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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적인 ‘우리’(창1:26)에 대한 해석학적 전통과 바울
1. 들어가는 말
창세기 1:26에는 인류 창조의 청사진이 된 하나님의 ‘형상’(צלמ)과 ‘모ַֽנֲעֶ֥שׂהָאָ֛דם(’등의 개념과 함께, 하나님에 대한 신적인 복수형 ‘우리)דמות(’양 가 세 번 등장한다. 성서 해석학 역사에서 독자들은 창세기)ְבַּצְלֵ֖מנוִּכְּדמוֵּ֑תנוּ의 저자가 말하는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해서 열 띤 토론을 벌였다. 그리고 이 본문에 등장하는 신적인 복수형의 정체가 누 구인지에 대해서도 심각하게 논쟁했다. 모세오경이 유대인들의 엄격한 유 일신 신앙의 근거를 형성하기에, 그 첫 번째 책 창세기에 등장하는 신적인 복수형은 유대인들에게 꼭 해결해야 하는 해석학적 난제였다. 그러나 현재 까지도 학자들은 이 신적인 복수형이 가리키는 대상에 대한 일치된 의견에 이르지 못한 채, 대략 6가지 견해들을 그 해결책으로 제시했다: (1) 다신론 적 신화의 흔적, (2) 피조세계, (3) 창조주의 장엄함의 표현(plural of majesty), (4) 자기소환(self-summons, 혹은 self-deliberation), (5) 천상의 법정(heavenly council/court), 그리고 (6) 하나님의 복수성(plurality), 혹은 이중성(duality).1)
이 견해들 중 처음 네 가지는 여러 가지 해석학적 약점들로 인하여 소수 의 견으로 간주되었고, 천상의 법정과 하나님의 복수성만이 설득력 있는 주요 의견으로 자리매김했다.2) 이 두 의견들은 고대와 현대의 창세기 독자들의 해석에서 빈번하게 발견되고 있다.
유일신 전통을 고수하는 많은 유대인 랍비들은 신적인 ‘우리’의 정체를 주로 천상의 법정 개념을 통해서 해석했다. 유대 전통과 기독교 전통을 각 각 그리스 철학의 빛 아래서 재해석한 필로(Philo)와 고대 영지주의자들도 천상에 속한 천사들, 혹은 권세들을 통해서 신적인 ‘우리’를 설명했다. 특별 히 영지주의자들은 하늘의 주요 권세들인 데미우지(Demiurge), 혹은 얄타 바옷(Yaltabaoth)을 하늘의 선한 아버지의 뜻에 반하여 인간을 창조한 악한 창조주로 제시했다. 물론 이들과 비슷한 시기를 살았던 교부들은 삼위일체 의 교리를 통하여 신적인 ‘우리’를 설명하면서, 영지주의자들을 주류 교회 밖으로 내몰았다. 그리고 교부들과 영지주의자들 모두가 자신들의 신학적 스승으로 간주했던 사도 바울은 그가 다메섹에서 만난 부활한 예수 그리스 도의 빛 아래서 창세기 이야기를 재해석했다. 바울은 자신의 서신서 여러 곳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선재한 하나님의 아들로 간주하고, 하나님과 함 께 세상의 창조에 동참한 창조의 동역자로 제시한다(고전 8:6; 골 1:15-20;비교, 히 1:2-4).3) 나아가 바울은 선재한 예수가 바로 아담의 창조의 청사진 이 된 하나님의 형상 그 자체라고 주장한다(ἡ εἰκών τοῦ ἐπουρανίου; 고전15:45-49; 고후 4:4-6; 비교, 롬 8:29).4) 그러므로 이 논문에서 우리는 창세기1:26에서 발견되는 신적인 ‘우리’의 정체와 연관하여 다음 세 가지에 대해 서 자세히 조사해 보고자 한다: (1) 창세기의 신적인 ‘우리’가 안고 있는 해 석학적 난제, (2) 이 신적인 ‘우리’에 대한 필로와 유대인 랍비들, 그리고 영 지주의자들의 해석, 그리고 (3) 바울의 기독론적 해석. 이 비교 연구를 통해서 우리는 성서가 침묵한 곳에서 발생하는 해석학적 가능성과 그에 따른 해석 공동체들 간의 갈등도 관찰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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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arvard University에서 신약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음. 현재 호서대학교 신약학 부교수. shlee@hoseo.edu.
1) 이 여섯 가지 의견들에 대한 자세한 분석을 위해서는 다음을 참고하라. J. R. Middleton, The Liberating Image: The Imago Dei in Genesis 1 (Grand Rapids, MI: Brazos Press, 2005), 55-56; D. J. A. Clines, “The Image of God in Man”, Tyndale Bulletin 19 (1968), 62-69; J. E. Fossum, “Gen 1:26 and 2:7 in Judaism, Samaritanism, and Gnosticism”, Journal for the Study of Judaism in the Persian, Hellenistic and Roman Period 16:2 (1985), 202-239; T. A. Keiser, “The Divine Plural: A Literary-Contextual Argument of Plurality in the Godhead”, Journal for the Study ofאדם the Old Testament 34:2 (2009), 132-133; P. Niskanen, “The Poetics of Adam: The Creation of in the Image of אלהים”, Journal of Biblical Literature 128:3 (Fall 2009), 425-426.
2) T. A. Keiser, “The Divine Plural: A Literary-Contextual Argument of Plurality in the Godhead”,.132-133
3) 골로새서에 대한 바울의 저작설은 신약 학자들 간에 논란의 대상이 되어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골 1:15-20에 담긴 기독론적 시는 골로새서의 저작 시기 이전에 작성된 아주 오래된 초기 기독교의 시로 보여진다. 따라서 본 저자는 이 본문을 바울 신학의 일부로 간주하는 대 다수의 학자들의 견해에 동의한다. 그리고 바울의 제자, 혹은 바울의 추종자에 의해서 기록 된 히 1:2-4에 담긴 기독론적 주장도 바울의 견해에 의해서 깊이 영향 받았다. 참조, J. D. G. Dunn, The Theology of Paul the Apostle (Grand Rapids, Mich.: W.B. Eerdmans Pub., 1998), 267-77; D. W. Pao, Colossians & Philemon, Zondervan Exegetical Commentary Series on the New Testament (Grand Rapids: Zondervan, 2012), 20-23.
4) 바울의 아담 기독론적 논의에 대해서는 다음을 참고하라. 이승현, 바울의 아담 기독론과 새 관점(서울: 감은사, 2020).
2. 창세기 1:26의 신적인 ‘우리’가 안고 있는 해석학적 난제
창세기 1:26은 창조주 하나님이 여섯째 날 행한 인간의 창조를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ו֣יֹּאֶמרֱאִ֔היםַֽנֲעֶ֥שׂהָאָ֛דםְבַּצְלֵ֖מנוִּכְּדמוֵּ֑תנוְּוִיְרדּ֩וִּבְדַ֙גתַהָ֜יּם וְּב֣עוֹףַהָשַּׁ֗מִים וַּבְבֵּהָמה וְּבָכל־ָהָ֔אֶרץ וְּבָכל־ָהֶ֖רֶמשָֽׂהרֵֹ֥משַׂעל־ָהָֽאֶרץ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 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 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5)
이 본문에서 창세기 저자는 하나님의 말씀하심을 가리키는 히브리어 동 사 ויאמר에서는 3인칭 단수형을 사용하는 반면에,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에 따른 창조의 제안에서는 1인칭 복수형을 세 번 사용한다. 이에 창세기의 처 음 유대인 독자들이 창세기 저자가 언급한 복수형 ‘우리’의 정체에 대해서 심각하게 고민했을 것은 너무도 자명하다.6) 유대교의 유일신 신앙의 근간 이 되는 모세오경의 첫 번째 책에, 그리고 우상 숭배를 철저히 배격하는 구 약성서의 첫 시작에서 복수형 공칭 접미사가 하나님에 대해서 쓰여지고 있 기 때문이다. 창세기의 신적인 복수형은 유대인 독자들에게 반드시 해결해 야 할 해석학적 난제였다. 물론, 신약성서의 조명 아래서 구약성서를 읽는 기독교인 독자들에게 이 신적인 복수형의 등장은 성부, 성자, 성령을 지칭 하는 삼위일체론적 하나님 이해에 대한 첫 번째 성경적 증거였다. 그러나 기독교의 삼위일체론적 해석은 창세기의 처음 유대인 독자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설득력 있는 해결책이 아니었다. 이 사실은 필로와 유대인 랍비들 이 초기 기독교와 다른 방식으로, 혹은 초기 기독교의 기독론적 해석을 비 판하면서, 이 해석학적 난제를 해결하려 했다는 사실에서 잘 발견된다.7) 이 미 앞에서 언급된 바와 같이, 창세기 1:26의 신적인 복수형에 대한 해석학적 역사 속에서 학자들은 크게 여섯 가지 해결책들을 제시했다. 이 중에서 천상의 법정과 하나님의 복수성만이 고대와 현대의 독자들에게 설득력 있 는 다수 의견으로 받아들여졌다.
첫 번째, 위의 두 가지 다수 의견들 중 천상의 법정 개념에 대해서 먼 저 살펴보도록 하자.
