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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마경훈목사의 설교 카페 원문보기 글쓴이: 마경훈목사
부활하신 주님과 두 제자의 만남/ 누가복음 14:13-35
(설교자: 마경훈목사, 비전교회)
하바드 의대의 정신과 교수로 있는 로버트 콜리스라는 분의 연구결과입니다. 그는 사회에서 불리하게 태어난 사람들이 자기의 처지를 훌륭하게 극복하고 성공한 사람들에 대해 관심을 가졌습니다. 경제적으로나 환경적으로 열등한 상태에 있었지만 좋은 조건과 환경에서 태어난 사람들보다 더 성공한 비결에 대한 연구입니다. 콜리스 교수는 이들이 다른 사람들보다 내적인 힘이 강하다고 합니다. 그는 인터뷰와 조사를 통해 그들의 내적인 강한 힘의 원천이 예수님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만남으로 내적으로 강한 사람이 되었고, 그 결과 사회적으로 분리한 환경을 극복했습니다. 그래서 사람은 주님을 만나야 합니다. 그런데 주님과의 만남은 그 보다도 훨씬 큰 축복을 줍니다. 그보다 훨씬 중요한 영생의 축복과 천국의 축복을 줍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만남은 예수 그리스도와의 만남입니다.
본문은 주님의 죽음을 목격했으나 부활을 믿지 못한 두 제자가 엠마오로 가다가 주님의 만난 이야기입니다. 이 중에 한 사람은 글로바라는 사람이고 또 한 사람은 이름을 알 수 없습니다. 아마 이들은 예수님의 70명의 제자 중에 속한 사람들이었을 것입니다.
주님께서 부활하신 날 그들은 예루살렘에서 이십오 리 되는 엠마오라 하는 마을로 가면서 주님의 죽음과 부활을 이야기하였습니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가까이 가셔서 그들과 동행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눈이 가리어져서 주님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지금 하는 이야기가 무슨 이야기냐?” 글로바가 말했습니다. “당신이 예루살렘에 체류하면서도 요즘 거기서 된 일을 혼자만 알지 못합니까”, “무슨 일이냐?”, “나사렛 예수의 일입니다. 그는 하나님과 모든 백성 앞에서 말과 일에 능하신 선지자였습니다. 그런데 대제사장들과 관리들이 사형 판결에 넘겨주어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우리는 이 사람이 이스라엘을 속량할 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오늘이 그분이 십자가에서 죽으신지 사흘째인데, 우리 중에 어떤 여자들이 새벽에 무덤에 갔다가 그분의 시체는 보지 못하고 와서 그가 살아나셨다 하는 천사들을 보았다고 했습니다. 또 우리와 함께 한 자 중에 두어 사람이 무덤에 가서 봤는데 죽은 예수님을 보지 못했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미련하고 선지자들이 말한 모든 것을 마음에 더디 믿는 사람들아.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냐” 그리고 예수님은 모세와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 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해주셨습니다.
그들이 가는 마을에 가까이 이르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길을 더 가시려 하는 것 같이 하셨습니다. 그들이 예수님께 강권하며 말했습니다. “우리와 함께 유하시죠. 때가 저물어가고 날이 이미 기울었습니다.” 이에 주님이 그들과 함께 유하러 들어가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들과 함께 음식 잡수실 때에 떡을 가지고 축사하시고 떡을 떼어 그들에게 주셨습니다. 그때 그들의 눈이 밝아져 주님을 알아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셨습니다.
그들이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라고 말하고는 즉시 일어나 예루살렘에 돌아가서 보니 열한 제자와 다른 제자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모인 사람들은 두 제자에게 “주께서 과연 살아나셨다. 주님이 시몬에게 보이셨다.”라고 말했습니다. 두 사람도 길에서 된 일과 예수께서 떡을 떼심으로 자기들에게 알려지신 것을 말했습니다.
오늘 설교는 본문의 내용으로 “부활하신 주님과 두 제자의 만남”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1. 주님이 함께 하심을 알아야 합니다.
15-16절을 보면 두 제자는 주님이 자기들 가까이 오셔서 자기들과 동행하셨으나 눈이 가리어져서 주님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31절에 보니 그들의 눈이 열리면서 자기들과 동행하셨고, 성경을 풀어주셨고, 떡을 가지고 축사하신 분이 주님이신 줄 알았습니다.
영적인 눈이 열린 사람은 주님이 살아계시고 주님이 함께 하시는 것을 압니다. 반면에 영적인 눈이 닫힌 사람은 주님이 살아계신 것도 모르고 주님이 함께 하셔도 함께 계시는 것을 모릅니다.
