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포의 새벽 편지-625
천자문214
동봉
0769베풀 진陳
0770뿌리 근根
0771맡길 위委
0772일산 예翳
천끈웨이이陈根委翳chengenweiyi
-고목뿌리 시드는것 자연이듯이-
(낙엽지고 나부낌도 자연이로다)
"네 이름이 무엇이냐?"
"네, 큰스님. 전주이씨에 이름이 진균이예요"
60을 바라보시는 초로의 큰스님께서
안경 너머로 나를 뚫어져라 보시더니
"어서 많이 들어 본 이름이구나"
나는 바로 말을 받았습니다
"철수나 영희도 아니고 그러실리가요?"
"아니야, 어서 많이 들어본 것 같애."
큰스님 앞에서 감히 히죽거리며 말했습니다
"혹시《千字文》에 나오는 진근위옌인가요?"
큰스님께서 파안대소하시면서
"그렇구나!《千字文》에 그런 발음이 있지
그렇다면 네가《千字文》을 읽었더냐?"
"그럴리가요. 큰스님. 바로 아뢰겠습니다
저는《千字文》이 아닌《千慈門》을 읽었습니다."
"그건 또 무슨 뜻이더냐?
"귀한 사람이 어찌 책을 읽겠습니까
책이 바로 그 소중한 사람을 읽어야지요?"
"책이 소중한 사람을 읽는다?"
"네 큰스님, 저는 오늘 큰스님의 법문에서
일천 사랑의 문千慈門이 열림을 보았습니다"
처음으로 절에 발을 디딘 때가 23살 때고
그날은 마침 2월 보름으로 열반재일이었지요
강원도 원주시를 병풍처럼 두른 치악산
가치 보은의 전설이 깃든 치악산에서
정각 10시에 시작한 구룡사 법회가
오후 1시를 훌쩍 넘긴 뒤 점심공양을 했으니
장장 3시간에 걸친 긴 법회였습니다
큰스님은 부처님의 열반을 말씀하셨습니다
부처님은 대열반에 드심으로써
마침내 온전한 수행을 완성하셨습니다
맛있는 점심공양을 막 끝내는 데
태허 박종영 큰스님께서 나를 부르셨지요
"공양 끝나면 내 방으로 오너라"
나는 곧바로 큰스님을 찾았고
정중하게 큰절로 삼배를 올렸습니다
그리고《천자문》얘기까지 진도가 나갔지요
"뭐라, 책이 사람을 읽어야지
사람이 책을 읽을 수는 없다고?
게다가 일천 사랑의 문《千慈門》이 열렸다고?"
큰스님과의 인연은 그리 시작되었고
다섯 달 뒤 내 인연길은 해인사로 향했습니다
해인사에서 내 인생의 스승을 만났습니다
대한불교조계종정을 3번에 걸쳐 맡으셨고
'자비제일'로 일컬어지던 고암큰스님이십니다
옛 고古 자에 바위 암巖/암岩 자를 쓰셨고
때로 암자 암庵/암자 암菴을 쓰셨습니다
가끔은 환산歡山이란 호를 쓰셨지요
인연은 참으로 묘합니다
헤어지는 인연도 묘하고
만나는 인연도 묘합니다
0769베풀 진陳
베풀 진/묵을 진으로 새기며
좌부변阝에 꼴形소리聲 문자입니다
대표적인 뜻으로는 베풀고
일을 차리어 벌임이며
남을 도와주어서 혜택을 받게 함입니다
언덕의 뜻을 지닌 좌부변阝부와
나무 목木 자가 가운데 있으며
소릿값의 펼 신申으로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니까 베풀 진陳 자에는
좌부변阝나무 목木, 펼 신申 3자의 만남입니다
따라서 이 글자는 언덕을 뜻하는 변보다
소릿값에 의미가 들어있습니다
이 펼 신申 자는 번개電였습니다
번개는 하늘을 가르며 퍼져나갔습니다
엄청난 굉음轟音=宏音을 동반하면서 말입니다
이 번개가 진공의 우주에서 치면
굉음의 천둥소리가 있을까요
진공에서는 천둥은 물론 번개조차 없습니다
진공에는 공기가 없는 까닭입니다
가령 핵폭탄이 진공의 우주에서 터진다면
버섯 구름이 일어날 수 있을까요
으레 일어나지 않습니다
진공은 고장불명孤掌不鳴의 세계입니다
하나의 손바닥으로는 소리가 나지 않습니다
산소가 있고 수소가 있고 질소가 있어야
핵은 마찰력을 역으로 이용해 퍼져나갑니다
베풀 진陳의 뜻은 오른쪽 동녘 동東 자의
거듭 신/아홉째 지지 신/펼 신申 자에 있습니다
01. 베풀다
02. 묵다
03. 늘어놓다
04. 늘어서다
05. 말하다
06. 많다
07. 조사하다
08. 펴다
09. 나라의 이름
10. 왕조 이름
11. 방비
12. 진법
13. 성씨
다른 꼴異形 같은 뜻同意 글자로
陈 : 베풀 진/묵을 진 간체자가 있고
軙 : 베풀 진 옛글자가 있으며
敶 : 베풀 진과
迧 : 베풀 진은 같이 쓰입니다
같은 뜻同意을 가진 글자로
屯 : 진 칠 둔, 어려울 준.
