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미안(審美眼)- 4
전11:7, 시119:18
1. 들어가는 이야기
* 내 눈을 열어서 주의 율법에서 놀라운 것을 보게 하소서-Open my eyes that I may see wonderful things in your law(시119:18). * 빛은 실로 아름다운 것이라 눈으로 해를 보는 것이 즐거운 일이로다-Truly the light is sweet, and a pleasant thing it is for the eyes to behold the sun(전11:7)
2. 사람은 심미적 존재이고-심미적 존재이어야 합니다
혹시, 圓(원-동그라미)과 정사각형 안에 알몸의 남자가 두 팔을 벌리고 두 발은 모으고-두 팔은 체조 선수처럼 어깨 높이로 다리도 그 만큼 벌린 모습의 그림을 보신 적이 있습니까? 이 소묘 작품은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고대 로마 건축가 비트루비우스의 건축 10서(De architectura) 3장 신전 건축 편에서 “신전은 인체 비례에 따라 지어야 한다”는 글을 읽고 實測(실측)하여 그렸다는 유명한 인체비례도(Canon of Proportions) 혹은 비트루비우스적 인간(Vitruvian Man) 입니다.
이 인체비례도 소묘 작품이 그토록 유명한 것은 이 세상에 直立(직립)으로 태어난 각 사람은 누구나 모든 空間(공간)을 上下前後左右(상하전후좌우)를 바라 볼 수 있다. 공간을 그렇게 볼 수 있다는 것은 보는 주체인 각 사람이 공간의 중심이 된다는 뜻이며, 동시에 하늘과 땅-온 우주의 모든 변화를 주체적으로 인식-판단-결정할 수 있는 소우주적 존재(micro universe)라는 사실을 상징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동양적으로 말하면, 각 사람은 天上天下唯我獨尊(천상천하유아독존)-天地之間 萬物之衆 唯人最貴(천지지간 만물지중 유인최귀-하늘과 땅에 있는 만물 중에 사람이 가장 귀한 존재다) 라는 말입니다.
우리는 흔히 “OK?”, “OK!” 라고 합니다. “좋아?”, “좋아!”, “됐어?”, “됐어!” 라는 뜻으로 통합니다. 그런데 이 “OK” 라는 말은 원래 그리스 뱃사람들이 쓰던 “올라 칼라(Ola Kala-모든 것이 아름답다)”의 단축형이라고 합니다. “모든 것이 아름답다”가 “모든 것이 다 잘 됐다-OK”로 변화한 것입니다.
사람은 원래 아름다움을 볼 수 있는 심미적 존재입니다.
그런데 먹고 살기-욕심-근심-걱정-불안-바쁜 현대 사회 시스템 등 때문에 심미안을 잃고 삽니다. 심미안은 회복 되어야 합니다. OK?, OK!
3. 심미안-아름다움을 보는 능력-미학적 지능의 유익이 무엇인가?
첫째. 심미안이 열리면 성경을 달고 오묘한 말씀으로 읽는 유익이 있습니다. 시편 기자는 “주의 말씀의 맛이 내게 어찌 그리 단지요 내 입에 꿀보다 더 다니이다(시119:103)” 라고 하셨습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 가운데는 “평생에 신구약 성경을 한 번이라도 통독해야 할텐데...” 하시는 분들이 있을 줄 압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소설-역사-에세이-신문-영화-드라마 등은 재미있게 날밤을 새워가며 달게 열심히 읽으면서 성경은 읽지 아니 합니다. “꿀보다 더 달다”는 성경을 왜 읽지 아니 하는가? 성경을 읽는 심미안이 열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내가 반복해서 제일 많이 읽은 책은 “나관중의 삼국지연의(13번)”입니다. 성경은 이제까지 28번 읽었습니다. 처음에는 목사라는 의무감 때문에 읽었습니다. 그러던 것이 나중에는 재미있어서 내 마음에 달아서 읽었습니다. 내 아버지는 평생 50번 쯤 성경을 읽으셨는데, 하시는 말씀이 “야, 성경이 정말 참 재밌어!”입니다. 성경을 읽는 심미안이 열린 것입니다(참고: 말씀의 샘물 352-353-354호).
둘째. 심미안이 열리면 日日是好日(일일시호일-아니 좋은 날이 없음)하여, 해나는 날은 해나는 대로 좋고-비 오시는 날은 비 오시는 대로 좋고 날이면 날마다 즐겁고-기쁘게-누리는 유익이 있습니다. 심미안이 열리면, “벌거벗은 임금님”을 “벌거벗은 임금님”으로 볼 수 없게 하는 문화적-사회적-심리적 고정관념-선입관-전이해-거짓된 소문에서 벗어나 “벌거벗은 임금님”을 “벌거벗은 임금님”으로 똑바로 볼 수 있는 자유를 얻습니다.
그 자유가 나의 존재 자체-지금 내 모습 이 대로가 가장 아름다운 존재-특별한 존재-천하에 하나 밖에 없는 귀중한 존재인 것을 자각하게 합니다. 두려움이 사라집니다-통찰력이 생깁니다-생생하게 살아 있음을 느낍니다-나 자신을 재발견하는 힘이 생깁니다. 그리하여 自覺(자각)한-깨어난-눈뜬-변화된 자기 주체성을 가지고 이웃-자연-사회-우주-하나님과 새로운 관계를 맺고 살기 시작합니다. 예를 들면, 심리적 주종관계에서 대등한 관계로-말도 못 부치던 누군가에게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 관계로-허무했던 세상에서 의미 충만한 생생한 세상으로-무서운 여호와 하나님에서 사랑의 아버지 하나님 관계로 등등.
셋째. 심미안이 열리면, 보고-듣고-느끼는 것 모두를 전혀 새로운 각도, 입체적 시각, 창조적 관점으로 보고-듣고-느낄 수 있는 유익이 있습니다.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이고-들리지 않던 것이 들리고-느끼지 못 했던 것을 느낍니다. 그러므로 시편 기자는 이 신비를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의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도다 날은 날에게 말하고 밤은 밤에게 지식을 전하니 언어도 없고 말씀도 없으며 들리는 소리도 없으나 그의 소리가 온 땅에 통하고 그의 말씀이 세상 끝까지 이르도다(시19:1-4)” 라고 하신 것입니다. O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