유리 가가린이라는 소련의 전설적인 인물이 있습니다. 그는 1961년 4월, 27살에 우주선을 타고 인간 최초로 1시간48분 동안 지구를 돌았습니다. 그는 평범한 시골 목수 아들로 태어나 제철공이 되려다 비행학교에 입교, 전투기 조종사가 된 후 3,000대1의 경쟁을 뚫고 우주비행사가 되었습니다. 유리 가가린은 우주비행을 한 후 인터뷰에서 “내가 우주선을 타고 지구 밖에서 우주를 보았는데 하나님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부정하였고 무시했습니다. 결국 그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자꾸 올라가다가 젊은 나이에 전투기 추락사고로 34살 나이로 인생을 마쳤습니다. 반면에 미국의 우주비행사 중에 글렘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아주 믿음이 좋은 신앙인이었습니다. 그는 우주 비행을 한 후에 “내가 우주에 나가 봤더니, 하나님의 숨결이 우주에 가득하더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어디든지 계시는 무소부재하신 하나님을 인정하고 찬양하였습니다. 그리고 “기회가 주어진다면 다시 우주 비행하고 싶다”고 말했는데, 그는 77세의 늙은 나이에 다시 최고령 우주비행사가 되었습니다. 두 사람 다 우주를 여행했는데 한 사람은 주님을 보지 못했고, 한 사람은 천지에 충만한 주님의 숨결을 느꼈습니다.
주님과 동행하는 신앙생활의 비결은 “주님이 지금 여기에 계시다.”입니다. 이 믿음이 굉장히 중요한 믿음입니다. “주님이 지금 여기에 계시다.” 이 믿음이 다윗의 인생 성공의 비결이었습니다. 시 16:8-9입니다. “내가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심이여 그가 나의 오른쪽에 계시므로 내가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 9 이러므로 나의 마음이 기쁘고 나의 영도 즐거워하며 내 육체도 안전히 살리니” 다윗은 주님이 항상 자신과 함께 하심을 믿었습니다. 그 결과 다윗은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마음이 기뻤고 영도 즐거웠고 육체도 안전했습니다. “주님이 지금 여기에 계시다.” 이 믿음이 다윗을 성공적인 신앙의 사람으로 만들었습니다.
본문의 사건에서는 주님이 그들에게 갑자기 나타나셨다가 갑자기 사라지신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주님은 언제나 어디서나 함께 하시는 분입니다. 왜냐하면 주님은 무소부재하시기 때문입니다. 지금 주님은 우리하고는 성령으로 함께 하십니다. 요 14:16입니다.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보혜사 성령님은 삼위일체 하나님 중 삼위이십니다. 예수님은 아버지 하나님께 구하셔서 다른 보혜사이신 성령 하나님을 우리 가운데 보내주셨고 성령 하나님은 영원토록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미국에 있는 알렉산더 고등학교에 빌 게이더라는 영어 선생님이 있었습니다. 1959년에 그 학교에 프랑스어 선생님이 학교를 잠시 못 나오게 됐습니다. 그래서 대학교 졸업반이며 독실한 크리스천이었던 글로리아 시칼이라는 분이 임시 교사로 왔습니다. 이 두 사람이 사랑을 하게 되었고 3년 후인 1962년에 결혼을 하였습니다.
남편 빌 게이더는 하나님이 찬양을 작곡하는 은사를 주셔서 많은 찬양을 작곡했습니다. 부인이 된 글로리아 게이더는 글을 잘 써서 작사를 했습니다. 둘은 많은 찬양을 지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많은 사람에게 감동을 끼쳤습니다.
이분들이 처음 작사 작곡해서 발표한 곡이 1963년에 지은 “He touched me”라고 하는 곡입니다. 우리나라 복음성가로는 “주 붙드네”라고 번역되었습니다. 이곡을 엘비스 프레슬 리가 불러서 1972년에 그래미상을 탔고 전 미국과 세계를 뒤흔들어 놓았습니다. 그 후에도 많은 곡들을 지었습니다.
