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관처럼 들여다 보는 절집 달력 8월 *일 자에 삐선이 돌아 오는 날이라고 쓴 커다란 글씨가 오늘 따라 유난히
내 시선을 끈다.
졸업을 앞 두고 생명을 건 여행이라며 비장한 각오로 인도로 베낭여행을 가겠다고 졸르기에 선뜻 승낙을 했었다.
쪈도 없고 딸년이어서 불안한 마음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여행을 통한 많은 배움의 은덕과 본인의 전공인
불교미술과의 직접적인 연관도 있고 하여 겸사하여 인천공항으로 향하는 리무진 버스에 별 감정도 없이(?) 딸 아이를
실어 보내곤 늘상 수호 신중님들의 가호를 빌며 조신한 날이 벌써 열사흘이 다 되어 가는 가 보다.
객지로 떠나고 보니 애비 생각과 걱정이 처음으로 나는지 가끔씩 걸려 오는 전화통에서 집에 별 일이 없냐고
안부를 여러 차례 물어 본다. 좀체 안 하던 언동이어서 대견스럽기도 하다.
지난 번 통화에서는 인도 일부 지역에서 폭탄 테러가 있었다는 소식도 전해 들었는데 며칠 전에는 축제 때문에
회교 사원으로 많은 대중이 몰려 들어서 140명 넘는 분들이 사망했다는 비보도 듣고 보니 비록 내일이면 귀국하게
되는 아이이지만 걱정이 자꾸만 앞선다.
요즈음은 아이들 교육문제로 대부분의 가정이 몸살을 앓는다.
난 참으로 쉽고 간단한 방법으로 내 아이를 지금까지 이끌어 왔다.
내 딸은 어릴 적부터 밥상머리에서 밥투정을 하는 법이 없다.
여차직하면 우선 숟가락부터 뺏어 버린다.
따로 공부해라 뭐라고 해 본 적이 없다.
딸 아이만 눈에 띄면 꼭지가 돌게 곡차를 퍼 마셨어도 반드시 책을 든 모습을 보여 준다.
양치를 잘 하지 않거나 손발을 잘 씻지 않는 등 건강관리에 소홀한 면이 보이면 불러서 팔을 살짝 꼬집어 본다.
아푸냐고 하면 고개를 끄덕인다.
아빠는 눈꼽만치도 아푸지 않다고 하면 대충 말귀를 알아 듣는다.
고등학교 다닐 무렵에 만부득히 사교육비 중에서 가장 싸다고 하는 대학생 알바 선생님을 구해 달라고 하여
전화로 알바 선생님과 접촉을 하였는데 이 선생님께서 내신, 아니면 수능 위주의 수업 중 어느 것을 원하느냐고
물어서 난 내신이 몬지 수능이 뭔지를 잘 모른다고 했더니 모르긴 해도 아마도 미친 사람 취급하는 듯 하였다.
내 딸 아이는 방과 후에 따로 비싼 돈을 쳐 발르며 아까운 시간을 낭비해 본 적이 거의 없다.
가끔 대화를 하는 시간에사람들이 공부를 해라고 입버릇처럼 말하는 이유는 아빠 경험으로 보아선 딱 한가지 인데
공부를 잘 하면 남들 보다 빠르고 쉽게 많은 돈을 벌어서 품격 높은 언행을 하며 차원 높은 생활을 할 확률이
가장 높기 때문이라고 만 답변을 한다.
인문계 고등을 진학한 아이가 어느 날 차 안에서 느닷없이 미술 공부를 하고 싶다고 해서 내가 잠시 전차에 박힌
표정을 했었던 가 보다.
아빠! 내가 미술 공부 하는게 마음에 들지 않느냐고 재삼 재사 물어 봤을 때에서야 너가 전공을 선택할 적엔 첫째도
그렇고 둘째도 그렇고 좌우간 평생을 그 일에 종사하면서 재미를 느끼며 몰입할 수 있는 과목을 선택할 뿐이지 넘들이
말하는 괜찮아 보이는 과목을 선택하는 우를 범하지 말라는 답변만 했다.
우리 어릴 적에 예.체능을 전공하던 분들은 대부분 일반인들의 눈에는 싸이코로 보였기 때문에 내가 잠시 멈칫 했었던 건
사실이다.
내 아이가 장성하여 스스로의 인생을 걸어 갈 즈음엔 난 벌써 돌아 갈 준비에 여념이 없을 때인데 지금의 내 잣대로
내 다음 세대 아이들의 적확한 미래를 예측한다는 건 사리에 맞지 않다고 본다.