구약성서 안에는 하나님의 보좌를 중심으로 천사들 이 둘러선 하늘의 법정이 자주 등장한다.8) 욥기의 시작에서 우리는 하늘 에서 법정이 열리고, 하나님의 아들들로 불리는 천사들이 하나님과 대화 하는 장면을 본다. 그리고 곧이어 등장한 사탄이 욥을 참소함으로써, 욥의 긴 고난의 이야기가 전개된다(욥 1:6; 2:1; 5:1; 15:8). 시편 기자는 여러 곳 에서 하늘의 심판관으로서 세상을 다스리는 하나님의 ‘권위’와 ‘공의’에 대해서 노래한다(시 82:1-3; 89:5-7; 97:7-9). 권위와 공의는 모든 왕들과 신 들의 주인이 되어 세상을 다스리는 우주의 왕으로서의 하나님의 자질을 가리킨다. 그리고 선지자 이사야와 에스겔은 하늘의 법정에 선 하나님의 보좌 위에 위치한 하나님의 영광과 그 보좌를 둘러싼 천사들에 대해서 자 세히 묘사한다(사 6; 겔 1). 우상 숭배에 대한 철저한 금지 명령 아래서 하 나님의 모습을 묘사하는 것에 대한 터부에도 불구하고, 이사야와 에스겔 은 인간의 모습처럼 계시되는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외모를 ‘감히’ 묘사한 다.9) 창세기 저자의 주장처럼, 하나님이 자신의 형상과 외모를 따라 인간 을 창조했다면, 하나님의 현현이 인간의 눈에 계시될 때 그의 영광스러운 모습은 당연히 인간의 외모와 유사할 것이다.10) 예레미야에게 하나님의 법정은 하나님의 참된 뜻을 담은 그의 말씀이 선포되는 곳이다. 참된 선지 자들은 천사들과 함께 하늘의 법정에 참석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특 권이 주어지고, 그 곳에서 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선포해야 할 책임 을 소유하게 된다(렘 23:18-22).
하나님의 보좌와 그 영광에 대한 환상에서 이사야 선지자는 하나님과 천사들 간에 발생한 흥미로운 대화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사 6:8):
ָוֶאְשַׁ֞מעֶאת־֤קוֹלֲאדָֹ֙ניֹאֵ֔מרֶאת־ִ֥מיֶאְשַׁ֖לח וִּ֣מיֵֽיֶל־ָ֑לנוָּוֹאַ֖מרִהְנִ֥ניְשָׁלֵֽחִני
내가 또 주의 목소리를 들으니 주께서 이르시되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하시니 그 때에 내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 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하였더니
흥미롭게도, 하나님에 대한 묘사에서 이사야는 창세기 저자와 마찬가지 로 단수형과 복수형을 번갈아 사용하면서, 천사들을 포함한 하늘의 공회 혹은 법정에 대해서 암시해 준다.11) 그러나 유일신관을 견지하는 칠십인역 의 유대인 번역자는 이사야가 차용한 신적인 복수형 동사에 대해서 불편하)וִּ֣מיֵֽיֶל־ָ֑לנוּ(”?게 생각한다. 이에 칠십인역 번역자는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를 ‘누가 이 백성을 위하여 갈꼬?’(τίς πορεύσεται πρὸς τὸν λαὸν τοῦτον)로 수정해 서 번역한다. 여기서 우리는 기원전 3세기 유대인 저자들에게도 창세기의 신적 인 복수형 ‘우리’는 해결해야 할 해석학적 난제로 기능했음을 알 수 있다
사실 창세기의 저자도 하늘의 공회를 구성하는 천사들의 존재에 대해 서는 이미 잘 알고 있는 듯하다(비교, 창 3:24; 6:1-4; 18:2).12) 창세기 3:22-24에서 저자는 범죄한 아담과 하와를 향하여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에 하 나 와 같 이 되 었 다 ’ ( כַּ אַ֣ ח ד ִ מֶ֔ מּ נּ וּ ְ) 는 하 나 님 의 고 백 을 인 용 한 다 . 곧 이 어 하 나 님 은 타락한 아담과 하와를 에덴동산 바깥으로 쫓아낸 후, 천사들을 그 문 앞 에 세워 그들의 입장을 가로막는다. 창세기의 저자는 창세기 1:26의 신적 인 복수형 안에 하늘의 공회, 혹은 법정의 구성원들인 천사들을 포함하고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창세기 1:26에서 묘사되는 하나님의 인간 창조의 행 위와 선포의 배경은 하늘의 법정이 아니라, 창조된 하늘과 땅인 것으로 보 인다. 그리고 창세기의 저자는, 위에서 살펴본 선지자들과 달리, 창세기1:26을 전후로 해서 하늘의 법정 혹은 공회에 대해서 그 어떤 구체적 언급 도 하지 않고 있다. 구약성서에서 창조는 창조주 하나님의 배타적인 권리 요 주권적인 행위로 선포된다(비교, 사 40:14; 44:24).
창세기의 저자도 이런 선포에 동의하고 있다고 믿는 데에는 큰 무리가 없을 것이다. 구약성서 에서 ‘하나님의 아들들’로 불리는 천사들은 하나님의 창조의 동반자가 아 니라, 그의 창조 행위에 대한 증인들에 불과하다(욥 38:7).13) 이 사실은 창 세기 저자가 신적인 ‘우리’라는 표현을 통해서 천사들을 지칭하지 않고, 따 라서 하늘의 법정 개념은 창세기 1:26의 신적인 ‘우리’의 정체에 대한 유용 한 상호 텍스트(intertext)가 아닐 수도 있음을 암시한다. 그렇다면 창세기1:26의 신적인 ‘우리’를 통해서 창세기 저자가 지칭하고 있는 대상은 누구 일까? 여기서 우리는 위에서 언급된 여섯 가지 해석학적 제안들 중 두 번째 주요 의견인 하나님의 복수성, 혹은 이중성에 대해서 숙고해 볼 필요가 있다.
두 번째, 하늘의 공회 견해와 달리, 하나님의 복수성/이중성의 견해는 창세기 1:26-27의 문맥적 상황을 통해서 설명될 수 있다는 해석학적 장점을 소유하고 있다.
신적인 복수형이 처음 발견되는 창세기 1:26-27에는 인간과 하나님에 관한 흥미로운 세 가지 비교들이 존재한다.14)
첫 번째, 이 본문에 서 단수형과 복수형으로 번갈아 묘사되는 하나님과 마찬가지로, 인간도 동 시에 단수형과 복수형을 통해서 묘사되고 있다(ֹאָֽתם,ֹא֑תוֹ,ְוִיְרדּו,ָאָ֛דם). 이 사 실은 복수형 하나님의 정체에 대한 난제는 단수형과 복수형으로 번갈아 묘 사되는 인간의 정체와 깊은 연관이 있음을 암시한다.
두 번째, 하나님과 인 간의 복수성에는 어떤 특별한 특징들이 내재되어 있는 듯 보인다. 인간의 경우 복수성은 남자와 여자(ָזָ֥כר וְּנֵקָ֖בה)라는 다른 성별로 구성되어 하나의 연 합을 이루는 쌍의 개념으로 표현된다. 물론 창세기의 이해에서 하나님은 인간처럼 성을 통해서 구분되는 존재가 아니다. 그러나 인간의 복수성이 신적 복수형에 대해서 제공하는 해석학적 단서는 하나님 안에도 복수성이 내재하는 동시에, 그 복수성 안에는 일치성에 근거한 특별한 연합이 존재 한다는 사실이다.15)
그리고 창세기에서 남자와 여자의 연합이 언급될 때,그 연합은 항상 생명의 탄생 혹은 창조를 묘사하기 위해서이다(1:27; 5:2-4; 6:19-20; 7:3-16). 인간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창세기 1:26에서 복수형이 하나님께 사용될 때, 창세기 기자는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해 내는 장면을 묘 사하고 있다.16) 마지막으로, 세 번째, 하나님과 인간을 향하여 단수형과 복 수형이 동시에 사용되는 주요 배경은 하나님이 인간을 자신의 ‘형상’을 따 라 창조하는 장면이다. 아마도 형상이라는 개념은 하나님과 인간이 소유한 단수성과 복수성 간의 긴장 어린 공존을 포함하거나, 아니면 어떤 형태로 든지 그 공존의 근거로 기능하고 있을 수 있다.17)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 된 인류가 복수형으로 묘사되는 쌍을 통해서 존재하고, 그 존재 안에는 생 명의 탄생을 위한 연합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인간 형상의 기원인 하나님 안에도 복수성이 특수한 연합 안에 존재할 수 있음을 알려 준다.18)
그러나 신적인 복수형에 대해서 창세기 1-3장의 문맥이 제공하는 이런 정보에도 불구하고, 창세기 기자는 여전히 하나님 안에 존재하는 복수성의 본질을 분명하게 설명하지 않고 있다. 물론, 창세기 1:2에서 저자는 하나님의 영의 존재를 언급하고 있기에, 신적인 복수형은 하나님과 그의 영을 가리키고 있다고 주장할 수 있다.19) 사실 하나님의 영은 구약성서의 다른 본문들에 서 종종 창조의 대행자로 제시되곤 한다(욥 33:4; 34:14-15; 사 32:15; 겔36-37; 시 104:30). 그러나 신약성서의 저자들과 달리, 고대 유대인들의 사 상에서 하나님의 영은 하나님과 분리된 하나의 독립된 인격체의 개념으로 발전하지 못했다.20) 창세기의 신적인 복수형에 대한 후대 유대인들의 해석 에서 하나님의 영이 거의 언급되지 않는다는 사실은 이 점을 더욱 분명히 해 준다.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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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본논문에서인용된한글성서본문은특별한언급이없는한모두개역개정을참고로할 것이다.