어느 날 이 가정에 위기가 찾아왔습니다. 남편이 바이러스성 전염병인 단핵구증에 걸렸습니다. 남편은 완전히 삶의 의욕을 잃어버리고 주저앉아 버렸습니다. 가정이 파탄될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부인이 남편 돌보랴 아이들 돌보랴 너무나 피곤한 인생을 살아야 했습니다. 재정적인 어려움도 다가왔습니다. 그런 중에 가까웠던 사람들이 등을 돌리고 그들을 비난했습니다. “저 사람들 돈벌이하려고 복음성가를 만든 것이다. 찬양이 목적이 아니라 돈벌이가 목적이다.” 이렇게 되니까 그 스트레스와 충격은 말로 다 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남편이 깊은 우울증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남편이 깊은 우울증에 빠졌을 때 또 예기치 않게 부인이 세 번째 아이를 임신을 했습니다. 하루하루 너무나 힘들고 어려운 삶이었습니다. 산달이 다가오는데 아내는 고민이 깊었습니다. 아기가 태어나면 재정적인 어려움, 주변 사람들의 비난, 아픈 아버지, 온갖 문제와 절망의 구름이 뒤덮고 있는데 아이가 어떻게 살 것인가.
그들은 절망의 상황에서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했습니다. “주님! 저희 가정을 살려 주시옵소서.” 그들이 그 동안 몰랐던 것은 그 절망의 상황 속에 주님이 함께 계신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부르짖자 주님이 그를 붙들어 주셨습니다. 그들은 영적으로 눈을 떴습니다. 그래서 아이가 태어나기 직전에 이런 고백을 했습니다. “그가 살아계시기에, 나는 내일을 맞이할 수 있다. 그가 살아계시기 때문에 나는 내일을 담대하게 맞이할 수 있다. 그가 살아계시기 때문에, 모든 두려움은 사라졌다. 할렐루야.”
그때 그런 믿음으로 지어진 불멸의 복음성가가 1971년에 지어진 “살아계신 주”입니다. “살아 계신 주 나의 참된 소망/ 걱정 근심 전혀 없네/ 사랑의 주 내 갈 길 인도하니/ 내 모든 삶의 기쁨 늘 충만하네”
빌 게이더 선생님은 이 찬양을 통해 무력감에서 벗어나 4번이나 그레미 상을 받게 되었고, 20번이나 도버 상을 받게 되었고, 1984년에는 복음성가 명예의 전당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이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주님이 지금 여기에 계시다.” 우리가 어떤 상황 속에 처해 있어도, “주님이 지금 여기에 계시다.”는 믿음을 놓지 맙시다. 어떤 절망적이 상황에서이나 또 어떤 희망적인 상황에서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주님이 지금 여기에 계시다.”
2. 복음을 믿어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자신이 부활하실 것을 미리 말씀하셨고, 말씀하신대로 죽으셨다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그리고 주님을 따르던 몇 명의 여자들이 주님의 무덤에 가서 주님의 시체는 보지 못하고 천사들이 주님이 부활하셨다고 말한 것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주님의 부활을 믿지 못했습니다.
성경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증언하는 책입니다. 27절에 보면 주님께서 두 제자에게 모든 성경에 쓴 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셨습니다. 25-26절에 보면 주님께서 성경에서 말하는 자신에 관한 것 중에서 아주 중요한 십자가와 부활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은 십자가와 부활에 관하여 들어서 지식적으로는 알고 있었지만 마음으로 믿지는 못했던 것입니다.
자유주의 신학의 영향을 받은 사람들 중에는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믿지 않으면서 목사가 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윌리엄 쿠퍼라는 목사도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어느 고난주간을 앞둔 토요일 자기 교회 주보를 보다가 구원받았습니다. 그가 주일 설교 제목으로 잡은 것은 “누가 예수를 죽였는가?”였습니다. 주보의 설교 제목 아래 ‘윌리엄 쿠퍼 목사’라고 써져있었습니다. 그는 주보를 한참 바라보다가 갑자기 자기 죄가 예수님을 돌아가시게 하셨다는 것이 깨달아졌습니다. 그는 그 자리에서 통곡하며 엎드려 예수님을 자기의 구주와 주님으로 고백하게 되었습니다.
기독교에서 중요한 3대 사건이 있습니다. 주님의 탄생과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입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이 세 사건은 하나의 세트입니다. 이 세 사건을 세트로 믿어야 진짜 믿는 것입니다. 이 세 사건이 주는 메시지가 있습니다. 주님의 탄생은 ‘하나님이 인간이 되셨다’는 메시지입니다. 십자가는 ‘하나님이 인간의 죄를 대신 지시고 죽으셨다’는 메시지입니다. 부활은 ‘죽으신 하나님이 살아나셨다’는 메시지입니다.
