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화 경체정(奉化 景棣亭)은 법전면에 있는 조선시대의 건축물로,
예조좌랑과 승지를 지낸 강윤(姜潤), 첨지중추부사를 지낸 강완(姜浣),
가의대부를 지낸 강한(姜瀚) 삼형제의 우애와 덕행을 기리기 위해,
강윤의 증손자로 철종 때 병조참판을 지낸 강태중(姜泰重)이
1858년(철종 9)에 지은 정자이다.
봉화 경체정(奉化 景棣亭)
정자는 앞면 2칸·옆면 2칸 규모의 정사각형 건물이다.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으로 꾸몄다.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508호(2017.5.15)이다.
경체정(景棣亭) 편액
정자의 이름은 시경(詩經) 소아(小雅)편에 있는 형재의 우애를
그린 글에서 취했다고 하며, 정자의 정면 오른쪽 현판은 추사 김정희,
왼쪽 현판은 고종 때 영의정을 지낸 김병국의 친필이다.
기헌 강두환이 한양에 머물 때 추사(1786-1856) 김정희와
친분이 있어 이 현판 글씨를 받았다고 한다.
경체정앞 회나무
강씨 삼형제는 병자호란의 굴욕적인 화친에 반대하여
봉화로 은거한 강흡(姜洽)의 고손자로, 집안이 3대째 벼슬을
하지 않아 가세가 기울었으나 서로 도우며 학문을 닦아 법전강씨
문중을 경북 북부지역의 명문가로 다시 번창시켰다.
봉화 해은구택(법전 양지마을)
봉화 해은구택(海隱舊宅)은 계하 강제가 건립한 주택으로
법전강씨 종택 전면에 위치하고 있으며, 정침은 6칸, 측면 6칸반
규모의 "ㅁ"자형 건물로 사랑채는 중문칸 우측에 배치되어있다.
해은구택 측면
문이 잠겨있어 안에는 들어갈 수 없으나 자료에 의하면
사랑방 뒤에는 작은 사랑을 두었으며, 안채는 2통칸의 마루방을
중심으로 좌측에는 안방을, 우측에는 건너방과 상방을 두었다.
ㅁ자형의 은해구택 전경
법계 구곡가 서시
해은 강필효(1764~1848)
그대 보았는가 법계물이 아침 저녁 연하가 두름을
산은 무이 굽이를 서리고 시는 고산 노래를 이었네.
흥이 나고 이치 넉넉하니 참된 공부 날마다 하여라.
봉화 법전강씨 종택(奉化 法田姜氏宗宅)
봉화 법전강씨 종택은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이 억울하게 끝나자
도은 강각(姜恪) 선생이 형인 강흡(姜洽) 선생과 함께 법전 양촌에
은거하며 절개를 지키던 곳으로 일명 도은구택이라고도 한다.
"ㅁ"자형의 법전강씨 종택 전경
1798년(영조 46)에 수리하였으며, 그 뒤 다시 고쳐지었다.
사랑채와 안채가 튼 "ㅁ"자 형으로 배치되어 있으며,
그 안쪽에 재실과 사당이 있고, 안채가 가장 오래된 건물이며,
대청을 중심으로 윗방, 안방, 부엌이 사랑채를 향하여 있다.
담 너머로 본 사당
법전리 음지마을앞 태백오현 석비
병자호란시 외세의 침입을 받아 나라가 치욕을 당하자
벼슬 등 부귀영화를 버리고 태백산에 칩거한 선비들이 있었으니
세인들이 태백오현이라고 칭송하였다.
각금당 심장세, 두곡 홍우정, 포옹 정양, 잠온 강흡, 손우당 홍석이
법전에서 십여리 거리로 살며 소요상락, 유유자적 하였다.
봉화 기헌고택(奉化 起軒古宅) 전경
법전리 마을 중심부에 자리한 기헌고택은 1845년 기헌 강두환 선생이
직접 지어 살던 집으로, 조선 후기 생활상을 담은 건축물로 평가된다.
대문채
고택은 무려 5칸짜리 솟을대문 안으로 들어가면 널찍한 마당이 나온다.