6) 참조, 하경택, “야훼 유일신 신앙의 형성 과정에 관한 소고”, 「Canon&Culture」 4:1 (2010), .159-187
7) 참조, J. E. Fossum, “Gen 1:26 and 2:7 in Judaism, Samaritanism, and Gnosticism”, 203-220.
8) 참조, P. D. Miller, “Cosmology and World Order in the Old Testament: The Divine Council as Cosmic-Political Symbol”, Horizons in Biblical Theology 9:2 (1987), 53-78.
9) J. A. Middlemas, “The Prophets, the Priesthood, and the Image of God (Gen 1,26-27)”, Biblica.337 ,)2016( 97:3
10) 참조, W. R. Garr, In His Own Image and Likeness : Humanity, Divinity, and Monotheism(Leiden: Brill, 2003), 118-171; D. J. A. Clines, “The Image of God in Man”, 57-58; J. R. Middleton, The Liberating Image: The Imago Dei in Genesis 1, 25-26; C. L. Crouch, “Made in the Image of God: The Creation of אדם, the Commissioning of the King and the Chaoskampf of Yhwh”, Journal of Ancient Near Eastern Religions 16:1 (2016), 14-15; C. L. Crouch, “Genesis 1:26-7 as a Statement of Humanity’s Divine Parentage”, The Journal of Theological Studies61:1 (2010), 4-12; A. Schüle, “Made in the ‘Image of God’: The Concepts of Divine Images in Gen 1-3”, Zeitschrift fur̈die alttestamentliche Wissenschaft 117:1 (2005), 4-6.
11) J. R. Middleton, The Liberating Image : The Imago Dei in Genesis 1, 57. 비교, C. Westermann, Genesis 1-11: A Continental Commentary, 1st Fortress Press ed. (Minneapolis, Minn.: Fortress Press, 1994), 144-145; T. A. Keiser, “The Divine Plural: A Literary-Contextual Argument of Plurality in the Godhead”, 133; D. J. A. Clines, “The Image of God in Man”, 66.
12) 창세기 1장과 3장의 저자가 제사장 사가(Priestly writer)와 야훼 사가(Yahwistic writer) 등으 로 구성된 다른 인물들일 수 있지만, 본 논문에서는 창세기의 최종 편집인을 그 저자로 보 고 논문의 논지를 전개할 것이다.
13) D. J. A. Clines, “The Image of God in Man”, 67.
14) 저자는 이 세 가지 비교들을 다음의 논문에서 차용했다. 참조, T. A. Keiser, “The Divine Plural: A Literary-Contextual Argument of Plurality in the Godhead”, 134-146.
15) 참조, Ibid., 137. 비교, J. C. de Moor, “The Duality in God and Man: Gen 1.26-27 as P’s Interpretation of the Yahwistic Creation Account”, J. C. de Moor, ed., Intertextuality in Ugarit and Israel (Leiden: Brill, 1998), 112-126; P. A. Bird, “‘Male and Female He Created Them’: Gen 1:27b in the Context of the Priestly Account of Creation”, Harvard Theological Review( 74:2.134 ,)1981
16) T. A. Keiser, “The Divine Plural: A Literary-Contextual Argument of Plurality in the Godhead”, 138.
17) 물론 이 본문에서 창세기 저자는 하나님의 형상을 피조세계를 향한 인간의 통치권과 기능 적으로 연결시키고 있다. 하나님의 형상 개념은 하나님의 본질과 외형, 그리고 통치권과 연 관되어 심도 있게 다루어 질 필요가 있다. 참조, D. J. A. Clines, “The Image of God in Man”, 54-58; Middleton, The Liberating Image: The Imago Dei in Genesis 1, 58-60; Garr, In His Own Image and Likeness: Humanity, Divinity, and Monotheism, 172.
18) T. A. Keiser, “The Divine Plural: A Literary-Contextual Argument of Plurality in the Godhead”, 137-138, 143-146; P. Niskanen, “The Poetics of Adam: The Creation of אדם in the Image of אלהים”; P. Trible, God and the Rhetoric of Sexuality (Philadelphia: Fortress Press, .21 ,)1978
19) D. J. A. Clines, “The Image of God in Man”, 69.
20) 참조, 이승현, 성령(서울: 킹덤북스, 2018), 205-424; A. W. Pitts and Pollinger Seth, “The Spirit in Second Temple Jewish Monotheism and the Origins of Early Christology”, S. E. Porter and A. W. Pitts, eds., Christian Origins and Hellenistic Judaism: Social and Literary Contexts for the New Testament (Leiden: Brill, 2013), 135-176.
21) 물론, 이레니우스를 포함한 많은 교부들은 삼위일체론의 전제 하에서 하나님의 영인 성령 의 창조 사역을 이 본문의 해석에 포함시킬 것이다(Haer. 4.4; 2.2.4; 2.30.9; 3.22.2).
3. 창세기 1:26의 신적인 ‘우리’에 대한 고대인들의 해석
위에서 우리는 창세기 1:26의 신적인 복수형 ‘우리’와 연관된 해석학적 난제에 대해서 알아보고, 그 난제에 대한 여섯 가지 해결책들 중 두 주요 의 견들을 간략하게 살펴보았다. 이제 하늘의 공회와 하나님의 복수성이라는 두 해석학적 제안들을 중심으로 고대인들이 어떻게 창세기의 신적인 복수 형 ‘우리’를 해석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자. 이어지는 논의에서 우리는 바울과 동시대의 유대인 사상가 필로와 고대의 유대인 랍 비들, 그리고 영지주의자들의 창세기 해석에 대해서 자세히 관찰해 볼 것 이다.
3.1. 필로
그리스 철학의 조명 아래서 히브리어 성서의 진리성을 입증하기 원했던 필로는 자신의 저술들 여러 곳에서 창세기에 대한 그의 해석학적 견해들을 잘 보여주고 있다. 필로의 관점에서 창조된 인간 영혼은 두 부분으로 나누 어진다. 하나는 선하고 이성적인 부분이고, 또 다른 하나는 비이성적이고 악한 부분이다. 필로가 생각하는 인간의 몸은, 당시의 그리스인들의 일반 적인 이해와 마찬가지로, 무익하고 쓸모없는 흙으로부터 기인한 악한 존재 이다. 인간의 몸은 고귀한 영혼을 가두고 있는 감옥으로 기능하기에, 죽음 을 통해서 인간의 영이 육에서 분리될 때 인간의 영은 참다운 자유를 경험 할 수 있다. 인간 영혼의 악한 부분의 존재는 아담이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 고 선악과를 따먹는 선택을 한 사건에서 가장 잘 보여진다.
그런데 필로에 게 하나님은 그 어떤 악한 행동을 하거나, 악한 것을 창조할 수 없는 선한 분이시다. 심지어는 타락한 아담을 처벌하는 일조차도 하나님이 수행할 수 있는 선한 일들의 범주 바깥에 놓여 있다. 그러므로 필로는 인간 영혼의 악 한 부분을 포함한 악한 것들의 창조와 인류의 타락과 심판의 행위를 모두 하나님이 아닌, 그러나 하나님과 연관된 권세들 혹은 데미우지에게 돌린다(Leg. all. IL6; De spec. leg. I.333; De fuga et invent. 68-70). 바벨탑을 건설하 여 하나님께 도전하는 인류를 향한 심판으로서 그들의 언어들을 혼란스럽 게 한 사건도 천사들이 수행한 일이다(De conf. 175).
필로에게 영적인 권세 들은 창조주 하나님의 종들로서 하나님에게 적합하지 않은 일들을 대신 수 행하는 천사들이다.22) 이런 맥락에서, 필로에게 창세기 1:26의 신적인 복수형은 선하신 창조주 하나님 아버지와 다른 영적인 권세들, 혹은 천사들을 함께 아우르는 표현이다(De opificio mundi 72). 이런 해석을 통해서 필로는 모든 선한 것들의 궁극적 기원이 되는 하나님의 선함을 방어한다.23) 결론 적으로, 필로에게 창세기 1:26의 신적인 복수형 ‘우리’는 인간의 선한 요소 들을 창조한 하나님과 함께, 악한 요소들을 창조한 천사들과 같은 영적인 권세들을 지칭한다.