세상에는 많은 종교와 창시자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인간이 되었다는 진리는 기독교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위하여 죽으셨다는 진리도 기독교밖에 없습니다. 또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분은 오직 예수님 한 분 밖에 없습니다.
이 세 가지 메시지가 자신에게 적용 되어야 구원을 받습니다. 이 세 가지 사건을 자기 개인에게 적용시키는 믿음이 있어야 진짜 기독교인입니다. 하나님이신 예수님은 나를 구원하기 위하여 이 세상에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셨습니다. 하나님이신 예수님은 나의 모든 죄를 대신 지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주님이 십자가에서 흘리신 그 피가 나를 속량하는 피입니다. 나는 그 피로 구속 곧 죄사함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이신 예수님은 죽으신지 사흘 만에 다시 사셨습니다. 부활의 첫 열매이신 주님을 믿는 나는 주님과 연합하여 새생명 가운데서 살게 되었습니다. 사람은 이렇게 복음을 믿어야 구원을 받습니다.
3. 잘못된 길에서 돌아서야 합니다.
멕시코 지역에 ‘아나브랩스(Anableps)’라는 물고기와 관련된 글을 읽었습니다. 이런 내용입니다. 이 물고기는 눈이 네 개입니다. 두 개는 물속에 있어 적의 공격을 감시하고, 두 개는 물 밖에 있어 곤충을 잡아먹습니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물 밖에 있는 눈은 눈물샘이 없어 오랜 시간 물 밖에 있으면 눈이 건조해져서 볼 수 없습니다. 눈에 습기가 없으면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 물고기는 규칙적으로 물속에 잠겨서 눈을 적십니다. 그래야 시력을 회복하여 살아갈 수 있습니다.
사람의 눈도 때때로 회개의 눈물로 적셔져야 합니다. 눈을 부릅뜨고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이 아닙니다. 눈이 충혈 되도록 아둥대지만 그게 잘사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의 눈에도 습기가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앞이 보이고 갈 길이 보입니다. 그래야 살 길이 보입니다. 회개의 눈물을 흘려야 합니다. 혹시 앞이 보이지 않는다, 살길이 막막하다는 생각이 든다면 먼저 하나님 앞에서 회개의 눈물을 흘리십시오. 그러면 살길이 보일 것입니다.
본문에 나오는 두 제자는 눈이 열려서 주님을 알아본 후에 자신들이 잘못된 길을 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들은 즉시 회개했습니다. 바로 일어나 예루살렘으로 돌아갔습니다. 마음이 뜨거워지는 체험은 필요합니다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회개입니다. 마음이 뜨거워졌는데 그 자리에 머물러 있다면 그것은 지나가는 체험 중에 하나일 뿐입니다.
진정한 회개는 두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①자신의 죄를 깨닫고 자백하는 것입니다.
주님이 빛을 비춰주시면 작은 잘못도 크게 보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죄를 자백하게 됩니다. 폴 워셔라는 사역자가 있습니다. 그가 오하이오에서 사역할 때 있었던 일입니다. 그가 설교를 막 끝냈을 때 아홉 살 정도 되어 보이는 소년이 일어서더니 울면서 온 몸을 떨면서 걸어 나오더랍니다. 폴 워셔가 강단에서 내려와 아이를 붙잡고 “얘야! 무슨 일이니?”라고 물었습니다. 그 아이가 물었습니다. “저처럼 사악한 죄인도 구원하실까요?”, 폴 워셔가 그 아이에게 “무슨 잘못을 했니?”라고 물었습니다. “엄마 말을 안 들었어요.”라고 대답했습니다. 여러분! 그것이 그렇게 울고 떨면서 나와 고백할 일입니까? 성령께서 역사하시면 작은 죄도 크게 보입니다. 그래서 회개하게 되는 것입니다. 폴 워셔는 성령님께서 그 아이에게 일하고 계심을 알았다고 했습니다.
②잘못된 길에서 돌이키는 것입니다. 진짜 회개는 잘못을 깨닫고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잘못된 길에서 돌아서는 것입니다. 주님의 두 제자는 주님을 만난 후에 예루살렘으로 돌아갔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하나님 보시기에 잘못된 길에서 돌아셨다는 의미입니다. 회개했다는 의미입니다.
