 것을 선언 합니다”라고 되어 있다. 이것은 천주교 미사 의식에서 신자들이 참회의 고백을 한 후에 사제가 사죄 해 주는 것과 같다.28) 여기서의 문제는 과연 목사에게 사람들의 죄를 용서해 줄 권세가 있느냐는 것이다. 리마예식서는 ‘안수 받은 목사로서’를 강조함으로서 안수 받은 목사에게는 사죄의 선언을 할 권리가 있는 것 같이 말하고 있는데, 단어상으로 ‘죄를 용서하는 것’과 ‘죄가 용서 받은 것을 선언 하는 것’은 차이가 있겠지만, 궁극적으로 죄를 용서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권한에 속한 것이기 때문에, 사죄의 선언을 목사가 한다는 것은 결국 하나님의 권한을 목사가 침범하고 있음을 의미 하는 것이다.
천주교의 사제(신부)들이 고백 성사를 통해서 사람들의 죄를 용서 해 주고 있고, 또한 사제들에게는 그리스도의 대리자로써 사죄권이 있다고 하는데, 리마예식서는 그 표현만 약간 기교를 부렸을 뿐, 천주교의 개념을 그대로 받아 들인 것에 불과하다.
3.성찬용 빵(떡)과 포도즙을 개발 해서 보급 하였으면 하는 것이다.
①각 교회마다 알콜이 들어 간 포도주를 사다 쓰지 않고 또 해마다 포도즙을 만드느라고 수고하지 않아도 되지 않겠지요?
②천주교나 성공회에서 우상 숭배적인 성체(Host)를 사다가 쓰지 않아도 되겠지요. 사제(신부)들이 예수님의 몸으로 축성한 성체(둥글고 넓적한 웨하스 종류)를 사다 쓴다는 것은 성찬에 대한 엄청난 모독이다.
③수백명, 수천명에게 성찬을 베풀때에 기존의 카스테라 빵이나 백설기 혹은 인절미를 사용 한다는 것은 큰 일이 아닐 수 없다.
④전국에 흩어져 있는 기독교 서점을 통해 보급 될수 있기에 사업성도 있겠지요.
1) 정장복, 『예배의 신학』(서울: 장로회신학 대학교 출판부, 2000), 205-207.
2) 유선호,『리마 예식서의 정체』(경기: 도서출판 하늘기획 2002), 37-38.
3) 정장복, 『예배의 신학』, 208-210.
4) 정장복, 『예배의 신학』, 212-218.
5) 정장복, 『예배의 신학』, 218-223.
6) 평가는 언제나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을 지적할 때만이 그 타당성을 인정 받게 된다. 그러나 본 란에서는 이미 제약된 지면을 넘기고 있음으로 긍정적인 평가만을 실고 다음에 부정적인 평가를 논술 하려고 한다.
정장복, 『예배의 신학』, 219.
7) 이상규, “종교 다원주의에 대한 비판.” 『기독교 사상 연구』Vol 2. (1995). 21-45.
8) 패트릭 헨리, “WCC총회 주제들에 대한 성찰.” 『세계의 신학』Vol 40. (1998). 226-234.
9) 양낙흥, “ WCC의 공식문서에 나타난 종교다원주의의 발전과정.” 『개혁 논총』Vol 16. (2010). 129-159.
10) 유선호, 『리마예식서의정체』(경기: 도서출판 하늘기획, 2002), 42-44.
11) 박종화, “리마문서의 신학적의미.” 『기독교 사상』,35, No.11(1991.11), 57.
12) 막스 투리안은 리마 문서의 전신인 아크라 문서의 기초자였고 리마문서의 신학적 배경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13) Max Thurian, “리마 성찬 예식서의 해설과 본문”, 박근원 역,『신학 사상』, 제56호 (1987,봄), 235.
14) Ibid., 237.
15) Ibid., 239.
16) 박종화, 『기독교 사상』, 58.
17) 김운용, “Lima Liturgy의 예배 예전으로서의 가치성 연구” (석사학위 논문, 장로회 신학대학 대학원,1990), 123-124.
18) Max Thurian, 『신학 사상』, 239.
19) Ibid., 239-240.
20) 박근원, 『리마 예식서』(서울: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1987), 25.
21) Max Thurian, 『신학 사상』, 242.
22) Ibid., 243.
23) 여기서 인용된 미사 통상문은 카톨릭 공용어 심의위원회 편, 『카톨릭 기도서』, 수정판(서울: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1987), 125-169에서 인용한 것으로서, 양자 택일적인 양식일 경우에는 리마예식서에 가까운 것을 인용 하였음. 그리고 미사의 각 순서에 대한 해설들은 최윤환, 『미사 해설』, 23-50. ; 이기정 ,『중요 교리,전례, 용어 해설』,151-161; 최형락,『카톨릭 교리 용어집』, 133-139.를 참고 할 것.
24) 곽원철, “합동과 통합의 분열과 2013년 WCC 총회에 대한 견해 차이.” 미간행 석사 논문,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2012. 47-51.
25) 사실 이보다 4달 전인 2010년 5월 4일자 기독신문을 보면, “WCC에 대한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교수 성명서”라는 글이 이미 발표 되어 있었다. 필자가 이 둘을 비교해 본 결과 이번 결의문은 그 때의 성명서를 바탕으로 하여 작성한 것으로 볼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래의 글인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교수 성명서를 게재하지 않고 교단의 결의문을 기록한 것은 ‘7.동성애’에 관한 내용이 더 첨가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결의문을 발표한 이들 가운데는 합동 측 뿐만 아니라 보수적 입장을 가지고 있는 교단 산하의 목회자들까지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26) Max Thurian,『신학 사상』, 254-255.
27) Ibid., 248.
28) 최윤환, 『미사 해설』(서울: 카톨릭 출판사, 1982), 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