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가사는 여래의 최상의 옷, 보살의 대복전의 옷
가사불사의 공덕 <下>
2022-09-08 무상스님 조계종 가사원 도편수
불설가사공덕경에 “가사불사를 발원한 이는 모든 재앙이 소멸하고 백 가지 복이 구름 일듯이 일어난다”고 했다. 불교신문 자료사진.
불설가사공덕경에 “가사불사를 발원한 이는 모든 재앙이 소멸하고 백 가지 복이 구름 일듯이 일어난다”고 했다. 불교신문 자료사진.
무상스님<br />조계종 가사원 도편수
무상스님
조계종 가사원 도편수
가사는 지켜야 할 소중한 문화유산
2023년 윤2월, 가사불사 활발하길...
오늘 전해드릴 이야기는 앞서 두 번에 걸쳐했던 가사불사 설화와는 조금 분위기가 다릅니다. 천년고찰에 얽힌 고대 설화가 아닌 비교적 멀지 않은 과거에 있었던 가사불사 영험담이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구전이 계속 이어지며 살이 붙은 설화에 비해 내용이 드라마틱하지 않아 밋밋하게 느끼실 수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오히려 조금 더 사실적이고, 실제로 있었던 이야기라는 점에서 마음에 와닿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죽은 아들의 왕생극락
지금으로부터 100여 년 전, 충청북도 보은 속리산 법주사에서는 가사불사를 시작하기 위해 기도하면서 화주 스님 몇 명을 정해 여러 지방으로 내려보냈습니다. 그 가운데 한 분은 지금의 서울인 장안으로 길을 떠났는데, 집집마다 다니면서 가사 시주를 받았습니다.
어느 날 한 집에 갔더니 집주인 보살께서 스님을 방으로 모신 뒤 가사 시주를 하면 어떤 공덕이 있는지 물었고, 스님은 차근차근 공덕을 설명했습니다. 그러자 보살님은 “우리 영감이 몸이 안 좋으니 건강하고 오래 살 수 있게 기도를 잘 해달라”며 가사 한 벌을 시주했습니다. 보통 시주자 한 사람이 가사 한 벌을 시주하는 전통에 따른 것이지요. 그리고 시주를 받은 스님이 그 집을 나서는데 보살님이 밖으로 따라 나오면서 영감님 몰래 조용히 물었습니다.
“스님, 가사 한 벌 시주하면 죽은 사람도 좋은 곳에 태어날 수 있을까요?”
보살님의 물음에는 어딘가 사연이 있는 듯했습니다. 하지만 스님은 개인적인 사연은 묻지 않고 친절하게 답변했습니다.
“살아있는 사람도 복을 받고 좋은 일이 많이 생기지 않습니까? 죽은 사람을 위하여 가사를 한 벌 시주하면 그 인연으로 공덕이 되어 좋은 곳에 태어날 수 있으니 걱정하지 마세요.”
보살님은 스님 말씀을 듣고 죽은 아들을 위해 가사 한 벌을 시주했습니다. 그렇게 스님이 떠난 지 며칠이 지나고 보살님과 영감님은 같은 날 서로 똑같은 꿈을 꾸었습니다. 새벽녘에 영감님이 일찍 일어나 보살님에게 꿈 이야기를 하면서 “참 이상하다”고 혼잣말을 했습니다.
“가사는 내 앞으로 한 벌 시주하였는데 어찌 보고 싶던 아들이 가사를 부처님께 시주해 그 공덕으로 좋은 곳에 태어났다고 하는가.”
영감님의 이야기를 들은 보살님은 잔잔한 미소를 띤 채 말했습니다.
“죽은 아들도 꼭 좋은 곳에 다시 태어나라고 영감 몰래 가사를 한 벌 시주하였소. 아들이 가사 공덕으로 좋은 곳에 태어났다니 참으로 다행 아니겠소. 보고 싶은 아들 꿈에서라도 만나고, 그 아들이 당신 병에 좋은 약이라면서 약도 건네주지 않더이까. 이제 당신 병도 없어지고 아들도 좋은 곳에 태어났으니 이 얼마나 좋은 일이요.”
이 일을 겪은 뒤 노부부는 법주사를 찾아와 꿈자리를 설명하면서 가사불사에 동참한 공덕으로 평생소원이던 아들의 웃는 얼굴을 봤다고 기뻐했습니다. 얘기를 전해 들은 스님들도 가사를 시주한 노부부에게 감사를 표하고, 그렇게 가사불사에 참여하는 사람들도 늘어났다고 합니다.