최 세웅 목사님이 들려 준 이야기입니다. 1981년 3월 6일이었습니다. 최 목사님이 아는 병원에 들렀을 때 직접 본 이야기입니다. 50대 어느 남자가 신문지에 무엇인가 싸가지고 들어왔습니다. 두 뭉치였습니다. 그리고는 원장님 앞에 놓았습니다. 그리고 머리를 숙이고 이런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2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이야기입니다. 4살 된 아들이 갑자기 목구멍에 이상이 생겼습니다. 병원에 갔더니 의사 선생님이 혹이 너무나 커서 수술이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집에 데리고 가서 편안히 뉘워 두는 것이 좋답니다. 다른 병원에 갔더니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지금 이 병원으로 와서 의사선생님에게 아들을 보여 주었습니다. 마찬가지 결과였습니다. 아버지가 말했습니다. “죽어도 여기서 죽이겠습니다. 죽어도 좋으니 수술 한번만 해주세요.” 의사 선생님은 각서를 받고 수술을 했습니다. 그런데 20일 만에 아들이 회복이 되었습니다.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그러나 병원비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밤중에 아들을 업고 몰래 도망쳤습니다. 아버지는 밥은 안 먹어도 술은 마셔야 하는 알코올중독자였습니다. 그 후 계속 술을 마시며 방탕하였습니다. 그 동안 아들은 잘 자라 군대에 갔습니다. 교회에 나가 믿음 좋은 아들이 되었습니다. 신학교에 가서 목사가 되겠다고 하였습니다. 신문지에 싼 것을 그 때 펼쳐 보이는 데 아들이 군대생활을 잘 하여 지휘관으로부터 받은 상패였습니다.
어느 날 아들의 전도로 아버지도 예수님을 영접했습니다. 그리고 모범적인 집사가 되었습니다. 어느 날 새벽기도 때였습니다. 날이 환하게 밝는 것도 모르고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벼락치듯이 소리를 지르셨습니다. “회개하라. 20년 전에 죄를 기억하느냐?” 그는 하나님 앞에 엎드렸습니다. “하나님! 잘못 했습니다. 나는 도둑놈이었습니다. 사기꾼이었습니다. 은혜를 모르는 파렴치한이었습니다. 용서하여 주옵소서! 저는 하나님을 속였습니다. 의사선생님을 속였습니다. 내 양심을 속였습니다.” 그는 대성통곡했습니다. 그리고 돈을 마련하여 신문지에 쌌습니다. 다른 신문지 뭉치가 돈이었습니다. 그는 돈 뭉치를 원장님에게 내놓으며 닭똥 같은 눈물을 펑펑 흘리면서 말했습니다. “원장님! 용서하여 주십시오. 어떤 벌도 달게 받겠습니다.” 원장님도 눈시울이 뜨거워지면서 말했습니다. “내가 의사 생활 수십 년에 당신 같은 사람 처음 봤습니다. 당신 아들 제대하면 내게 데리고 오십시오. 내가 신학교 입학부터 졸업까지 책임지겠습니다. 그리고 좋은 목사가 되도록 기도하겠습니다.” 이런 게 진짜 회개입니다. 입만 나불거리고 행동을 하지 않는다면 그건 회개가 아닙니다.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는 잘못된 길을 가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주님을 만난 후에 자신들이 잘못된 길을 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는 돌이켜서 예루살렘으로 돌아갔습니다. 우리도 그렇게 해야 합니다. 자신의 길을 살펴보십시오. 그리고 잘못된 길을 발견하거든 하나님께 죄를 자백하시고 돌아서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참된 회개입니다.
4. 부활의 주님을 전파해야 합니다.
주님을 만난 두 제자가 예루살렘으로 가보니 열한 사도와 다른 제자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그들은 두 제자에게 주님께서 과연 살아나셨으며 시몬 베드로에게 보이셨다고 증언했습니다. 35절에 보면 두 제자도 자기들이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것을 증언했습니다.
초대 교부 중에 크리소스톰이란 분이 로마 황제에게 붙잡혀서 고문을 당했습니다. 황제는 명령을 하였습니다. “저 녀석을 독방에 쳐 넣어라. 아무도 만나지 못하게 하고,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하게 하라.” 그러자 옆에 있던 신하가 말했습니다. “그것은 안 됩니다. 저 사람은 그리스도인입니다.” 황제가 이야기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이 별거냐? 속히 독방에 넣어라!” 신하가 설명을 했습니다. “그런 게 아니라 그리스도인들은 독방을 좋아합니다. 독방에 넣으면 하루 종일 찬송하고 기도하고 중얼거립니다. 그리고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예수의 영이라는 것이 있어서 함께 있답니다. 독방에 넣으면 저 사람 좋은 일만 시키는 거랍니다.”, 황제가 말했습니다. “그러면 이 자를 극악무도한 죄인들 틈에 넣어라”, “그것도 안 됩니다. 이들은 전도할 기회를 얻었다고 좋아합니다. 이들은 전도를 잘 하는데, 며칠만 지나면 모두 예수쟁이를 만들어 버릴 겁니다.” 황제가 말했습니다. “그러면 얼른 이 자를 데려다가 목을 베어라.”, “아니 되옵니다. 저들이 제일 좋아하는 것이 순교입니다. 순교하는 것이 저들에게는 가장 큰 상급이랍니다.”, “그러면 어쩌란 말이냐?”