창세기 1:26-27과 연관된 필로의 해석에서 흥미로운 점은 로고스(Logos)의 존재와 역할, 그리고 이성을 통한 하나님 형상에 따른 인간의 창조이다.그리스 철학의 영향을 받은 필로에게 이성은 인간이 성취할 수 있는 최상 의 덕목이다. 그리고 필로에게 로고스는 스토아 학자들이 숭상했던 우주를 지탱하는 원칙으로서 하나님의 아들로 인식되고(Fug. 109), 창조 질서를 유 지하는 지혜와 동일시된다(Agric. 51).24)
필로는 창세기 1:26-27에서 인간 창조의 모델이 된 하나님의 형상과 모습을 이성과 동일시하고, 타락 전 이 상적인 인간을 로고스와 동일시한다. 로고스가 하나님의 형상을 소유한 존 재이므로, 필로에게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계시는 로고스를 통해서 가능 하다. 필로에게 인류의 구체적 구성원으로서의 인간은 창세기 2:7에서 창 조되는 아담이다(Quaest. Gen 1.4).25) 창세기 1:26-27과 2:7에서 필로는 이상 적 인간과 역사적 인간이라는 두 종류의 다른 인간 창조를 본다.26)
3.2. 랍비들
그리스 철학의 빛 아래서 이성과 로고스 개념을 통해서 창세기를 해석 한 필로와 달리, 고대의 랍비들은 대체로 창세기 1:26을 자신들의 유일신 신앙과 충돌할 수 있는, 따라서 ‘이단자’(minim)들이 자신들의 왜곡된 주장 의 근거로 사용할 수 있는 매우 위험한 본문으로 간주한다(Gen R. 8.8; Sanh. 38b).27) ‘이단자’들은 천사들, 혹은 권세들이 하나님의 창조의 동역자들로 부름받았다고 주장한다. 고대 랍비들은 이들의 주장을 반박할 합리적 해석을 제공하기 위하여, 자신들의 해석학적 창의력을 쏟아붓는다. 고대 랍비들의 해석학적 해결책들 중 가장 인기 있는 것은 창세기 1:26의 우리 안에서 하나님과 그의 수행 천사들로 구성된 하늘의 공회를 보는 것이다.그 한 예로, 3세기 중반의 랍비 하니나(R. Hanina)는 그의 제자들에게 다음 과 같이 가르친다:
그[하나님]가 아담을 창조하려 할 때, 그는 수행하는 천사들과 상의하 며 그들에게 말했다: “우리가 사람을 만들자”(Gen. R. 8,4).
그러나 ‘이단자’들의 주장과 달리, 랍비들에게 하늘의 공회를 구성하는 천사들은 하나님의 창조 동반자들이 아니라, 하나님의 창조 의지를 수행하 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이에 3세기 초반 바벨론에서 팔레스타인으로 돌아 온 랍비 라브(R. Rab)의 제자 랍비 유다(R. Judah)는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 리가 사람을 만들자’라는 제안 속에서 하나님과 그의 수행하는 천사들 사 이에 발생한 한 사건을 묘사한다(Sanh. 38b). 랍비 유다의 설명에 따르면, 단 지 하나님의 뜻을 수행하는 집사들에 불과한 천사들이 인간 창조에 대한 하나님의 주권에 복종하기보다는 그 과정에 관여하여 하나님의 권리를 공 유하려 할 때, 그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죽음을 경험하게 된다. 랍비들 의 관점에서 인간 창조에 대한 의지는 천사들로부터 기인한 것이 아니라,하나님 자신으로부터만 기인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랍비 요하난(R. Yohanan)의 해석에 따르면, 하나님은 하늘의 공회와 대화하지 않고는 아무 것도 행하지 않고, 자신의 뜻에 대한 수행을 위해서 하늘의 공회를 구 성하는 천사들을 항상 사용한다.28)
그러나 랍비 요하난 이후 고대 유대인 랍비들은, 비록 창세기 1:26에서 하나님이 하늘의 공회와 상의했다는 사실은 부인하지 않지만, 인간 창조에 대한 천사들의 역할을 최소화 시키려 한다. 랍비 후나(R. Huna)에 따르면,비록 인간 창조에 대한 하나님과의 대화에 하늘의 공회의 구성원인 천사들 이 관여하였으나(‘우리가 사람을 만들자’, 창 1:26), 그들의 관여에 상관없 이 인간의 창조는 전적으로 하나님 자신의 의지에 따른 하나님의 결정이다(‘하나님이 자기 형상으로 사람을 창조하시고’, 1:27).29)
이처럼 인간 창조를 전적으로 하나님 자신의 결정이요 창조적 행위의 결과임을 강조하기 원 하는 고대 랍비들의 해석은 인간 창조에서 천사들의 적극적인 관여를 보는— 물론 그들의 창조 행위가 인간의 악한 부분들의 창조에만 한정되었지만— 필로의 해석과 다소 상이하다. 이런 측면에서, 랍비들이 ‘이단자들’로 간 주하는 그들의 대적들은 필로와 같은 해석학적 경향성을 지닌 그리스파 유 대인들이었을 수 있다.30) 물론, 3-4세기경 유대인 랍비들이 대면한 대적들 은 그리스 철학의 영향 아래서 창세기의 창조 이야기를 급진적으로 재해석 한 영지주의자들이었을 가능성이 더 농후하다. 이에 우리는 악한 창조신 데미우지와 그의 여성 동역자 지혜로 구성된 ‘소피아 신화’(Sophia Myth)를 통해서 인간의 창조를 설명한 영지주의자들의 급진적 창세기 해석에 대해 서 살펴보고자 한다.
3.3. 영지주의자들
초대교회 역사에서 영지주의자들은 마르키온(Marcion)으로부터 기인한‘이단들’이라고 불리며, 교부들의 주요 대적으로 등장한다. 그러나 영지주 의는 하나의 일관된 신앙 체계 아래 발생한 균일한 종교 운동이라기보다 는, 2-4세기 초기 ‘정통’ 기독교의 대적들을 하나로 아우르는 우산 개념(umbrella term)이다. 학자들은 초기 기독교의 특정 이단들을 한 단어로 영 지주의라고 부를 때, 영지주의의 개념이 정확히 무엇인지 정의하기 어렵다 는 사실에 대해서 고민했다.31) 현재 학자들의 다수 의견에 따르면, 그 안에 다양한 경향성을 지닌 영지주의는 소피아 신화를 중심으로 한 이원론적 세 계관을 배경으로 신적 기원에 대한 지식(Gnosis)을 통한 구원을 추구한다.그리고 영지주의 안에는 크게 다음과 같은 네 부류의 문서들이 존재한다:
(1) 발렌타이너스 그룹(Valentinian), (2) 셋 그룹(Sethian), (3) 토마스 그룹(Thomasine), 그리고 (4) 소수의 신비주의 그룹(Hermetic).32)
영지주의의 유대 기독교적 기원을 암시하면서, Tripartite Tractate는 고대 유대교 안에 존재했던 다양한 이단적 가르침에 대해서 언급한다. Tripartite Tractate에 따르면, 어떤 유대인들은 유일신 사상을 유지한 반면, 다른 유대 인들은 하나님의 복수성을 견지하고, 또 다른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창조 행위를 그의 천사들에게 돌린다.33) 이 영지주의 문서의 유대교에 대한 평 가는 우리가 위에서 살펴본 필로와 랍비들이 보여준 창세기 이해와 매우 유사하다. 필로는 창조에 있어서 하나님의 뜻의 주요 수행자로 천사들, 지 혜 그리고 말씀을 제시하고, 인간에게 존재하는 악한 요소들의 창조를 천 사들에게 돌린다.
그리고 하나님의 창조의 주요 수행자로 팔레스타인 유대 교는 주의 천사를 제시하고, 랍비들은 하나님의 공회에 속한 천사들을 제시 한다. 그러나 영지주의에 속한 문서들에 담긴 소피아 신화는 인간의 창조를 선하신 하늘 아버지의 뜻에 반한 악한 창조자 데미우지, 혹은 얄타바옷과 그 의 파트너 소피아의 무지로 돌린다.34) 예를 들면, Hypostasis of the Archons에 따르면, 영적인 권세들이(archons)이 함께 모여 흙으로부터 아담을 창조할 회의를 개최한다. 그들 중 우두머리인 악한 창조자는 — Hypostasis of the Archons에서 그의 이름은 사마엘(Samael)이라고 불린다 — 하늘에 속한 불 멸의 하나님의 형상이 물에 비취자, 그 형상을 가두기 위해서 인간의 몸을 만든다. 사마엘이 하늘의 형상을 가둔 몸을 만든 결과 이 땅에 아담이 창조 된다(Hyp. Arch. 87-88).35) 이에 하늘의 선한 아버지는 진리의 영을 아담과 인류에게 보내어 그들의 신적 기원에 대해서 알려 주고, 자신들의 신적 기 원에 대한 지식을 통해서 인류는 악한 창조주와 그에게 속한 권세들로부터 해방되어 하늘로 올라가는 구원을 경험한다(Hyp. Arch. 96-97).