우리 부모님들이 딴따라니 머니 하면서 구렇게도 경멸했던 소위 연예인들만 해도 그렇다.
오늘 날 사회적으로 이만한 부와 명예를 그들처럼 쉽게 거머쥔 무리가 과연 얼마나 될꼬?
몇달 후에 패스트 푸드 가게에서 알바를 해서 번 돈으로 미술학원비를 납부하곤 그 영수증을 내게 쓰윽 드리 댄다.
가슴속엔 만감이 교차할 지언정 그저 무표정하게 고개만 끄덕였을 뿐이었다.
내 여동생 이뿐이는 나 보다 일찍 결혼을 했었는데 두 아이의 사교육비로 모르긴 해도 당시의 내 연봉 이상을 한달에
쳐 발랐던 것 같다.
로봇처럼 공부만하는 기계를 만들기만 해도 뭔가 부족한 점이 있었던지 어느 날 딸 아이를 그림 그리는 기획된 인조인간으로
만들더니 급기야는 대한민국 어느 명문 미대 합격증을 들고 헤헤 거리며 가족모임에 나타 났었다.
좌중의 모든 이들이 자본주의 국가에서의 쪈에 대한 엄청난 위세에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할 따름이었다.
수구꼴통인 이 못난 삐선이 애비만 그져 담담한 마음이었을 뿐이었는데 불과 몇년 후에 대성통곡을 하게 될 줄은 정말
꿈에도 몰랐다.
대학 실기 시험은 새볔 이른 시간에 입장을 하여야 한다.
그 전날 이미 차량 점검을 다 해두었지만 늦은 밤 마지막으로 타이어 펑크를 아무도 몰래 또 한번 더 체크를 하고 잠자리에
드는 둥 마는 둥 하곤 컴컴한 밤중에 차를 몰고 서울로 향했다.
미술 도구와 물통을 아이 손에 쥐어 주며 몇번 등을 두드려 주었다. 최선을 다하라는 말만 해 주었다.
모자 달린 싸구려 골덴 돕퍼를 입은 딸 아이가 겁 먹은 표정으로 나를 쳐다 보길래 차마 그 눈을 제대로 마주 보질 못했다.
기다란 다리에 성큼 올려다 붙은 엉덩이가 무척 보기 좋은 내 딸아이의 뒷모습이 시야에서 사라지기 바쁘게 교문 옆에 있는
골목길로 황급히 발길을 옮겼다.
이때 쯤엔 나도 이미 정신을 차린 지경이었다. 세간에서 말하는 예.체능이란 과목은 특출난 재주가 없는 한 내여동생 이뿐이
처럼 돈으로 쳐 발라야 그 승패가 난다는 걸 그제서야 나도 알았다는 말이다.
골목길 어느 집 담장을 한손으로 부여 잡기 바쁘게 정말 닭똥같은 눈물이 펑펑 쏟아져 내린다.
내 어머니 돌아 가셨을 적에도 이다지도 구성지게 슬피 울진 않았다.
그져 못난 애비를 만난 내 딸 아이가 안스럽고 애처로울 따름이었다.
미술학원 원장님으로 부터 최종 불합격 통보를 전화로 받고는 딸과 함께 아무 말없이 대낮에 동네 절로 올라 부처님께 꾸벅
절만 하곤 법당 입구로 나오니 맑았던 하늘에서 갑작스레 함박눈이 펑펑 내린다.
부처님! 전 내년에는 정말로 이런 꼬락서니로 부처님 찾아 뵙고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암요.
다음 해 분당 정자동에 있는 시립 도서관에서 독학을 하면서 어렵게 어렵게 싸구려 미술학원(?)에서실기공부를 했던 딸 아이의
지망하는 대학을 선택하기 전날 그저 망연한 마음으로 동네 절로 올라서 웅크리고 앉아, 밤새 제불보살님과 신중님들께
아무 말없이 행패에 가까운 땡깡을 부리다 보니 이미 새벽예불도 끝이 나 버렸다.
어떤 영감이 있었던지 집으로 돌아 와서 속 편하게 퍼질러 자고 있는 딸아이를 깨워서 "나" 군에서 만이라도 불교미술을
선택하라고 채근을 하니 선뜻 고개를 끄덕인다.
본인이 원했던 디자인 분야에도 중복합격을 했었던 지라 선택은 물론 본인에게 맡겼는데 천만 뜻밖에도 본인하곤 전혀
어울려 보이지 않는 불교미술을 선택하는게 아닌가?