이 이야기는 우리에게 세 가지 메시지를 줍니다. ①그리스도인은 골방을 좋아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혼자 있을 때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과 대화해야 합니다. ②그리스도인은 복음 증거에 힘써야 합니다. 사람들을 만나면 상대의 영혼을 볼 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어떻게 해서든지 그를 주님에게로 인도해야 합니다. ③그리스도인은 순교도 각오해야 합니다. 주님을 위하여 목숨도 내놓을 수 있는 신앙인이 되어야 합니다.
위의 세 가지 메시지 중에 두 번째 복음 증거는 모든 그리스도인의 사명입니다. 우리는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해야 하는 이유가 많습니다. 그 중에 가장 중요한 이유는 하나님의 안타까워하는 마음 때문입니다.
지구상에는 254개의 나라가 있습니다. 그 중에 기독교인이 한 명도 없는 나라도 있습니다. 세계 전체 인구 약 79억 명 중에 기독교인은 32.3%입니다. 여기서 천주교과 유사 기독교를 빼면 세계인구의 약 11%가 개신교인입니다. 개신교인 중에 구원 받을 사람을 크게 잡아서 50%로 잡아도, 50%면 엄청나게 후하게 잡은 것입니다. 그러면 약 4억 명 정도 밖에 구원을 받지 못한다는 말입니다. 100명이면 95명은 지옥으로 가고 약 5명만이 천국으로 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만일 여러분이 목장을 경영하는데 100마리의 젖소 중에서 5마리만 살고 95마리가 죽었다면 어쩌시겠습니까? 얼마나 심각한 노릇이겠습니까? 그런데 사람의 목숨은 젖소와는 비교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선교의 심각성을 못 느끼고 있지만 천지의 주인이신 하나님에게는 굉장히 심각한 현실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복음을 전하는 그리스도인을 찾으십니다.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에게 전도의 영으로 충만하게 부어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오늘 설교는 “부활하신 주님과 두 제자의 만남”이라는 제목으로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가 주님을 만난 사건을 통해서 주시는 메시지를 나눴습니다.
1. 주님이 함께 하심을 알아야 합니다. 두 제자는 주님과 동행하면서도 주님이 함께 하시는 것을 몰랐습니다. 우리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성령님께서 영원토록 함께 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늘 주님을 의식하며 살아야 합니다.
2. 복음을 믿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인간이 되신 성육신을 믿습니다. 우리는 주님이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로 속량 곧 죄사함을 주셨음을 믿습니다. 우리는 부활의 첫 열매이신 주님의 부활을 믿습니다.
3. 잘못된 길에서 돌아서야 합니다. 이 시대는 회개가 사라졌습니다. 회개가 회복되어야 합니다. 진정한 회개는 두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①자신의 죄를 깨닫고 자백하는 것입니다. ②잘못된 길에서 돌이키는 것입니다.
4. 부활의 주님을 전파해야 합니다. 복음을 전하는 것이 별 것 아닌 것 같아도 하나님은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영혼을 구원하시는 분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많은 영혼이 지옥 가는 것 때문에 마음 아파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복음을 전파하기를 바랍니다.
성경을 가슴에 대고 믿음의 고백을 하겠습니다. “나는 언제나 성령님이 나와 함께 계심을 믿습니다. 나는 하나님이 사람의 몸을 입고 오신 성육신을 믿습니다. 나는 나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을 믿습니다. 나는 나를 새생명 가운데서 살게 하시는 예수님의 부활을 믿습니다. 나는 내가 죄인인 것을 인정하고 나의 죄를 자백하겠습니다. 나는 죄가 깨달아지면 잘못된 길에서 즉시 돌이키겠습니다. 나는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복음 전파에 힘쓰겠습니다. 나는 잃은 영혼 때문에 마음 아파하시는 하나님 때문에 전도에 힘쓰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