아마도 소피아 신화에 근거한 영지주의자들의 창조 이해를 가장 선명하 게 보여주는 책은 Apocryphon of John(Ap. John)일 것이다.36) Apocryphon of John은 전통적인 창세기 해석을 완전히 뒤집어 버리는 소피아 신화를 철저 하게 따르면서, 인간을 포함한 악한 세상의 창조를 악하고 무지한 신 얄타 바옷에게 돌린다. 인간의 거주지인 세상이 창조되기 전, 하늘의 선한 아버 지는 보이지 않는 하늘의 세상과 그곳의 거주자들인 천사들을 창조한다.그러나 이 하늘의 영적인 피조물들 중 마지막 존재인 소피아는 ‘무지’ 속에 서 자신을 닮은 영적 존재인 얄타바옷을 창조하고, 그를 빛나는 구름 속에 감추어 버린다(Ap. John 9:26-10:19). 그러나 곧이어 얄타바옷은 눈에 보이 는 세상을 창조하고, 그를 따르는 천사들에게 다음과 같이 선포한다: “나는 질투하는 하나님이니 내 외에는 어떠한 신도 존재하지 않는다”(13:1-13)
그러자 하늘의 선한 아버지는 얄타바옷에게 주어진 능력을 회수하기 위하 여 자신의 모습을 물 위에 비춘다. 그러나 물 위에 비친 하늘 아버지의 형상 을 본 얄타바옷과 그를 따르는 천사들은 그 형상을 사로잡기 위하여 인간 을 창조하려 한다. 이 과정에서 얄타바옷은 그를 따르는 천사들에게 다음 과 같이 제안한다: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과 우리의 모습을 따라 사람을 만들자. 그 렇게 해서 그의 형상이 우리를 위한 빛이 되게 하자”(15:1-5; 비교,창 1:12-27).
악한 창조자 얄타바옷은 ‘완전한 인간’의 모양을 따라 한 존재를 창조하 고, 그를 따르는 천사들은 그 존재에게 자신들이 소유한 특별한 특징들을 제공한다. 그 결과 첫 번째 인간인 아담이 이 땅에 탄생한다(Ap. John15:9-10). 그러나 그들이 창조한 악한 세상에 놓인 아담의 궁극적인 본질은 이 땅이 아니라, 빛의 아버지가 창조한 빛의 세계에 속해 있다(8:30-9:1). 아 담이 소유한 하늘에 속한 하나님의 형상과 능력은 현재 얄타바옷과 그의 천사들이 죽음의 어두움을 의미하는 흙으로 만든 아담의 육체 안에 갇혀 있다. 아담의 인류가 구원을 얻기 위해서는 그들이 망각했던 자신들의 신 적 기원에 대한 지식을 필요로 한다.
위에서 우리가 살펴본 필로와 랍비들의 창세기 이해를 영지주의자들의 창세기 이해와 비교해 보면, 몇 가지 흥미로운 점들이 발견된다. 첫 번째,이 세 무리들은 모두 창세기 1:26의 신적인 ‘우리’ 안에서 한 분 하나님이 아니라, 복수의 신적인 존재들을 본다. 두 번째, 이들의 창세기 이해에는 하 나의 공통된 목적이 존재하는데, 그 목적은 선한 하나님 아버지를 악과 타 락한 세상의 존재로부터 분리시키는 것이다. 그러나 세 번째, 필로가 하나 님을 인간에게 속한 선한 것들의 창조주로 간주하고 악한 것들의 창조를 천사들에게 돌리는 반면에, 영지주의자들은 인간의 창조를 하나님 아버지 가 아니라 악한 창조주 데미우지, 혹은 얄타바옷에게 돌린다. 하늘과 땅을 잇는 긴밀한 연관성 속에서 창세기를 해석하는 필로와 랍비들과 달리, 영 지주의자들은 그들의 독특한 이원론적 세계관에 기초한 소피아 신화를 통 해서 창세기 1:26-27의 인간 창조로부터 하늘의 선한 아버지를 철저히 분리 시킨다.37) 이제, 필로와 동시대를 살면서 그의 그리스 철학적 사고관과 유 대 전통을 공유한, 그리고 유대인 랍비들과 기독교 영지주의자들에 앞서 초기 기독교 신학을 정립한 사도 바울의 창세기 1:26 해석에 대해서 조사해 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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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저자는 여기서 인용되는 필로에 대한 자료들을 다음의 논문에서 차용했다. 참조, J. E. Fossum, “Gen 1:26 and 2:7 in Judaism, Samaritanism, and Gnosticism”, 203-208.
23) Ibid., 206.
24) D. Steenburg, “The Worship of Adam and Christ as the Image of God”, Journal for the Study of the New Testament 12:39 (1990), 104.
25) Philo, The Works of Philo: Complete and Unabridged, New updated ed. (Peabody, Mass.:
Hendrickson Pub., 1993), 10-11.
26) 바울은 고전 15:45-49에서 첫 번째 아담과 마지막 아담을 비교하며 부활의 몸을 논의하고
있다. 그러나 여기서 바울이 자신의 두 아담 이야기를 필로에게서 빌려 왔다고 보기에는 둘 간의 해석학적 간극이 너무 넓다. 비교, S. J. Hultgren, “The Origin of Paul’s Doctrine of the Two Adams in 1 Corinthians 15.45-49”, Journal for the Study of the New Testament 25:3 (2003), 343-370.
27) 이 예들에서 발견되는 랍비들의 가르침은 대략 3세기경으로 간주된다. 본 저자는 이 본문에서 논의되는 예들을 포섬(J. E. Fossum)에게서 가져왔음을 밝힌다. 참조, J. E. Fossum,“Gen 1:26 and 2:7 in Judaism, Samaritanism, and Gnosticism”, 208-210. 28) Ibid., 211.
29) Ibid., 212-213.
30) 참조, Ibid., 214.
31) 참조, K. L. King, What Is Gnosticism? (Cambridge, Mass.: Belknap Press of Harvard University Press, 2003).
32) 이네그룹들에대한상세한논의와그들에게속한영지주의문서들에대해서는다음을참고하라. Ibid., 154-169
33) J. E. Fossum, “Gen 1:26 and 2:7 in Judaism, Samaritanism, and Gnosticism”, 227.
34) 참조, J. E. Goehring, “A Classical Influence on the Gnostic Sophia Myth”, Vigiliae christianae35:1 (1981), 16-23; G. W. MacRae, “Jewish Background of the Gnostic Sophia Myth”, Novum testamentum 12:2 (1970), 86-101.
35) J. M. Robinson, R. Smith, and members of the Coptic Gnostic Library Project, The NagHammadi Library in English, 4th rev. ed. (Leiden: Brill, 1996), 162-163.
36) Apocryphon of John의 본문을 위해서는 다음을 참고하라. Ibid., 104-123.
37) 참조, K. L. King, What Is Gnosticism?, 192-201.
4. 창세기 1:26의 신적인 ‘우리’에 대한 바울의 기독론적 해석
필로와 고대 유대인 랍비들은 하늘의 공회와 천사들을 통해서, 그리고 영지주의자들은 악한 창조주 데미우지와 그를 추종하는 영적인 권세들을 통해서 창세기 1:26의 신적인 ‘우리’를 설명한다. 그러나 영지주의자들을 포함한 소위 ‘이단들’과의 갈등 속에서 초기 기독교 신학을 발전시킨 교부 들은 삼위일체론적 이해를 통해서 창세기의 신적인 복수형을 설명한다. 예 를 들면, 교부신학의 시작으로 간주되는 이레니우스는 영혼과 육체로 구성 된 인간의 창조를 하나님, 선재한 말씀인 그의 아들, 그리고 영원한 지혜인 성령에게로 돌린다. 따라서 이레니우스에게 창세기 1:26의 신적인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와 선재한 아들, 그리고 성령으로 구성된 세 분이다(Haer.4.4; 2.2.4; 2.30.9; 3.22.2).38) 이레니우스에 앞서 기독교 변론가 저스틴 마터(Justin Martyr)는 창세기 1:26에서 하나님은 천사들이 아니라, 그의 선재한 아들에게 인간 창조를 상의하고 있다고 주장한다(Dialogue with the Jew Trypho 62). 이러한 주장을 통해서 저스틴 마터는 인간 몸의 창조에 천사들 이 관여되었다는 유대인들의 주장을 반박한다. 그러나 창세기 1:26에서 성 부, 성자, 성령 간의 대화를 본 이레니우스와 달리, 저스틴 마터는 성부와 성자 간의 대화에 참여한 성령을 언급하지 않는다. 저스틴 마터의 기독론 적 해석은 그에 앞서 1세기 초대교회 기독론의 기초를 세운 바울에게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이에 이어지는 논의에서 우리는 창세기의 신적인 ‘우리’에 대한 바울의 기독론적 이해에 대해서 자세히 살펴보고자 한다. 물론 바 울은 자신의 서신서 어는 곳에서도 필로와 유대인 랍비들처럼 창세기 1:26에 대한 주석적인 해석을 제공하지 않는다. 대신 바울은 하나님의 창조의 동역자인 예수의 신분을(고전 8:6; 골 1:15-20),39) 그리고 하나님의 형상을 소유한, 혹은 하늘의 형상 그 자체인 예수의 본질을(롬 8:29; 고전 15:44-49;고후 4:4-6; 비교, 히 1:1-4) 자신의 구원론적 논의의 핵심 축으로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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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참조, J. J. Johnson, Christ, Creation, and the Cosmic Goal of Redemption: A Study of Pauline Creation Theology as Read by Irenaeus and Applied to Ecotheology, The Library of New Testament Studies (London; New York: T&T Clark, 2018), ch.5.
39) 비록 골로새서의 바울 저작설은 학자들 간의 논쟁의 대상이지만, 본 저자는 골 1:15-20이 골로새서의 작성에 선행한 바울에게 속한 기독론적 시를 포함하고 있다고 믿는다. 참조, J. D. G. Dunn, The Theology of Paul the Apostle, 268.
