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치는 소년
김종삼
내용 없는 아름다움처럼
가난한 아이에게 온
서양 나라에서 온
아름다운 크리스마스카드처럼
어린 羊들의 등성이에 반짝이는
진눈깨비처럼
북은 타악기이며, 북을 친다는 것은 이 세상에서 가장 사악한 악마를 몰아내거나 마음을 정화시키고 희망을 노래한다는 것이 된다. 희망은 미래의 목표가 되고, 이 미래의 목표가 있는 한, 우리 인간들은 그 어떠한 고통도 참고 살아갈 수가 있다. 김종삼 시인의 [북치는 소년]은 미래의 꿈나무이며, 그 소년은 그의 희망이라는 열매를 수확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러나 [북치는 소년]은 “가난한 아이에게 온/ 서양 나라에서 온/ 아름다운 크리스마스카드”의 그림에 지나지 않는다. 절대빈곤과 기아선상에서 헤매고 있는 한국의 현실에서 그 그림은 “내용 없는 아름다움처럼” 공허한 환상 속의 그림에 지나지 않는다.
물이 있어도 마실 수가 없고, 떡이 있어도 먹을 수가 없다. 가난은 인간을 질식시키고, 가난은 예술을 질식시킨다. 절대빈곤, 즉, 이 세상에서 먹고 살 방법이 없다는 것처럼 무섭고 끔찍한 재앙은 없다.
김종삼 시인은 서양의 선교사들이 보내온 ‘크리스마스 카드’를 보면서, 하루바삐 이 가난을 극복하지 않고는 그 어떤 예술도 소용이 없다는 것을 역설하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북치는 소년]은 탐미주의, 혹은 예술지상주의자인 김종삼 시인의 걸작품이머, ‘가난 극복’이라는 희망을 이처럼 아름답고 환하게 역설하고 있었던 것이다.
‘내용 없는 아름다움’을 아름다운 삶 자체로 승화시키고, 이 [북치는 소년]은 영원한 생명력을 얻게 되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