부처님의 뜻에 역행을 하며 곤난의 파란만장을 몸으로 때우는 있는 우리 가정에도 이제서야 불은의 서광이 비치는듯 하여
너무도 감사한 생각을 하며 멀리 어머님이 계실 극락세계를 바라 보며 한 없이 울었다.
이제서는 눈물이 콧구멍과 목구녕을 가리지 않고 속으로 속으로 내려 쏟아 부어 온 가슴속이 눈물바다가 되어 버렸다.
내일 밝고 건강한 얼굴로 귀국할 딸 아이의 안부를 다시 한번 더 부처님과 수호 신중님 전에 간절한 마음으로 빌고 또 빌어 본다.
마음이야 이렇지만 내일 딸 아이를 오랜만에 만나게 되면 피차간에 주고 받는 인사는 눈에 선하게 보인다. 뻐언하다.
우리 어머님께서 늘상 하셨던 말이 생각난다.
자식들이란 본새 안 보면 보고 싶고 막상 보면 이가 갈린다는 것이다.
아빠! 그 동안 술 마니 마셨지?
시끄럽다 이 년아.
그라고 오는 도중에 밥은 먹었나?
탄천변 창공의 황조롱이 돌삐 합장드립니다.
첨언: 과거 5공화국 시절에 전통께서 사교육의 폐단을 없애겠다고 개인교습을 하면 가르치는 선생 뿐 아니라 학부모 마져
형사 입건을 하겠다는 발표를 했을 때만 해도 난 속으로 그랬다.
무지막지한(?) 군인 출신이어서 생각해 내는 수준 마져 역시 그렇다면서 많이도 비아냥 거렸다.
그 분 이후 여러 많은 정치인들이 입만 뻥끗했다 하면 사교육 바로 잡겠다고 떠들었지만 사교육은 코웃음을 치며
나날이 번창 일로에 있지 않은 가 말입니다.
그리고 그 정치인들 자제들의 이력을 자세히 보면 조선땅에서 토종 교육 받으면서 큰 아이가 과연 몇 명이나 될런지?
몹시 궁금합니다.
내 아이만은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잘 가르쳐서 다른 아이들 보다 앞서 나가겠다는 일념으로 가정 뿐 아니라 국가의
엄청난 자산마져 헛되이 쓰면서 등이 곱사등처럼 휘는 오늘날의 현실에서 난 늘 내가 그리도 경멸했던 5공화국의 그 무지
막지한 조치가 쉼 없이 생각됨은 어찌된 일인지 잘 모르겠다.
진정한 고수들의 수는 항상 간단하고 쉬운 법이다.
공직에 있는 분들 중에서 검은 돈을 먹지도 먹을 생각도 않는 분들을 청렴결백하다고 한다.
그런데 먹고 싶은 생각은 꿀뚝 같은데 감히 겁이 나서 먹지 못하는 부류들은 청렴무능하다고들 합니다.
내가 딸 아이의 사교육을 넘들 보다 쫴꿈 적게 시킨 것도 모르긴 해도 아마도 아마도 청렴무쪈(머니) 때문 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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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자님 글방
니 애비도 돌부처는 결코 아니다. 이 웬쑤야!
돌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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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08.06 0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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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돌삐님도 그 따님도 세상에 정말 행복한 분들 같습니다. 저도과외한번 안해봤지요 소실적엔 그런데 그 대학입시때도 안햇던 과외공부 요즘 부처님공부하면서 하고있답니다.....그러니 부처님공부가 대학입학셤보다 더 어려운듯 합니다...ㅎㅎㅎㅎㅎㅎ
거사님 오랜만에 뵙습니다. 거사님 글은 사실 다 이해 못하고 넘어가는 것이.... 짧은 일지스님 견해탓이랍니다. 그런데 오늘 글은 참 따뜻하네요. 불가의 공부는 인연없이는 할 수 없는 오묘한 법칙이 있는 듯 합니다. 저도 98년 동국대학교 국악과 범패전공 1기생으로 입학 하면서 벌써 11년이 지났네요. 참 많은 인연들과 함께 하면서 부처님 인연법을 느끼지 않을 수 없는 길이 아닌가 해요. 금지옥엽 따님 가시는 그 길에보님과 화엄성중님의 기호가피가 함께 하옵시길.......()()()...나무 마하반야바라밀.
오랫만에 돌삐님 글 읽고 감개가 무량합니다 그동안 하시지요 저도 수년전 아들들 외국으로 여행 보내면서 걱정 아닌 걱정을 했던 기억이 떠 오릅니다 ..이쁜 딸래미가 공부도 ...보통 사람이 못하는 불교 미술을 선택 하셨으니 ..잘 하시리라 믿습니다...나날이 좋은 날 되시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