4.1. 하나님의 창조의 동역자인 예수
고린도전서 8:5-6에서 바울은 하늘과 땅의 많은 신들과 주들에 대한 이방 인들의 믿음에도 불구하고, 자신과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는 ‘한 하나님’과 ‘한 주’ 밖에 없다고 선포한다. 한 분 하나님에 대한 바울의 유일신 신앙 은 그의 전통적 신앙 토대인 유대교로부터 기인하고, 한 주 예수에 대한 그 의 기독론적 신앙은 주로 높아진 예수에 대한 초대교회의 믿음으로부터 기 인한다.40) 바울에 앞서 유대인 출신 제자들로 구성된 예루살렘의 초대교회 는 부활한 예수를 자신들의 주라 부르며 경배하기 시작한다.41) 회심 후 예 수 전통을 접한 바울은 그들의 신앙적 전승에 동의하면서 예수를 주라 부 르는데 적극적으로 동의한다(고전 16:22; 12:3).42) 그리고 바울은 κύριος라는 그리스어 단어를 예수에게 적용하면서, 제자들에게 한정되었던 예수의 주 권을 전 우주적 주권으로 확장 발전시킨다(빌 2:9-11). 사실 바울에게 ‘예수 가 주이시다’라는 믿음의 고백은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구원이 주어지는 가 장 핵심적인 방편이다(롬 10:9-10). 이 기독론적 믿음의 고백을 통해서 바울 은 율법의 일들을 통해서 이방인들을 ‘더 완전하게’ 만들고자 하는 유대주 의자들과 맞선다.43) 바울에게 예수의 주권에 대한 고백은 오직 성령을 통 해서만 가능하고, 새 언약의 실체인 성령은 율법 앞에서 무기력한 인간의 죄인 됨을 극복하게 해 주는 종말론적 실체이다(고전 12:3; 롬 8:2-3). 그러 나 고린도전서 8:5-6에서 우리가 좀 더 주목해 보기 원하는 것은 (1) 바울의 주인 예수가 창조주 하나님과 맺고 있는 특별한 관계와 (2) 세상의 창조에 서 그가 행한 창조사역의 본질이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8:6에서 다음과 같이 선포한다:
ἀλλ ̓ ἡμῖν εἷς θεὸς ὁ πατὴρ ἐξ οὗ τὰ πάντα καὶ ἡμεῖς εἰς αὐτόν, καὶ εἷς κύριος Ἰησοῦς Χριστὸς δι ̓ οὗ τὰ πάντα καὶ ἡμεῖς δι ̓ αὐτου
그러나 우리에게는 한 하나님 곧 아버지가 계시니 만물이 그에게서 났고 우리도 그를 위하여 있고 또한 한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니 만 물이 그로 말미암고 우리도 그로 말미암아 있느니라
첫 번째, 이 본문의 전반부에서 바울은 하나님의 창조사역에 대해서 노 래하고, 후반부에서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창조사역에 대해서 노래한다.바울은 먼저 하나님을 만물의 아버지라고 부르는데, 이는 만물(τὰ πάντα)이 다 그로부터 나왔기 때문이다. 만물은 피조된 세계에 속한 모든 것들을 아 우르는 용어로서, 바울의 현재 신앙고백의 배경이 하나님과 그의 창조에 관한 것임을 분명히 해 준다. 이 고백에서 바울은 하나님의 창조주로서의 역할을 두 가지 그리스어 표현들 ἐξ οὗ와 εἰς αὐτόν을 통해서 구체적으로 묘 사한다. 첫 번째 그리스어 표현 ἐξ οὗ는 만물의 기원이 하나님으로부터임을 알려 줌으로써, 하나님이 만물의 창조주 됨을 강조한다. 그리고 두 번째 그 리스어 표현 εἰς αὐτόν은 하나님의 창조적 구원의 결과로 탄생한 ‘우리’, 즉 성도들로 구성된 교회가 하나님을 위하여 존재함을 알려 준다. 이 사실은 하나님에 대한 경배가 교회의 창조와 존재 목적이 됨을 분명히 해 준다. 바 울은 여기서 창조주 하나님의 신분과 역할에 대해서 이중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하나님의 창조는 일반적인 측면에서 만물을 존재하게 했고, 특별한 측면에서는 교회의 탄생을 가져왔다.
두 번째, 고린도전서 8:6의 후반부에서 바울은 창조와 연관된 예수의 지위와 역할을 두 그리스어 표현들 δι ̓ οὗ와 δι ̓ αὐτου를 통해서 묘사한다. 이 그리스어 표현들에서 전치사 διά는 창조의 사역에서 주 예수가 하나님을 도와 창조를 수행한 동역자였음을 알려 준다. 바울이 예수의 창조사역과 연관하여 그리스어 전치사 διά를 두 번 사용하는 데에는 특별한 이유가 있다. 첫 번째 διά 용례를 통해서 바울은 만물이 이 땅에 존재하게 된 궁극적 창조의 방편은 예수임을 알려 준다. 그리고 두 번째 διά 용례를 통해서 바울은 하나님의 구원의 결과로 새롭게 탄생한 새 백성 ‘우리’의 존재도 예수를 통한 새 창조의 결과임을 알려 준다. 이렇게 해서 바울은 예수가 하나님이 행하신 두 번의 창조, 즉 첫 세상의 창조와 새 백성의 창조에 동참한 창조의 동역자임을 분명히 한다. 여기서 바울은 창세기 1:26의 신적인 ‘우리’ 간에 발생한 대화가 하나님 아버지와 선재한 아들 간에 진행된 것이었음을 전제하고 있다.44) 그러나 바울은 단순히 주 예수 그리스도를 하늘의 공회의 천사들을 대치하는 한 인물로 제시하지 않는다.왜냐하면 바울에게 예수는 선재한 하나님의 아들로서 모든 천사들 위에 위치한, 그리고 하나님의 신적인 지위와 형상을 함께 공유하는 만물의 경배의 대상이기 때문이다(빌 2:6-11; 비교, 고전 6:3; 히 1:1-4).45) 고대 유대인들과 기독교인들의 신앙 체계에서 천사들은 결코 하나님과 함께 피조세계의 경배를 공유하지 못한다(계 22:8-9; 골 2:18; 고전 6:3; 비교, 롬1;25; 마 4:9-10; 눅 4:7-8). 그러나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예수가 소유한 창조의 동역자로서의 특별한 지위와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하나님과 예수 사이에 존재하는 위계질서적 차이들에 대해서 침묵하지 않는다.만물의 창조의 시작과 존재 목적은 하나님 아버지만의 특권에 속하고, 그 창조의 수행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이다. 예수가 하나님 아버지의 창조와 새 창조의 동역자로서의 기능을 감당한 이유는 예수 자신이 높임을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서이다(εἰς δόξαν θεοῦ πατρός, 빌 2:11). 바울에게 주 예수는 궁극적으로 하나님 아버지께 복종하는 하나님의 아들이다(비교, 고전 15:24-28).
골로새서 1:15-20은 고린도전서 8:6에서 간략하게 묘사된 예수의 창조사 역을 훨씬 더 확장해서 노래하고 있다. 골로새서 1장에 담긴 기독론적 시는 골로새서의 작성을 선행하면서 바울 신학의 후반부를 반영하고 있다고 믿 어진다.46) 골로새서에 담긴 기독론적 시에서, 첫 번째, 예수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보이는 형상이요, 모든 피조물들보다 먼저 나신 선재한 분이라고 불린다(1:15). 여기서 형상과 선재의 개념들은 유대인들의 지혜 전통이 예수 에게 적용된 기독론적 발전의 결과로 보인다.47) 그리고, 두 번째, 골로새서의 기독론적 시는 예수를 ‘통해서’ 만물이 창조되었다는 고린도전서 8:6의 기독 론적 주장에 동의하는 동시에(δι ̓ αὐτοῦ, 골 1:16), ‘예수 안에서’(ἐν αὐτῷ)48)와‘예수를 위해서’(εἰς αὐτὸν)라는 두 가지 그리스어 표현들을 새롭게 소개한다.
이 두 표현들을 통해서 골로새서는 예수를 단순히 창조의 실행자로 선 포하는 고린도전서 8:6의 주장을 넘어서, 하나님과 함께 창조된 만물의 존 재 목적에 동참하는 분으로 제시한다.49) 마지막 그리스어 표현 εἰς αὐτὸν은 고린도전서 8:6에서 창조의 기원과 목적인 하나님을 향하여 사용되었던 바 로 그 표현이다. 세 번째, 골로새서의 기독론적 시는 창조된 만물의 본질을 좀 더 상세하게 묘사한다. 예수를 통해서 창조된 만물은 ‘하늘과 땅에 존재 하는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 그리고 왕들과 권세들과 통치자들’까지 모두 아우른다. 이 사실은 바울에게 예수는 하늘의 공회에 속한 천사 들과 영지주의자들이 언급한 모든 권세들을 다 초월하여 다스리는 우주의 주이고, 하나님 편에 속한 유일무이한 특별한 존재임을 알려 준다. 심지어 골로새서에서 예수는 필로와 스토아 철학자들이 세상을 지탱하는 원칙으 로 간주했던 말씀과 동일시된다(골 1:17). 마지막으로, 골로새서의 기독론 적 시는 고린도전서 8:6의 교회론적 ‘우리’를 그리스도의 몸으로 지칭하고,예수가 그 몸의 머리가 됨을 알려 준다(골 1:18; 비교, 고전 12:12-31). 예수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의 탄생은 그가 십자가에서 경험한 죽음을 통해서 하나님과 원수 되었던 자들이 하나님과 화해하게 된 결과 발생한 예수의 새 창조의 사역의 결과이다(골 1:20-21). 하나님과 인류가 원수가 된 사건은 아담의 타락 이야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예수의 희생의 죽음은 아담에게 속한 인류의 범죄에 대한 형벌인 그들의 사망에 대한 대속의 죽음이다(롬5:12-21). 이런 면에서, 예수의 사역은 아담과 인류의 타락을 극복하는 새 아담의 새 창조 사역이라고 불릴 수 있다.50) 결론적으로, 바울 신학에서 예 수는 하나님의 창조와 새 창조의 유일한 동역자로서, 하늘과 땅의 그 어떤 존재와도 비견될 수 없는 특별한 지위를 소유한 우주의 주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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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참조, Ibid., 248; J. D. G. Dunn, Beginning from Jerusalem, Christianity in the Making, (Cambridge, U.K. Grand Rapids, Mich.: W. B. Eerdmans Pub. Co., 2008), 212-229.