한옥 숙박체험을 위한 옆문
기헌고택 안채
그리고 정면 6칸, 측면 7칸의 "ㅁ"’ 자형 안채와 별채가 늠름하게 서 있다.
고택의 평면은 모두 사랑방이고, 중문을 들어서면 안채로 들어갈 수 있다.
안뜰은 작은 화단을 중심으로 빙 둘러 건넌방, 대청, 안방, 부엌이 자리한다.
별채
안에서 본 대문채
상소(上疏) 성학소 집구(聖學疏 集句)
기헌 강두환(1781~1854)
일국흥망 만백성이 전하에게 달렸는데
강독공부 독초같고 노는것을 수이하니
나라위해 갈고 닦을 임금공부 어찌할고
좋은날씨 궁궐에서 뭐를하고 계시는지
성군공부 그만두고 한가하게 세월허비
저번상소 답하신것 어떻게나 실현할까
직언함은 신하도리 실천함은 님의임무
두개모두 되지않아 대간직무 허무하네.
기헌 강두환은 1844년, 이 상소사건으로 삼사의 탄핵을 받았으나
헌종 스승이라는 배경으로 유배만은 면하고 이곳에 낙향하였다.
기헌고택 옆의 바위
법전마을 송월재 종택 전경
송월재(松月齋) 종택은 이시선(李時善)의 7대손인 이하필(李夏弼)이
건립한 주택으로, 종택은 정면 6칸 측면 6칸 규모의 "口"자형 건물인데,
전면에 있었던 대문채는 1960년경에 철거하였으며 정침(正寢)의
우측에는 최근에 건립한 사당(祠堂)이 방형의 토석담장을 두른
별도의 공간 안에 자리잡고 있다.
봉화 송월재 종택(奉化 松月齋宗宅)
봉화 송월재 종택은 법전리 음지마을을 대표하는 전통주택으로,
100여 년전 구 종택을 옮겨 복원한 것인데, 19세기 후반의
구조양식으로 종가의 구색과 품격을 잘 갖추고있다.
안채
정침(正寢)의 평면은 중문칸을 중심으로 우측에는
사랑방 2칸과 사랑마루 2칸으로 구성된 사랑공간을 두었으며,
중문을 들어서면 내정을 사이에 두고 2통칸의 안방과 2칸 대청이
내정 폭을 가득히 메우며 자리잡고 있다.
송월구택(松月舊宅) 편액
송월재는 조선 후기 이시선(李時善,1625~1715)의 아호다.
이시선의 본관을 전주이며, 조선조 태종의 칠남인 온녕군(溫寧君)의
8세손으로 부친은 추만(秋巒) 이영기(李榮基)이다.
송월종택 전경
송월재는 진흙 수렁에서의 명리다툼을 숙명으로 하는 벼슬길은
장부가 취할 바가 못된다는 부친의 가르침으로 일찍이 과거를 단념하고
전국을 두루 탐방하고 돌아와 향리에 송월재라는 서재를 짓고는
두문불출한 채 독서와 학문탐구에 전념하였다.
송월재의 불천위 사당
묘지명에 "경서는 물론 고금의 서에 박통(博通)하였다" 고
표현할 정도로 고금의 서적과 학문에 두루 해박한 지식을 갖춘
송월재는 남달리 활발한 저작 활동을 보여 수많은 저술을 남겼다.
저서로는 송월재집(松月齋集),사보략(史補略),역대사선(歷代史選),
경서훈해 (經書訓解),서전참평(書傳參評),시전남과(詩傳濫課),
전의병지(傳義병枝) 등과 손수 편집한 문집 하화편(荷華編)이 있다.
불천위 사당앞의 석비
송월재(松月齋) 이시선(李時善, 1625~1715)은 군자로
성리학에 뛰어난 학자였다. 선생의 학문과 효우를 기리려는
영남유림의 천으로 길이 제사를 모시는 불천위로 받들게 되었다.
첫댓글 쉴틈도 없이 답사를 이어가고 있네요
체력이 대단하십니다
법전마을 답사한지도 오래되었는데
새롭습니다
고맙습니다.
언제가도 새롭고 선인들의 체취가 느껴지는 곳입니다.
건강하세요.