張 : 베풀 장
施 : 베풀 시, 옮길 이
設 : 베풀 설 자 따위가 있습니다
0770뿌리 근根
뿌리 근根은 나무목변木의 꼴소리 문자입니다
나무의 뜻을 지닌 나무 목木 부수와
소릿값 '괘 이름 간艮'이 만나 이루어졌습니다
괘 이름 간艮 자는 괘이름 간 외에 그칠 간
은 은艮, 끌 흔艮으로 새기기도 합니다
지금은 쇠금변釒에 은 은艮을 붙여
은 은銀 자로 읽지만 간艮이 은艮이었습니다
관련된 한자를 찾아보면
같은 뜻을 가진 한자로
本 : 근본 본本 자가 있습니다
뿌리 근根 자에 담긴 뜻으로는
1. 뿌리, 근본, 밑동
2. 능력, 마음
3. 생식기
4. 부스럼 속에서 곪아 단단하여진 망울
5. 뿌리 박다, 뿌리를 내리다
6. 근거하다, 기인하다
7. 뿌리째 뽑아 없애다 따위입니다
또 근根이란 터基를 나타내는 말이며
방정식을 실제로 성립시키기 위해
미지수가 차지하는 수치를 뜻하기도 합니다
승근乘根the root으로서 '거듭제곱근'이지요
곧 a를 n번 곱하여 c가 되었을 때
c에 대한 a의 일컬음입니다
승근乘根 얘기가 나온 김에 더 말씀드리면
여기에는 이승근二乘根a square root
삼승근三乘根a cube root
사승근四乘根a biquadratic root
자승근自乘根a square root 등이 있습니다
이승근과 자승근은 같은 논리지만
자승근은 우리말로 '제곱근'이라 합니다
이승근과 자승근은
어떤 수 a를 두 번 곱하여 x가 되었을 때
a를 x에 대하여 이르는 말입니다
삼승근은 우리말로 '세제곱근'입니다
어떤 수 a를 세 번 곱하여 x가 되었을 때
a를 x에 대하여 이르는 말이지요
사승근은 우리말로 '네제곱근'인데
a를 4제곱하여 b가 될 때 b에 대한 a를 일컫습니다
근根은 어떤 작용作用을 일으키는 센 힘이며
육근六根의 원기元氣를 가리키는데
육근은 눈 귀 코 혀 몸 뜻이지요
마음의 창문인 눈을 어떻게 열고 닫을 것이고
귀는 어떻게 열어 둘 것이고
코는 어떤 냄새를 따라갈 것이고
입은 어떤 음식을 찾고
어떤 언어를 구사하며
어떻게 침묵할까를 생각할 것입니다
몸가짐은 어떻게 기질 것인지 생각할 일입니다
얼마나 재고 얼마나 무겁게 가질 것이며
생각은 어디에 어떻게 두고
어떻게 열 것인지를
곰곰이 생각하고 또 생각할 것입니다
나는 늘 얘기합니다
"백 권의 책을 읽기보다 한 번 깊이 생각하라"고
0771맡길 위委
맡길 위委는 계집 녀女에 뜻모음 문자입니다
여자女에게 곡식禾 창고를 맡긴다는 데서
맡기다委를 뜻하게 되었습니다
남자가 모는 전권을 휘두르면 "가부장적이라" 합니다
"지금이 조선시대냐"고까지 얘기합니다
조선은 고사하고
그로부터 천 년을 거슬러 올라가
6세기경에 이《천자문》이 만들어졌는데
예서 곳간禾 열쇠를 안주인女에 맡긴다는 것은
꼭 옛이 고리타분하지만 않았다는 논리입니다
