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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조사 원통보전
임천 대조사(大鳥寺)와 미륵석불
백제시대 대표적인 산성으로 서기 501년에 쌓은 임천 성흥산성 아래에 황금새의 전설을 간직한 대조사와 미륵석불이 있는데 백제성왕 5년부터 5년간에 걸쳐 창건했다는 대조사는 신비스러운 전설이 내려오고 있다.
백제시대 성흥산 중턱의 커다란 바위아래에 한 노승이 조금만 암자를 짓고 살고있었다. 어느 따뜻한 봄날 노승이 양지바른 곳에서 경건한 마음과 자세로 참선삼매 도중에 그만 잠이 들었는데 꿈속에서 한 마리의 커다란 새가 서쪽에서 날아와 신기하게도 황금빛을 발산하면서 현재의 대조사가 있는 곳에 앉아 큰바위를 향해 계속 날개를 저었다. 그러자 햇빛에 반사된 한줄기 광명이 바위에 집중되더니 그곳에서 관세음보살이 나타났다.
이후에도 노승은 여러날 동안 같은 시각에 같은 꿈을 꾸게 되어 이를 가림 성주에게 알렸고 성주는 곧바로 성왕에게 보고하였다.
성왕은 사비로 천도할 시기가 왔음을 알고 이곳에 대사찰을 짓도록 하였는데 10년이 걸릴 대규모 사업이었으나 사공을 주야로 투입하여 공사를 서둘렀다. 그때마다 신기하게도 공사현장에 새가 날아와 울어 주위를 밝혔고 새소리에 사공들은 피곤을 잊고 공사에 매진하여 5년만에 대사찰을 완공할 수 있었다고 한다.
절 이름을 황금빛 큰새가 나타났다 하여 대조사(大鳥寺)라 지었고 관세음보살이 나타난 큰바위에 석불을 조성하였다고 전해온다.(출처:부여군청)
부여 대조사 목조보살좌상(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205호.충청남도 부여군 성흥로197번길 112 (임천면))
원통보전에 봉안되어 있는 보살상은 얼굴이 작고 무릎이 넓어 신체의 비례가 안정감과 균형감이 있으며 상호는 가늘며 반개한 눈, 반듯한 코, 정갈하고 가는 입매, 살짝 올라간 미소를 짓고 있다. 화염문이나 구름문양으로 장식한 화려한 보관을 쓰고 있으며 보계는 가늘고 낮게 뒤로 말려있다. 법의는 배 밑에서 갈라져 들어가는 옷자락으로 장식성이 뛰어나다. 수인은 중품하생인을 결하고 있으며 17세기에 유행하였던 보살상의 특징을 잘 나타내고 있다 (출처:문화재청)
부여 대조사 명부전
대조사석탑(大鳥寺石塔.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90호. 충남 부여군 임천면 구교리 761번지)
대조사 원통보전 앞에 서 있는 탑으로, 일부만 남아있던 것을 1975년에 다른 일부를 찾아 다시 세운 것이다.
탑은 전체의 무게를 지탱해 주는 기단(基壇)을 2층으로 마련하고, 그 위로 3층의 탑신(塔身)을 올려놓은 모습인데, 탑신의 2·3층 몸돌과 꼭대기의 머리장식은 새로 만들어 놓은 것이다. 기단은 각 층마다 면의 모서리와 가운데에 기둥 모양을 본 뜬 조각을 두었다. 탑신의 지붕돌은 밑면에 받침을 두었는데, 1·2층은 3단, 3층은 2단으로 새겨 불규칙한 모습이다. 지붕돌의 처마는 가운데에서 수평을 이루다 네 귀퉁이에 이르러 가볍게 위로 들려있다.
위로 올라갈수록 줄어드는 비율이 비교적 낮아 안정감을 주고 있는 탑으로, 고려시대에 세운 것으로 추측된다(출처:문화재청)
부여 대조사 석조미륵보살입상(扶餘 大鳥寺 石造彌勒菩薩立像.보물 제217호.충남 부여군 임천면 성흥로197번길 112 (구교리))
고려시대에 유행한 거대한 석조미륵보살의 하나로 논산에 있는 논산 관촉사 석조미륵보살입상(보물 제218호)과 쌍벽을 이루는 작품이다. 미래세계에 나타나 중생을 구제한다는 미륵보살을 형상화한 것으로 높이가 10m나 되는 거구이다.
머리 위에는 이중의 보개(寶蓋)를 얹은 네모난 관(冠)을 쓰고 있으며 보개의 네 모서리에는 작은 풍경이 달려있다. 관 밑으로는 머리카락이 짧게 내려져 있는데 이와 같은 머리모양은 관촉사 석조미륵보살도 마찬가지이다. 얼굴은 4각형으로 넓적하며, 양쪽 귀와 눈은 크나 코와 입이 작아서 다소 비현실적인 느낌을 준다. 양 어깨를 감싼 옷은 두껍고 무거워 보이는데 매우 투박한 모습이다. 팔의 윤곽은 몸통에 붙여 옷자락으로 겨우 표현되었고, 손도 간신히 나타냈는데 오른손은 가슴에 대고 왼손은 배에 대어 연꽃가지를 잡고 있다. 보살상 앞에는 제사 음식을 차려 놓기 위하여 판판한 돌을 마련해 놓았다.
전반적으로 관촉사 석조미륵보살과 함께 동일한 지방양식을 보여주는 보살상으로 높이 평가되고 있다.(출처:문화재청)
용화보전에서 본 부여 대조사 석조미륵보살입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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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청(청장 나선화)은 지난 2014년 12월 7일 오후 충청남도 부여 지역의 폭설(적설량 120mm)로 인해 보물 제217호 ‘부여 대조사 석조미륵보살입상(扶餘 大鳥寺 石造彌勒菩薩立像)’ 주변의 소나무(부여군 보호수 제163호) 가지가 부러지면서 보살입상 위의 보관(寶冠) 일부가 파손
폭설 피해 부여 대조사 석조미륵보살입상 긴급 조치 - 관계전문가 현지 조사 후 보수방안 마련 예정 - |
문화재청(청장 나선화)은 지난 2014년 12월 7일 오후 충청남도 부여 지역의 폭설(적설량 120mm)로 인해 보물 제217호 ‘부여 대조사 석조미륵보살입상(扶餘 大鳥寺 石造彌勒菩薩立像)’ 주변의 소나무(부여군 보호수 제163호) 가지가 부러지면서 보살입상 위의 보관(寶冠) 일부가 파손된 것을 확인하였다.
※ 보관(寶冠): 불상의 머리 위에 장식된 관을 말하며, 천관(天冠)이라고도 함
문화재청과 국립문화재연구소는 긴급히 현장점검을 시행하고, 파손된 부재에 대해 안전조치를 취하였으며, 현지 조사 결과에 따라 적정한 보수․보강 방안을 마련할 예정이다.
한편, 이번에 폭설로 인해 가지가 부러진 소나무(정자목)는 지난 1979년 8월 7일부터 부여군이 보호수로 지정․관리하고 있다.
<글.사진 출처 :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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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귀한 문화재 잘 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최상순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