41) 여기서우리는유대인출신제자들이하나님과함께예수를경배의대상으로삼는‘이위일 체론적 유일신관’(binatarian monotheism)의 발전을 목격하게 된다. 참조, L. W. Hurtado,Lord Jesus Christ: Devotion to Jesus in Earliest Christianity (Grand Rapids, Mich.: W.B. Eerdmans Pub. Co., 2003), 134-154.
42) 참조, 이승현, “빌립보서 2:6-11을 통해서 본 바울의 기독론적 구약 사용”, 「신약논단」 26:1 (2019), 215-256; 이승현, ““하나님과 동등 됨”의 의미에 대한 고찰과 빌립보서 2:6-11 해 석”, 「성경원문연구」 39 (2016), 203-222.
43) 이 부분에 대한 좀 더 상세한 논의를 위해서는 다음을 참고하라. 이승현, “아브라함과 성령 을 통해서 본 갈라디아인들의 칭의 이해”, 「신약논단」 27:1 (2020), 229-269.
44)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창조의 동역자로서의 유대인 지혜 전통이 바울의 기독론에 깊이 영향을 미쳤음을 알 수 있다. 참조, D. Steenburg, “The Worship of Adam and Christ as the Image of God”, 101-06; J. D. G. Dunn, The Theology of Paul the Apostle, 266-293.
45) 참조, J. D. G. Dunn, Did the First Christians Worship Jesus?: The New Testament Evidence(Louisville, KY: Westminster John Knox Press, 2010); L. W. Hurtado, How on Earth Did Jesus Become a God?: Historical Questions About Earliest Devotion to Jesus (Grand Rapids, Mich.: W.B. Eerdmans Pub. Co., 2005).
46) J. D. G. Dunn, The Epistles to the Colossians and to Philemon: A Commentary on the Greek Text, N.I.G.T.C. (Grand Rapids, MI: W. B. Eerdmans 1996), 35-39; D. W. Pao, Colossians & Philemon, 90-91.
47) 참조, D. W. Pao, Colossians & Philemon, 91-93.
48) 이 그리스어 표현에서 전치사 ἐν은 도구적(instrumental)인 의미를 넘어서, ‘dative of sphere’로 해석되는 것이 옳다. 참조, Ibid., 96.
49) 참조, R. Bauckham, “Where Is Wisdom to Be Found? Colossianas 1.15-20(II)”, D. Ford and G. Stanton, ed., Reading Texts, Seeking Wisdom: Scripture and Theology (Grand Rapids, Mich.: Eerdmans Pub., 2004), 134.
50) 이와관련하여다음의내용전반을참조할수있다.이승현,바울의아담기독론과새관점.
4.2. 하나님의 형상을 소유한 예수
골로새서의 기독론적 시는 예수를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형상’(εἰκὼν τοῦ θεοῦ τοῦ ἀοράτου, 1:15)이라고 칭함으로써, 성육신한 예수가 이 땅에서 하나님을 계시한 하나님의 아들임을 알려 준다. 바울 신학에 깊이 영향 받 은 무명의 히브리서의 유대인 저자는 예수의 하나님의 형상됨을 예수가 하 나님의 영광의 빛을 비추고, 하나님의 본질을 그 안에 소유하고 있음을 통해서 설명한다(히 1:3).51) 이 두 본문들이 보여주는 예수의 하나님의 형상 됨에 대한 기독론적 이해는 유대인들의 아담 전통과 더불어, 지혜 전통의 영향을 받은 듯 보인다(비교, 지혜 7:26).52) 사실 고대인들의 사고에서 형상 은 보이지 않는 신적 존재들이 인간의 눈에 계시될 때 보이는 영광, 혹은 빛 으로 둘러싸인 외모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비교, 사 6:1-6; 겔 1:26-28). 그들 에게 신들의 형상을 소유한 사람 혹은 물건은 단순히 신들의 복사품이 아 니라, 그 신들의 실질적인 임재와 그 임재에 동반된 능력과 동일시된다.53)특별히 고대 근동에서 형상 개념은 왕들에게 적용되면서 왕실 이데올로기(royal ideology)의 한 중요한 축을 구성한다. 이 왕실 이데올로기에 따르면,땅의 왕들은 하늘의 신들의 살아 있는 임재를 의미하는 그들의 형상을 소 유하면서, 피조물들에 대한 신들의 통치를 대신 실행하는 특별한 존재들이 다.54) 여기서 신의 형상을 소유한 왕과 같은 특별한 인간들은 신들과의 존 재론적 연합 속에 거하는 그들의 아들들로 간주된다(비교, 창 1:26-27; 5:1-3; Ps 2; 8).55) 이러한 고대인들의 형상 개념은 유대인들의 아담 전통과 지혜 전통, 그리고 이 두 전통들을 계승한 바울의 예수 이해에 깊이 스며들 어 있는 듯 보인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15:45-49와 고린도후서 4:4-6을 포함 한 자신의 서신서 여러 곳에서 예수를 하나님의 형상을 소유한 하나님의 아들로 소개하고 있다. 나아가 바울은 예수에게 속한 하나님의 새 백성은 예수의 형상에 따른 변화를 경험하는 하나님의 자녀들이라고 가르친다(롬8:29; 고후 3:18). 이 본문들에서 바울은 하나님의 형상을 소유한 예수가 바 로 창세기 1:26의 하나님의 형상을 소유한 신적인 ‘우리’의 구성원임을 전 제한다. 이 전제 하에서 바울은 예수가 하나님과 창조에 대해서 가지는 특 별한 신분과 기능을 기독론적으로, 그리고 구원론적으로 자세히 서술하며 묘사한다.
첫 번째, 고린도전서 15:49에서 바울은 성도들이 경험할 미래의 부활의 몸을 설명하면서 ‘하늘의 형상’(τὴν εἰκόνα τοῦ ἐπουρανίου) 개념을 소개한다.
하늘의 형상은 당연히 하늘의 주인인 하나님의 형상을 에둘러 지칭하는 표현 인데, 이 형상은 현재 하늘로부터 기인한 예수에게서 발견된다(15:48-49).56)예수가 소유한 하나님의 형상은 흙에서 기인한 아담이 소유한 땅의 형상과 완전히 대조된다. 아담이 소유한 땅의 형상이 ‘죽음’과 ‘약함’과 ‘불명예’의 특징을 가진 반면에, 예수가 소유한 하늘의 형상은 ‘불멸’과 ‘강함’과 ‘영 광’으로 채워져 있다. 바울에게 예수는 하늘의 형상을 입고 영광 중에 거하 던 선재한 하나님의 아들이다(비교, 빌 2:6-8). 그러나 선재한 아들은 아담 의 땅의 형상을 덧입고 이 땅에 성육신한 후, 십자가에서 자신의 육체에 죽 음을 경험했다. 그 후 예수는 하늘의 형상이 품은 부활의 생명을 통하여 육 체의 죽음을 극복하고, 만물의 경배의 대상인 우주의 주로 높여졌다(빌2:9-11; 비교, 고전 12:23-28).
물론 바울에게 부활의 생명은 하나님과 예수 의 영인 성령을 통해서 아담의 형상을 따라 태어나고 죽은 인간의 몸이 경 험하게 될 종말론적 실체이다(롬 8:9-10). 그리고 성도들에게 부활의 생명 을 선사할 주 예수는 ‘생명을 주는 영’과 동일시된다(πνεῦμα ζῳοποιοῦν, 고 전 15:45; 고후 3:17). 예수는 자신과의 연합을 통하여 자신 안에 속한 자 들의 죽은/죽을 몸을 부활시켜 자신이 소유한 하늘의 형상을 공유하게 해 줄 것이기 때문이다(고전 15:48-49; 롬 6:3-6). 그러므로 바울에게 예수는 인 류를 도탄으로 몰고간 타락한 아담과 대조되는, 생명을 주는 새 아담으로 불린다(롬 5:12-21).57) 새 아담 예수가 소유한 하늘의 형상에 따른 성도들의 부활은 그들이 종말론적으로 경험할 새로운 창조 사건의 가장 결정적인 요 소이고(고전 15:50-57; 비교, 고후 5:17), 첫 아담의 타락과 저주를 극복하는 우주적 사건의 결론이다.58)
두 번째, 고린도후서 4:4-6에서 바울은 자신과 고린도인들이 함께 주로 고백하는 예수를 ‘하나님의 형상’(εἰκὼν τοῦ θεοῦ)이라고 칭한다.