01. 맡기다, 맡게 하다
02. 버리다, 내버려 두다
03. 자세하다
04. 쌓다, 쌓이다
05. 의젓하다
06. 옹용雍容하다, 마음이 화락하고 조용하다
07. 시들다, 쇠퇴하다
08. 굽다, 굽이지다
09. 끝, 말단
10. 창고, 곳집곳간으로 지은 집
11. 자세히
관련된 한자를 찾아보면
任 : 맡길 임/맞을 임
托 : 맡길 탁
託 : 부탁할 탁
預 : 맡길 예/미리 예 자가 있습니다
0772일산 예翳
깃 일산 예翳자는 깃 우羽가 부수입니다
날개, 날다, 새이름을 지닌 깃우羽 부수와
소릿값 앓는 소리 예殹가 만나 이루어졌습니다
깃 일산日傘은 접는 부채로써
판소리를 하거나 또는 뙤약볕 아래서
빛을 가려주는 의장용으로 쓰기도 했습니다
앓는 소리 예殹 자 아래에
깃우羽 자를 놓으면 일산 예翳 자가 되고
술단지 유酉 자를 놓으면 의원 의醫 자가 됩니다
옛날에는 병이나 상처를 치유医할 때 술酉을 썼습니다
앓는 소리 예殹는 상자방匚 안에 화살矢이 있고
오른쪽에는 몽둥이 수殳 자가 있는데
이 몽둥이 수殳 자는
다시 의사几의 손길又로 풀이됩니다
요즘은 의원 의醫 자를 줄여씁니다
일본어에서는 약자略字를 두고
중국어에서는 간체자簡體字를 두었습니다
게다가 요즘도 매일 많은 한자가 생겨납니다
새로 생기는 한자는 캘리그라피입니다
아주 단순하거나 매우 복잡한 글자들입니다
그림이면서 문자, 문자면서 그림입니다
1. 그늘
2. 방패
3. 가리다
4. 물리치다
5. 숨다
6. 가로막다
7. 멸하다
8. 말라 죽다, 말라서 죽다
9. 흐리다
근래 들어 그토록 괴롭히던 좌골신경통이
수술 하나로 말끔해진 듯싶습니다
어떤 통증이든 통증은 아픈 자만이 압니다
그제 오후 3시 강남우리들병원에서
나는 외과 수술실에 실려 들어갔습니다
마취를 하고 수술을 통해 4번과 5번 요추 사이의
신경을 짓누르던 디스크를 제거했습니다
이제 극심한 아픔의 통증은 사라졌고
엉덩이도 허벅지도 종아리도 편안합니다
수술이 끝난 그제 밤부터 어제 새벽까지
나는 기포의 새벽 편지를 써서 띄웠고
어젯밤에도 병상에 누운 채로 글을 썼습니다
아! 어제 '기포의 새벽 편지-624'와
오늘의 '기포의 새벽 편지625'는
내게는 그래서 더욱 더 소중한 글입니다
09/24/2016
곤지암 우리절 선창에서

첫댓글 스님!
큰 수술을 하셨군요.
Money Money 해도 건강이 최고입니다.
다행스러운 것은 통증이 해소되었다 하시니
앞으로 더 좋은 법문을 들을 수 있겠군요!
사진을 보니
어린 시절 알밤을 줍던 것과
광주 관사 마당에서 밥 줍던 추억이
떠오릅니다!
스님!
몸조리 잘 하시고 쾌차를 기도드립니다!
고맙습니다. 이갑수 거사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