가사 공덕이 이어준 재회
두 번째 이야기는 1970~80년대 제가 가사불사를 도맡아 하면서 함께했던 보살님이 주인공입니다. 당시 저는 경기도에 있는 봉선사에 가사불사 편수로 갔습니다. 한참 도량을 둘러보고 가사불사를 준비하면서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었는데, 어떤 50대 보살님이 조용히 눈물 흘리는 모습을 자주 보게 됐습니다. 그래서 어느 날, 보살님에게 무슨 사연이 있는지 물었습니다.
보살님에게는 두 아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큰아들이 사고로 갑자기 세상을 떠났고, 이렇게 절에 혼자 있을 때면 아들 생각이 떠올라 눈물이 나고 슬픔을 감출 수 없었답니다. 저는 보살님에게 애도를 표하면서 가사불사에 함께할 것을 권했습니다. 불사에 매진하면서 잠시나마 아들 생각을 잊고, 또 좋은 공덕을 쌓을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후로 보살님은 제가 경북 영천 죽림사 주지를 할 때도 가사불사에 큰 도움을 주셨고, 충북 옥천 용암사에서 가사불사를 할 때도 힘을 많이 보탰습니다. 특히 용암사 도량불사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는데, 용암사는 큰법당이 퇴락해서 법당을 중건하려던 때였습니다. 마침 설계사인 보살님의 처사께서 법당 설계를 해주신다기에 수원까지 찾아가 함께 점심공양을 했습니다. 그때 처사님이 저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스님 저는 우리 집 보살이 죽은 아들위해서 한다고 하면 무엇이든 따라했습니다. 그런데 스님들 가사가 무엇인지는 잘 모르지만 가사불사에 동참하면 정말 좋은가 봐요.”
그리고는 처사님이 얼마 전 자신이 꾼 꿈 이야기를 들려줬습니다. 처사님은 꿈에서 저승사자를 따라 길을 걷고 있었는데, 누군가 자신의 이름을 간절하게 부르고 있어 소리가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려 바라봤습니다. 그곳에는 몇 년 전 세상을 떠난 친구가 있었습니다. 그 친구는 처사님에게 자기 얘기 좀 듣고 가라면서 손짓을 하고 있었습니다. 처사님이 친구를 만나려 발걸음을 옮기는 순간, 저승사자는 그곳에 가면 안 된다며 가던 길을 그대로 따라가라고 소리쳤습니다. 저승사자가 어찌나 완강하게 소리를 치는지, 처사님은 깜짝 놀라 걸음을 다시 가던 길로 돌렸습니다. 그런데 그 길을 따라가다 보니 오매불망 보고 싶던 죽은 아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저 사람(저승사자)을 따라 이곳까지 왔더니 네가 여기 있었구나! 이 아비가 매일같이 너를 생각하며 지냈다. 이렇게라도 얼굴을 볼 수 있으니 더없이 좋구나.”
처사님은 꿈에 그리던 아들을 다시 만나게 된 감격에 눈물을 흘렸습니다.
“아버지, 저는 아버지 어머니께서 저를 위해 쌓은 공덕으로 여기에 있는 거예요. 절에서 가사불사를 돕고 많은 시주를 하신 그 공덕이 한량없어서 저는 이처럼 좋은 곳에 와 잘 지내고 있습니다. 더이상 제 걱정은 마세요. 아버지 어머니 참으로 고맙습니다.”
한참 이야기를 쏟아낸 처사님은 가사불사 공덕으로 저승 구경을 잘 했다며, 부처님과 관련된 일이라면 무엇이든 성심성의껏 힘을 보태주셨습니다.
가사불사 전통을 되살리자
<불설가사공덕경>에 “가사는 여래의 최상의 옷이며, 보살의 대복전의 옷이니라…가사불사를 발원한 이는 모든 재앙이 소멸하고, 백 가지 복이 구름 일듯이 일어난다”고 했습니다. 부처님을 비롯해 삼보 가운데 하나인 승보를 보호하고 진리를 지켜 나가는 의복인 만큼 그 공덕이 크다는 뜻입니다.
지금까지 총 세 번에 걸쳐 가사불사와 관련된 공덕 이야기를 전해드렸습니다. 참으로 소중한 우리의 문화유산이라는 걸 여러분도 알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우리 것을 우리 손으로 지켜 점차 희미해져 가는 가사불사의 전통을 되살리고, 세세생생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할 수 있길 서원합니다. 아울러 2023년, 윤2월이 든 내년을 앞두고 전국의 수많은 사찰에서 가사불사가 이뤄지길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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