바울에게 예수가 하나님의 형상인 이유는 현재 그의 얼굴에 하나님의 영광이 빛을 내며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고린도전서 15:43에서 바울은 영광을 불명예 와 대조되는 다소 사회적 윤리적 개념으로 제시했지만, 고린도후서 4:6에 서는 어두움을 밝히는 빛 같은 시각적 개념으로 제시한다. 시각적 측면에서 하나님의 영광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신적인 외모가 인간의 눈에 계 시될 때, 그 계시된 외모를 둘러싸고 있는 빛나는 광채를 가리킨다(비교, 히1:3; 겔 1:26-28; 사 6:1-6).59) 하나님의 외모가 품고 발산하는 빛나는 광채는 그 안에 담긴 하나님의 신적인 본질의 시각적 발현이므로, 하나님의 형상 인 예수는 하나님의 신적 본질에 동참하는 자이다.60)
바울은, 형상에 대한 유대인들의 일반적 이해에 동의하면서, 자신의 서신서 여러 곳에서 영광과 형상을 마치 동의어처럼 사용한다(비교, 롬 1:23; 8:29-30; 고전 11:7; 고후3:18).61) 유대인들의 창세기 해석 전통을 따르면,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피 조된 아담도 원래 하나님의 영광을 덧입고 있었으나, 타락 후 그 영광을 상 실하고 벌거벗은 채 발견되었다.62) 그러나 하나님의 영광과 형상에 대한 바울의 이해에서 우리는 아담과 예수 간에 존재하는 큰 질적 차이를 결코 놓칠 수 없다. 아담은 하나님의 형상에 따라 창조된 피조물에 불과하지만,예수는 하나님의 형상 그 자체로서 하나님의 창조의 동역자이다. 첫 창조 에서 창조주 하나님이 흑암에 빛을 비추며 창조를 시작했던 것처럼, 현재 하나님은 자신의 영광의 형상인 예수의 복음의 빛을 사람들의 마음에 비추 며 새로운 피조물인 성도들을 창조하고 있다(고후 4:6). 이 사실은 우리에 게 첫 창조시 아담 창조의 청사진이 된 하나님의 형상을 공유한 신적인 ‘우 리’의 정체에 대한 바울의 해답을 알려 준다. 바울은 하나님과 함께 그의 형 상을 공유한 예수를 창세기의 신적인 ‘우리’가 지칭하는 두 분으로 이해하 고 있다.
창세기 1:26-27에서 신적인 ‘우리’가 공유한 하나님의 형상이 아담의 창 조의 청사진으로 기능했기에, 바울에게는 하나님의 형상을 소유한 예수가 하나님과 함께 신적인 ‘우리’를 구성하는 두 번째 구성원이다. 그리고 하나 님의 형상인 예수의 복음의 빛을 접하여 믿고 그에게 속하게 된 성도들은 날마다 ‘영광에서 영광으로’(ἀπὸ δόξης εἰς δόξαν) 변화되는 새로운 피조물이 다(고후 3:18; 5:17). 이 영광스러운 변화는 현재 성도들의 내면에서 지속적 인 과정을 통하여 발생하는 역동적인 현상이다. 바울에게 예수의 복음을 믿고 회심하는 순간은 새로운 피조물인 성도들의 창조의 시작을 의미하고,그 시작은 계속적인 내면의 영광스러운 변화로 이어진다. 그리고 그 변화의 마지막은 예수가 소유한 하늘의 형상에 따른 성도들의 몸의 부활이다.이처럼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가 이룬 구원과 종말론적 부활을 그가 소유한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성취하는 새 창조의 사건으로 이해한다. 여기서 우 리는 창세기 1장의 하나님의 형상 개념을 통한 첫 창조에 대한 이야기가 바 울의 예수 이해에서 아담 기독론적으로, 그리고 종말론적으로 한층 더 발 전하고 있음을 본다.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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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 참조, H. W. Attridge, The Epistle to the Hebrews: A Commentary on the Epistle to the Hebrews, Hermeneia (Philadelphia: Fortress Press, 1989), 1-6, 42-46.
52) 참조, D. W. Pao, Colossians & Philemon, 94-95.
53) 참조, S. L. Herring, “A “Transubstantiated” Humanity: The Relationship between the Divine
Image and the Presence of God in Genesis I 26f.”, Vetus Testamentum 58:4-5 (2008), 485-88; D. J. A. Clines, “The Image of God in Man”, 85-95; Middleton, The Liberating Image: The Imago Dei in Genesis 1, 25-26.
54) S. L. Herring, “A “Transubstantiated” Humanity: The Relationship between the Divine Image and the Presence of God in Genesis I 26f.”, 494; D. J. A. Clines, “The Image of God in Man”, 82-83; Middleton, The Liberating Image: The Imago Dei in Genesis 1, 53, 87-89; C. L. Crouch, “Made in the Image of God: The Creation of אדם, the Commissioning of the King and the Chaoskampf of Yhwh”, 1-21.
55) C. L. Crouch, “Genesis 1:26-7 as a Statement of Humanity's Divine Parentage”, 9-12.
56) 참조, A. C. Thiselton, The First Epistle to the Corinthians : A Commentary on the Greek Text, The New International Greek Testament Commentary (Grand Rapids, Mich.: W.B. Eerdmans, 2000), 1287-1288.
57) 참조,이승현,바울의아담기독론과새관점,239-262.
58) 참조, Ibid., 380-408.
59) M. J. Harris, The Second Epistle to the Corinthians: A Commentary on the Greek Text, The New International Greek Testament Commentary (Grand Rapids, Mich.: W.B. Eerdmans Pub. Co., 2005), 331.
60) 참조, M. A. Seifrid, The Second Letter to the Corinthians, The Pillar New Testament Commentary (Grand Rapids, Mich.: Eerdmans Publishing Company, 2014), 197.
61) 참조, U. W. Mauser, “God in Human Form”, Ex auditu 16 (2000), 81-99.
62) 이승현, 바울의 아담 기독론과 새 관점, 168-169, 472-473.
63) 참조, D. J. A. Clines, “The Image of God in Man”, 103.
5. 나가는 말
유대교와 기독교에서 성경은 그 해석 공동체들에게 삶과 신앙의 방향을 결정하도록 돕는 가장 중요한 기록된 문서인 정경으로 간주된다. 그러나 성경이 침묵하는 곳에서 해석 공동체들은 창의적인 해석의 기회를 보는 동 시에, 급진적인 해석이 발생할 위험을 보기도 한다. 창세기 1:26의 신적인‘우리’의 본질에 대한 창세기 저자의 침묵이 가장 좋은 예이다.
이 논문에서 우리는 창세기의 신적인 ‘우리’의 본질에 대한 후대의 해석 공동체들의 다 양한 해석들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필로와 유대인 랍비들은 천사들로 구성 된 하늘의 공회를 신적인 ‘우리’에 대한 해결책으로 제시한다. 그러나 필로 가 인간의 악한 부분의 창조를 천사들에게 돌림으로써 하나님의 선하심을 방어하려 한 반면에, 랍비들은 천사들을 단순히 창조에 대한 하나님의 뜻 의 수행자로 제시하여 하나님의 배타적 권리를 방어하려 한다. 반면에 영 지주의자들은 세상의 창조를 악한 창조주 데미우지와 그의 천사들에게 돌 림으로써, 선하신 하늘의 아버지를 악한 세상의 존재로부터 격리시키고자 한다. 물론 영지주의자들과 대척점에 서 있는 교부들은 삼위일체론적 해석 을 통해서 세상의 창조를 삼위 하나님에게 돌린다.
그리고 그들에 앞서 초 대교회 신앙을 그리스 사회에 소개하며 발전시킨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형상을 소유한 하나님의 창조의 동역자로 제시한다. 그리고 바울 은 첫 창조 이야기의 빛 아래서 자신의 주 예수가 이룬 구원을 종말론적으 로 재해석한다. 이처럼 성서가 침묵한 자리에서 우리는 다양한 해석학적 가능성과 함께, 해석학적 공동체들 간의 갈등을 본다. 그러나 이 논문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영인 성령과 신적인 ‘우리’ 간의 관계에 대해서는 충분히 조사해 보지 못했다. 창세기 기자가 지나가듯 언급한 하나님의 영의 존재 를 이레니우스와 교부들은 창조의 세 번째 조력자로 중요하게 제시한다.
이에 대한 미래의 연구는 본 논문이 시작한 대화를 훨씬 더 풍부하게 해 줄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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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현, “빌립보서 2:6-11을 통해서 본 바울의 기독론적 구약 사용”, 「신약논단」.215-256 ,)2019( 26:1이승현, 성령, 서울: 킹덤북스,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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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현 (호서대학 신약학과 부교수)
https://www.bskorea.or.kr/data/pdf/48-06%20이승현%20창세기%201.26의%20신적인%20‘우리’에%20대한%20해석학적%20전통과%20바울.pd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